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중섭론 1 - 내 안의 19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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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중섭론 1 - 내 안의 1950
  • 정민나
  • 승인 2019.09.26 0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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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중섭론 1 - 내 안의 1950 / 최서림


이중섭론 1
- 내 안의 1950
 
 
그의 소는 일자무식 우리 큰아버지를 닮았다.
 
그의 소는 징용에서 탈출한 우리 아버지를 닮았다.
 
그의 소는 비슬산서 빨치산 하다 죽은 순이 삼촌을 닮았다.
 
그의 소는 새끼를 잃고 울부짖는 영태 아버지를 닮았다.
 
선이 굵고 울퉁불퉁한 그의 소는 청도 싸움소를 닮았다.
 
무수한 목숨들이 젖줄을 대고 있는 백두대간을 닮았다.
 
눈물을 뚝뚝 흘리며 끌려갈 수밖에 없는 그의 소,
 
핏빛 역사 앞에서 망연자실한 나의 자화상이다.

 






이중섭의 ‘소’ 그림에 대한 평가는 사람마다 다른데 그 중에 이구열은 “주저앉고, 격돌하고, 허공을 향해 울부짖는 소”라고 말했다. 이중섭 역시 일본 유학시절에 자신이 그린 ‘소’를 ‘조선의 소’라고 소개한 적이 있다. 이중섭이 색채와 붓질로 ‘조선의 소’를 형상화 했다면 시인 최서림 역시 시적 언어로 강렬한 ‘조선의 소’를 그리고 있다.
 
이 한 장의 그림 속에는 한 나라의 역사가 들어가 있고 한 사람의 인생이 묻어난다. 이중섭이 그림을 통해서 미를 창조했다면 이 시를 쓴 시인 역시 이 그림 속에서 미를 발견하고 상징적 의미를 확산한다.
 
이중섭은 자연을 그대로 재현하거나 모방한 것이 아니라 근원적인 것을 파고 들어가 그 속에 숨어 있는 근본적인 합일점을 찾아낸다. 그것은 전혀 기교적이지 않다. 이중섭이 어린 시절 “소에 뽀뽀를 했다.”고 아이들에게 놀림을 받은 적이 있다. 그것은 자신이 좋아하고 사랑하는 것에 일체화를 이루고 그렇게 감정이입을 함으로써 일반인과 다르게 자신만의 소를 그릴 수 있었던 것이다.

이와 동일하게 이 시를 쓴 시인 역시 그림을 감상한 뒤 화가의 마음을 있는 그대로 읽고, 그 공감에서 나아가 화가와 비슷한 시기의 자신의 가족과 우리나라 어두운 한 시기, 짧은 역사의 연대기를 시로 형상화 하였다. ‘일자무식 큰 아버지’, ‘징용에서 탈출한 우리 아버지’, ‘소를 잃고 울부짖는 영태 아버지’는 그림 속의 텍스트에 감정 이입을 해서 드러난 존재들이다. 이 시를 읽는 독자 역시 형상을 넘은 형상을 그리면서 그림과 시, 화가와 시인의 예술적 진술에 다가서게 된다.
 
한 장의 그림에서 환기되는 인간의 그림자는 시인에게 영감을 주고 그것이 새롭게 역사적인 인식으로 깨어나기도 한다. 몽테크리스토 백작이 “감옥의 나날”을 벽에 새겼듯이 기억이 그림에 담기든 시 안에 담기든 장소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핏빛 역사 앞에서 망연자실한 ‘내 안의 1950’은 화가와 시인의 특별한 복제를 통해서 생생히 되살아난다.
 
시인 정민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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