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은 세상에 나오기 위해 인간을 필요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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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은 세상에 나오기 위해 인간을 필요로 한다.
  • 한인경
  • 승인 2019.05.23 0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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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 『더 캡틴』(The Captain)

 
<한인경의 씨네공간>은 2016년부터 ‘그해 주목받은’ 또는 ‘다시 주목하는’ 영화들을 선정하여 평론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2019년 3월부터는 미추홀구의 예술영화관 '영화공간주안'과 한인경 작가와의 협약 하에 <인천in>에 게재합니다. '영화공간주안'이 상영하는 예술영화의 의미를 되새겨 볼 수 있는 기회를 나눕니다.


 
악은 세상에 나오기 위해 인간을 필요로 한다.
 
『더 캡틴』 (The Captain)
 
“헬로트의 순간 세상”

개 봉 : 2019.04. 25(119분/독일 외)
감 독 : 로베르트 슈벤트케
출 연 : 맥스 후바쳐, 밀란 페쉘, 프레더릭 라우
장 르 : 드라마,전쟁
등 급 : 15세 관람가
 
 
출처:영화 『더 캡틴』
 

1.
 
전쟁 영화라 하면 일단 대상이 되는 국가가 있게 된다. 자국과 상대국. 그러나 영화 『더 캡틴』은 2차 대전이 배경이긴 하지만 특수한 사건을 다루고 있다. 독일군이 유대인을 학살하고 연합군과 교전을 하는 등의 전쟁 신scene보다는 독일군 내부에서 그들 간에 실제 일어난 사건을 다뤘다.
 
1945년, 2차 대전 종전 2주 전 4월, 독일엔 패전 기운이 지배하고 있다. 탈영병, 대열 낙오자들도 많았다. 그들을 추적하고 체포하고 쫓고 쫓기는 일은 산채로 영국군에게 넘기게 하지 않겠다는 독일의 마지막 발악처럼 더 철저했고 그 처벌은 무자비했다. 그 중 한 병사, 젊디젊은 독일 병사 ‘헬로트’가 도주 중 흙길에 박혀 있는 독일군 자동차에서 장교복을 발견한다. 그는 이등병 자신의 옷을 던져 버리고 대위의 옷으로 갈아입는다.
 
여기서부터 그의 변신은 브레이크 없는 자동차. 영화가 시작된다.
 
그는 자신을 장교로, 그것도 총통 히틀러가 ‘어려움에 처한 독일군이 위기에 처하면 어떻게든 도우라.’며 모든 권한을 줬다고 거짓말을 한다. 탈영병, 약탈자들이 수용된 제2 수용소 ‘한젠’ 소장도 감쪽같이 속고 헬로트에게 수용소의 전권을 빼앗긴다. 탈영병들에 대한 재판과 관리에 민감한 당시 상황에 최고 권력자가 온 것이다. 헬로트는 앞장서서 무자비한 살육을 저지른다. 재판 절차 없이 즉결 처형을 감행한 것.
90여 명을 순차적으로 구덩이로 들어가게 하곤 대공포를 조준하고 발사한다. 대공포가 고장이 나자 직접 구덩이로 달려가 바로 탈영병들 머리 위에서 난사한다. 이 난사 씬은 마치 홀로코스트의 한 단면을 보는 듯했고, 그들 표현으로 ‘작업’이라는 이 학살은 밤 늦게까지 계속되었고 구덩이에 겹쳐 싸인 시쳇더미를 흙으로 덮어 버림으로써 끝난다. 그들은 서로 격려하며 밤새 술을 먹고 자축 파티를 한다. 지옥이 저렇지 않을까 생각이 들었다.
 
로베르트 감독은 영화 『더 캡틴』을 흑백필름으로 선보였다.

총천연색 컬러에 익숙하다. 살얼음을 딛는 듯 잔뜩 겁먹은 탈영병들, 암울한 기운이 돌고 있는 독일군 수용소, 헬로트의 악마적 무자비함 등을 감독은 현실의 색을 버리고 밝음과 어둠으로 선택했다. 흑백의 스크린에서는 맥없이 총살당하는 생명의 거칠고 둔탁한 질감이 그대로 느껴졌고, 마구 불을 쏟아내는 총구에서는 비릿한 피 냄새가 날 것만 같았다. 게임을 즐기듯 방아쇠를 당기는 그들의 색은 무無색이다.
끊임없이 배경에 깔리는, 마치 커다란 바윗덩어리처럼 묵직하고 암울했던 음악은 관객들에게 이 괴물들의 종말을 미리 보여주는 듯했다.
 
구덩이 속은 순식간에 액체로 출렁이는데 관객은 그것이 난사당한 병사들의 핏물이라고 충분히 추측된다. 재판 절차도 없이 헬로트는 자신이 총통과 직접 통한다며 자신을 향할 수 있는 의심의 싹이 고개들지 못하도록 한층 더 공포심을 조장한다. 요즘이야 신분 확인이 즉각 가능하나 그 당시는 지금과는 한참 다른 상황이었기에 헬로트는 임기응변력까지 더해져 패전을 앞둔 독일군들에게 그대로 통하고 만다.
 
그는 일종의 방어기제로 자신을 독일 대위로 동일시하며 점점 독일 장교로서 자신의 가치를 올리기에 주저하지 않는다.
 
 


출처:영화『더 캡틴』
 
 
2.
 
다 쓰러져 가는 전쟁터였지만 사람 있는 곳에서는 어떤 형태로든 권력이란 것이 주인 행세를 하려 한다. 그 주변에서는 권력을 추종하고 그 울타리로 들어가려는 자들이 있게 된다. 그리고 희생양-권력자들은 권력 유지를 위해서 이용되어야 할 제물이 필요하게 된다.
 
헬로트의 일종의 ‘장교 놀이’가 성공할 수 있었던 이유도 위 경향과 무관하지 않다. 그는 어느덧 부대 내에서 진짜 장교가 되어 있고 이미 자신도 그 사실을 즐기고 있다.
 
역사적으로 대학살을 저지른 몇몇 괴물들이 있다. 그리고 실무책임자 역할의 심복도 있었다. 아돌프 히틀러에게는 무장친위대가 있었고, 그중 한 인물로 ‘하인리히 루이트폴트 힘러’의 악명은 히틀러를 기억할 때 결코 빠질 수 없는 인물이다. 헬로트에게는 ‘키핀스키’가 있었다. 그의 눈빛은 이미 정상인이 아니었다. 죽도록 퍽퍽 얻어맞아 초주검 상태인 사람에게 정신 나간 사람처럼 각목으로 계속 내리친다. 헬로트의 잔혹함에 특히 더 앞장섰던 그는 결국 헬로트에 의해 사살되고 만다.
 
헬로트의 행동은 그의 몸을 통해 세상 밖으로 나온 악이다. 영화 『더 캡틴』은 전쟁의 과정을 수단으로 인간 본성의 막장을 파헤치는 심리 영화다.
 
닭 한 마리도 직접 잡지 않으려 했던 헬로트.
영국군 폭격으로 그 문제의 제2 수용소는 기둥 한두 개 외엔 흔적이 없을 정도로 폭파되었다. 헬로트는 그 폭격에도 목숨을 부지하였고, 살아남은 병사들과 특별 파견대를 만들며 ‘헬로트 즉결 재판소’라는 글자를 새긴 차를 몰고 다니며, 한 손으로는 조국을 배신하는 겁쟁이들이라며 총살하고, 한 손으로는 약탈을 자행한다.
 
헬로트는 혼돈 속에 자신을 넣고 소용돌이에 맡겨 버렸다. 되돌릴 수 없는 그의 처지는 외줄 타듯 늘 긴장했고 불안했다. 방어에 방어를 더해서 연명하다 그는 결국 헌병들에게 체포되며 재판에 회부된다.
 
그는 군법 재판정에서도 여전히 독일 공군 대위였고, 그가 저지른 만행은 애국이었다며 ‘하이 히틀러’를 외친다. 전쟁이 막바지에 다다른 시기에 패배주의적 사고를 어떻게든 바로잡아 독일이 계속 싸우게 하려는 결의가 있었기 때문이라며 자신의 무죄를 주장한다.
 
“혼란한 시기였음을 고려해본다면 헬로트의 행동은 지극히 이성적이었고 결과적으로 국방군에 해가 될 일은 하지 않았다, 장교답게 행동했고 기백이 넘치고 군 지휘관으로서 엄청난 통솔력을 보여 줬다.” 공판에 함께 한 장교들이 헤롤트의 교수형은 지나치다며 방어한다.
 
공판 결과는 선고를 유예하고 전방으로 보내진다. 점령된 독일에서 비밀 군사 조직을 만들어 적국에 맞서 무력투쟁을 하라는 조건부 석방으로 판결을 내린다.
 


출처:영화『더 캡틴』
 
 
3.
 
‘우리 안의 히틀러(2005)’의 저자 막스 피카르트(1888~1965)는 독일인이 저지른 과거의 죄악이 그들을 뚫고 지나갔고 그래서 그 누구의 기억 속에도 전쟁은 남아 있지 않고, 과거에 일어난 일들이 독일인의 현재에 의해 끊겨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저자는 이 책을 2차 대전 중에 쓴 것으로 알려져 있다.
 
피카르트는 순간에 집착하는 세상, 아무런 맥락이 없는 세상에서의 히틀러를 다음과 같이 평가하고 있다. ‘히틀러같이 아무것도 아닌 하찮은 존재가 지도자가 될 수 있는 것은 총체적인 불연속성의 세계에서만 가능하다.’라고. ‘모든 것이 맥락을 잃어버린 2차 대전이 한창인 그 당시에는 사람들이 비교하는 데 익숙해 있지 않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부헨발트, 마이다네크, 벨젠 등(나치스의 유대인 수용소가 있었던 지역들)에서 저질러진 만행도 한동안 공허한 내면을 떠돌다 결국엔 잊힐 것이라고.
 
또한, ‘히틀러는 정복할 필요가 전혀 없었다. 불연속성, 도처에 도사리고 있는 맥락 없음으로 인해 히틀러에게는 이미 모든 게 정복된 상태였다. 이미 차지한 것을 그럴듯하게 꾸며 보이기 위해 독재자는 필요하지도 않은 투쟁을 끌어다 대고 있는 것이다. 권력을 쟁취하기 위한 투쟁, 권력을 차지한 지금에서야 그는 전력을 다해, 권력의 갖은 위세를 떨어가며 호령하고, 폭력과 살인으로 증명하려 든다. 마치 자신의 노력으로 독재자가 되기라도 한 것처럼. 그러나 그가 권력을 차지한 것은 혼란이 낳은 우연에 불과하다.’
 
‘히틀러’라는 글자에 ‘헬로트’라는 이름을 넣고 위 피카르트의 글을 다시 읽어 보았다. 문맥이 전혀 억지스럽지 않다.
 

엔딩 크레딧
“1945년 5월 23일 영국 해군은 빵 한 덩이를 훔친 죄로 헤롤트를 체포했고, 조사를 받던 헤롤트는 자가당착에 빠졌고, 범죄 사실이 발각돼 재판에 넘겨져 1946년 11월 14일 공범 6명과 함께 처형됐다. 당시 그의 나이는 21세”
 
피카르트의 생각을 빌어보면 잔혹 범죄의 도구로 쓰였기에 도구가 어찌 죄책감을 알겠으며 그저 우연처럼 범죄를 생산했을 따름이며 도구는 얼마든지 달리도 쓰일 수 있다고 말한다. 헬로트는 눈앞에 처한 상황에 기막힐 정도로 자신을 적응시켰고, 자신을 살인 도구로 쓰는 것에 주저하지 않았다. 그랬기에 자신의 그런 행위에 전혀 인간적인 죄의식에 대한 미동조차 없는 것이다.
 
“악은 세상에 나오기 위해 질병이나 부당함, 어두운 세력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오로지 인간만 필요로 할 뿐이다.” 한스 루드비히크뢰버(독일의 법정신의학자)
(평범했던 그는 왜 범죄자가 되었을까/2015, 라인하르트 할러, 지식의 숲)
 
과거 없는 현재란 있을 수 없듯이 시간의 흐름이란 서로 유기적으로 관련지으며 미래로 나간다. 본질을 건너뛰고 순간만 존재했던 인간의 심상을 영화는 보여주고 있다. 등장인물들이 보이는 심리적 사상에 주목한다.
 
 한인경/시인, 인천in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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