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리로 상상하는 백령도 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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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리로 상상하는 백령도 바다
  • 채은영
  • 승인 2020.01.31 08: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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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배인숙 작가의 '백령도 열 두 바다'

 

<동시대 미술 속 인천>은 지금 그리고 여기, 현대미술 속 인천의 장소, 사람, 이야기를 소개합니다. 다양한 미술의 언어로 인천을 새롭게 바라보고, 우리 동네 이야기로 낯선 현대미술을 가깝게 느낄 수 있기를 바랍니다. 

 

백령도 두무진 일몰 (출처 인천관광공사)
백령도 두무진 일몰 (출처 인천관광공사)

 

····오 소리치며 달려가니,

····오 연달아서 몰아온다.

 

간밤에 잠 살포시

머언 뇌성이 울더니

 

오늘 아침 바다는

포돗빛으로 부풀어졌다.

 

정지용, 바다

 

배인숙 작가는 스스로를 사운드 음악회 운영자, 예술가 그리고 예술교육자로 부른다. 프로그래밍에 의한 전자 음악이나 소음, 일상과 사물의 소리까지 다양한 악기-장치들로 다시 환기되는 소리 너머 의미를 관객과 대면하고 소통하는 전시, 설치 및 프로젝트로 적극적으로 풀어 간다. 빛의 양을 측정해 소리로 바꾸는 막대기 형태의 악기를 만들거나 일상의 소리를 기록하는 사운드 맵이나 사운드 픽토그램처럼 작가 주도가 아닌 참여자가 다양한 악기-장치나 방법론으로 보이지 않는 소리로 세계와 나를 재구성하는 워크숍도 꾸준히 시도한다.

 

소성주 막걸리 발효 소리 설치 장면, 인천아트플랫폼, 2015 (출처 인천아트플랫폼)
소성주 막걸리 발효 소리 설치 장면, 인천아트플랫폼, 2015 (출처 인천아트플랫폼)

 

작가는 2014년 백령도 평화예술 레지던시, 2015년과 2016년 인천아트플랫폼 입주 작가로 지역에서 할 수 있는 다양한 실험을 하던 중 2018년 서해평화예술프로젝트의 하나로 백령도 열두 바다 관련 작업을 했다. 섬의 환경과 조건상 전시나 공연이 무의미하다고 판단하고 동네의 느낌이 바다에 있다는 점에 착안해 바다 소리를 녹음한 것이다. 이 작업과 연계해 작년엔 라디오와 워크숍으로 풀어 보려했지만 기회가 생기지 않아 여전히 백령도 열두 바다 소리는 작가의 외장하드 속에 있다. 우연히 작은 세미나 자리에서 들을 수 있었던 백령도 바다 소리는 마치 ASMR과 같이 하나하나 섬세했고 들을수록 풍성해지는 다양함에 놀라웠다. 시각에 사로잡힌 일상에서 막귀로 살고 있던 터라 아무리 고민해 보아도 의성어로는 겨우 ‘차르르, 철썩, 쏴아아, 처얼썩’ 정도로 밖에 표현 할 길이 없어 정지용의 시로 작가가 들려준 바다의 한 편을 대신했다.

 

백령도 사곶해변 ( 출처. 인천관광공사)
백령도 사곶해변 ( 출처. 인천관광공사)

 

백령도는 접경지역으로서 정치적이고 역사적 정보와 함께 두무진, 사곶해변, 콩돌해안, 용트림바위, 심청각, 냉면, 물범 등 연관어로 익숙한 편이다. 반면 2006년 완공한 간척사업으로 갯벌이 없어지며 생긴 간척지와 백령호가 그 효용성을 상실하고 도로 개설과 콘크리트 제방, 아파트 단지 개발로 습지가 사라지고 어장도 잃어가고 단단했던 모래밭은 푸석해지고 있다. 솔개 간척지에 생기는 소형 공항으로 멸종 위기종을 포함한 동아시아 철새들의 서식지뿐만 아니라, 수많은 작은 생물, 무생물들이 위협 속에 놓여 있다. 강화도, 교동도, 대소청도, 연평도와 함께 생태 평화 관광지로서 홍보되고, 이런저런 여행 후기 속에선 찾아보기 어려운 상황에서 지역 공동체의 삶과 경제적 활성화의 대상으로써 섬에 관한 고민과 방안들이 여전히 자본과 인간 중심이라는 것을 실감한다.

백령도 열두 바다 관련 작업을 이야기하면서 작가는 바람은 불지 않는데 파도가 쎈 날과 바람이 엄청 부는 날이 다르고, 맑은 동네의 바다와 슬픈 이야기가 있는 장소의 바다 소리가 다르다고 말했다. 사운드는 정적인 작업이기에 슬며시 나지막하게 다가갈 수 있다고 하면서 백령도에서 또 다른 시도를 상상하던 작가의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무언가 거대하고 비극적인 역사성을 재현하거나 매체와 형식적 실험을 쫓기보단, 저녁 무렵 백령 둘레길을 산책하며 숲길과 바닷가를 걸으며 주변 소리에 귀 기울일 수 있다면, 그것이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평화가 아닐까 싶다는 작가의 바람은 잔잔하지만 깊은 반향을 일으키기에 충분하다. 그런 의미에서 작가의 백령도 열두 바다 작업이 더 많은 사람들에게 소개되고 소통할 가까운 미래를 기대한다.

 채은영 / 큐레이터, 임시공간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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