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수에 비친 앙코르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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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수에 비친 앙코르왓
  • 정민나
  • 승인 2019.04.05 06: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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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시단] 정민나 / 시인



‘마션’이라는 리들리 스콧 감독이 연출한 붉은 화성탐사 영화를 보다가 훌쩍 캄보디아 여행을 다녀오게 되었다. 상상과 모험의 세계가 일상처럼 펼쳐지는 21세기에 천 년 전 고대의 유물을 보러 떠난 이번 여행은 외계의 이야기만큼 가상과 현실, 과거와 현재의 경계를 모호하게 하였다.
 
802-1431년까지 크메르 제국의 역사는 강대했다. 하지만 이 나라는 열대 몬순 기후로 건기乾期인 12월 ~ 5월까지는 강수량이 전혀 없다. 6월~11월 까지 우기雨期인데 이 때 비는 퍼붓듯이 온다. 30분에서 1시간에 걸쳐 50-100미리까지 서너 차례 쏟아진다. 국민들은 우기에는 농사를 지어 잘 먹고 살았지만 건기에는 굶주렸다.
1200년 제국은 인공 저수지를 만들어 백성이 잘 사는 방법을 고안했다. 지혜로운 왕은 저지대에 뚝방을 쌓아 우기시 물을 모아놓고 건기시 지어놓은 관계 수로를 통해 빗물을 흘려보냈다. 동서 8Km 남북 1.2Km에 이르는 인공 저수지 서 바라이를 바라보며 나는 순박한 국민들을 위해 언제든지 농사를 지을 수 있도록 배려한 남국의 자애로운 왕을 떠올렸다.

 
  그림처럼 나무를 심어놓고 나무처럼 사원을 지어놓고 수북한 밀림으로
들어간 지 수백 년 인간의 그림자는 근접하지 못했다 풍경처럼 제 모습을
열어 보이는 지구의 선조는 나무였다고
 
  이제야 입을 여는 앙코르왓, 가상과 현실의 경계가 모호해질 때마다
글자로 쓰지 않고 그림처럼 말을 한다 출렁출렁 물 건너 신의 마을 놓여
진 다리는 쿠션이 부드러워 왕이 이 집을 지었을 때 신들은 실제로 이곳
에 와 거주했을까
 
  충분히 자란 나무가 치렁치렁 세계의 바깥으로 가지를 뻗을 때 그 속
에서 기뻐하던 신의 마음 지금은 가지런히 신발을 벗어두고 다 어디로 갔
나… 키 큰 나무 몇 그루 폴폴 먼지 나는 황톳길을 걸어간다

                                                         - 정민나, 「앙코르왓」 부분



크메르 제국 때 만든 저수지에서 이어지는 물이 앙코르왓과 사람의 마을 경계에 호수로 찰랑인다. 호수 건너 울창한 밀림 속에 묻혀있는 앙코르왓을 사람들은 수백 년 잊고 살았다. 400(1441-1860년)년간 밀림에 버려진 앙코르와트를 프랑스 앙리 무어라는 동식물학자가 탐험하다가 1860년에 발견하였다.
사람들이 앙코르와트에 대한 정보를 알아낸 것은 유적지내 돌 비문에 새겨진 산스크리스터어의 탁본을 통해서이다. 이 사원은 1113-1150년까지 37년 간 수리아 바르만2세 왕이 만들었다. 수리아 바르만 2세는 열 여덟살 때 숙부를 죽이고 왕이 되었다. 왕이 되자 그 때부터 앙코르와트 사원을 만들기 시작하였다. 왕은 힌두교 신자였다. 힌두교는 다신교로 나무신, 불신, 물신 등 3억 3천만 신들을 모신다.

재미있는 신화와 종교이야기가 역사로 이어지면서 주변을 둘러보니 환하게 피어있는 꽃나무들이 살짝 어두운 표정으로 물든다. 1181년 크메르 제국은 전 세계에서 전성기를 누렸지만 이후 바뀐 왕들이 나태해졌다. 서쪽 라오스 동쪽 태국, 동남쪽 베트남에 둘러싸인 캄보디아는 결국 태국의 침략을 받아 3분의 2에 해당하는 크메르 제국 사람들이 남쪽으로 도망을 갔다. 남아있는 3분의 1에 해당하는 사람들은 태국인들에 의해 전멸 당하였다.
 
앙리 무어가 사원을 발견한 후 1863년부터 프랑스인들이 들어오면서 1890년까지 캄보디아는 프랑스 통치를 받게 되었다. 1905년 프랑스에 의해 모든 사원을 발견하게 되었지만 이후 250개 사원 중 60%를 일본사람이 복원하였고, 40%를 선진국 기수들이 복원하게 되었다. 현재 앙코르와트를 보기 위해 전 세계에서 몰려드는 수많은 관광객들에게 나오는 사용료는 유적지 복원에 참여한 일본이 3분의 1을 자국으로 가져가고 3분의 1은 전쟁에서 이긴 베트남 몫이다. 경제적으로 낙후한 캄보디아가 관람료의 3분의 1만을 차지하는 것은 이 나라를 여행하는 사람들에게 안타까운 심정을 들게 한다.

 
  먼지를 털어내면 보물은 빛난다 후대의 사람들 찢어지지 않는 물결 속
에서 천년을 자라는 나무를 발견한다 그것을 들고 세계의 끝까지 걸어간
다 걸어갈수록 시간에 새겨진 문양에서 돌궁의 비밀이 새어나오니
 
  반할만 하지 앙코르왓, 호수에 비친 자신의 얼굴을 들여다보며 오래도
록 집을 떠난 그가 사원의 깊은 돌 속에서 도마뱀 원숭이 사자…… 신의
형상을 들고 걸어 나온다
 
  수련은 붉게 피어나고 정치를 모르고 역사를 모르고 민족, 종교, 거대
담론으로 불어오는 바람을 모르는 민초들 외따로 떨어져 호수의 저녁을
오간다
 
  신과 인간의 마을, 멀리서 볼 때는 하나의 라인이었는데 가까이 와 보
니 허물어지는 돌들이 어지럽다 안과 밖 온도차가 있는 노을이지만 범접
할 수 없는 왕의 마음도 이제는 낮은 호수로 내려와 연한 잎으로 흔들린


                                                      - 정민나, 「앙코르왓 2」 부분


 
올 1월에 캄보디아에 봉사하러 온 한국 대학생 두 명이 길거리 음식을 먹고 사망하는 사고가 있었다. 위생시설이나 의료시설이 그만큼 낙후하였지만 70~80년 전에는 우리보다 훨씬 더 잘 산 나라였다. 6.25 때는 우리나라에 파병도 해 주었고 경제가 어려울 땐 ‘안남미’를 지원해 주기도 했다. 지금은 사정이 바뀌어 한국 사람들이 개인적으로 봉사를 하러 오기도 하고 우물을 파주는 등 다양한 후원을 하기도 한다.

옛날 번창했던 캄보디아 문화가 비록 낡아가는 모습을 내보이고 있지만 고고한 유적들과 함께 지금도 자연의 생물들이 나란히 숨 쉬는 모습을 우리가 직접 볼 수 있다는 것은 그나마 다행한 일이다. 버스를 타고 출렁이는 다리를 건너 시간의 반대 방향으로 걸어가 우거진 밀림을 열고 나온 정교한 사원을 만난다는 것 역시 기쁜 일이다. 언뜻 외계에서 불어오는 바람소리 같고 무거운 책상과 의자들이 무중력으로 떠오르는 흰 구름 같아 이 오래된 장소에서 여행자들의 표정은 가벼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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