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동료들을 소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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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동료들을 소개합니다
  • 서영원
  • 승인 2019.06.05 12:1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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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1화 새롭게 만난 출근길 동료, 정말 좋아합니다 - 서영원 / 작전초 교사
 

개인적인 사정이 있어서 올 한해는 교과전담교사를 맡고 있다. 5학년 학생들의 도덕과 6학년 학생들의 과학을 맡아서 가르치는 게 내가 맡은 일이다. 초등학교는 담임교사가 거의 모든 과목을 가르치고 교과전담교사가 일부 과목을 맡아서 가르친다. 그렇기 때문에 대부분의 초등 교사들은 담임을 맡는 게 일반적인 일이고 교과전담을 맡는 게 아주 특별한 일처럼 여겨진다. 나 또한 마찬가지다. 중간에 군대를 가야 하는 해이거나 학기 중에 갑자기 학교를 옮겨야 할 경우 등 특수한 경우를 제외하고 내 의지로 1년을 통째로 교과전담을 맡아 보는 게 16년 넘은 교직 인생에서 이번이 처음일 정도이다. 그러다보니 자연스레 담임으로 살던 때와 교과전담으로 살던 때가 여러 면에서 비교가 된다.

가장 큰 차이점은 역시 우리 반 아이들이 없다는 점이다.
우리 반이 없다는 것은 그만큼 아이들과 깊게 다가갈 수 없다는 말의 다른 표현인 것 같다. 한 반당 많아야 일주일에 세 번, 수업시간 40분과 수업 시작 전, 후 쉬는 시간 5분 내외로 얼굴보고 이야기 나누는 게 전부다. 담임 선생님처럼 아이들과 틈틈이 상담을 하는 것도 아니고, 자투리 시간을 내서 만날 수 있는 것도 아니다보니 담임을 할 때보다 아이들과 깊이 있게 만날 수가 없다.


그림입니다.원본 그림의 이름: 시장1.jpg원본 그림의 크기: 가로 4656pixel, 세로 3492pixel


깊게 만날 수가 없는 대신 얕고 넓게 많은 아이들을 만날 수가 있다. 5학년 3개 반과 6학년 5개 반 총 200여명의 학생들을 매주 만나다보니 아는 척하는 아이들이 꽤 많아진다. 급식실에서, 복도에서, 그리고 학교 근처 동네에서도. 자연스레 반갑게 인사할 수 있는 친구들이 많아졌다. 그래서 생긴 즐거움 중 하나가 등굣길에서의 만남이다.

아침 출근시 가장 즐겨 타는 버스는 정류장에서 대략 12분 정도를 걸어야 학교에 도착하는 코스이다. 뚜벅이가 되기로 마음먹고 2년째가 되면서 여러 경로로 학교에 올 수 있다는 것을 파악했지만 그 중 이 코스를 제일 좋아하는 이유는 두 가지이다.

첫째는 환승이 없으면서 늘 자리가 비어 있다는 것이고, 둘째는 걸어오는 길에 통과하는 작전시장의 아침 모습이 좋아서이다.

완전히 활기찬 모습은 아니지만 하나 둘 열어가는 가게의 모습을 보는 것이 재미있고, 계절이 바뀌면 가판대 위의 물건이 조금씩 바뀌는 걸 찾아보는 재미도 좋았었다. 거기에다 올 해는 하나의 즐거움이 추가되었다.
전담교사를 한 덕분에 추가하게 된 출근길 즐거움에 대한 자랑이자 그 길에서 알게 된 소중한 내 출근길 동료에 대해 소개하고자 한다.
 
동료1. 5학년 남학생A와 B. 꽤 멀리서부터 걸어오는 이 친구들은 반이 다르다. 그럼에도 꼭 기다렸다가 둘이 같이 걸어온다. 등교시간도 꽤 빠르다. 대신 아이들 걸음으로 15분 정도 걸릴 그 길을 이 두 친구는 20분이 넘게 걸어간다. 한 번에 바로 가는 일없이 재밌어 보이는 것 앞에서는 꼭 멈춰서 이야기를 나누다보니 시간이 오래 걸릴 수밖에 없다. 출근길에 이 친구들을 만나면 덩달아 나도 출근이 늦춰진다. 이 친구들의 이야기에 빠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갈치를 꺼내서 진열하는 생선가게 아저씨를 보며)


그림입니다.원본 그림의 이름: 시장2.jpg원본 그림의 크기: 가로 4656pixel, 세로 3492pixel


“우와! 겁나 크다.”, “난 저거 먹어봤어. 다 큰 고기겠지?”
“우리보다 클 수도 있겠다. 옆에 서 봐.” - 둘 다 또래친구들보다 작은 편이다.^^;-
“근데, 선생님도 저거 먹어봤어요? 이름 알아요?” (대답할 틈을 안 주고) “아저씨 이거 무슨 고기에요?”
그렇게 한바탕 떠들고 골목을 돌면 또 다른 논쟁거리가 앞에 나온다. 커피 가게 앞에 걸려 있는 ‘얼죽아’라는 말!!
‘얼굴이 죽음인 아이? 너네?’, ‘얼굴 죽은 사람보다 못생긴 아이, 너다!’ 뭐 이런 식의 입씨름을 웃으면서 한참 한다. 한 집 걸러 한 번씩 웃고 떠들면서 학교까지 간다.
이 친구들과 함께 걸으면 웃을 일도 많고 참신한 아이디어도 많이 듣게 되어서 참 즐겁다. 출근길이 나도 모르게 길어지게 만드는 마법같은 시간을 선물하는 동료들이다.
 
동료2. 6학년 ‘가’군과 2학년 ‘나’양.
눈치가 빠른 분은 바로 알았을 것이다. 남매이다. 시장을 벗어나서 만나는 작은 빌라 단지 앞에서 볼 수 있는 친구들이다. 6학년 오빠 때문에 친해진 동료들이다. 내가 옆에 있던 없던 동생은 끝없이 웃으면서 오빠에게 장난을 건다. 실내화 가방으로 오빠 가방을 툭 치기도 하고, 오빠 팔을 잡고 버티고 서있기도 한다. 뭐가 그리 좋은지 장난을 치는 내내 글자 그대로 ‘까르르르’ 웃고 있는 동생과 귀찮다는 표정이지만 입꼬리가 올라가 있는 오빠의 모습은 보고만 있어도 힐링이 된다.
“오빠가 좋아?”,“아니요.” 라고 답하면서도 웃음이 그치지 않는 동생과 “맨날 이래서 피곤해요.”라면서도 절대 동생 손을 놓지 않는 오빠의 모습은 아침에 만나는 한 편의 동화 같다.
 
동료3. 6학년 남학생 무리들.
학교 가까이에 문방구가 하나 있다. 애들에게는 동네 사랑방과 같은 곳이다. 아무것도 안 사도 문방구 앞에 옹기종기 모여 앉아서 핸드폰을 들여다보며 같이 갈 친구들을 기다리는 것이다. 대략 5명 정도가 모일 때까지 기다렸다가 같이 학교로 출발한다. 작년부터 그 자리에서 기다려서 같이 오는 것을 본 적은 있다. 달라진 점이라면, 작년엔 눈이 마주치면 간단히 목례만 하고 뭘 물어도 별로 대답도 안했던 친구들인데, 올해는 이런저런 이야기를 먼저 걸면서 별의별 고자질을 다 한다는 것이다.
A: “쌤~2반에 C알죠? 얘(B)가 이따가 고백한대요.”
B: “말하지 말라고~.”
나: “오~~넌 좋아하는 애 없어?”,
A: “전 없어요.”,
B: “아니에요. 얘 D 좋아해요!”
A: “뭐래~~~”
이런 대화들이다. 실없고, 별거 아닌 듯, 그냥저냥 흘러가는 이야기들을 두서없이 나눈다.
마치 그 옛날 고향 친구들과 등교하는 것 같은 묘한 향수를 불러일으켜주는 제자인지 친구인지, 어른인지 애인지 경계를 넘나드는 동료들이다.
 
그 외에도 많은 친구들을 만난다. 예전에는 인사만 하고 지나쳤던 친구들인데, 올해는 함께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출근길을 함께하는 동료가 된 친구들이 제법 있다. 행여나 그 친구들은 같이 가기 싫은데 눈치 없는 선생이 옆에서 계속 말시키면서 가는 건 아닐까 걱정도 돼서 살짝 긴장도 되지만 이 친구들이 먼저 말을 시켜주면 어느새 걱정은 사라지고 나도 모르게 웃으면서 떠들고 있는 걸 보게 된다. 아마도 내가 이 출근길을, 아니 이 길에서 새롭게 만난 출근길 동료들을 꽤나 좋아하고 있나 보다.
 
사족. 가끔 이렇게 중학생이 된 제자들을 만나기도 한다. 좋아하는 친구 이야기, 중학교 선생님 이야기, 초등학교 추억이야기 등 별의별 이야기를 짧은 시간에 잔뜩 쏟아낸다. 사진을 찍은 날의 주된 이야기는 전날 봤던 쪽지시험 이야기였다. 사진을 실어도 좋다는 허락 대신 쪽지시험 이야기는 쓰지 말아달라고 했다.
수학 21문제, 영어 67문제 시험을 봤는데 3명 합쳐서...
너무 재미나서 쓰고 싶지만 약속은 약속!! 가슴에 묻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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