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 노력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상태바
시민 노력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 김주희
  • 승인 2011.03.14 19:5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기획] 개항장 밖으로 눈을 돌리자 (3)민관이 협력해야

취재: 김주희 기자


옛 알렌별창 터에 있는 전도관 건물이 재개발 지역에 있어 철거될 위기에 놓였지만
이를 어떻게 보전하고 콘텐츠를 남길지 논의조차 안 되고 있다.

최근 인천문화재단은 중구 북성동 일대 개항장의 근대건축물 정보 등을 담은 '인천문화지도 어플리케이션'을 개발해 보급하고 있다. 지난해 개정판이 나온 책 '인천 개항장 역사 도보여행'을 바탕으로 제작한 것이다.

인천문화지도 어플리케이션을 이용하면 문화해설사의 설명이나, 안내서가 없어도 스마트 폰 하나로 주변 근대건축물에 대한 정보를 알아가며 도보여행을 할 수 있다.

문화지구로 지정된 개항장 일대는 다른 지역에 비해 비교적 문화재에 대한 안내판이나 이정표가 잘 정비된 데다 문화해설사까지 있어 부족함이 없어 보인다. 하지만 스마트 폰의 장점을 최대한 살린 이 어플리케이션으로 도보여행자는 정보를 애써 찾는 수고를 덜 수 있게 됐다.

다양한 주제로 도보여행코스를 안내하고 있기까지 해 도보여행자가 원하는 대로 여행코스를 선택할 수도 있다. 개항장을 벗어나 배다리 일대 일부 근대 문화재의 정보도 담았다.

인천문화재단은 인천문화지도를 통해 인천의 문화 콘텐츠를 더 많은 사람들이 방문하고 이용할 수 있도록 이 어플리케이션의 콘텐츠를 계속 보완해 간다고 구상한다.

인천시립박물관도 지난해부터 소장 유물의 정보를 문서와 음성으로 소개하는 어플리케이션을 보급하고 있다. 해설사가 없어도 유물의 정보를 쉽게 파악할 수 있어 박물관을 찾는 사람에게는 꽤 유용하다고 할 수 있다.

스마트 폰의 장점을 살린 이들 어플리케이션은 그 안에 담을 풍부한 콘텐츠와 이를 객관화할 수 있는 자료가 충분해 개발이 가능했다고 할 수 있다.

특히 인천문화재단의 인천문화지도는 그동안 벌여왔던 시민(단체)의 개별적 노력에 공공영역이 힘을 보탠 결과로 평가할 수 있다.

인천문화지도 어플리케이션 초기화면

이런 과정은 남구 학산문화원이 2007년부터 웹진 형태로 발간하고 있는 '학산소담'을 통해서도 잘 드러난다.

'학산소담'은 지금은 폐간된 격월간지 '소금밭'(2004년 계간지로 창간)을 이은 것으로, 남구 일대 옛 이야기를 모으고 소개한다.

문인이자 향토사가로 활동하는 김윤식씨 등이 '우리 동네 한바퀴' 코너를 통해서 여우실과 석바위, 와룡소주공장 등 남구의 옛 기억을 톺아본다.

이런 일련의 작업과는 반대로 그나마 남아 있던 근대유산이 해당 지역의 개발계획에 따라 보존 논의 없이 사라질 위기에 놓여 있기도 하다.

수인선 복선 전철 공사로 없어질 산업유산을 보존해야 한다는 민간의 목소리가 높지만, 문화재로 지정되지 못한 것은 가차 없이 철거될 처지다.

수인선 국제여객터미널역이 들어설 예정지에 있는, 90년 역사의 세관창고는 앞서 소리 없이 철거된 인천세관 관련 옛 건축물과 사정이 다르지 않다.

이 건축물은 '인천항'의 고유한 역사성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앞으로 얼마든지 관광 콘텐츠로도 활용할 수 있어 국제여객터미널 역사와 연계해 쓸 수 있도록 하자는 목소리가 높았다.

하지만 조선을 차지하기 위해 일본과 '제물포 해전'을 벌여 패한 러시아가 인천 지역의 반대여론에도 불구하고 중앙정부의 협조로 연안부두에 제물포 해전 100년을 기념한 추모비까지 세운 마당에, 세관창고는 공식적인 보존 논의도 안 되고 활용방안을 찾는 노력은 없었다.

남구 숭의동 107번지 일대 미국 공사 알렌별장터에 선 전도관 또한 무수한 이야기를 책 속에만 남긴 채 재개발로 사라질 위기이기는 마찬가지다.


최근 한 시민이 수인선 공사로 철거 작업에 들어간 세관 창고를 찍은 사진.
역사적 의미가 있는 이 건물을 보존하자는 목소리가 높았지만 얼마 후면 없어진다.
(사진=http://cafe.daum.net/inchonjunggu, 중구를 사랑하는 사람들)

인천발전연구원은 9일 발표한 '인천 생태탐방로 노선 설정 및 조성방안'이란 연구보고서에서 인천시가 2014년까지 조성하려는 녹지축 둘레길에 지역의 역사와 문화, 향토성 등 인문자료를 발굴해 보태야 한다고 제안했다.

그저 도심 숲을 걷는데 그치지 않고, 지역의 문화를 느끼고 체험할 수 있는 일석이조의 효과를 거두자는 취지다.

이 보고서는 생태전문가뿐 아니라 지역의 향토사가, 시민 등이 노선 선정 작업에 참여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걷기 열풍을 일으킨 제주 올레길이나 지리산 둘레길이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민관이 함께 사업을 펼치지만 사단법인 형태의 민간영역이 주도하고 지자체는 예산이 수반되는 일을 지원하는 데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지역 내 역사·문화 분야 전문가들도 지역의 정체성을 담고 있는 유산을 가꾸고 지키는 것 또한 이와 다르지 않다는 지적이다.

배다리 역사문화 마을 만들기 활동을 벌이고 있는 민운기 스페이스빔 대표는 "개발 문제로 지역 주민 간 이견이 있지만, 이와는 별개로 민간에서 도로에 안내판 하나를 설치하려 해도 예산은 물론이거니와 지자체의 허가를 받아야 하는 등 제한사항이 많다"고 고충을 털어놨다.

민 대표는 "배다리를 가꾸려는 민간의 노력이 헛되지 않도록 배다리 역사문화 마을 만들기 사업을 공약으로 내걸었던 송영길 인천시장이나 조택상 동구청장이 의지를 보여야 한다"라고 말했다.

해반문화사랑회의 근대문화유산답사 활동을 모델로 해 대구지역 시민단체가 걷기 코스로 개발해 유명해진 대구의 약전거리에는 지역의 정체성을 담은 조형물과 표지석 등이 설치돼 있다.


지역 주민들이 모여 역사문화만들기 사업을 벌이고 있는 배다리 헌책방 골목.

서울의 명동이나 종로 거리 곳곳에 서 있거나 길바닥에 깔린 표지석이 그 동네의 옛 이야기를 전하고 있다. 이 시설물들이 불법도로점유물로 철거되지 않고 있으니, 지자체가 이를 허가했거나 직접 설치했을 터이다.

근대 문화재를 복원하자는 논의보다, 그 위치가 정확히 어디였고 어떤 사연을 있었는지 검증하는 작업이 우선이란 지적이다.

지금껏 지역에서 발굴된 자료를 한 데 모아 정리하고 이를 검증해 객관적인 사료로 만드는 작업은 물론, 지역 내 문화재와 유산을 찾고 현황을 파악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인천시립박물관 관계자는 "개항장은 물론 지역 내 문화재를 파악할 전수조사가 필요하지만 현 박물관 인원과 예산으로는 이를 할 여력이 없다"면서 "민간이 주도적으로 펼치고 지자체와 박물관 등 공공영역이 지원하는 방식으로 진행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본다"라고 말했다.

개항장이나 근대기에 집중된 관심 영역을 넓혀야 한다는 지적이다. 개항장 테두리에서 역사를 찾고 이으려는 시민(단체)의 노력이 파도를 타듯 인천 전역으로 퍼져야 한다는 뜻이다.

인천문화재단 김락기 팀장은 "염전이었던 남구 주안은 공단으로 바뀌면서 산업화 시기 중요한 노릇을 했다. 부평에는 대우자동차만 있는 게 아니다. 각 지역은 저마다 특색이 있고 사연이 다르다. 이를 찾고 가꾸어 이어가는 노력이 필요하다. 지자체와 민간이 협력해 추진할 필요가 있다."라고 말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시민과 함께하는 인터넷 뉴스 월 5,000원으로 소통하는 자발적 후원독자 모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