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뿌리 민주주의', 아직 갈 길 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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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뿌리 민주주의', 아직 갈 길 멀다
  • 김주희
  • 승인 2011.04.18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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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1. 지방자치 20년 - '성년' 맞았으나 '미숙'

취재: 김주희 기자


15일로 지방자치가 성년을 맞는다. 지난 20년간 지방자치는 우여곡절을 겪으며 성장했지만
지방재정 독립성이나 주민 참여 등 여전히 풀어야 할 숙제가 많다. 
사진은 제192회 인천시의회 1차 본회의 모습.

1991년 4월15일 제1대 기초의회가 출범했다. 딱 20년 전 일이다.

한국의 지방자치는 1948년 정부 수립 이듬해인 1949년 7월4일 지방자치법이 제정되면서 출발했다.

지방자치제도는 일제강점기 효율적인 식민통치를 위해 도입했던 제도였다. 강력한 중앙집권적 행정체제를 그대로 유지한 채 지방의회와 단체장을 선거로 뽑아 임명하는 형식적인 것에 불과했다. 1947년 공포된 지방자치법 역시 이와 별반 다르지 않았다.

지방의원 임기를 4년으로 해서, 미루고 미뤄 1950년 실시하기로 했던 지방선거는 6·25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치를 수 없었다.

정치적 노림수로 전쟁이 한창이던 1952년 선거가 가능한 지역에 처음으로 투표가 진행돼 제1대 지방의회가 출범했다. 이어 1956년에 2대, 1960년에 3대 지방의회가 구성됐다.

하지만 1961년 5·16 군사쿠데타로 들어선 군사정부의 포고령에 지방의회는 10년 만에 해산됐고, 지방자치 역사는 거기서 끊어졌다. 유신체제가 구축된 1970년대에는 지방자치를 국정 운영에 장애물로까지 여겨 '지방자치'란 용어 자체를 쓸 수 없는 시기이기도 했다. 유신정권은 "통일이 될 때까지 지방자치를 실시하지 않겠다"고 법에 명시하기도 했다.

잠들었던 지방자치는 1987년 6월 민주화 운동으로 깨어날 조짐을 보였다. 이듬해 지방자치법의 전문 개정이 이루어졌고, 우여곡절 끝에 3년 뒤인 1991년 3월26일 전국에서 역사적인 첫 기초의원을 뽑는 투표가 진행됐다. 같은 해 6월20일에는 광역의원을 뽑는 선거가 이어졌다.

그로부터 4년 뒤인 1995년 6월27일에는 광역·기초 단체장과 의원을 함께 뽑는 첫 전국동시지방선거가 개최됐다. 명실상부한 '지방자치' 시대를 연 것이다. 이후 1998년, 2002년, 2006년에 이어 2010년까지 4년에 한 번씩 전국에서 지방선거를 치러왔다.

그렇게 흘러온 시간이 20년이다. 올해로 지방자치는 '성년'을 맞는다.

5·16 군사쿠데타로 중단됐다가 30년 만에 부활한 지방자치는 지방 분권과 참여 민주주의 시대를 열었다. 중앙정부에 예속되지 않고 지역 실정에 맞는 정책 개발이 가능해졌다. 행정의 '수혜자'에 그쳤던 '시민'은 능동적 참여자로서 노릇을 할 수 있게 됐다.

일단 행정서비스 질이 나아졌다. 민선 단체장은 다음 선거를 의식하지 않을 수 없던 터라 관청의 문턱은 낮아질 수밖에 없었다.

시민사회단체 활동도 활발해졌다. 시민 주권은 비단 투표로서만 이뤄지는 게 아니어서 감시와 견제, 시민 참여 공간으로서 시민사회단체가 그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민·관 협치의 시대를 맞고 있다. 행정조직과 기업, 시민이 머리를 맞대 지역의 현안을 함께 논의하는 장을 마련해 지방자치의 내실을 꾀하고 있다.

그렇다고 성년이 된 지방자치가 "제 나이값을 하고 있다"는 데는 여전히 확신하기 어렵다.

최근 취득세 감면 논란에서 보듯 아무리 지방분권 시대를 맞았다고 해도 재정 자주권이 취약한 지방정부는 교부금을 한 푼이라도 더 얻으려고 중앙정부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는 구조다. 그러다 보면 지역 주민의 목소리가 외면받기 쉽다.

아직도 국세와 지방세 비율이 78.6%대 21.4%인, 소위 '2할 자치' 시대이다. 더군다나 재정자립도가 50%에 미치지 못하는 지방정부가 허다하다. 2006년 지방재정 '100조원 시대'를 열었지만, 지방정부 곳간은 바닥이다.

중앙정부가 쥔 '돈 줄'을 풀지 않는 한 지방분권은 '말'에 그칠 뿐이다. 정부에 구걸하는 지자체를 만들지 않으려면 지방세 비율을 선진국 수준인 40%까지 올리지는 못해도 30% 수준은 유지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지방자치가 제대로 가려면 지방세 비율을 30% 이상 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사진은 지난 13일 논란을 빚었던 취득세 인하 문제를 논의하기 위해
민주당과 행안부, 송영길 시장 등이 국회에서 협의하는 모습.

이런 상황에서 민선 자치단체장의 전시성·대형 사업이 지방재정난을 가중시키고 있다. 안전성 문제로 운행도 해보지 못한 채 철거 위기까지 맞은 '월미은하레일' 논란이 대표적인 사례로 꼽힌다.

검증되지 않은 기술을 무리하게 적용한 것도 문제지만, 이 사업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소통'이 부재한 게 더 큰 문제로 지적된다.

'소통 부재'는 다른 사업에서도 여실히 나타난다. 최근 논란 끝에 통과한 '도서관 운영 조례'나 '10대 명문고'의 이름만 바꿔 추진하는 '학력향상 선도학교'가 그 중심에 있다. 자치단체장의 공약이라고 해서 충분한 토론 없이 무리하게 사업을 추진하는 시정부에 제동을 걸 장치가 부족하다.

지방의회의가 이를 맡아야 하지만 기초·광역 의원 역시 집행부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는 게 현실이다. 지방의원들 역시 다음 선거를 염두에 두어야 하기에 지역구에 불이익을 줄 행동은 가급적 자제한다.

더군다나 정당공천제 체제 하에서는 같은 당 소속 자치단체장의 사업을 가로막는 일이란 소속 정당에 반기를 드는 것과 마찬가지여서, 이 또한 지방의원의 한계로 작용하기도 한다. 이런 배경으로 지방의원은 그동안 '거수기'로 취급받기 일쑤였다. 각종 조례나 사업을 공론화하는 설명회나 공청회도 형식에 그치는 경우가 많다.

지방의원들의 전문성 또한 늘 제기되는 문제점이다. 시 집행부 사업을 따질 능력과 경험이 부족해 '삼천포'로 빠지는 일이 허다하다. 그러다 보니 불필요한 자료 요구가 많고, 언성만 높이는 상황이 지방의회에서 자주 볼 수 있는 풍경이다. 시나 구·군 전체를 놓고 봐야 할 지방의원들이 자기 지역구의 이익만 저울질하는 모습이 역력하다.

최근 인천시공무원노조가 시의원의 자질을 평가하겠다고 나서기에 이르렀다.

전국 최하위를 벗지 못하는 인천지역의 낮은 투표율도 지방자치가 제 길을 찾는데 큰 장애물로 작용한다 할 수 있다. 투표율이 낮으니 '정책'보다 중앙 정치에서 부는 '바람'이 당락을 좌우한다. 지역 주민보다는 후보자들이 정당과 중앙에 더 힘을 쏟는 결과를 낳게 되고, 다시 지방정부에 대한 지역 주민의 '외면'으로 이어지는 악순환을 부르고 만다.

각 자치단체 간 소통 부족도 지방자치 문제점으로 지적된다. 인천경제자유구역 관할권을 둘러싼 기초단체 간 갈등이 이런 이유로 발생한 것이다. 얼마 전 논란이 일었던 제2과학고 선정 과정이나, 제물포고 이전 문제, 그리고 우후죽순 난립한 지역 축제도 같은 맥락으로 볼 수 있다.

지방자치가 제대로 성장하려면 우선 지방 재정의 자주권을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국고 보조에 의존하는 현 지방정부의 재정 구조를 바꿔야 지방정부가 독립성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이다. 돈 줄은 쥐고 국가 업무만 지방 정부에 넘겨주는 현 상황은 중앙 정부의 권한만 강화할 뿐이다.

지방의회가 지방자치의 뿌리인 만큼, 지방의원 자질을 키워야 한다. 정당공천제를 점검할 필요가 있다. 유급 보좌관 제도 도입, 지방의회 인사권 독립 등 다양한 목소리를 신중히 검토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다.

여기에 주민참여예산제나 민·관 협치 등 지역 주민이 직접 지방행정에 참여하는 길을 터야 한다. 성년이 되도록 지방자치는 주민 참여의 길만 열었을 뿐이다. 집행부 중심으로 행정이 펼쳐지고, 중앙 정치 논리에 빠져 주민들의 목소리가 충분히 반영됐다고 볼 수 없다.

<인천in>은 성년이 된 지방자치 20년을 되돌아보고 앞으로 갈 방향을 모색하는 기획 시리즈를 마련한다. 최근 논란이 있었던 각종 사업이나 조례 등을 통해서 지방자치의 문제점을 짚어보고, 대안을 찾아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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