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칼럼] 49년만의 설 차례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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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칼럼] 49년만의 설 차례상
  • 허회숙
  • 승인 2020.01.21 0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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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회숙 / 전 민주평통 인천부의장, 인천시의원

 

 

 

결혼 49년 만에 처음으로 제기(祭器)를 마련했다. 인터넷으로 구입한 제기가 도착한 날 남편은 제기 하나하나를 정성들여 깨끗이 닦고, 시부모님 결혼 1주기에 찍으셨다는 사진을 확대하여 사진틀에 끼우고, 두 분의 메와 탕을 담을 그릇과 수저 두벌을 고이 싸서 모셔 둔다.

 

우리 시아버님은 아홉 형제 중 다섯째이셨고, 남편은 팔남매 중 아들로 셋째였던 관계로 결혼 후 우리 집에서 제사를 모실 일이 없었다. 결혼 후 몇 년간, 설날 아침이면 일찌거니 남편의 삼형제만이 종손 댁으로 가서 차례를 모시고 남은 식구들은 큰집에서 떡국을 끓여 먹곤 했다. 십여 년 후 아버님이 돌아가시자 설날 아침 큰 집에서 설 차례를 따로 지내게 되었다. 20년 후에는 어머님도 돌아가셨다. 그동안 큰집 조카들과 우리 집 애들도 모두 장성하여 결혼하고 손주들이 줄줄이 태어났다. 13년 전에는 시아주버님도 세상을 뜨셨다.

 

아버님 돌아가신 후부터 제사를 모셔 온 큰 동서도 나이가 들면서 허리 통증과 무릎관절염으로 거동이 불편해졌다. 거기에다 조카며느리 두 명 모두 직장생활을 하는 관계로 제사음식 장만을 돕지 못하는 형편이다. 그런대로 제사는 지내왔으나 몇 년 전부터 큰동서가 딸과 함께 살게 되어 좁은 집으로 옮기면서 제사문제가 거론되기 시작하였다. 그러던 것이 작년 설부터는 모여서 차례를 지내지 말고 각자 자기네 직계들끼리 설을 보내자고 큰동서가 통지를 해 왔다. 아울러 부모님 제사도 손주인 큰 조카에게 넘기기는 어렵다는 뜻을 전해왔다.

 

둘째 며느리인 내가 모시겠다고 하면 문제는 간단하지만, 평생을 직장생활을 해 온데다가 집안일은 줄곳 남의 도움만 받으며 살아온 처지여서 나는 꿀 먹은 벙어리가 되고 말았다. 남편은 우리 집에서 제사를 모시기를 원했으나 나는 계속 묵비권으로 남편의 의사에 따르기를 반대했다.

작년 설 차례에 참여하지 못한 채 부모님 기일에 제사도 못 모시게 된 남편은 부모님 기일에 동생 둘을 데리고 부모님 묘소를 찾았다. 막내 여동생이 정성들여 각종 제수를 마련하여 삼남매가 경북 예천에 있는 선산으로 갔으나 돌아오는 길이 몹시 막혀 늦은 밤 지친 몸으로 귀가하였다.

남편은 작년에 팔십이 되면서 원인도 분명치 않게 두 번이나 졸도를 하고, 워낙에 마른 체형인데 부쩍 살이 빠지며 노쇠가 눈에 띄게 빨라져 은근히 걱정이 되고 있는 요즈음이다.

지난 연말 어느 날 밤 잠자리에서 남편이 자기가 요즈음 잠을 잘 이루지 못하겠노라고 하며 우리 집에서 차례와 부모님 제사를 모시고 싶다는 말을 또 다시 꺼냈다. 남편에게 일언반구 대꾸 없이 휙 돌아눕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으나 오만가지 생각 속에 잠 못 이루는 밤을 보냈다.

이제까지는 나도 우리 며느리에게 제사 부담을 줄 수 없노라고 버티어 왔으나, 그러다가 남편이 쓰러지기라도 하면 평생의 한이 될 것 같았다. 그렇다고 어떻게 한단 말인가?

 

다음 날 아침, 나는 남편에게 설 차례와 부모님 제사를 모시되 내 식으로 지내겠노라고 말을 꺼냈다. 며느리에게도 부담을 주지 않고, 일 못하는 나도 할 수 있는 방법으로 인터넷으로 제수를 장만하여 내 생전에는 해 보겠노라고. 남편은 쓴 입맛을 다시며 제사 음식은 자손의 정성으로 제수를 마련하는 것인데 ~’ 하며 끝내 난색을 표한다.

 

몇 달 전 '소통의 글쓰기 반'에서 제사 문제로 몇 분과 대화를 나눈 적이 있었다. 평소 인품을 존경해오던 신 선생님이 자신의 아파트에서 제수거리가 택배로 배달되는 것을 보고 오셔서는 어떻게 제수를 택배로 시켜오느냐며 개탄을 하셨다. 전통적인 의례를 중시하는 신 선생님과 몇몇 남자 분들은 그런 제사는 제사라고 할 수 없다고 열을 올리셨다. 그 때 나는 그렇게라도 제사를 모시는 며느리를 기특하게 여겨야 되는 것 아니냐고 두둔했었는데, 내가 바로 그 당사자가 된 것이다. 부끄럽고 떳떳하지 못한 것은 알지만 내 능력이 거기까지인 것을 어찌하랴?

 

이번 설에 시부모님은 큰 집 조카가 지내는 차례 상과 우리 집에서 올리는 차례 상을 두 번 받으시게 될 것이다. 남편은 큰 조카에게 통지를 해서 우리 집에서만 설 차례 지내겠다고 해야 할까 또 고민이다. 남편이 설 차례에 큰 집에 갈 수가 없어 우리 집에서도 지내기로 한 것이므로 각자 자기들 집에서 세배를 올리는 것으로 부모님도 이해하실 것이라고 남편을 설득 하였다.

 

이렇게 차례를 지내는 것이 가정의례 준칙이나 전통적인 제사 예법에 맞는 것인지 나는 모른다. 단지 분명한 것은 그나마 남편의 안색이 한결 밝아졌다는 것이다. 그 것으로 족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우리는 이번 설부터 차례를 지내고, 봄이 되면 시부모님 제사도 우리 식으로 제수를 마련해 우리끼리 지낼 것이다. 그래도 무언가 석연치 않고 아픈 마음은 왜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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