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곳이 명소 - '이윤생·강씨 정려'와 '물텀벙이' 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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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이 명소 - '이윤생·강씨 정려'와 '물텀벙이' 거리
  • 김주희
  • 승인 2011.03.24 16: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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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 김주희 기자


 남구 용현동 442번지에 있는 시기념물4호 '이윤생·강씨 정려'.

남구에는 전쟁과 관련한 이야기가 여러 개 있다.

그 중 하나가 고려시대 문학산 자락에서 황건적을 물리친 이성계에 관한 것이고, 다른 하나가 이윤생(李允生, 1604~1637)에 관한 것이다.

특히 이윤생의 이야기는 가슴 아픈 사랑이야기를 더한다.

이윤생은 부평 이씨 후손이다.

부평 이씨는 왕건을 도와 고려를 건국한, 개국 공신인 이희목을 시조로 한다. 고려시대 문벌귀족으로 가문의 명성을 날렸지만, 조선 개국에 참여하지 않아 몰락의 길을 걷기도 했다.

부평 이씨는 세종대에 신원이 회복되며 명문가로서 면모를 되살리게 된다, 광해군 때는 왕실과 인척관계를 맺기도 했다.

인천에서는 부평구 작전동과 문학산 주변, 학익동 그리고 비룡리라 했던 지금의 용현동에 주로 살았다.

부평 이씨 중 이름을 역사에 남긴 이로는 숙종기 문신으로, 이조판서를 지낸 이세화와 같은 시기 제운 선생으로 불리던 이세주 등이 있다.

그리고 또 한 사람이 바로 호국 충신으로 이름을 높인 이윤생이다.

이윤생은 부평 이씨 시조 이희목의 19세손이다. 그는 비룡리에서 용의 기운을 받고 태어난 듯 타고난 기재였다고 한다.

그의 손 이주연이 편찬한 '부사과공묘비명'(副司果公墓碑銘)에 따르면 이윤생은 어려서부터 의를 숭상하고 지략이 있었으며 궁술과 마술에 뛰어나 충무위부사과를 제수됐다. 과거를 거치지 않았고 조정에 들어간 것으로 전해온다.

인조 14년(1636) 그의 나이 32세에 병자호란이 일어나자 이윤생은 의병을 모집해 원도('낙도'로 현재는 매립돼 흔적이 없다)에 들어간다.

원도는 당시 강화도와 남한산성으로 가는 길목으로, 이를 지키겠다는 게 그의 뜻이었다.

이윤생은 인조 15년 1월24일 이 일대에서 약탈을 일삼는 청군을 물리친다. 청군은 다가오는 적마다 사살하는 이윤생의 지략과 무예를 감당하지 못한 채 물러났다.

다음날 전열은 정비한 청군이 재차 침입해 이윤생이 사력을 다해 막는다. 하나 반나절 만에 이윤생이 이끄는 의병대는 화살을 다 써버리고 만다.

청군이 대군으로 다시 밀려왔고, 이윤생은 끝까지 저항하다 결국 함께한 의병들과 함께 장렬한 최후를 맞는다.

때는 인조 15년(1637) 1월25일, 강화도가 함락된 지 3일 후다. 그때 이윤생의 나이 33세였다.

남편의 전사 소식을 들은 부인 강씨는 곧바로 바다에 몸을 던져 의절한다.

이윤생이 죽은 지 200여년이 지난 철종 12년(1861) 4월13일 그의 충절과 부인의 의절을 기려 나라에서 정려(旌閭)가 내려졌다. 이윤생은 '최승지'에, 부인 강씨는 '숙부인'에 각각 추증됐다.

용현3동 독배로 404번길 중간, 한적한 주택가에 '이윤생·강씨 정려'가 있다. 인천시기념물 4호인 이 정려에는 이윤생과 그의 부인 강씨를 기리는 정려문 편액이 나란히 걸려 있다.


물텀벙이 거리가 있는 용현사거리.

 ▲용현동 물텀벙이 거리

용현사거리에서 인하대방면으로 가는 초입에는 남구가 지정한 특색음식거리 '용현동 물텀벙이거리'가 있다.

'물텀벙이'란 하도 못 나서 어부들이 그물에 걸려들며 물에 '텀벙' 버렸다고 해 이름 붙인 어류다. 주로 '아귀'를 지칭하지만, 꼼치나 삼세기, 도치 등도 물텀벙이라고 부른다.

이들 생선을 어부들이 버렸다고 하나, 그렇지 않고 말하기 좋아하는 호사가들의 장난으로 붙인 별칭으로 '물텀벙이'를 해석하는 이들도 있다.

조선시대 101종의 어류를 소개한 정약전의 어류사전에도 아귀를 다루고 있으니, 어부들이 이를 오래 전부터 즐겨 먹었다는 주장이다. 오히려 음식으로 해 먹는 아귀를 처음 접한 사람들이 별칭을 붙여 오늘에 이른다는 것이다.

몸집에 비해 머리가 큰 아귀는 찜이나 탕으로 해 먹는다.

마산은 찜으로 인천은 탕으로 유명하다. 마산은 말린 것을 쓰지만 인천은 생물을 쓰는 게 또 다르다.

대략 6·25 한국전쟁 후 인천항 부근에서 시작한 아귀 요리는 싼 가격에 얼큰한 맛이 부두 노동자들한테 인기를 받았다.

그러던 것이 1980년대 들어 전국으로 입소문이 퍼졌다.

지금의 용현동 '물텀벙이 거리'도 그때부터 조성된 것으로 알려졌다. 성진, 동원, 복천, 청강, 유명, 본가, 명문 등 현재 10여 곳의 음식점이 자리하고 있다.

인천항 인근에서는 탕으로 즐겨 먹었지만, 지금은 찜으로도 아귀를 즐긴다. 용현동 물텀벙이 거리에서도 탕과 찜 둘 다 맛볼 수 있다.

아귀는 살이면 살대로, 껍질이면 껍질대로, 내장이면 내장대로 그 맛이 제각각이다. 골라서 먹는 재미도 있다.

콩나물과 미더덕 등 각종 해산물로 푸짐해 보는 즐거움이 더해진다.

무엇보다 콧등에 땀이 송골송골 맺힐 정도로 매콤하고 얼큰한 맛을 즐기는 게 물텀벙이 맛의 진수다.


(사진=인천시 남구청 인터넷 홈페이지, namgu.incheon.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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