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도국산 달동네 유일한 초가지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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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국산 달동네 유일한 초가지붕
  • 권근영
  • 승인 2020.03.18 11: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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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림1동 181번지, 수도국산 달동네를 기억하며]
(6) 가장 높은 터, 가장 튼튼한 지붕

2020년 새 기획연재 <송림1동 181번지, 수도국산 달동네를 기억하며>는 1954년부터 1998년까지 수도국산 달동네 송림1동 181번지에 살던 정남숙님과 그의 가족들의 구술을 바탕으로 격주 연재합니다. 어린 시절을 송림동에서 보낸 남숙의 손녀 영이가 가족들을 만나 그 시절, 그 이야기를 듣고, 글로 옮깁니다. 어렵고 가난했던 시절, 서로를 의지해 살아가던 가족들의 이야기를 하나씩 풀어보려고 합니다.

 

1990년대 송림동 집 뒤 호박밭 공터. 봄이면 동네 여자들이 쑥을 뜯었다.

남숙과 형우가 혼인하고 수도국산에 처음 왔을 때, 집이 한 채도 없고 다듬어 놓은 터만 있었다. 현대시장을 등지고 달동네 언덕으로 올라갈수록 땅값이 쌌다. 저렴한 땅을 찾다 보니 꼭대기까지 올라가게 되었고, 송림동 수도국산 달동네 가장 높은 곳에 터를 잡았다. 이른 새벽, 형우가 물을 져다가 흙 두 뭉치를 버무려 놓고 일을 나가면, 남숙은 틀 두 개에 토담을 딛고(흙뭉치를 벽돌 찍는 틀에 넣고 꾹꾹 눌러 밟아서) 햇볕에 말렸다. 흙벽돌로 담을 쌓고, 목재소에 가서 사정하고 나무를 주워와 서까래를 했다. 비가 오면 토담이 물을 먹고 쓰러지니까 빨리 뚜껑을 덮어야 했다. 남숙은 양키부대(미군 부대) 쓰레기를 모으는 고물상에 찾아가 미군 박스(레이션 박스)를 구했다. 미군 박스는 물이 스며들지 않고, 굴러 내려와 지붕으로 덮기 좋았다. 판자 위에 미군 박스, 흙과 타마구 종이(아스팔트 찌꺼기를 코팅한 종이)를 올려 물이 새지 않도록 치밀하게 작업했다.

가을걷이가 끝날 즈음 형우는 탈곡하고 남은 볏짚을 구해 뒤뜰에 모아두었다. 겨울이 오기 전에 지붕에 짚을 올려 집을 따뜻하게 하기 위해서다. 강화 출신인 형우는 손재주가 좋았다. 형우는 지붕 위에 지푸라기를 열 겹 이상 두껍게 쌓아 올리고, 이엉을 길게 엮어 켜켜이 비늘처럼 둘렀다. 지붕 모양을 따라 가운데 용마루를 씌우고, 짚으로 꼰 새끼줄로 이엉과 용마루를 고정했다. 세로로, 가로로 여러 차례 그물처럼 짚을 연결한 새끼줄을 처마에 바짝 잡아당겨 묶었다. 형우가 손수 만든 초가지붕은 바람이 불고, 눈이 내려도 끄떡없었다.

비가 많이 내리는 여름이 지나면, 지푸라기가 까맣게 삭으면서 부스러졌다. 형우는 일 년에 한 번씩 헌 초가를 털어내고, 햇 볏짚으로 지붕을 새로 갈아 끼우는 일을 반복했다. 그때마다 엄지 손가락만큼 굵은 굼벵이가 우수수 떨어졌다. 마당에서 고무줄을 하던 둘째 딸 도영은 굼벵이를 보고는 놀라서 소리 지르며 도망갔다. 형우는 웃으면서 굼벵이를 바구니에 담았다. 굼벵이를 생으로 먹는 사람도 있었지만, 씻어서 찌고 말리고 갈아서 그 가루를 주로 먹었다. 초가집에서만 얻을 수 있는 귀한 약이었다.

초가집은 재료를 싸고 쉽게 구할 수 있고, 여름에 시원하고 겨울에 따뜻하다는 장점이 있지만, 가장 큰 걱정거리는 한 번 불이 붙으면 순식간에 호로록 다 타버린다는 것이다. 초가지붕 아래 사는 남숙과 형우의 아이들은 정월대보름이 돌아올 때마다 동네 아이들로부터 집을 지키기 위해 뛰어다녀야 했다.

정월대보름이 되면 수도국산 마을 아이들은 통조림 깡통을 구해서 쥐불놀이를 했다. 못으로 깡통의 옆구리와 바닥에 구멍을 수십 개 뚫어 바람이 통하게 만들고, 윗부분에는 구멍을 두 개 뚫어 끈으로 연결해 손잡이를 만들었다. 손잡이는 군대에서 쓰는 삐삐선(전화선)으로 만들었는데, 굵고 질겨서 인기가 좋았다. 깡통 안에 나뭇조각을 넣고 불을 붙여서 손잡이를 잡고 뱅글뱅글 돌리다가 하늘 높이 던지는데, 불씨가 쏟아지는 하늘이 참 예뻤다. 다만 문제는 동네 아이들이 쥐불놀이하는 곳이 남숙과 형우네 집 바로 뒤 호박밭 공터라는 거다.

첫째 아들 인구와 둘째 딸 도영은 집 뒤 호박밭 공터로 갔다. 동네 아이들에게 다른 데 가서 쥐불놀이하라고 했다. 혹시라도 깡통을 잘못 던져서 불씨가 초가지붕에 떨어지면, 집이 타버릴 것이기 때문이다. 아이들은 말을 잘 듣지 않았다. 까불까불 약 올리며 계속 깡통을 돌렸다. 인구는 열이 받았다. 그때 한 아이가 인구 코앞에 다가와서는 “여기서 해”라고 말했다. 맞짱을 뜨자는 거다. 인구는 그 말을 듣자마자 아이의 따귀를 때리고, 발로 걷어찼다. 아이가 호박밭 공터를 데굴데굴 굴렀다. 흙투성이가 된 아이는 엉엉 울면서 엄마를 찾았고, 다른 아이들은 겁을 먹고 도망갔다. 아이는 더는 덤비지 않고 집으로 갔고, 크게 다치지는 않은 것 같았다. 그걸 본 인구는 속으로 안심했다. 뼈라도 부러졌으면 남숙에게 혼쭐이 날 것이기 때문이다.

아이들을 멀리 쫓아버리고 집으로 돌아온 인구는 도영에게 잣 점을 봐준다고 했다. 속껍질을 벗겨낸 잣을 바늘에 끼운 다음, 잣에다가 불을 붙이는 거다. 인구는 도영에게, “이건 오빠 잣이야 잘 봐”라고 했다. 불이 곱게 잘 탔다. 도영은 신기했다. 인구는 도영에게 잣을 고르라고 했다. 도영이 고른 잣을 바늘에 끼우고 불을 붙였다. 불길이 세고 불꽃이 옆구리로 퍼졌다. 그걸 보고 인구는 “이것 봐 성질이 더러우니까 잣 불도 곱게 안타잖아”라며 도영을 놀렸다. 그리고는 오늘 자면 눈썹이 하얗게 세니까 절대 자면 안된다고 겁을 줬다. 도영은 버티다가 결국 잠이 들었고, 다음 날 아침 눈을 뜨자마자 거울 앞으로 달려갔다. 눈썹이 정말 하얗게 변해 있었다. 도영은 엄마를 부르며 울었다. 눈물을 막 닦아내는데 손에 하얀 게 묻었다. 밀가루였다. 검정 눈썹이 나오니까 도영은 안심이 돼서 눈물이 더 났다. 인구와 남숙은 그 모습을 보고 배꼽이 빠지도록 웃었다.

어느 날 남숙은 도영의 손을 잡고 동사무소에 갔다. 동네 사람들은 재산세를 내는데, 자신만 내지 않고 있다는 게 이상해서다. 직원은 남숙에게 초가집에 사냐고 물었다. 남숙은 그렇다고 대답했다. 수도국산 달동네에서 남숙네는 유일한 초가집이었다. 직원은 초가집에 살면 재산세가 3원 정도밖에 안 나오기 때문에 그냥 가도 된다고 말했다. 3원이면, 그 당시 도영이 학교 앞 문방구에서 사던 삼영노트사 공책 한 권 정도의 값이다. 남숙은 지붕을 바꾸기 전까지 재산세를 내지 않아도 되었다.

70년대에 들어 정부에서는 초가지붕을 슬레트(슬레이트)나 기와로 바꾸는 사업을 진행했다. 형우는 해가 갈수록 짚을 엮어 지붕을 올리는 게 힘이 들던 차에 나라의 지원도 있다고 하니, 지붕을 새로 하기로 마음 먹었다. 슬레트는 깔끔하고 편리하지만, 여름에 덥고 겨울에 추웠다. 형우는 고민하다가 시멘트로 찍어낸 회색 양기와를 지붕으로 올렸다. 기와의 무게를 못 이기고 흙벽돌이 무너질까 봐 걱정했는데, 거뜬했다. 남숙과 형우가 버무리고, 햇볕에 잘 말려 쌓아 올린 흙벽돌은 아주 튼튼했다.

시간이 한참 지나 뉴스에서 석면으로 만들어진 슬레트가 1급 발암물질로 호흡기를 통해 폐에 들어가면 상당히 위험하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70년대에 슬레트는 지붕 재료로도 많이 쓰였지만, 고기 굽는 불판으로도 사용되었다. 슬레트 밑에 돌을 궤고 장작으로 불을 지피면, 슬레트가 뜨거워졌다. 잘 달궈진 슬레트 위에 삼겹살을 구우면 돼지 기름이 쏙 빠져 담백하게 삼겹살을 먹을 수 있어서 인기가 좋았다. 인구는 냇가에 놀러 갈 때마다 사각 슬레트 판을 챙겨가던 기억이 떠올라 섬뜩했다. 도영은 그래도 우리가 흙으로 만든 집에서 살아서 다행이라고, 굼벵이가 떨어지는 초가지붕에 살아서 슬레트에 삼겹살 구워 먹었어도 건강한 거라고 말했다.

인구는 도영의 말이 맞는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평생토록 가장 안전하고 튼튼한 지붕이 되어준 남숙과 형우가 고마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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