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은 가까이 보면 비극, 멀리서 보면 희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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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은 가까이 보면 비극, 멀리서 보면 희극
  • 한인경
  • 승인 2019.04.26 06: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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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 『쇼콜라 Chocolat』


<한인경의 씨네공간>은 2016년부터 ‘그해 주목받은’ 또는 ‘다시 주목하는’ 영화들을 선정하여 평론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2019년 3월부터는 미추홀구의 예술영화관 '영화공간주안'과 한인경 작가와의 협약 하에 <인천in>에 게재합니다. '영화공간주안'이 상영하는 예술영화의 의미를 되새겨 볼 수 있는 기회를 나눕니다
 


삶은 가까이 보면 비극, 멀리서 보면 희극
 
『쇼콜라 Chocolat』
 
“쓰디쓴 쵸콜릿, 쇼콜라”

개 봉 : 2017.03.09(119분/프랑스)
감 독 : 로쉬디 젬
출 연 : 오마 사이, 제임스 티에레, 클로틸드 헤스메
장 르 : 드라마
등 급 : 12세 관람가

 

출처:영화 『쇼콜라』
 

2년여 전에 광대(clown)들이 벌이는 ‘제21회 인천 국제 클라운 마임 축제’를 취재한 적이 있었다. 인천시 미추홀구에 있는 ‘돌체 소극장’(대표 박상숙)에서 이 축제가 열렸는데 그 당시 박 대표와의 인터뷰 중 일부를 옮겨 본다.
 
“한국 포함 6개국의 마임이스트들이 인천 국제 클라운(clown) 마임 축제에 참여하며, 50~60명 정도의 외국의 마임 아티스트들 신청자 중에서 선별된 5~6개국의 마임이스트들이 인천의 클라운 마임 무대에 서는데, 그들은 인천의 무대에 서는 것을 영광스러운 경력으로 생각합니다. 흔히 광대하면 ‘피에로’라는 단어를 떠올리는데, ‘피에로’는 이탈리아 한 극단의 캐릭터 이름이며 ‘클라운(clown)’은 광대 전체를 이르는 말입니다. (중략) 마임만으론 5분 에서 15분 정도의 연기가 가능하지만, 클라운(clown) 마임은 이야기 흐름이 있으므로 30분 이상 연기하게 됩니다. 이미 있었던 마임(mime)과 클라운(clown)을 접목하게 된 것입니다. 즉 관객과의 공감대를 형성하려면 클라운(clown)적인 것이 필요했으며 이것은 시대적 흐름이기도 했습니다.”
(2018.9.23. 인천in, http://www.incheonin.com/2014/news/news_view.php?sq=34599&m_no=3&sec=1,
2016.10.10. 인천in, hhttp://www.incheonin.com/2014/news/news_view.php?sq=34840&m_no=2&sec=3)
 
즉, 무언극 마임(mime)에 상황에 대한 흐름을 넣어서 좀 더 관객과 가까워지고자 하는 시도였으며 그래서 만들어진 것이 클라운 마임(clown mime)이라는 것이다. 광대들이 벌이는 국제적인 축제가 인천의 한 무대에서 지금까지 열리고 있다는 점에서 매우 자랑스러웠고 앞으로도 이들이 풀어내는 이야기가 전국적으로 뜨거운 울림으로 펼쳐지길 기대한다.
 
그 당시 출연했던 마임이스트들 중에서 온몸으로 연기를 펼쳤던 베네수엘라 광대 에나노(Enano)가 선명하게 기억에 남아있다. 지금쯤 어떻게 성장, 발전했는지 개인적으로 궁금하기도 하다.
 
서두가 길어졌다.
이달에는 광대들에 대한 영화를 선정했다.
 
우리는 의사소통의 수단으로 말을 한다. ‘말 한마디에 천 냥 빚을 갚는다.’라는 속담도 있고, ‘말이 많다 보면 쓸 말이 적다.’라고도 했다. 나에게서 나간 말 한마디의 무게를 생각게 한다. 살면서 말이란 것이 오히려 소통을 방해할 때도 있다. 가섭존자는 부처의 가르침을 미소로 답했고, 이심전심以心傳心이란 말도 있듯이 가끔 말보다 묵언이 더 강한 사인이 될 수가 있는 것이다.
 
광대는 말을 억제하면서 진하게 분칠한 얼굴, 과장된 몸짓과 간간이 터져 나오는 외마디로 세상사 희로애락을 말한다.
 
영화 ‘쇼콜라’는 실존 인물들의 이야기다.
19세기 말부터 1차 세계대전이 일어나기 전까지 ‘아름다웠던 시절’이라고 불리는 프랑스 ‘에포크 시대’에 살았던 전설적인 두 사람, 흑인 최초로 파리의 무대에 선 광대 ‘쇼콜라’와 진정한 예술가를 원했던 백인 광대 ‘푸티트’, 두 광대의 드라마틱한 삶을 스크린 속에서 들여다본다.
 


출처:영화 『쇼콜라』

 
1897년 프랑스 북부, 한 서커스단에서부터 영화는 시작한다.
식인종 흉내로 인기를 끌며 숙식을 해결하고 있는 거구의 흑인 카낭가가 있다. 그리고 또 다른 서커스 멤버인 광대 푸티트는 시들어가는 인기로 서커스 단장에게 압력을 받고 있다. 그는 카낭가와 흑과 백 콤비 장면을 그려보며 재도약을 설계해 본다. 반면에 카낭가는 식사와 잠자리가 제공되는 현재 위치가 그냥 편하다. 푸티트는 그런 카낭가를 설득하여 광대로서 갖추어야 할 기본 연기를 가르친다. 단장은 카낭가가 흑인 이름 같다며 광대에 어울리는 이름으로 ‘쇼콜라’라는 새 이름을 지어준다.
 
이 둘의 첫 무대가 성공을 거두면서 단장은 흑백 광대 콤비가 큰돈을 벌어 줄 것이라 기대하며 들뜬다. 예상대로 관객의 수는 갈수록 늘고 인기몰이 프로가 된다. 푸티트는 임금 인상 요구가 결렬되자 떠날 결심을 하게 된다. 그러던 중 파리의 유명 ‘누보 서커스단’ 단장의 눈에 들어와 파격 제안을 받고, 시골 ‘델보 서커스’를 떠나게 된다.
 
꿈과 예술의 도시 파리에서도 그들의 광대놀이는 통했다. 쇼콜라는 고급 옷, 자동차로 호화 생활을 하게 되며 도박에도 손을 댄다. 반면 푸티트는 꾸준히 새 작품을 구상하고 더 나은 예술가가 되기 위해 연구하고 적용하면서 절제된 생활을 한다.
 
잘 나가던 두 사람 사이에 균열이 생기는데 쇼콜라에게 변화가 찾아온다. 그는 푸티트에게 매번 매 맞고, 걷어차이고 그래도 웃어 보이는 즉, 바보 역할만 해왔다. 백인 푸티트에게 잡혀있는 꺼먼 원숭이 캐리커처 즉, 자신을 그리 표현한 포스터를 보고 현재의 자신에게서 벗어나고 싶어 한다. 푸티트와 이별을 하고 선택한 길이 정통 연극배우가 되고자 셰익스피어 오셀로 역에 도전한다.
 
그는 연극 무대에서 프랑스어로 ‘초콜릿’이라는 뜻인 ‘쇼콜라’라는 이름을 버리고, 본명인 ‘라파엘 파디야’로 소개해 주기를 요구한다. 셰익스피어 4대 비극에서 주인공이 흑인이었던 오셀로, 백인들이 흑인 분장을 하고 연기하곤 했던 오셀로 장군이었지만 이번엔 흑인이 연기하는 것이다. 관객들은 광대였던 흑인 쇼콜라의 오셀로 연기에 ‘서커스로 돌아가’, ‘파렴치야’, ‘사기다’라며 야유를 보낸다. 이후 쇼콜라는 도박 빚에 쫓기게 되고 서커스단 청소원으로 일하면서 병색이 짙어진다. 위독한 쇼콜라의 집을 방문한 푸티트는 벽에 붙어있는 여러 장의 광대 시절의 사진과 그림들을 보게 된다.

 

출처:영화 『쇼콜라』
 
 
농장 노예로 팔려 유럽에 온 흑인 쇼콜라는 갖은 굴욕을 이겨냈고, 푸티트와의 우정도 쌓아가면서 파리에서 광대로서 당당하게 성공했다. 푸티트의 존재도 기울지 않았다. 광대로서의 비상을 꿈꿨던 그의 삶은 올곧게 광대로서 충실했다. 흑백 콤비로서 인기가 치솟을 당시 두 사람의 예술에 대한 치열함, 삶을 즐기는 방식에서 괴리가 있었다. 그것이 각자의 길을 가게 했지만, 결국엔 쇼콜라도 자신이 무엇을 원했던 것인지 깨닫게 되고 그 순간들을 간직한 채 눈을 감게 된다. 그는 폐결핵으로 50세의 나이로 생을 마감한다.
 
푸티트 연기를 한 배우 ‘제임스 티에레’는 챨리 채플린(1889~1977)의 실제 외손자다. 챨리 채플린의 피가 충분히 읽히는 ‘제임스 티에레’의 연기와 쇼콜라 역의 ‘오마 사이’가 벌이는 두 콤비의 쇼도 볼거리다. 엔딩 크레딧이 끝나고 40여 초간 흑백 영상의 광대극을 보게 된다. 실제 인물 두 사람이 출연한 ‘푸티트와 쇼콜라의 시소 의자’라는 그 당시의 영화다. 영화의 시조, 영화의 아버지라 불리기도 하는 뤼미에르 형제의 작품이다. 이 영상까지 놓치지 말고 꼭 감상하길 권해드린다.
 
 
광대와 가면
 
넌 버벌(non-verbal) 즉, ‘말 없음’으로 말해야 하는 무언극의 특징상 배우의 과한 동작과 소품, 음악은 모두 소통하려는 도구들이다. 때로는 상대의 따귀를 때리기고, 맞기도 하고, 엉덩이를 걷어차이고, 흙바닥에 몸을 던지고 기어가기도 한다. 그들은 눈앞에 있는 공간만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공간을 만들어 내며 주어진 시간보다 훨씬 긴 이야기를 만들어 내는 위대한 창조자이기도 하다.
 
 
카프카의 단편 소설 ‘단식 광대’를 보면 주인공 단식광대가 보여주는 현실과 이상의 괴리는 처연할 정도다. 이 광대는 ‘단식’이 곧 보여주는 연기다. 그는 40일간 단식 하는 모습을 창살 우리 안에서 관객들에게 보여주고, 단식이 끝나는 날은 온갖 음식을 먹는 과정으로 쇼를 마치곤 한다.
아이러니컬하게도 이 광대는 단식을 더 하고 싶어 한다. 정작 본인에겐 단식이 단지 인기를 얻기 위한 고통 인내의 시간이 아니라, 자신이 예술가라는 확신을 하게 해주는 진지한 정진의 시간이었다. 어쨌든 그의 예술가로서 단련과는 관계없이 보여주는 단식 행위는 초기에는 엄청난 사람들을 불러 모았지만, 거듭될수록 관객들에겐 어떤 자극도 주지 못하게 된다. 서커스단의 동물 우리 옆에서 단식, 즉 연기하지만 이미 잊힌 퇴물 배우로 누구의 주목도 받지 못한 채 끝 모를 단식을 한다. 서커스 단장이 우연히 찾아와 아직도 단식 중이냐고 묻는다. 그는 입맛에 맞는 음식이 없다며 숨을 거둔다. 그가 있던 우리에는 역동적인 분위기 물씬 풍기는 표범 한 마리가 단식광대의 빈 자리를 채운다.
 
 

출처:영화 『쇼콜라』
 
 
여러 사람과 어울려 살다 보면 내 맘과는 다르게 참아야 할 때도 있고, 원치 않지만 웃어야 할 때도, 가기 싫어도 참석해야 하고, 보기 싫어도 마주해야 할 때도, 말하기 싫어도 뭔가를 말해야만 하는 때가 있다.
 
‘가면은 사람의 개성을 감춰주거나 새로운 얼굴을 부여해 준다. 인간이 자신의 존재를 발견한 이래, 자신을 숨겨야 한다는 강박감이나 자신을 변화시키고 싶은 욕망 중의 어느 한 쪽을 느끼게 되었다. 가면은 우리의 상상과 환상에 날개를 달아 준다. 마임가가 사용하는 가면은 이러한 환상을 탐구하고 개발할 수 있도록 해주고, 그것들이 관객에게 제시되면 관객들도 같은 것을 꿈꿀 수 있게 해준다.
일부 마임 연기에서는 이미 하나의 고전이 되어 버린, 기본적인 백색 분장 가면은 연기자의 개성을 없애기 위해 개발되었다. 마임가는 가면을 사용함으로써 자기 자신이 아닌 새로운 유형을 연기할 수 있다. 또한 마임가의 얼굴을 어느 정도 떨어진 거리에서도 좀 더 잘 읽을 수 있도록 확대해 준다.’ (마임 북/1997/예니)
 
우리네 삶도 어쩌면 일부는 가면을 쓴, 광대놀이 같은 한바탕 놀이인지도 모르겠다. 시간은 되돌릴 수 없고 물 흐르듯 흘러간다. 어차피 지나갈 시간이니 피하려 하지 말고, 즐기고, 무대 뒤에서 가면 같은 분장을 지우고 다음 맞게 되는 무대도 역시 진정으로 즐기면 어떨까 생각이 든다.
 
현대의 피에로 ‘비프(Bip)'를 창조해낸 팬터마임의 거장 마르셀 마르소(1923~2007)는 인생은 연극이었다고, 동네 공간은 살아있는 극장이었다고 회상하였다. (판토마임 藝術/1997/예니) 또한 챨리 채플린은 ‘삶은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고, 멀리서 보면 희극이다.’라고 했다.
관객들은 광대들의 연기를 보면서 그들의 ‘슬픈 웃음’을 자신에게 투영시켜 일종의 내적 치유를 이루기도 한다. 세상에 아픔 없고, 약점 없고, 감추고 싶은 것 없는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시인 이승하는 그의 시 ‘광대를 찾아서’에서 취하면 다 광대가 되는 법이라며 춤추고 울고 웃고 떠벌리고 싶은 인간의 마음을 노래했다. 분장이라는 가면을 쓴 광대에겐 그 바뀐 얼굴이 새로운 세상이 된다. 넌 버벌(non-verbal)로 연기하는 그들에겐 무대가 곧 삶이고 삶이 곧 무대이다.
 
각자의 무대에서 펼치는 그들의 연기를 보며 그들이 만들어 내는 창조적인 세상의 조감과 천착에 집중한다.

한인경/시인, 인천in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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