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 인천시청역 일대 / 유광식
지난 18일 저녁에 눈이 내렸다. 도시라서 반가우면서도 잠깐이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요새 수은주가 내려가니 두 뺨에 닿는 바람의 온도가 차다. 기분 자체가 달라질 정도로 환절기 감기도 조심해야겠고 말이다. ‘1×2’가 산술적으로 ‘2’가 되지만 인천지하철 1호선과 2호선이 만나는 인천시청역에서는 ‘2’ 이상의 계산이 나온다. 시청사는 1985년 중구 관동에서 남동구 구월동으로 이사를 왔다. 도시는 시청을 중심에 두고 호흡하는 하나의 몸과 같으므로 인천의 ‘중앙’이 바닷가에서 산꼭대기로 굴러왔다고 보아도 무방할 것이다.
인천시청역은 다른 역과는 다르게 비탈진 면에 있다. 역사 규모가 매우 클 뿐 아니라 북쪽 기슭에 세워진 매머드급 계단형식이다. 가장 낮은 플랫폼 계단을 오르면 개찰구 구역이 나오고 다시 한 계단 오르면 지하광장이 나온다. 여기서 한 계단 더 올라가야 비로소 시청으로 가는 궁둥이(후문 방향)에 닿는다. 옛 질서이기도 하겠지만 시청은 왜 그렇게 높은 곳에 있어야 했는가도 싶다. 접근을 어렵게 만드는 구실이 되고 은근 주눅이 들게도 되니 석연치 않은 마음만 가중된다. 역을 나서면 시청과 중앙도서관, 시교육청 건물이 나란히 자리한 가운데 건너편에 길다랗게 중앙공원이 조성되어 있다. 이 일대는 어느 장소보다도 ‘중심’, ‘중앙’, ‘기준’ 의 요소를 말해주는 것들이 많다.
최근 시청사는 앞뜰을 턴 뒤, 시민에게 개방하였다. 차단과 단절의 지난 풍경 시대를 되뇌다 이제야 중앙의 품을 다소 느낄 수 있게 되었다고 생각하니 좋다. 날이 추워서 많은 시민을 찾아볼 순 없었으나 탁 트인 공간을 오래된 은행나무 옆에서 지켜보면서 ‘놀라운 시대가 되었네!’라고 생각했다. 우리나라 최초의 등대, 팔미도 등대모형을 이용한 프로젝터 장치는 은밀했지만, 육지로 소풍 나온 것처럼 재미나다. 유럽 소도시에서는 시청 결혼식이 종종 있는데 이곳에서도 이와 같은 경사가 많아졌으면 좋겠다. 아울러 집회도 많아질 것으로 보이니 관련 보안요원들의 움직임도 바빠질 것으로 보인다.
시청역을 중심으로 볕 좋은 구월동과 배후 간석동이 나뉜다. 시청 뒤편의 간석동은 경사지 아래로 ‘뒤’라는 위치 때문인지 그늘진 느낌이다. 시청역 1번 출구로 나가면 곧장 인천예술고가 자리하고 있다. 최근 오래된 건물의 증축을 추진하면서 주민 반발, 석면 논란, 이전 요구 등 마찰이 일면서 재학생들이 제대로 된 학습지도를 받지 못하고 있다. 안타깝게도 예술 분야에 매 어려움이 배달된다. 시청역은 3년 차인 2호선과 만나는 단독 환승역이다. 1호선 역사는 검정 타일 마감과 대리석 기둥의 어둡고 묵직한 분위기지만 2호선 라인은 연하늘색 계통의 현대식 마감으로 밝고 가벼운 분위기다. 둘 사이의 공간을 두고 청소년들의 춤 연습을 위한 공간이 자리한다. 음악을 틀고 춤 연습을 하며 땀 흘리는 그들의 모습은 이제 흔한 풍경이자 이곳의 문화가 되었다. 그 옆에서는 격렬하게는 아니지만 민첩한 움직임이 필수인 탁구 게임을 어르신들이 하고 있어 묘한 차이와 어울림을 구성한다.
시청역 내부를 하나의 예술 공간으로 탈바꿈하려는 시도가 몇 년 전부터 이어져 오고 있다. 유수의 저명한 작가들의 작품들을 설치하여 이해와 친숙함이 꾸며 놓은 비용과 노력에 비해 효과는 많이 아쉬웠다. 검정 타일과 기둥이 주는 먹먹한 분위기를 떨쳐내기 어려웠다. 다만 공간 온도를 바꾸어 보려는 방도가 예술이라는 점에서만큼은 특기할만하다. 인천愛뜰 광장도 좋지만, 역사가 넓고 쾌적한 만큼 소규모 결혼식 정도가 허용되면 좋겠다. 에스컬레이터 타고 내려오는 신랑, 신부의 모습을 맞닥뜨려도 전혀 어색하지 않은 역이 인천에 하나쯤 있다면 좋겠다.
1호선 라인은 중앙공원 지하를 지난다. 과거 무허가촌을 철거하며 이루어졌던 마찰과 갈등 또한 뜨거웠던 ‘중심’이었을 것이다. 붉은 고개에 자리한 시청역은 안으로 밖으로 남녀노소가 뒤섞여 움직이는 인천의 작은 왕국 같다. 지하철을 이용하는 시민들, 도서관을 이용하는 학생들, 수원 방향 태화고속을 타려는 사람들, 중앙공원을 산책하는 어르신, 아이와 함께 애뜰 광장에서 휴식을 취하는 가족, 데이트 하는 청춘남녀, 관련 공무원들로 붉은 고개답게 가을을 흡수한 단풍잎이 처연하면서도 유난히 붉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