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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희중
  • 승인 2019.11.22 0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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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칼럼] 김희중 / 인천노인종합문화회관 소통의 글쓰기반



 
김포를 출발하여 파리 경유, 미라노 리나테공항에서부터 시작된 출장은 4월초 프랑크프르트의 암마인 공항에서 가까운 S호텔에서 마지막 밤을 보게 되었다. 새벽부터 서둘러 준비하고 공항으로 나왔다. 가벼운 행장이었기에 수속을 쉽게 마치고 탑승권을 손에 쥐었다. 이제 한 건 남았다. 방콕에서 방글라데시 프로젝트만 매듭지으면 된다. 길게 뻗어있는 복도의 무빙워크웨이를 타고 느긋하게 탑승게이트까지 왔다. 입구는 아직 탑승준비 중이었고 대기실에는 이미 상당한 승객들이 앉아있었다. 오래 걸어서인지 위에 걸친 런던포그의 무게가 느껴졌다. 한적한 뒤쪽 자리를 골라 코트를 벗어놓고 앉아 읽다만 소설을 꺼내 읽기 시작했다.

2주전, 김포공항을 떠나올 때, 담석 제거 수술을 받으라고 주치의가 말렸으나 2주 만 견딜 수 있게 해 달라고 통사정하여 비상 약만 얻어 쥐고 왔다. 48세인 나에게 온 세상은 도전의 대상 이었고 눈부신 성장의 시기를 달리고 있던 대한민국은 젊은 피를 끓게 했다. 그런데 이 투지부터가 무리였다. 그리고 드디어 돌아간다는 다소 풀린 안도감이 병마의 질투를 불러온 것이었을까?
 
탑승이 끝나고 모두 안전벨트를 조였다. 방콕행 보잉 747이 굉음소리와 함께 질질 끌려가던 몸체를 활주로에서 도약하는 것을 즐겼다. 창밖으로 구름이 스쳐지나가더니 이젠 그 위를 그냥 둥둥 떠 있는 것 같이 자세를 안정시킨다. 여승무원의 낭낭한 기내방송에 따라 안전띠를 벗겼다. 그리고 등받이를 약간 뒤로 눕혔다.
그 순간 통증이 몰려왔다. 주머니에 비상용 진통제를 확인하고 승무원으로부터 생수 한 잔을 얻었다. 그리고 속이 메슥거려서 화장실로 들어가 약을 들이켰다고 생각된다. 그런데 그 순간 모든 것이 사라져 버렸다. 아무 것도 느껴지지 않았고 그저 텅 빈 공간속으로 혼자 방출되어버렸다.
 
하얀 천을 통과하여 쏟아지는 햇빛이 눈부시다. 나는 침대위에 눕혀져 있었다. 천당인가, 지옥인가 분간이 되지 않았다. 그 중간 쯤 인지도 모른다. 끼릭끼릭 하는 바퀴소리가 들렸다. 소리를 따라 무심코 그쪽으로 시선을 돌린 순간 커튼 밑자락 너머로 바퀴 달린 침대다리가 보였다. 그 다리에 매달린 링거 병에는 드리워진 비닐 호스를 통하여 뚝뚝 피가 떨어지고 있었다. 누군지 모르지만 저 침대에 실려 오고 있는 사람의 출혈이 틀림없다. 순간 오싹했다. 치료가 끝나지 않았나? 지혈도 하지 않은 채… 그렇다면 나는 응급실 아니면 수술 후 회복실 쯤 되는 곳에서 그동안 있었던 것이 틀림없다. 우선 온몸을 만져보니 비닐봉지 세 개의 수액만 팔에 연결 되어있을 뿐 말짱 하다. 저절로 안도의 한숨이 나왔다. 머리맡에 명패를 찾았다.

“kimheejoong, South Korea, gallstone(김희중, 남한, 담석증)”, 그 밑에 “Dubai 00 Hospital(두바이 00병원)”이라고 쓰여 있다. 커튼 사이로 보이는 방문 입구 쪽에는 제복을 입은 한 사내가 장총을 사타구니에 끼고 의자에 앉아 졸고 있다.
 
프랑크푸르트에서 비행기가 이륙한 후, 나는 혼절했다. 누군가 내 소지품 중 약재들과 주치의가 만일의 경우 사용하라고 적어준 영문 진단서를 보고 나를 살리려면 병원에 데리고 가서 수술을 해야 한다고 주장했을 것이다. 기장은 고민 끝에 현 위치에서 가까운 여러 공항에 위급환자 발생을 타전하고 비상착륙허가를 요청 했을 것이다. 저기 아랍인 경찰로 보아, 방콕을 향하는 항로를 크게 이탈하지 않고 착륙허가를 받을 수 있는 곳이라면? 이 병원의 이름으로 보아 UAE(아랍토후국) 의 Dubai(두바이)공항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나는 이곳 두바이 00병원으로 옮겨져서 구조를 받은 것이다. 비자 없이 입국 하였으니 당연히 경찰이 따라 붙었을 것이고… 그렇다면 내 짐들은? 브리프케이스는? 지갑 등 소지품들은? 대사관에 연락이라도 해야 할 텐데… 회사에 연락을 해야 하는데… 식구들이 걱정을 할 텐데… 방콕에서의 상담은 사정을 설명하고 뒤로 미루면 되지만… 오만 생각이 일시에 밀물처럼 몰려왔다.
 
이때 커튼이 걷히며 남자간호사가 수액주머니를 들고 들어왔다. 나는 이 기회를 놓칠 수가 없었다. 우선 다급한 목소리로 내가 이곳에 온지 얼마나 되었냐고 물었다. 3일전 정오쯤 이곳으로 왔으니 만 3일 째라고 설명하며 이제 많이 좋아졌으니 걱정 말라고 한다. 한국으로 연락할 방법이 있냐고 물었더니 그럴 필요 없다고 이미 이곳에 거주하시는 한국분이 다녀갔다고 했다. 공항에서 맡긴 짐들은 김포로 보내졌고 휴대한 짐들은 나와 함께 이 병원으로 옮겨와서 보관 되어있다고 한다. 그렇다면 나는 삼일 동안 죽어있었구나. 생물학적으로는 생존이었겠지만 정신적으로, 흔히 말하는 영적으로는 몸을 떠나 생사의 경계를 넘어갔단 말인가? 그런데 사흘 동안 나는 꿈도 꾸지 않았고 아무런 기억이 없으며 완전히 먹통이었다. 순간 ‘죽은 자는 다만 남아 있는 자들의 기억 속에 살아있을 뿐이다’라는 말이 생각났다. 그렇다면 사후라는 것은 본래 이렇게 먹통인데 사람들이 상상하여 사후의 세계를 만들어 낸 것인가? 사후세계에 대한 혼돈이 머릿속을 맴돌고 있었다. 그리고 다시 잠이 든 것 같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꿈을 꾸지 않는 다는 것이다. 꿈을 꾸지 않는 것이 아니라 뭔가 느끼고 반응을 하는 것 같은데 스토리가 엮여지지 않았다. 그저 이런 저런 공간을 목적 없이 헤매고 있었다.
 
얼마나 잤을까, 꿈결 속에서 촤악 하고 커튼 걷히는 소리와 함께 밝은 남자 간호사의 목소리가 들렸다.
“기분은 어떠세요?”
몽롱한 시야에 그의 웃음 띤 얼굴의 윤곽이 점점 뚜렷해졌다. 그는 차트를 바꿨다. 챠트의 내용에 ‘sips of water(물 한 모금)’라는 몇 개의 단어가 추가되어있다. 그리고 삐쩍 말라붙은 내 입술을 처음으로 물로 적셔주었다.
그리고 이어서 커튼을 열며 낯익은 얼굴이 나타났다.

“형님, 좀 어떠세요? 00이 전화해서 알았어요, 어제 바로 병원에 왔더니 아직 깨어나지 못하셨다 하기에 그냥 갔다 오늘 다시 왔어요.”

녀석은 우리 네 형제 중 은행에 다니고 있는 둘째와 초등학교부터 함께 다녔던 동네 친구 A였다. 그날 이후, A는 1주일에 두 번씩은 와 주었다. 이곳에 둥지를 틀은 지 3년이 되었다는 녀석은 어느새 나를 지키는 경찰과도 농담을 나누는 사이가 되었고, 내가 병원 전화로 회사, 집, 그리고 몇 군데 거래처와 국제전화도 가능하게 해 주었다.
이 병원은 UAE전역에서 수술환자를 모아와 수술만 전문으로 하는 병원 이었고 수술을 받고 귀국하는 것이 훨씬 안전하고 편할 것이라는 병원 측의 권유도 있었다. 그러나 첫날 내 눈에 깊이 새겨져 남아있는 환자의 출혈장면이 나로 하여금 도저히 용기를 못 내게 했다.
 
잠깐만, 잠깐만 하고 3주를 지내던 화요일 오전, A가 오지 않는 날이었다. 화장실에 가서 대변을 보았다. 한참 용을 쓰며 쥐어짜던 끝이었다. 뭔가 털썩 하는 둔탁한 소리를 시작으로 뱃속의 내장이 한꺼번에 다 끌려 내려오는 듯 배설물이 쏟아졌다. 몸을 일으키는데 훨씬 몸이 가벼워진 것이 느껴졌다. 병실로 돌아와 입구에서 체중을 측정한 결과, 눈을 의심 할 수밖에 없었다. 62Kg의 체중이 38Kg이 되어 있었다. 그러나 한편 수긍이 가기도 했다. 수액과 소량의 물 이외에 섭취한 것이 없었으니 당연한 결과인 것이다. 그러나 순간 겁이 났다. 이러다가 죽어버릴 것만 같았다. 오랜만에 본 거울 속의 나는 피골이 상접한 해골 같은 모습이었다.
A에게 부탁을 해서 직항로를 예약하고 서울로 나를 후송하기로 했다.
 
그 동안 정들었던 필리핀 출신 간호사의 인적사항을 적은 수첩을 꼬옥 쥐고 병원을 떠나왔다. 병원의 배려로 주사된 안정제 탓이었을까? 정신이 들어 눈을 떴을 때는 비행기가 동체의 요동도 거의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안정된 운항을 하고 있었다. 무심코 바라다 본 창밖에 뭉게구름위로 은빛날개가 번쩍이고 있었다. 나는 지금 프랑크푸르트의 상공과 하나도 다름없는 그때의 뭉게구름 위를 그냥 떠있는 것같이 그날처럼 비행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까 되살아난 지난 26일 동안의 기억을 뒤적이다가 내 일생에서 지워져 버린 것 같은 지난 26일을 건너뛰는 착각에 빠진 체, 나도 모르게 꿈속으로 빨려 들어가서 여정은 계속되고 있었다.
김포공항에서 기다리던 구급차로 00병원까지 옮겨지고, 수술을 받았다. 그리고 다시 한 주를 병원에서 보냈다. 병실 창가에는 전리품처럼 내 쓸개주머니에서 꺼냈다는 돌들이 조그만 유리병 속에 담겨 전시(?) 되고 있었다. 문병 오는 사람마다 이 돌들을 보고 눈이 휘둥그레지며 놀랐다. 나는 이 행운을 축하해주는 즐거운 얼굴들을 대하며 환생의 환희를 즐길 수 있었다.
 
27년 전 이 무렵, 같은 비행기에 함께 탑승한 인연으로, 나의 구조를 요청 해 주었을 승객들, 그리고 그들의 요구를 수용하고 불시착하여 나를 병원에 인계해준 기장, 그리고 승무원들과 무엇보다 나를 받아준 두바이공항과 병원, 의사선생님들, 그리고 A, 이 모든 분들이 있어 나는 다시 살게 되었다. 나를 구해준 그분들에게 감사하단 말도 하지 못한 체, 살아왔다. 하지만 덤 같은 세월이 아까워 단 하루라도 가치 있게 살아 주어야 하지 않겠느냐고 기도하며 살았다. 자! 오늘도 또 한 번 파란 날이 새었다. 어떤 형태로든 보은의 기회는 올 것이다.
 
 
- 2019년의 끝자락에서 27년 전을 돌이켜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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