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칼럼] 살아있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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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칼럼] 살아있는 사람
  • 안태엽
  • 승인 2019.11.27 1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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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태엽 / 인천노인종합문화회관 소통의글쓰기 반

 

 

여러 차례 등기로 우편이 왔다. LH 토지공사가 수용하여 국가 신도시 계획으로 아버지가 묻혀있는 일산 공원묘지에서 옮겨달라는 내용이었다. 장남인 나는 가족들과 상의하여 화장으로 납골당에 안치하기로 했다. 바쁘다는 이유로 아버지를 잊고 살았던 나는, 묘한 감정이 밀려왔다.

담당 직원을 만나 개장을 하기 위해 매장된 유골을 꺼내어 개봉하는데 눈물이 쏟아지며 만감이 교차했다. ‘왜 그때 부모님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했을까라는 생각이 들며 아버지께 실망시켜드린 것에 마음이 아팠다.

 

한 세대를 풍미하고 위풍당당한 모습도 재적등본 한 장으로 남았을 뿐, 이 세상에서 흔적도 없는 사람으로 되셨다. 세상에 와서 아무것도 남기지 않고 가는 것이 인생이라는 생각에 무상이라는 말이 떠올랐다. 사람이 죽을 때 입고 가는 수의에 주머니가 왜 없는지를 알 것만 같았다.

 

극작가 버나드 쇼의 묘비에는 어물어물하다가 내가 이렇게 될 줄 알았다.’라고 쓰여 있다. 이 글귀는 마치 나의 모습을 보는 것 같다. 살아온 날들에 대한 아쉬움이 드려져 있는 이 문구는 그 어떤 철학자나 종교의 가르침 보다 가치 있는 교훈으로 마음에 울림을 준다.

 

나는 어느 단체의 모임에서 죽음 앞에서 유서를 남기는 체험을 하자고 제안했다. 만일 신이 나에게 삶을 한 달만 준다면 죽음 앞에 봄으로써 자신을 돌아보고 삶에 충실해보자는 차원에서였다. 그것은 살아오면서 꼭 해보고 싶었던 일, 이루지 못했던 것들, 잊고 살았던 고마운 주변사람들, 아내와 자식들에게 하고 싶었던 말과 의미 있고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 남기는 일이다.

 

이백여 명이 강화도 수련원을 빌려 참여했다. 두 개의 관, 상복, 영정사진이 필요했다. 사진이 필요했지만 참여하는 분들이 사진을 찍으려 하지 않아 결국 나의 사진으로 영정 사진을 대신 하기로 했다. 수련회장으로 가는 도중 자동차 뒷좌석에 있는 나의 영정사진을 본 아내는 ~ 이거 당신 아냐하며 놀랐다. 그런데 수심이 가득한 얼굴로 한없이 울기 시작했다. 나는 아내를 달래며 행사 진행을 위해 서둘렀다.

 

먼저 관 뚜껑을 열고 사람이 들어간 다음 뚜껑을 닫고 못이 박히는 체험을 했다. 못이 박히는 소리가 마이크를 타고나와 수련회장 안에 크게 울렸다.

그리고 차분한 마음으로 자신의 생각들을 유언장에 써 내려가기 시작했다. 한 시간 정도 침묵이 흐르는 뒤 잔잔한 음악이 깔리면서 본인이 쓴 유언장을 공개 했다. 유언장을 읽는 부인들과 남편들은 흐느꼈다.

 

여보! 살면서 내가 당신에게 얼마나 많은 상처를 주었는지 몰라요.”

여보! 정말 미안해요. 만약 당신이 이 시간 이후 없다면 나는 어떻게 살아요.”

당신이 있기에 우리가 살아왔다는 것을 이제야 깨닫게 되었어요.”

여보! 지금까지 나의 부족함을 용서하세요. 당신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면서 잘못한 것에 미안해요.

여보 사랑해요. 사랑해요.”

 

행사를 맡은 나는 울보가 되었다. 하염없이 눈물이 쏟아져 진행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 유언장을 쓴 사람들은 배우자에게 좀 더 잘 해주지 못하고 이해해 주지 못한 것에 대해 감정이 복받치듯 울면서 읽어 나갔다. 황혼이혼을 하려고 한 부부도 이혼을 안 하겠다며 꼭 껴안고 서로 울면서 안아주었다.

관속에 20분 정도 들어간 나도 관속에서 부모님에 대한 감사, 직장 동료들에 대한 감사, 가족과 주변 사람들의 고마움을 생각하게 되었다.

 

이러한 경험을 해보기 전에 나는 죽음에 대해 아직도 두려운 생각을 가져왔다. 하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다. 나의 죽음과 타인의 죽음을 객관적으로 생각해 보았기 때문이다. 죽음에 대한 성찰은 나의 삶에 변화를 가져오는 소중한 계기가 된다.

 

어느 날 KBS 다큐 프로에 해부생리학 의예과 학생들과 시신 두 구가 얼굴을 가린 채 놓여 있었다. 카메라는 심각한 표정으로 진땀을 흘리는 학생의 얼굴만 크로즈업 해서 보여 주었다. 시신의 해부가 끝나고 PD는 물었다. “살아있는 사람과 다른 것이 있다면 무엇이 다르냐라는 질문에 학생은 진땀을 닦으며 다른 것이라면 몸이 딱딱하게 굳은 것과 온기가 없고 차가운 것 외에는 살아있는 사람과 똑같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나는 그 반대를 생각해 보았다. 살아있는 사람도 마음이 차갑고 삶에 따뜻함이 없이 굳은 생각, 굳은 표정을 짓는 사람은 죽은 자와 똑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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