맑은 날 큰잔치 사진이 너무 어둡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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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 날 큰잔치 사진이 너무 어둡다
  • 최종규
  • 승인 2010.12.15 18:4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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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책 읽기] 강재훈, 《산골분교운동회》(가각본,2006)

 ‘좋은 책’을 읽는다고 ‘좋은 사람’이 되지는 않아요. 좋은 책 ‘읽기’만으로는 좋은 사람 ‘되기’는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좋은 책을 읽으면서 내 삶을 좋은 삶으로 일굴 때에 하루하루 천천히 좋은 사람으로 다시 태어납니다.

 좋은 사진책을 많이 읽는다고 ‘좋은 사진 읽는 눈’을 기를 수 있지 않으며, 좋은 사진책을 많이 보았기에 ‘좋은 사진 찍는 손’을 다스릴 수 있지 않습니다. 좋은 사진책을 가까이하는 삶도 아름답기는 하지만, 좋은 사진책 ‘읽기’에 머물지 않아야 비로소 좋은 사진 ‘찍기’와 ‘헤아리기’로 이어집니다. 좋은 사진책을 읽으며 받아들인 사랑을 내 가슴 활짝 열어젖히면서 넉넉히 담으며 곰삭이는 가운데 차근차근 두루 나눌 때에 바야흐로 좋은 사진 ‘찍기’란 무엇이며 좋은 사진 ‘헤아리기’란 어떠한가를 깨달아요. 좋은 책 좋은 삶 좋은 사진이에요. 좋은 책에서 곧바로 좋은 사진으로 이어지지 않는답니다.

 사진책 《산골분교운동회》를 읽습니다. 《분교, 들꽃 피는 학교》(학고재,1998)에 이어 여덟 해 만에 선보이는 사랑스러운 사진책이라 할 만한 《산골분교운동회》를 읽습니다. 사진책은 2006년에 진작 나왔으나 지난 네 해 동안 이 사진책을 따로 찾아 읽지 않다가, 네 해 만에 비로소 장만하여 한 장 두 장 넘깁니다. 첫 사진책 《분교, 들꽃 피는 학교》가 태어났을 때에는 떨리는 손길과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곧장 사진잔치 자리로 달음박질해서 포스터랑 책이랑 기쁘게 장만했습니다만, 여덟 해 만에 둘째로 태어난 《산골분교운동회》에는 선뜻 눈길하고 손길이 가 닿지 못했습니다. 첫째 사진책에는 “들꽃 피는 학교”라는 이름이 붙었으나, 둘째 사진책에는 딱히 다른 이름이 안 붙고 “강재훈의 두 번째 분교 이야기”라는 이름이 붙었기 때문만은 아닙니다. “들꽃 피는 학교” 사진책은 겉그림부터 마음을 부드러이 사로잡았습니다만, “강재훈의 두 번째 분교 이야기” 사진책은 겉그림부터 썩 달갑지 않았습니다. 강재훈 님이 힘들게 다리품을 들이며 찾아다닌 산골 분교나 시골 분교 운동회 자리는 언제나 ‘맑고 따뜻하며 보드라운 햇살과 바람과 하늘과 구름과 흙’을 바탕으로 햇살사람과 바람사람과 하늘사람과 구름사람과 흙사람이 어우러졌는데, 막상 이 사람들 삶내를 꾸밈없이 펼쳐 보이는 데에서는 그만 어긋났다고 느꼈기 때문입니다.

 아, 이 맑은 날 큰잔치 사진이 왜 이렇게도 어둡게 나와야 했을까요. 《분교, 들꽃 피는 학교》는 흑백사진이면서 빛그림이 곱게 살았는데, 《산골분교운동회》는 왜 굳이 흑백사진으로 이야기를 엮으려 했을까요. 흑백사진으로도 얼마든지 다큐사진을 할 만할 뿐 아니라, 즐겁고 신나는 분교 운동회 삶자락을 담을 수 있습니다. 흑백사진이기에 더 차분하면서 애틋한 느낌을 살포시 실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흑백사진이면서 밝은 자리와 그늘진 자리를 섣불리 가르면 안 좋아요. 하나도 어둡지 않은 ‘산골분교운동회’인데, 너무 어두운 사진이 되고 말았어요. 아이들이나 어른들 숫자가 많건 적건, 운동회 잔치날 모두 살가이 얼크러지면서 하하호호 낄낄깔깔 히히흐흐 웃고 자지러지는데, 이 웃음을 웃음 그대로 담아내지 못했구나 싶어요.

 사진은 틀림없이 ‘기록’을 하는 예술이자 문화이지만, ‘기록만 하는’ 보도매체는 아니에요. 강재훈 님으로서는 당신이 몸담은 신문사에서 기자살이를 하느라 겨를을 내기 빠듯해 더 많은 곳을 더 바지런히 못 다니는 바람에 아쉽다고 느낄 만하지만, 산골분교운동회란 100군데 학교 100군데 운동회 자리 모습을 골고루 담아야 사진책 하나로 마무리되지 않아요.

 강재훈 님, 아시지요? 누구보다 강재훈 님 스스로 잘 아시지요? 강원도 인제군 기린면 기린초등학교 진동분교장 한 곳 운동회 잔치날 사진을 꼭 한 해치만 찍었어도 얼마든지 사진책 하나가 태어나요. 경기도 가평군 북면 목동초등학교 명지분교장 한 곳 운동회 놀이터 사진을 꼭 하루치만 담았어도 너끈히 사진책 여러 권 태어나요.

 두어 군데 산골분교 운동회를 해마다 꾸준히 찾아가면서, 해마다 새삼스러운 삶자락과 놀이자락과 이야기자락을 길어올리면 흐뭇해요.

 《산골분교운동회》는 모두 179쪽이더군요. 강재훈 님이 더 잘 알리라 생각하는데, 이 사진이야기는 꼭 100쪽으로도 살가이 엮을 만합니다. 이 사진이야기는 500쪽이나 1000쪽으로 시원스레 여밀 만합니다. 50쪽짜리 조그마한 사진책을 네 권이나 다섯 권으로 나눌 수 있어요. 산골분교 한 곳마다 따로따로 한 권씩 내놓아도 참 좋습니다. 아니, 강재훈 님으로서는 당신이 찾아다닌 산골분교 사진이야기를 저마다 다른 빛깔과 무늬와 목소리와 살결로 아리땁게 내놓으려는 매무새여야 한다고 느껴요. 이러한 매무새를 바탕으로 《산골분교운동회》는 다시 태어나야 한다고 느껴요.

 흑백은 흑백대로 아름다운 사진이지만, 빛깔은 빛깔대로 어여쁜 사진이에요. 흑백은 흑백대로 차분히 이야기를 펼치는데, 빛깔 또한 빛깔대로 고즈넉히 이야기를 나누어요. 흑백이냐 빛깔이냐에 앞서 ‘삶’과 ‘사랑’과 ‘사람’입니다.

 아름다운 사람들 품과 품앗이와 품새를 따뜻하게 어루만지고픈 넋을 예쁘게 보여주는 《분교, 들꽃 피는 학교》를 내놓은 강재훈 님이었기에, 둘째 이야기는 “작은 운동회, 맑은 하늘 업은 학교”로 선보였어야 한결 사랑스러웠으리라 느낍니다. 운동장을 힘차게 달리는 아이들 사진으로도 운동회 모습이지만, 이번 사진책에서는 놓친 대목이 퍽 많을 뿐더러, 운동회라 할 때에, 또 산골분교 운동회라 할 때에, 어떠한 운동회이고 어떠한 빛깔이며 어떠한 숨결인 가운데 어떠한 어깨동무인가 하는 대목에서 무척 흐릿흐릿합니다.

 사진은 서둘러 찍을 수 없는 문화임을 다시금 헤아려 주셔요. 사진은 섣불리 담을 수 없는 예술임을 새삼스레 깨달아 주셔요. 사진은 나 스스로 사랑하는 사람하고 막걸리잔을 부딪히든 손을 맞잡든 부둥켜안든 말없는 웃음꽃 주고받든 하는 삶임을 천천히 곱씹어 주셔요.

 한 해에 한 번 얼굴 마주하더라도 반가운 이웃이라면, 한 해에 한 번 마주하며 담은 필름 한두 통으로 사진이야기 엮어 주셔요. 열 해에 한 번 가까스로 마주하더라며 고마운 벗님이라면, 열 해에 한 번 마주하며 얻은 필름 몇 통으로 사진이야기 갈무리해 주셔요.

 바쁘게 다니지는 말아 주셔요. 힘들게 찾아다니지는 말아 주셔요. 좋은 이웃을 만나러 기쁘게 마실하면서 사진으로 만나 주셔요. 따스한 동무랑 살가운 아이들하고 웃고 떠들려는 착한 마음밭을 건사하면서 사진으로 징검돌을 놓아 주셔요.

 강재훈 님 셋째 사진이야기는 산골 분교나 시골 분교에서 싱그러운 눈물과 해맑은 웃음을 골고루 부둥켜안는 빛살 고운 삶이야기가 되도록 곁을 내주셔요. 산골 분교나 시골 분교 어른과 아이는 강재훈 님한테 넉넉히 곁을 내주었는데, 강재훈 님은 외려 곁을 잃어버린 《산골분교운동회》가 되고 말았어요. 슬픕니다.

.. 신문사의 기자생활을 하면서 산골 분교 운동회를 찾아다니기는 여간 어려운 게 아니었다. 주어진 시간의 부자유, 그 이유로 사진 작업이 서울에서 가까운 경기도와 강원도에 국한된 것이 좀 안타까운 부분이다. 하지만 무작정 시간을 탓할 수만은 없는 일. 올해 못 가면 다음해 가면 된다는 각오로 시간과 기회가 닿을 때마다 산골 분교로 달려갔다. 가는 길이 멀면 밤새 달려 새벽에 도착했고 돌아오는 길이 멀면 아예 새벽길을 달려 서울로 돌아오기를 반복했다. 한 번 인연을 맺은 분교들을 몇 해 거듭해 찾아가니 자연히 아이들은 물론 지역 주민들과도 친해졌다. 사진을 찍다 말고 손님 찾아 달리기에 호명되어 아이들과 함께 뛰기도 하고, 부모가 오지 못한 아이가 있을 때는 대신 그 아이의 부모가 되어 발 묶고 달리기도 해야 했다. 내가 하려고 해서가 아니라 그들이 먼저 나를 포함시킨 채 운동회를 진행하는 것이었다. 산골 분교 운동회는 그렇게 한 사람이라도 더 함께 하기를 말없이 원하고 있었으며, 부르지 않았어도 찾아온 사람에게는 이웃처럼 반갑게 곁을 내주었다 ..  (107쪽)

 이런 이야기는 더 읽고 싶지 않습니다. 따로 이처럼 글로 적어 놓지 않았어도, 사진만 읽으면서도 너무 슬펐습니다. 너무 바쁘게 일하며 다니시는 나머지 무엇을 사랑하고 아끼며 보살폈는지, 또 누구한테서 사랑을 받고 아낌을 받으며 보살핌을 받았는지를 잊어버리셨네요.

― 산골분교운동회 (강재훈 사진,가각본 펴냄,2006.5.25./25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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