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씨를 심어 일구는 헌책방 일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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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씨를 심어 일구는 헌책방 일꾼
  • 최종규
  • 승인 2011.03.19 1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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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책방 마실 4] 제주 이도1동 〈책밭서점〉

책씨를 심어 일구는 헌책방 일꾼
[헌책방 마실 4] 제주 이도1동 〈책밭서점〉 / 064) 752-5126
제주시 이도1동 1260-26번지

 (1) 헌책방 찾아 제주섬 마실

 제주섬에서 살아가는 분들은 제주섬 책방을 즐겁게 다니리라 생각합니다. 뭍에서 제주섬으로 찾아드는 분들은 제주섬 곳곳을 자동차나 자전거로 누비면서 즐겁게 보내리라 생각합니다. 제아무리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라 하더라도 제주섬까지 와서 책방마실을 해 보리라 생각하는 사람은 없지 않느냐 싶습니다.

 책을 좋아하는 분들치고 제주섬 제주책방으로 마실하는 일뿐 아니라 부산땅 부산책방으로 마실을 한다거나 춘천땅 춘천책방으로 마실을 하는 분이 있을까 궁금합니다. 온 나라 곳곳을 두루 밟으면서 마을마다 책방살림을 어떻게 일구는가를 가만히 돌아보며 살포시 껴안는 분이 있기는 있을는지 궁금합니다.

 예전에는 전국마실을 하는 분들이 마을책방에 들러 다리쉼을 한다거나 ‘기차나 버스 떠날 때’를 기다렸다는 이야기를 곧잘 들었습니다. 요즈음은 전국마실을 하는 분들 가운데 마을책방에 들른다고 하는 이야기를 거의 못 듣습니다.

 아무래도 요즈음은 으레 자가용을 몰며 마실을 할 테니까, 버스나 기차가 들어올 때까지 가까운 책방에 들를 일이 없겠지요. 더구나, 지난날처럼 버스역이나 기차역 둘레에 크고작은 헌책방과 새책방이 오순도순 모이던 모습이 거의 사라졌습니다. 버스역이든 기차역이든, 둘레에는 높직하거나 시끌벅적한 가게가 들어섭니다. 시끌벅적한 가게는 거의 다 옷가게이거나 밥집입니다. 새책방이든 헌책방이든 동네사람 살림살이에 맞추어 조그맣게 일굴 수 있던 흐름이 깨졌습니다. 교보문고나 영풍문고 새끼가게가 온 나라로 퍼집니다. 예전에는 마을책방마다 다 다르게 꾸민 다 다른 책꽂이 매무새를 즐길 수 있었으나, 이제는 어느 도시 어느 동네를 찾아가든 다 똑같이 꾸민 짜임새에 다 똑같은 책만 가득한 매무새입니다. 잘 팔리는 책이 아니고서는 마을책방 책꽂이에서 살아남지 못합니다. 많이 팔리지 않더라도 사람들한테 사랑과 믿음과 꿈과 참을 밝히던 책들은 소리없이 스러집니다.

 집식구를 거느리고 제주마실을 하며 제주시 이도1동 1260번지에 자리한 헌책방을 찾아갑니다. 우리 식구가 제주마실을 하는 까닭은 제주시에 자리한 헌책방 때문입니다. 제주 헌책방을 찾아가고자 제주마실을 합니다. 다른 데를 둘러본다든지, 이를테면 올레길을 걷거나 한라산을 오를 생각으로 제주마실을 하지 않습니다. 오로지 제주시 이도1동에 깃든 헌책방 〈책밭서점〉을 만나려고 제주마실을 합니다.

 둘째를 밴 옆지기가 둘째를 낳으면 옆지기는 옆지기대로 힘들고, 저는 저대로 갓난쟁이하고 첫째하고 옆지기하고 보살피면서 살림을 꾸려야 합니다. 이러다 보면 한 해가 훌쩍 지나가요. 아마 눈코 뜰 새 없이 지나간다기보다 바람처럼 휙 하고 지나가겠지요.

 갓난쟁이를 데리고 충주 멧골자락에서 제주섬까지 오가기란 꽤나 힘듭니다. 둘째를 밴 옆지기라 해서 움직이기 쉽지 않습니다. 그래도 갓난쟁이가 있으면 갓난쟁이 기저귀이며 젖병이며 옷가지이며 깔개이며 담요이며 짐이 한가득입니다. 첫째도 아직 많이 어리기 때문에 제 가방과 옆지기 가방에는 아이 옷가지와 천기저귀로 가득 찹니다. 어리디어린 두 아이를 데리고 자가용 없이 돌아다니는 일이란 꿈꿀 수 없습니다. 아직 하나만 있을 때에 얼른 한 번 바람을 쐬지 않으면 몇 해 더 지나도록 다시 바람을 쐴 수 없다고 생각하며 길을 나섭니다.

 먼저, 시골버스 타는 데로 나갑니다. 시골버스를 기다립니다. 음성 읍내로 들어섭니다. 기차역까지 택시를 탈까 말까 하다가 걷기로 합니다. 삼십 분 남짓 걸어 기차역에 닿아, 기차가 들어오기를 기다립니다. 기차를 타고 청주공항으로 갑니다. 청주공항역에서 내리는데, 알림판 하나 없고 알려주는 사람 또한 없습니다. 함께 내린 분이 길을 알려주어 겨우 공항 있는 데로 찾아갑니다. 그러나 길알림판이란 하나도 없기 때문에 엉뚱한 데로 빠져나와서 찻길 한복판을 가로질러야 했습니다. 철도역 일꾼 없이 꾸리는 기차역이라 한다면, 누구라도 바깥으로 나가는 길을 잘 알도록 길그림이라도 그리든지 땅바닥이나 길가에 알림판이라도 붙이거나 세워야 할 텐데요.

 청주공항에 들어선 다음 저녁 먹을 데를 찾아봅니다. 밥 먹을 곳은 한 군데입니다. 밥값이 꽤나 비쌉니다. 어쩔 수 없다고 느끼지만, 반찬을 보니 좀 너무하는구나 싶으면서도, 건물은 이렇게 큼지막하게 짓지만 막상 알맹이는 허전하다면 이런 삶이 무슨 보람이 있겠느냐 싶습니다. 비행기야 크다지만, 비행기만 크면 되고, 비행기를 타는 사람들은 굳이 커다란 건물 커다란 밥집에서 비싼값 치르며 맛없는 밥을 먹어야 하지는 않아요. 조촐하게 꾸려 조촐하게 즐기면서 알맞게 값을 치르는 좋은 밥집을 마주할 수 있어야 기쁩니다.

 비행기를 언제 타 보았는지 떠오르지 않습니다. 비행기표 끊은 지 오래되었습니다. 값싸게 탈 비행기가 있는 줄 모르고, 가는 길부터 바가지를 썼다고 느낍니다. 나도 참 바보스럽다고 생각하지만, 몸소 알뜰히 겪지 못한 터라 비싼값을 치르며 잘 배우는 셈이라고 여깁니다. 아이는 비행기에 타는 일이 무서운지 싫은지 자꾸 골을 냅니다(그래도 돌아오는 길에는 꽤나 좋아합니다). 아침부터 먼길을 떠난다며 부산을 떤데다 저녁이 되니 기운이 빠져서 힘들기 때문에 골을 부리는구나 싶습니다.

 비행기를 탈 때에 자꾸자꾸 늦어져서 걱정스러웠지만, 제주시에 닿아 부리나케 택시를 잡아타고 책방으로 전화를 거니, 아직 문닫는 때가 아니라 말씀합니다. 한숨을 놓으며 마음이 살짝 가볍습니다. 아홉 시가 다 되어 책방에 닿았기에 책을 둘러볼 짬은 안 되어 이듬날부터 들르기로 하지만, 2005년에 두 번째로 찾아온 뒤로 여러 해 만이니, 이 책꽂이에서도 나를 부르는 책소리가 들리고, 저 책시렁에서도 나를 손짓하는 책모습이 보입니다. 이듬날부터 제주에 머무는 동안 한꺼번에서 책값을 셈하겠다 말씀드리며 첫날부터 십 분 사이에 열 권 남짓 고르며 사진 몇 장 찍습니다. 헌책방 〈책밭서점〉 아저씨는 아이까지 낳아 오랜만에 왔으면 책이야 앞으로 얼마든지 볼 테니까, 책보다 ‘사람 사는 얘기’를 나누자면서 당신이 즐겨찾는 밥집으로 우리를 이끌어 줍니다.



 (2) 사람과 마을과 이야기와

 모자반으로 끓인다는 몸국을 먹으며 제주물로 빚은 제주막걸리를 마십니다. 제주섬에서 빚는 제주물 제주막걸리는 뭍에서 뭍물로 빚는 뭍막걸리하고 물이며 맛이며 다릅니다. 이제껏 이런 막걸리맛은 느끼지 못했습니다. 사람들은 어디 막걸리가 맛있다든지 어느 곳 막걸리가 가장 좋다느니 하고 손꼽습니다만, 제주섬에 와서 제주막걸리를 마셔 본다면, 어느 곳 막걸리가 가장 좋다거나 빼어나다는 말은 못하겠다고 느낍니다. 왜냐하면 막걸리는 쌀맛이기도 하지만 물맛이기도 하니까요. 아니, 쌀은 쌀대로 막걸리맛에서 큰 자리를 차지하겠지만, 물맛이 없는 쌀맛이 아니고서야 술맛이 되지 않습니다.

 착한 터에서 착하게 흐르는 물로 흙을 일구어 곡식을 얻고, 착하게 흐르는 물에 착하게 일군 곡식을 삭여 술을 빚어 즐긴다면, 이 술을 즐기는 사람들은 언제나 착한 마음으로 착한 삶을 일굴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화학희석이라는 흐름에 따라 빚은 술을 싼값으로 마구 들이부으면서, 사료와 항생제로 키운 돼지나 소를 똑같이 싼값으로 신나게 구워서 먹는 사람이라면, 이렇게 받아들이는 화학술과 항생제+사료 고기 결이 몸으로 고스란히 스며들면서 살아가리라 생각합니다.

 먹는 밥에 따라 꾸리는 삶이 달라지고, 마주하는 사람에 따라 일구는 삶이 바뀌며, 읽는 책에 따라 가꾸는 삶이 거듭납니다. 돈을 더 벌어들이려는 꿈으로 읽는다는 ‘처세책·경제책·경영책·자기계발책’이란 우리 마음을 얼마나 사랑스럽거나 착하거나 아름다이 보듬는 밑거름이 될까요. 추천도서와 명작도서와 베스트셀러라는 그늘에서 머무는 책읽기란 내 가슴을 얼마나 따스하거나 넉넉히 어루만지는 밑바탕이 되나요.

 “새책방은 제주시에 많아요. 안쪽 동네에도 있고. 오래 한 새책방은 총판을 하나씩 가지고 있어요. 참고서 다루는 총판을 하고 있어 중·고등학교 자습서 팔면서 유지를 하고 있어요.” 제주섬에는 헌책방이 오직 한 곳 있습니다. 새책방은 곳곳에 꽤 많습니다. “(성읍)민속마을이 마음에 안 들어. 다 먹자판이잖아. 먹거리판은 마을 변두리로 좀 보내고, 마을을 진짜 민속마을답게 해 주어야 하는데. 마을에서 문화를 느낄 수 있게 해 주어야 하는데.” 제주에 있는 민속마을이든 제주 바깥에 있는 민속마을이든 매한가지입니다. 이 나라에서는 문화를 느끼도록 하는 민속마을이란 없습니다. 아니, 문화를 말하거나 다루는 민속마을이란 없어요.

 민속마을이란 어디 뚱딴지 같은 마을이 아닙니다. 여느 사람들이 이름이나 힘이나 돈하고 아랑곳하지 않으면서 조용히 지내던 마을입니다. ‘사람마을’이 민속마을이라는 이름이 붙습니다. 앞으로 쉰 해쯤 더 지나면, 도시에서 얕은 멧자락을 끼고 들어서던 달동네를 일컬어 ‘민속마을’이라든지 ‘골목민속마을’ 같은 이름을 붙이면서 ‘옛사람 문화’라 섬기거나 돌아보리라 생각합니다. 그런데, 민속마을을 만든다는 사람들치고, 막상 여느 마을에서 여느 살림을 꾸리며 조용히 살아가는 사람이란 없습니다. 민속마을에서 안 살아가던 부자나 지식인이나 권력자나 공무원이 관광상품으로 민속마을을 만듭니다.

 “저 띠(지붕에 얹는 띠)도 보면, 와이어를 가늘게 잘라 이어 놓았어요. 그게 쓰기 편하거든. 밧줄을 꼬아서 하려면 손이 많이 가고 힘들어.” 인천에는 수도국산달동네박물관이 있습니다. 수도국산달동네박물관은 이름 그대로 달동네 사람들 삶자락을 주섬주섬 엮어 이루었습니다. 그러나 이 달동네박물관이 ‘달동네 사람들 삶’을 보여준다고는 느끼지 않습니다. 예쁘장하게 꾸민 박물관이기는 하지만, 이 박물관 밖으로 나와 십 미터 앞으로만 나오면 박물관보다 더 박물관스러운 ‘달동네 사람들 삶자락’이 햇볕을 쬐며 맑고 밝게 펼쳐지거든요.

 달동네 사람들 살림집은 하나도 어둡지 않습니다. 달동네 사람들 살림살이는 조금도 꾀죄죄하지 않습니다. 다만, 돈이 조금 적을 뿐이에요. 적은 돈으로 옹기종기 모여서 살아갈 뿐이에요. 돈이 적어 가난하게 산대서 불쌍할 까닭이 없습니다. 가난하면서 즐겁고, 가난하니까 사랑하며, 가난한 만큼 나누며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3) 책 돌아보기

 이듬날부터 책방마실을 즐깁니다. 《기억의 저편》(제주시,2007)이라는 사진책은 해방 뒤부터 제주시 삶과 도시가 어떠했는가를 사진으로 보여줍니다. 다만, 관청 사진자료를 쓰기 때문에 그닥 재미있지 않습니다. 그래도 문패 달기를 새마을운동으로 하던 사진이 보여, ‘똑같이 생긴 문패’를 언제 달았는가 떠올릴 만하고, 새마을운동하고 잇닿은 ‘가로수 물 주기 학생 동원’ 같은 사진이나 ‘해수욕장 쓰레기 줍기와 돌 고르기’ 사진을 보면서, 독재정권이 이 나라 학생을 어떻게 부려먹었는가를 되돌아봅니다.

 《한라산 29호》(제주대학교,1989)는 제주대학교에서 내던 대학교 잡지입니다. 제주 헌책방에 왔으니 이 같은 책을 볼 수 있겠지요.

 《현대세계걸작그림동화 테이프》(문선사,1982)를 봅니다. ‘현대세계걸작그림동화’는 ‘백제’라는 출판사에서 냈는데, 백제출판사가 문을 닫으며 문선사로 넘어갑니다. 백제출판사는 죠반니노 과레스키 소설책을 내며 돈을 꽤 벌었고, 이 돈을 바탕으로 이때까지 한국땅 어느 출판사에서도 한 적이 없던 ‘세계 명장 그림책 번역’을 한꺼번에 스물여섯 권이나 했습니다.

 《제해만 엮음-이장희 전집》(문장사,1982)을 들여다봅니다. 고등학생 때 배운 시였지 하고 더듬으면서 새롭게 읽습니다.

.. 고마와라 / 눈은 땅 위에 아낌없이 오도다 / 배꽃보다 희도다 / 너무나 아름다운 눈이길래 / 멀리 신성한 것을 이마에 느끼노라 / 아아 더러운 이 몸을 어이하랴 / 고요한 속에 / 뉘우침만이 타오르다 타오르다 ..  (눈 1926.1.)

 1920년대에 쓴 시하고 2010년대 시인이 쓰는 무엇이 어떻게 얼마나 다르다 할는지 헤아립니다. 2010년대에 시를 쓰는 사람이 바라보는 눈하고 1920년대를 살던 시인이 바라보는 눈은 얼마나 닮았을까 곱씹습니다. 오늘날 시인 가운데 배꽃을 바라보며 시를 쓸 분이 있을까요. 예나 이제나 어떤 사람들이 시를 쓰는가요.

.. 아이와 바둑이는 눈을 맞으며 / 뜰에서 눈과 함께 노닐고 있네 ..  (눈나리는 날 1928)

 1920년대 시인은 바둑이하고 눈을 맞을 테지만, 2010년대 시인은 ‘바둑이’ 같은 개하고는 눈을 안 맞겠지요. 1920년대 시인은 봉선화를 바라보며 시를 쓰지만, 2010년대 시인은 무엇을 보면서, 어떤 꽃을 보면서, 어떤 사람과 삶터와 사랑을 느끼며 시를 쓴다 할 만할까요.

.. 아무것도 없던 우리집 뜰에 / 언제 누가 심었는지 봉선화가 피었네 / 밝은 봉선화는 / 이 어두컴컴한 집의 정다운 등불이다 ..  (봉선화 1929.5.)

 한쪽에 꽤 높직이 쌓인 어린이책을 봅니다. 우리 집에 없다 싶은 책을 골라 살몃살몃 빼냅니다. 책탑을 살살 들어 뽑아든 다음 책탑을 처음 모양대로 다시 쌓습니다. 오늘은 《주디 블룸/이종찬 옮김-엄마 아빠 나》(학원출판공사,1991), 《유리 콜리네츠/최홍근 옮김-삼촌 생각》(학원출판공사,1987), 《쿠르트 류트겐/곽복록 옮김-늑대에겐 겨울없다》(학원출판공사,1992)를 고릅니다.

 《한국기독교산업개발원,조승혁,황영환 엮음-노동조합이라니, 맛 좀 봐야겠군》(정암사,1987)이라는 책이 눈에 뜨입니다. 노동조합을 꾸린다며 ‘맛 좀 봐야’ 하는 사람은 1980년대뿐 아니라 2010년대에도 똑같이 있습니다. 어쩌면 2010년대인 오늘날이야말로 노동조합을 더 애타게 바라며 꾸려야 할 텐데, 오늘날 일꾼은 일꾼 대접이 아닌 비정규직이나 임시직이나 정리해고나 노동유연화 같은 숱한 이름에 따라 목이 잘리거나 내팽개쳐집니다.

 《서울대학교 사범대학 부속 국민학교-국민학교의 교육계획》(수문각,1954)이라는 낡은 책을 들춥니다. 머리말에 “그러나 그후(해방 뒤)에 차차 흥미가 없어지고 압증이 생기게 되어 한동안 떠들던 소위 아동 중심의 교육도 어느 틈에 슬그머니 자취를 감추고 구태의연한 교사 중심의 교육으로 환원하고 말았으니, 참으로 유감스러운 일이었다.”는 대목이 있습니다. 생각해 보면, 해방 뒤뿐 아니라 오늘날에도 어린이와 푸름이를 헤아리는 교육이 아니라 거의 교사 눈높이에서 헤아리는 교육입니다. 입시지옥은 어린이와 푸름이를 헤아리는 교육이 아닙니다. 입시지옥은 아이들한테 지식만 쑤셔넣는 “교사 눈높이 교육”이에요.

 《カトリック聖人傳》(光明社) 1권(1939)과 2권(1941)이 보여서 집어듭니다. 일본말로 된 옛책입니다만, “가톨릭성인전”이라는 이름으로 한국에서 나온 두 권짜리 책이 이 일본책하고 생김새와 꼴과 엮음새가 똑같다고 느꼈기 때문입니다.

 《관광전주》(전주시,1981? 1982?)라는 사진도록이 보입니다. 언제 나온 사진도록일까 궁금하지만 날짜는 나오지 않습니다. 다만, 맨 처음에 실린 사진을 보며 얼추 어림합니다. 2011년에 40회 전국소년체전이 열린다 하고, 첫 사진에 “10회 전국소년체전 앞으로 43일”이라는 관공서 펼침막이 사진으로 보이니까, 이 사진도록은 1981년에 찍은 사진으로 1982년에 내놓지 않았으랴 어림해 봅니다.



 (4) 책 깊이 읽기

 《이응노-미 군정기의 한글 운동사》(성청사,1974)를 만납니다. 이런 책이 있었다고 새삼스레 느끼며 고맙게 펼칩니다. 이 책은 1974년에 한 번 나와서 조용히 사라질 책이 아니라, 2000년대이든 2100년대이든 널리 읽히면서 우리 스스로 얼마나 바보스레 살아가는가를 깨닫도록 도와줄 길잡이 구실을 해야 하지 않느냐 느낍니다.

.. 우리의 한글 운동이 그 어디까지나 바탕을 자주와 민주의 근본정신에 두었기 때문이다 ..  (19쪽)

 으레, ‘한글 운동’이든 ‘우리 말 운동’이든 민족주의라든지 국수주의라고 내몹니다. 그럴밖에 없는 까닭이, 한글과 우리 말을 옳거나 바르게 쓰지 않으려는 사람은 예부터 권력자이거나 권력자한테 빌붙는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조선때에는 신분과 계급을 나눈 사람들이 쉬운 말글을 등지거나 따돌렸습니다. 일제강점기에는 식민지 부역을 하던 사람들이 우리 말글을 깎아내리거나 짓밟았습니다. 해방 뒤 오늘날까지는 돈벌이에 눈이 먼 사람들이 영어를 앞세우면서 우리 말글을 내팽개치거나 갉아먹습니다. 그러니까 이들 기회주의로 살아가는 사람들은 옳고 바르게 살아가자고 외치거나 힘쓰는 사람을 깎아내리거나 괴롭히려고 엉터리 이름을 얄궂게 붙입니다.

 우리 말글을 살피며 돌보는 일이란 ‘자주’이고 ‘민주’이며 ‘평화’이자 ‘사랑’입니다. 조금도 민족주의나 국수주의하고는 가까울 수 없습니다. 또한, 겨레사랑이랑 민족주의는 다릅니다. 북미 토박이가 북미 토박이 삶을 사랑하며 지키는 일을 놓고 어느 누가 민족주의나 국수주의라 하겠습니까. 북미 토박이들이 살아온 나날을 돌아보며 거룩한 문화요 슬기로운 넋이라 일컬으면서, 정작 한겨레 토박이들이 살아온 나날을 돌아보면서 우리 스스로를 거룩하거나 슬기롭다고 느끼는 사람은 찾아보기 힘듭니다.

 자주 독립을 외치는 자리에서 미국 군부대가 이 나라를 떠나야 한다고들 이야기하고, 한미자유무역협정이 말썽이라고들 얘기하지만, 정작 미국이라는 나라가 한국에 심은 ‘영어에 넋이 홀리도록 하는 흐름’을 깨달아 스스로 뿌리뽑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민주와 평화를 바란다지만, 막상 이 나라 민주와 평화하고는 동떨어진 신분과 계급으로 사람을 나누어 괴롭히던 지난날 한문 권력자들 매무새를 털거나 씻으려는 사람은 몹시 드뭅니다.

.. 일정 때 일본사람 중에 잔인한 사람들이 있어서, 우리 말과 우리 글을 없애 버려서, 우리 민족을 멸망으로 이끌어 갔었다. 그러나, 그보다도 더 악독한 우리 동포로서, 일본 제국주의자들에게 좋게 보이기 위한 완전한 일본사람 되기 위해서 애쓴 이들이, 일본사람들보다도 더 지독하게 ‘우리 말과 우리 글을 쓰는 어린이와 그것을 연구하는 선비(학자)’들을 못살게 굴었음은 참으로 기막히는 노릇이 아니었던가 … 8·15해방을 얻었을 적에는 “대한 독립 만세! 해방 만세!” 하면서 미친듯이 기뻐하던 우리는, 자유를·독립을·건국을 위하여 굳은 결심을 하였는데도 얼빠진 상태로, 일제에 모진 경을 겪고서도 쓸개빠진 상태는 그대로였으니 이래 가지고도 독립국가를 경륜할 수 있는 민족일 수는 없었다. 이에 관한 기록들을 추려 보면, 아직도 일본말을 그대로 부끄러움이 없이 쓰는가 하면, 우리 말과 우리 글의 공부는 아니하고서 영어 공부부터 열심인 부조리가 많이 있었다 ..  (45, 47쪽)

 《미 군정기의 한글 운동사》를 들추지 않더라도 얼마든지 알 만한 이야기입니다. 그렇지만, 이 책을 읽으면서 더 뼛속 깊이 느낍니다. 우리는 해방을 맞이한 뒤로 오늘에 이르기까지 우리 말글을 제대로 가르치거나 배우지 않습니다. 어쩌면 앞으로도 우리 스스로 우리 말글을 옳게 못 가르치는 흐름이 이어갈는지 모릅니다.

 《성내운-새로운 초등 교육학》(홍지사,1954)이라는 낡은 책을 마주합니다. 성내운 님이 서른이 채 안 될 무렵에 쓴 책입니다. 이런 책이 있었나 싶어 놀랍고, 낡은 책장이 바스러질까 걱정스러워 살살 읽으면서 다시 놀랍니다. 나라와 겨레와 교육과 사람을 근심하면서 아끼는 넋은 이때에도 튼튼하게 자리합니다. 모르는 노릇이지만, 오래도록 건사하면서 다스린 아름다운 넋으로 1970∼80년대 교육민주운동을 힘차게 이끌었겠구나 싶습니다. 해방과 한국전쟁 언저리에서도 이토록 꿋꿋하면서 바른 넋을 지킨 사람이 있었다니, 참으로 고마우면서 반갑습니다.

.. 아동으로 하여금 그들이 당면하는 새로운 사태의 창의적 해결을 계속하게 하는 것은 그것 그대로가 교육인 것이다. 간단히 말하자면, 교육은 생활 자체인 것이다. 교사의 임무는 아동의 생활로부터 시작하여 그 생활을 보유하고 그 생활이 성장하도록 도와주며, 생활을 풍유하게 함으로써 아동 생활의 발전을 기하는 것이다. 아동의 생활 발전 이외에 초등학교의 교육은 없다 ..  (20쪽)

 지식이나 정보를 가르치는 일이 교육이 되지 않습니다. 삶을 몸소 보여주면서 아이들 스스로 제 삶을 사랑하도록 도와야 비로소 교육입니다. 이리하여, ‘교육 = 삶’이고, ‘책 = 삶’이며, ‘글쓰기 = 삶’인데다가, ‘사진 = 삶’이면서, ‘예술 = 삶’입니다. 정치나 경제나 철학이라 해서 삶이 아닐 수 없습니다. 모두 삶에서 비롯하고 삶으로 마무리짓고 삶으로 꽃피웁니다. 삶을 밝힐 때라야 교육이 되고 문화가 되며 사회가 됩니다.

 사진책 《꽃》(공안과의원,1978)과 《백도》(공안과의원,1981)를 봅니다. 안과 의사이기도 한 공병우 님은 타자기를 만들고 한글 운동을 했을 뿐 아니라, 사진쟁이로도 한길을 걸었습니다. 당신이 몸담은 공안과 한켠에 사진부를 두었다고 했는데, 《꽃》과 《백도》는 당신이 꾸린 일터인 병원에서 내놓습니다.

 1970년에 미국 뉴욕에서 처음 나오고 1991년에 프랑스 파리에서 새로 찍은 《De Hans L.C.Jaffe(글)-Mondrian》(Cercler D'Art,1991)을 봅니다. 몬드리안이라는 분이 일군 그림을 가만히 살피니, 문득 우리네 옛 시골집 나무문살 무늬하고 똑같구나 싶습니다.

 그러나 오늘날 한국사람은 우리 겨레와 삶을 하나도 모를 뿐 아니라 곱게 살찌우며 북돋울 줄 모릅니다. 아니, 사랑하지 않습니다. 몬드리안은 어렵디어렵게 예술 한길을 걷다가 ‘한겨레 옛날 여느 살림집 나무문살 무늬’로 무지개빛 그림을 마무리짓지만, 정작 여느 살림집 나무문살 무늬를 늘 보고 자란 우리들은 이 나무문살 무늬가 얼마나 곱거나 살가운지를 깨닫지 않습니다.

 똑같은 나무문살이란 하나 없는 살림집입니다. 나무문살로 비쳐 들어오는 빛살이란 언제나 다릅니다. 날마다 다르고, 철마다 다르며, 때마다 다릅니다.

 《한국고미술대전(the arts of ancient Korea)》(제42회 세계사격선수권대회 조직위원회·대한사격연맹,1978)은 꽤 재미난 도록입니다. 누구 사진이며 언제 찍었는가는 밝히지 않지만, ‘금산사 미륵전’ 사진을 보면 “미륵천일 기도도량”이라면서 “1969년 12월 9일”이라는 날짜가 보입니다.

 .. 1978년 9월 24일부터 10월 5일 사이에 한국의 수도 서울에서 개최되는 제42회 세계사격선수권대회에 참가하는 귀빈·언론인·세계사격연맹 임원·각국의 임원 및 선수 제위에게 증정코자 한국고미술대전을 발간하게 된 것을 지극한 기쁨으로 여깁니다 ..  (머리말)

 요사이에는 한국에서 벌이는 세계운동대회가 꽤 잦습니다. 꽤 잦은 세계운동대회인데, 이런 대회를 벌일 때에 나라밖 손님한테 무언가를 선물하기는 할까요. 선물을 한다면 무엇을 하려나요. 우리 겨레 삶이나 이야기를 밝히는 조촐한 책 하나를 꾸려 한 권씩 선물하려는 공무원이든 조직위원이든 있을까 궁금합니다.

 《Giovanni Battista Piranesi(그림),Herschel Levit(글,사진)-views of Rome then and now》(Dover pub,1976)는 로마를 그림과 사진으로 돌아보는 책입니다.

 그린이 ‘조반니 바티스타 피라네시’라는 사람은 이탈리아에서 나고 자란 판화가이자 데상가이자 건축학자이자 고고학자였다고 하며, 1720년에 태어나 1778년에 숨을 거두었다고 합니다. 《views of Rome then and now》라고 하는 책은, 조반니 바티스타 피라네시 님이 1700년대에 그린 그림을 바탕으로, 이 그림을 그린 곳을 1970년대에 찾아가서 사진으로 담고 글로 이야기를 붙여 엮습니다. 이탈리아에서 나중에 또 새로운 책을 낼 마음이 있다면 앞으로 300해쯤 뒤에 그림으로 다시 그리거나 사진으로 새로 찍을 수 있겠지요.

 재미있는 사람들이고 재미있는 책입니다. 아름답게 삶을 일군다면 아름답게 빛나는 책이 태어납니다.



 (5) 살림돈을 들여 책을 산다

 볼쇼이 발레단이 발레하는 모습을 담은 사진책 《БОЛЬШОЙ БАЛЕТ》(ПЛанета,1981)는 러시아에서 만들었습니다. 러시아 사진책은 한국에서 좀처럼 만나기 힘들고, 더구나 볼쇼이 발레단 모습을 러시아사람이 러시아에서 사진으로 담아 만든 책은 더 만나기 힘들기 때문에 즐겁게 집어듭니다.

 《국어 순화 자료(학교교육용·장학자료 제39호)》(문교부,1983)를 봅니다. 안쪽에 “등록번호 284번 토산국민학교”가 찍힙니다. 토산국민학교가 어디인가 나중에 알아보니 제주도 서귀포시 표선면 토산리에 있다고 합니다. 1971년에 토산분교로 문을 열고 1978년에 국민학교가 되었다고 하네요.

 《국기·국가·국가원수에 대한 예절(장학자료 제42호)》(문교부,1984)도 토산국민학교 자료였다가 헌책방으로 흘러나온 책입니다. 이런 자료들은 하루하루 흐르면서 이제 더는 쓸모가 없으니 내놓거나 버리겠지요.

 헌책방이 없었으면 이러한 자료는 그저 종이쓰레기로 사라지고 맙니다. 헌책방이 있기 때문에 새책방이나 도서관에서 다루지 않거나 새책방이나 도서관에서 버리는 책들이 다시금 새숨을 얻어 지나온 우리 삶을 찬찬히 밝히거나 보여줍니다.

 소설책 《쟝 쥬네/방곤 옮김-도둑일기》(평민사,1979)와 만화책 《오수-느티나무》(서울문화사,1997)를 집어듭니다. 만화책 《느티나무》는 느티나무에 얽힌 이야기를 담을 뿐인데 “완전 성인용, 미성년자에게 절대 판매를 금합니다”라는 딱지가 붙습니다. 그러나 이 만화책 《느티나무》에는 ‘열아홉 살 아래 푸름이’한테 보여주지 말아야 할 이야기는 한 가지도 안 실립니다. 느티나무에 얽힌 이야기를 여러 사람 눈길에 따라 보여줄 뿐이거든요.

 《木曾奈良井》(長野縣木曾郡楢川村,1976)은 일본 어느 시골마을 삶과 사람 이야기를 알뜰히 갈무리한 책입니다. 이른바 ‘시골마을 문화지리지’라 할 책인데, 시골마을에 깃든 모든 집을 낱낱이 사진으로 담았고, 사람들이 어떠한 살림을 일구면서 마을과 자연이 어떻게 어우러졌는지 들을 아주 꼼꼼히 담습니다.

 우리 나라에서도 지역 문화지리지 같은 책이 더러 나오기는 하지만, 《木曾奈良井》처럼 꼼꼼하면서 차분하지 않습니다. 《木曾奈良井》처럼 알뜰하거나 알차게 엮지 못합니다. 문화지리지 같은 책은 학자들 힘으로만 엮지 못합니다. 학자들이 마을사람하고 어깨동무하면서 조용히 녹아들어야 비로소 책 하나 태어납니다.

 큼지막하고 무거운 사진책 《후타가와 유키오(二川幸夫) 사진,이토 테이지(伊藤ていじ) 글-日本の民家》(A.D.A. EDITA Tokyo,1980)하고 《후타가와 유키오(二川幸夫) 사진,마코토 스즈키(鈴木恂) 글-木の民家》(A.D.A. EDITA Tokyo,1978)를 만납니다. 《日本の民家》는 일본돈으로 25000엔이고, 《木の民家》는 일본돈으로 15000엔입니다. 이 두 권을 장만하자니 책값으로 40만 원이 들어야 합니다.

 속으로 곰곰이 생각합니다. ‘이런, 이 사진책 두 권 값만 해도 제주마실을 하는 데에 드는 비행기삯이 되네.’ 세 식구가 비행기를 타고 제주섬을 오갈 만한 돈이 되는 책값이기에 멈칫합니다. 그러나, 이만 한 사진책이라면 비행기삯만큼 되는 책값을 치르면서 장만할 만합니다. 아니, 비행기삯만큼 되는 책값을 치를 만한 책이 아니고서야 애써 장만할 값어치가 있다 하기 어렵겠지요.

 《일본 살림집》은 일본이라는 나라에서 여느 살림을 꾸리는 사람들 집이 어떠한가를 밝히는 사진책입니다. 《나무집》은 유럽에서 나무로 집을 짓고 살아가는 여느 사람들 살림살이가 어떠한가를 보여주는 사진책입니다. 두 가지 사진책은 건축사진을 찍는 분이 일군 보람이기도 하지만, 건축사진이나 기록사진이라는 틀을 넘어 ‘사진으로 보여주는 예술과 문화’란 무엇인가를 찬찬히 드러냅니다. 먼저, 사진으로서 사진다움을 한껏 뽐내면서 삶은 삶답게 빛나도록 어루만집니다. 우리 나라에도 우리 옛집을 담은 사진책이 제법 있기는 있으나, 이처럼 ‘이 옛 살림집에서 살아가는 사람들 수수한 모습과 이야기자락’을 살포시 풀어내지는 못합니다. 모두들 ‘기록’으로 그치거나 ‘사람내음이 모두 지워진 머나먼 예술나라’에서 맴돕니다.

 이 책 저 책 잔뜩 고른데다가, 아이가 볼 그림책을 예순 권 남짓 더 고릅니다. 큰 상자로 대여섯쯤 나올 만한 책꾸러미를 바라보는 〈책밭서점〉 사장님이 묻습니다. 책값이 꽤 나오는데 괜찮겠느냐고. 음, 안 괜찮지요. 그렇지만 안 괜찮은 책값 씀씀이가 될 줄 뻔히 알면서 이렇게 책 사러 제주마실을 했거든요. 없는 살림에 자꾸 책만 사들여 어떻게 먹고 지내는가 근심스럽기는 하지만, 책 장만하느라 살림돈이 바닥나면 시골자락에서 조용히 지내면 돼요. 자가용을 몰지 않으니 남들처럼 기름값을 걱정하지 않습니다. 서울 같은 큰도시에서 살지 않으니 집삯으로 골머리를 앓지 않습니다. 허튼 데에 쓰지 않으면 벌이가 적거나 없어도 고단하지 않아요.

 좋은 책을 꾸준히 새로 만나면서 내 삶을 차근차근 새롭게 되뇝니다. 처음 마주하며 기쁘게 받아쥐는 책을 품에 안으면서 오늘부터 내 넋과 얼을 얼마나 더 어여삐 보듬을 수 있나 하고 돌아봅니다.

 생각이며 마음이며 한껏 아름다워지고자 읽는 책입니다. 착하게 살아가려는 마음가짐을 북돋우려고 가까이하는 책입니다. 나 혼자 신나게 읽을 책이 아니라, 앞으로 이 책들이 자취를 감출 슬픈 날을 맞이하기 앞서 우리 아이나 내 둘레 사람들이 ‘종이로 일군 이야기꾸러미’란 어떠한 몸이었고 빛이었으며 얼굴이었는가를 느끼도록 하자며 보듬는 책입니다.

 헌책방 일꾼은 책씨를 심는 사람입니다. 책씨 가운데에는 사랑씨가 있고 믿음씨가 있으며 나눔씨가 있습니다. 어느 책씨는 한 사람 가슴에 사랑씨를 심을 테고, 어느 책씨는 여러 사람 마음에 믿음씨를 심을 테며, 어느 책씨는 숱한 사람 넋에 나눔씨를 심을 테지요.

 오이씨 같은 책씨가 있고, 배추씨 같은 책씨가 있으며, 호박씨 같은 책씨가 있습니다. 감자알 같은 책씨가 있으며, 고구마줄기 같은 책씨가 있고, 딸기넝쿨 같은 책씨가 있어요.

 어느 책이나 내 마음을 나 스스로 일구도록 돕는 씨앗이 깃듭니다. 이 씨앗을 나 스스로 알아보느냐, 남들이 알려주어도 알아채지 못하느냐에 따라 책읽기가 갈립니다. 누군가는 조그마한 책씨가 토옥 떨어져 깃들어도 금세 뿌리가 내리고 싹이 틀 테지만, 누군가는 커다란 책씨가 여럿 깃들어도 언제까지나 싹이 트지 못할 테지요. 기름진 마음밭이 되도록 돌보며 살아가는 사람이 있지만, 메마른 마음밭으로 나뒹굴도록 내버리며 살아가는 사람이 있기 때문입니다

 살림돈이 거덜나도록 책을 잔뜩 장만하는 이 한 사람은 얼마나 너르거나 기름진 마음밭으로 책씨를 맞아들이며 살아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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