배다리 시낭독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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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다리 시낭독회
  • 최정해
  • 승인 2019.01.30 1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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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칼럼] 최정해 / 인천노인종합문화회관 소통의 글쓰기 회원



나는 무얼하다 일흔이 넘어 이제야 이 다락방 계단을 오르게 되었는가.’ 올라가다 이런 생각을 해본다. 처음 이 곳에 올 때 나는 몇 안 남은 옛날 동네, 철길 밑 헌책방을 물어물어 찾아왔다. 주소나 전화번호만 갖고 있다면 그 어디든 잘 찾는 편이다. 요즘은 아파트 동 호수가 뚜렷하니 더욱이 잘 찾는다. 그런데 이런 오래된 주택가는 오랜만에 찾아왔다. 책을 사기 위해서가 아니라 매달 시 낭독회가 열린다는 이야기를 듣고 바쁜 시간을 쪼개어 왔다.
 
‘배다리 시낭독회’는 남녀노소, 어른 아이 구별없이 누구나 올 수 있다. 시 다락방 주최자는 대략 너 댓 분인 것 같다. 장소 제공하시는 책방 주인, 사회자 선생님, 공간 구석구석을 조촐하게 장식해 주시는 꽃꽂이 하시는 분, 그 날의 발표자 이자 주인공인 시인…… 생각해 보니 그 장소에 모인 시민 시청자도 그 속에 함께 넣어야 할 것 같다.
 
책방 주인은 일흔 정도 되시는 예쁘장한 여자 분이신데 소문엔 남편이 저 세상으로 가신지 오래되었다고 한다. 새벽엔 우유 배달을 하면서 어렵게 사시는 분인데 이 좋은 만남의 자리를 마련하였다니 나는 여러모로 궁금증이 발동하였다. 인터넷 세상에 새 책도 안 팔리는 시대인데 ‘헌 책이 얼마나 팔릴까’ 하는 생각이 살짝 스쳐갔다. 그런데도 십 년이 넘도록 이 자리를 마련했다고 하니 놀랍기도 했다. 시 낭독회를 주최한다고 해서 돈이 생기는 것도 아니고 그 분은 어떤 뜻을 품고 이런 일을 시작한 것일까?
 
지난 가을에는 근처 생태공원에서 시 낭독회를 열기도 했다. 국화꽃 코스모스도 흐드러지고 음악하는 사람들도 몰려와서 분위기가 한층 밝고 좋았다. 한쪽에선 부침개도 부치고 한바탕 잔치가 열렸다. 알고 보니 이 헌책방이 있는 배다리 일대가 주민들의 동의없이 개발한다는 소식에 그것을 반대하는 시위였다. 하지만 이 행사는 시끄럽기는 하지만 가을 축제 같았다. 요즘은 시위도 축제처럼 하는구나! 라는 생각에 감회가 새로웠다.
 
오늘 낭독회는 긴 나무 의자에 걸터앉아 다과를 들면서 여유로운 시간을 가졌다. 자리가 부족하여 서 있는 분들도 계셨다. 어떤 남자 분은 바로 내 옆 의자에 서 있는데 무심코 바라본 그의 가방이 이상했다. 여기저기 깁고 기운 자욱이 있는 것이다. 자세히 보니 그가 쓴 모자도 기웠다.
 
시낭독회가 시작되자 그는 손을 들고 앞으로 나갔다. 자신의 음성으로 시를 낭독하는데 그가 상의에 걸친 잠바도 손바늘질로 기운 것이 보였다. 요즘 세상에서 보기 드문 모습이었다. 나는 나도 몰래 자꾸 그 남자의 옷차림을 유심히 살펴보게 되었다. 내 눈에는 발에서 머리끝까지 그의 모습이 특이했다. 예전 못 살던 시절에는 속옷을 기워 입거나 양말을 기워 신은 적이 있었다. 그런데 요즘 누가 옷을 기워 입는가? 그는 흔한 말로 빈티지 패션이라고 멋을 낸 것 같지도 않았다. 젊은이들은 멋으로 청바지를 더러 찢어 입기는 하지만 나이 들어 그렇게 입으면 없어 보인다. 나는 자꾸만 고개를 갸우뚱 했다.

그러다 이런 생각을 하게 되었다. ‘이 낡은 동네에서 매달 시낭독회를 여는 것도, 이곳을 물어물어 찾아오는 나 같은 사람이 있다는 것도, 그리고 그러한 사람 중에 옷을 기워 입고 온 저이 같은 사람이 있다는 것은 뭐 다를 것이 없지 않는가?
나는 왜 여기까지 물어물어 왔을까? 할 일도 많고 갈 곳도 많은데…… 시 낭독회가 있는 주말이면 어김없이 이곳을 찾아오는 사람들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런데 이곳에 오면 나는 숨통이 트인다. 잘 모르는 사람들도 친숙한 느낌이 든다. 이런 동질감은 어디에서 연유하는 것일까? 여기에 모인 사람들도 다 나 같은 심정일까?
 
우리 회관 소속 회원들이 오늘은 여덟 분이나 왔다. 이곳에서 시 낭독하는 분도 할머니 시인이다. 둘러보니 젊은 분이 더러 있지만 대개는 나이가 지긋한 사람들이 많다. 이 분들의 얼굴 표정은 천차만별이다. 하지만 하나같이 얼굴에 여유를 가지고 있다. 그러면서도 호기심과 설렘이 느껴진다. 나이를 먹었어도 완전히 지워지지 않은 개성이 느껴졌다. 그들에게서 나는 자유로움을 느낀다. 자발적으로 선물도 준비하고 모르는 사람들이지만 서로의 마음을 교환한다. 물질적으로 가난하여 옷을 기워 입었든, 멋을 내기 위해 기워 입었든, 혹은 빈티지 패션을 의도했으나 정반대로 어설픈 느낌을 들게 했던 누구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고 이 낭독회의 분위기를 즐기는 것이다. 그들이 우리 또래의 참석자들이라는 것이 실감난다. 그렇게 생각하자 조금 전 옷을 기워 입은 그 남자에 대해 가졌던 이상하다는 느낌은 사라지고 묘한 개성이 느껴졌다.
 
지금까지 배다리 시낭독회에서는 이름이 있는 시인을 초청하여 그의 시론이나 삶의 이야기를 듣는 시간이었다. 이번에 우리 회원 중에 한 분이 색다른 제안을 했다. 우리는 문화회관에서 글을 쓰는 아마추어들이지만 이 자리에서 우리 스스로 시낭독을 한번 해 보고 싶다는 내용이었다.
책방 주인어른은 곰곰이 생각하더니 차후에 연락을 주겠다고 하였다. 사실 이 자리가 편해 보여도 준비하는 사람 입장에서는 준비할 것이 많다고 하였다. 시인의 프로필과 시 텍스트를 모아 낭독회에 참여하는 사람만큼 책자를 만드는 일이 있다. 또한 낭독회를 주최하면서 주인이 자비로 떡과 다과를 준비하고 그 날의 낭송자에게는 일정의 보수도 지급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 일을 십년이나 했다니 놀라웠다. 시 낭독회가 끝나자 정성껏 다과를 내놓는 주인을 보면서 경외심이 모락모락 피어올랐다. 그것 역시 이상하지 않았고 당연한 일이었다.
 
이번 ‘배다리 시 낭독회’에서는 고정으로 참석하시는 시 사랑 회원들이 책방 주인에게 선물을 증정하는 특별한 시간이 있었다. 또한 독자 한 분은 늘 오시는 동화마을 시인 할머니께도 스카프를 선물하였다. 그 곳에 오시는 사람 중에 최고령자인 듯한 그 시인 할머니는 앞에 나와서 인사를 하였다. 할머니는 시 강의를 하기 전에 그 옛날 시집와서 시집살이 하던 이야기도 재미있게 들려주었다.

마지막 인사 시간에 책방 주인의 특별한 전언이 있었다. 우리 문화회관 회원들은 5월 마지막 주 토요일에 계획이 잡혔으니 각자 시 한편씩을 준비하라는 내용이었다. 이방인처럼 앉아서 들려주는 이야기만 듣다 갔는데 직접 참여하는 시 낭독회 시간을 갖는다니 긴장감과 함께 벌써 즐거운 마음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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