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은 식물인데 짐승같다
상태바
꽃은 식물인데 짐승같다
  • 최일화
  • 승인 2019.03.15 12:32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금요시단] 이나혜 시집 『눈물은 다리가 백 개』를 읽고 - 최일화 / 시인



한 시인이 명성을 얻고 사랑 받기 위해서는 여러 요인이 작용한다. 오직 작품이 좋아 일류 시인의 대열에 합류하기도 하지만 시를 읽는 사람의 취향도 다 다르니 작품만을 보고 명성을 얻는다는 것도 쉽진 않을 것이다. 시인의 행적이 그를 유명하고 가치있는 시인으로 만들기도 한다. 윤동주나 이육사는 독립운동으로 형무소에서 고초를 겪다가 사망하였다는 사실로 하여 식민지배에 대한 저항의지와 맞물려 시인의 이미지를 한층 증폭시킨 측면도 있다. 어떤 경우는 요절로 인하여 시인의 이미지가 더욱 애절하고 간절해지는 경우도 있다. 김소월, 이상, 기형도 같은 시인들은 독자의 상상 속에서 영원한 천재 시인으로 각인되어 있는데 시인들의 요절도 이미지 형성에 한 몫 했을 것이다.


매우 이색적인 현상이지만 함형수 같은 시인은 시집 한 권 없지만 <해바라기의 비명> 한 편으로 문학사에 이름을 올린 흔치 않은 경우에 속한다. 그런가하면 문학사에 찬란하게 등장했던 문인들이 친일문학 담론이 본격 대두되면서 그 빛이 퇴색하는 안타까운 현상도 있다. 이미 작고하여 더 이상 작품 활동을 하지 않고 아무런 반론도 제기하지 못하는 시인의 작품이라고 해도 후세의 독자나 평자에 의해 그 문학사적 위치가 재평가되는 과정이 지속되고 있다. 시문학의 천재로 칭송 받고 온 국민의 사랑을 받던 시인이 폄하되고 지탄의 대상이 되는 현상을 숨죽여 지켜볼 수밖에 없는 것이다.


현대에 와서 문학을 하는 사람들이 부쩍 늘고 시인의 타이틀을 갖는 사람들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었다. 수만 명은 족히 될 사람들이 시인 작가의 타이틀을 획득하여 명단에 이름을 올리고 있다. 이런 현상엔 긍정적인 측면도 있고 부정적인 측면도 있을 것이다. 긍정적인 측면이라면 문학의 저변 확대이다. 저변에 문학 애호가가 튼튼한 층을 이루고 있으면 거기서 피어나는 문학의 꽃이 한층 다양하고 아름다울 것이다. 부정적인 측면이라면 시인 중에서 진실로 보배로운 시인을 다시 선별해야 하는 고충이다. 수많은 시인 중에서 어떤 시인이 가치 있고 보배로운지 가려내는 문제가 결코 쉽지 않다. 그 많은 작품 중에서 좋은 현대시로 규정하기에 손색이 없는 시를 구별하기는 독자로서는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럼 어떤 경로를 통해 좋은 작품이 선별되는가.

그가 어느 경로로 문단에 데뷔했는지가 참고가 될 것이다. 유명 일간지의 신춘문예로 등단했거나, 매우 엄격한 심사 규정을 가진 문예지를 통해 등단했다면 일단 첫 관문은 통과한 셈이 된다. 세상엔 일 년에 수십 명을 등단시키며 이른바 등단 장사를 하는 문예지도 있기 때문이다.
 
우수문예지에 작품을 발표하는 경우와 이른바 메이저급 출판사에서 시집을 출판하는 경우 지명도는 올라간다. 그러나 문단에도 편파성이 있기 때문에 쉽게 성취되기는 어렵다. 역량이 있는 시인들은 한번 도전해 볼만한 일이다. 우리 문단 풍조에서 지명도를 높이는 지름길이 될 것이다. 권위 있는 공모전이나 백일장에 참가하여 수천 편의 작품을 제치고 입상했을 경우 그 실력을 인정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런 이벤트성 행사의 경우 작가의 진정한 내면이 반영된 작품보다는 행사 취지에 부합되는 작품이 선정될 개연성이 있다. 지속적인 노력으로 개성을 갖춘 시인으로 거듭날 수 있어야 한다.

좋은 문학상을 탔을 경우 그의 역량을 인정할 수 있다. 그 상이 권위 있고 심사가 공정했을 경우에 해당된다. 수상 자격 기준이 협소하게 제한되어 있거나 돌려먹기 식으로 수상자가 결정되는 경우 상의 권위도 떨어지게 마련이다.

작품집의 판매량이나 인기도를 따져 시인을 평가하는 방식이다. 베스트셀러 시인에게 후한 점수를 주려는 경향이다. 그러나 베스트셀러가 반드시 성취도가 높은 작품집이라고 보는 것도 문제의 소지가 있다. 문학적 성취와는 별개로 독자의 호응을 받는 시인도 있다.

각종 문예창작기금을 받거나 우수문학도서에 선정되는 경우 일단 신뢰할 수 있다. 각 지역 문화재단이나 문화예술위원회에서 시행하는 지원 제도에서 선정되거나 우수문학도서 나눔 행사에서 선정되면 일단 그 시인을 신뢰하는 것이 타당하다. 많은 시집에서 우수 시집을 가려 뽑기 때문이다. 우수도서가 탈락되는 경우도 없진 않겠지만 일단 전문가에 의해 심사과정을 거쳤다는 점에서 신뢰할 만 하다. 이렇게 선정되면 1,000권정도 더 인쇄하여 전국의 수요처에 배포한다고 하니 해당 시인은 얼마간 고료도 챙길 수 있고 긍지와 자부심을 가지고 정진하는 긍정적인 효과도 기대할 수 있다. 문학 인생에 귀중한 전환점이 마련되는 셈이다.
 
아무런 등단 절차나 문단내의 활동과는 상관없이 작품집 하나 발표하여 문단에 혜성처럼 나타나는 시인도 있다. 시집 『님의 침묵』이 발표되기 전까지 한용운은 문단에 알려진 시인이 아니었다. 문단 활동을 했다는 아무런 자료도 없다고 한다. 말하자면 그때까지는 시인이 아니었던 셈이다. 그러나 시집 발간 이후 민족의 가장 빛나는 시인의 자리에 놓이게 되었다. 노동문학을 깊이 각인시킨 박노해 시인도 시집 『노동의 새벽』 이전까지 《시와 경제》에 작품을 발표한 것 외에는 문단활동이 전무한 거 같다. 이렇게 시집 한 권 출간하여 문학사에 별로 떠오르는 시인들은 앞으로도 계속 나타날 것이다.

문학은 단 시일 내에 승부를 걸어야 하는 투기사업이 아니다. 일생동안 확신과 열의를 가지고 시류에 휩쓸리는 일 없이 견고한 세계를 개척해 나가는 자세가 필요하다. 인천문단에도 주요 일간지 신춘문예나 우수문예지를 통해 등단한 시인이 많다. 전국 규모의 공모전에서 대상을 탄 시인도 여럿이다. 그러나 계속 정진하여 우수 작품을 생산해 내지 않으면 영광도 어느 순간 빛이 바랠 것이다. 시인이면서 탁월한 문예 창작 이론가인 오규원 시인의 대담을 읽은 적이 있다. 가장 바람직한 시인의 자세를 묻는 질문에 미국의 여류 시인 에밀리 디킨슨을 예로 들어 놀란 적이 있다. 에밀리 디킨슨은 외부에 작품을 거의 발표하지 않은 은둔의 시인으로 많은 시를 남겼지만 사후에야 여동생에 의해 시집이 출판된 사례다. 가장 시적일 때 시인은 빛나고 우수한 작품 생산이 바로 시인의 소임임을 지적한 것이다.
 

이번 세종도서 문학나눔 도서로 선정된 시인들의 명단을 살펴보다가 평소에 내가 좋아하는 몇몇 시인도 있고 인천의 시인들도 있어서 반가웠다. 마침 책꽂이 한쪽에 꽂혀 있던 시집이 이번에 선정되어서 반가웠다. 이나혜 시인의 시집 『눈물은 다리가 백 개』에서 몇 편 뽑아 함께 감상하기로 한다. 이나혜 시인은 오랫동안 치열하게 내공을 쌓고 2017년 《문학청춘》 신인상을 받았다. 등단하던 해에 인천문화재단 문예창작기금을 받아 시집을 출간하고 그 시집으로 올해 세종도서문학나눔 우수 도서로 선정되는 쾌거를 달성한 경우다.
 
 

나는 꽃가게에서 나가야겠다

 
꽃은 식물인데
짐승같다
 
숨소리도
 
가슴털이 난
꽃도 있다
 
한 다발
허옇게 이빨을 드러낸
저 동물성
 
숨기고 있다
발톱으로
블라우스를 갈기갈기 찢어 버린
 
꽃도
그 옆에 있다
위험하다
 
나는 어서 꽃가게에서 나가야겠다

 
식물을 동물에 동물을 식물에 대입시켜 상상을 펼친 참신한 시다. 정적인 꽃을 동물적으로 묘사하여 꽃이 숨을 쉬고 이빨을 드러내고 블라우스를 갈기갈기 찢는다. 그러면서 어서 꽃가게에서 나가야겠다며 동물적인 꽃의 속성에 위험을 경고한다. 이질적인 것을 결합하여 정서적 충격을 안겨주는 기법은 오래된 창작법의 하나이다. 그러나 이론이 그렇다 해도 실제 작품에서 적용하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아주 적절하게 활용하여 성공을 거둔 예라고 하겠다.
 
 
북성포구
 
횟집들이 물가에 나앉는다
포구에 일요일과 봄이 왔다는 뜻이다
 
일요화가들이 물 위에 떠 출렁거리는 공장 굴뚝을 그린다
횟집으로 들어간 패거리들은 왁자지껄
 
횟집에서 버린 흰 물티슈 같은 갈매기들이 물 위에 떠 있다
축대 위에 쌓인 목재 더미처럼 봄은 똑같은 의미로 와 쌓여 있다
 
일요일도 봄도 갈매기도 그리고 횟집도 왁자지껄도 다 3년 전 그대로다
 
발걸음을 돌리면서
일요화가 르네 마그리트가 방금 하늘에서 잘라 낸
초현실적 구름 몇 개를 본다
 
봄은 내년에도 계속될 것이다
 

이 작품도 봄 풍경을 묘사하고 있다. 횟집마저 의인화하여 묘사하는가 하면 물티슈가 갈매기로 은유되고 목재더미와 봄이 동격의 사물로 그려진다. 그리고 공간적인 묘사를 이어가다가 갑자기 4연에서는 시간성을 확보하여 시의 지평을 넓히고 있다. 그러다가 다시 시간과 공간을 한꺼번에 확 펼치며 화가 르네 마그리트가 대미를 장식한다. 포구의 정경을 이만하게 그려내기도 쉽진 않을 것이다.
 

 
가로등
 
가로등은 마을 이장님 같으십니다
더 높은 분 하느님 같으십니다
 
별말씀 없이
저녁마다 좁은 골목 안길을 있는 그대로
아주 부드럽게 살펴주십니다
 
땅거미가 진 골목 끝
구부리고 있는 지붕들과
쭈그리고 사는 사람들에게
햇빛보다 더 환한 불을 켜 주십니다
 
궁금한 것은
엊저녁 일어난 주공마트 집 사단事端을
가닥가닥 훤히 다 아시면서도
아침이면 뚝 시침을 떼시는 일
 
이장님께도 하느님께도
오늘은 무슨 일이 생기셨는지
수리공이 꼭대기에 올라가 있습니다

 
이 시도 무척 재미있다. 가로등이 이장님도 되고 하느님도 된다. 주민들이 다 떠나고 노인들만 남은 시골에선르네 마그리트의 그림 마을일을 이장이 도맡는다. 이장은 하느님처럼 전지전능한 분이나 다름없다. 하느님처럼 마을일을 다 알고 있는 이장님이지만 그저 모른 체 시침을 뚝 떼고 계시는 이장님은 얼마나 심중이 깊으신가. 마치 하느님처럼 마을일을 보살피는 이장님이 그려진다. 시는 재미가 있어야 한다. 반드시 해학적인 요소가 있어야 한다는 얘기는 아니다. 내용에 감동적인 요소가 들어 있던지, 새로운 진실을 깨닫는 인식의 즐거움을 안겨주던지, 음악적인 운율미나 형태미를 안겨주던지 독자의 흥미를 잡아끌 수 있는 요소를 갖추어야 한다. 이 시는 소박한 언어 선택, 뜻밖의 사물의 의인화라는 표현 기법, 천진난만한 서정이 독자의 관심을 끌고 있다. 시집 발간과 우수문학도서로 선정된 것을 축하한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시민과 함께하는 인터넷 뉴스 월 5,000원으로 소통하는 자발적 후원독자 모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