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을 덩치 큰 초식동물이라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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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을 덩치 큰 초식동물이라 하자
  • 최일화
  • 승인 2020.03.20 06:5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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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시단]
문예지 봄호에서 시 몇 편 - 최일화/시인

코로나19가 국내는 물론 온 세계를 얼어붙게 했다. 졸업식이 취소되었고 개학은 4월 6일로 잠정 연기되었다. 모든 도서관은 폐쇄되고 각종 스포츠 행사와 축제가 취소되었다. 성황리에 개최되던 진해 벚꽃 축제도 취소되었다는 소식이다. 중국에서 시작된 코로나19가 한국에서 맹위를 떨치더니 지금은 유럽을 강타하고 미국대륙으로 무섭게 번지고 있다. 코로나 블루(Corona Blue)라는 신조어가 만들어졌다.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한 불안하고 우울한 증세를 말한다고 한다.

각종 집회와 행사가 취소되고 성당과 교회의 미사와 예배가 중단되는 상황이니 평온했던 일상에 일대 혼란이 올 것은 당연하다. 시장과 모든 영업소에 고객이 전무하다시피 하고 항공, 택시, 학원 등 전 업계에 타격이 심각하다. 우리나라의 경우 확진자 수가 다소 진정세를 보이고 있다. 이탈리아, 이란, 스페인의 상황이 심각하고 프랑스, 독일도 확산일로에 있다. 아프리카 대륙까지 감염자가 속출하고 있다. 지구촌 어떤 나라도 안전한 지역이 없게 되었다.

우리 집의 경우 외손녀의 초등학교 입학식이 연기되어 집으로 전달되는 가정학습을 이어가고 있다. 언제 입학식이 열릴지 지금으로선 알 수 없다. 지방 도시에 사는 외손자는 요새 우리 집에 와 있다. 유치원 입학이 연기되어 직장에 나가는 딸이 아이 맡길 데를 찾지 못하기 때문이다. 도서관에 가는 것도 나의 일상중 하나인데 요샌 갈 수가 없다. 어서 이 사태가 진정되어 평온한 일상을 되찾았으면 좋겠다.

나는 몇 종의 문예지를 구독하고 있다. 요샌 TV시청과 인터넷 서핑, 독서가 나의 주된 일과다. 종종 산책을 하거나 극장을 찾는 것이 고작이다. 문예지를 읽으며 인천in 독자들에게 소개할 좋은 시를 찾다가 시 3편을 골랐다. 나는 가독성(可讀性)이 좋은 시를 선호한다. 이번에도 우선적으로 독자들이 이해하기 쉬운 시 몇 편 골라 함께 읽기로 한다.


코끼리에게 /휘민

당신을 덩치 큰 초식동물이라 하자
몸 하나 겨우 들어갈 수 있는 좁은 나무
울타리에 갇힌 두 살 된 아기 코끼리라 하자
머리는 크고 눈은 작으며 털이 거의 없는 몸
당신의 발목마다 쇠사슬이 채워지고
장정 여럿이 쇠꼬챙이로
당신의 정수리를
당신의 이마를
당신의 등을
당신의 기
코를      다
계속        란
찌른
다고
하자

붉은 피와 살점을 튕기며
본능이 떨어져 나가는 시간 동안
당신은 무슨 생각을 할 수 있을까

당신을 30년 째 사람 말을 알아듣는
코끼리라고 하자
주름진 긴 코로 하모니카를 불고
훌라후프를 돌리고 그림을 그리고
상처투성이 등으로 지옥을 실어 나르는
네 발 달린 사람이라 하자

생각은 왜 명사가 아니라 동사여야 하는지
코끼리에게 물어보자

*시인수첩2020년 봄호

*휘민: 2001경향신문, 2011한국일보동화 등단. 시집 생일 꽃바구니』 『온전히 나일 수도 당신일 수도동화집 할머니는 축구 선수그림책 빨간 모자의 숲』 『라 벨라 치따가 있음.

 

휘민 시인의 시를 읽는다. 감동적인 시를 쓰는 시인이 세상엔 참 많다. 휘민 시인의 시가 감칠맛 있고 감동적인 요소가 풍부한 건 익히 알고 있었다. 우선 시의 가독성이다. 몇 번 읽어도 의미 파악이 안 되는 시는 이내 포기하고 만다. 종종 내 마음속 시인 목록에서 지워지기도 한다. 반대로 한두 번 마음에 와 닿는 작품을 읽는 경우 그 시인은 이내 마음에 각인된다.

이 시도 동물에 대한 사랑과 연민의 정이 가득한 시다. 시의 덕목 중 하나인 교훈성도 새겨볼만하다. 시인은 코끼리와 입장을 바꿔놓고 생각해보기를 바란다. 덩치는 크지만 순한 초식동물인 코끼리에게 인간이 저지르고 있는 잔혹한 행위를 역지사지로 한 번 생각해보라는 메시지가 설득력을 어도 있다. 산문 형식에 훈계조로 이 내용을 담았다면 감동은 감소할 것이다. 시의 형식으로 에둘러 표현했기 때문에 강한 호소력을 갖는다. 시의 효용성과 영향력은 이런 시적 성취에서 발휘된다.

시인은 아마 동남아 여행을 하며 코끼리를 훈련시켜 묘기를 보여주는 광경을 목격한 듯하다. 발목에 쇠사슬이 채워지고 쇠꼬챙이로 정수리와 등을 찔러대는 모습을 보고 입장을 바꿔보라며 코끼리의 고통을 호소하고 있다. 하모니카를 불고 훌라후프를 돌리는 코끼리는 얼마나 강압적인 훈련으로 그 기술을 습득했을까. 인간의 욕심으로 코끼리의 본능마저 말살하며 탐욕을 채우는 처사에 언성을 높여 분노하는 대신 입장을 바꿔보라며 우회적으로 호소하고 있다.

우리 주변에서 동물학대에 관한 많은 사례가 보도되고 있다. 기르던 개를 낯선 섬에 버리고 돌아오는 비정한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까닭도 없이 고양이를 무차별 공격하여 죽게 하는 CCTV 영상이 공개되어 충격을 준 사건도 있다. 한 유투버는 자신이 기르는 개를 주먹으로 마구 폭행하는 동영상을 올려 고발당했는데 자신의 소유라며 오히려 반발하는 모습을 보여 공분을 자아낸 일도 있다. 동물 학대는 곧 인간에 대한 학대로 이어진다고 한다. 모든 생명체는 평화롭게 이 세상에 공존할 수 있어야 한다.

 

혀로 염하다 / 길 상 호

트럭에 치인 새끼 목덜미를 물고와
모래 구덩이에 눕혀놓고서

어미 고양이가 할 수 있는 건 오래 핥아대는 일

빛바랜 혀를 꺼내서
털에 배어든 핏물을 닦아댈 때

노을은 죽은피처럼 굳어가고 있었네

핥으면서 꺼진 숨을 맛보았을 혀,
닦으면서 붉은 눈물을 삼켰을 혀,

어미 고양이는 새끼를 묻어놓고 어디에다 또
야옹, 옹관묘 같은 울음을 내려놓을까

은행나무가 수의로 바닥을 곱게 덮어놓았네

*월간 시인동네20203월호

*길상호: 길상호 : 2001한국일보신춘문예 등단. 시집 우리의 죄는 야옹』『오늘의 이야기는 끝이 났어요 내일 이야기는 내일 하기로 해요. 사진에세이 한 사람을 건너왔다. 현대시동인상, 천상병시상, 3회 김종삼시문학상 등 수상.

 

길상호 시인은 2020년 제 3회 김종삼시문학상을 수상했다. 시인의 시는 형식면에서 단아하고 의미가 무리 없이 전달되어 공감할 수 있는 내용이다. 지나치게 비약적인 은유를 사용하거나 낯설게 하기를 장치로 사용하지 않는다. 시인동네 3월호에 실린 5편이 모두 같은 형식이고 내용도 일정한 경향을 유지하고 있다. 시의 연이 1행과 2행으로 간결하다. 독자를 압도하여 읽기를 망설이게 하지 않는다. 요즘 시가 너무 길다는 지적을 자주 받는다. 또 난해성에 대해 거의 질타 수준의 지적도 받는다. 그러나 길상호 시인의 시는 길지 않고 울림 있고 감동적이다. 따로 설명을 붙일 필요가 없다.

시의 해설을 하려는 게 아니라 일반 독자들과 교감을 나누고자 이 글을 쓰고 있다. 길 시인이 큰 문학상을 탄 것은 매우 고무적이다. 난해하고 해독 불가의 작품이 판을 치는 가운데 이처럼 맑고 소통 가능한 시가 좋은 상을 수상한 것은 기성 시인과 독자에게 모두 위안이 되는 일이다. 독자들은 좋은 시를 접할 기회를 갖게 되고 다시 시를 찾을 명분을 주는 일이기도 하다. 이 시는 생명체에 대한 깊은 연민의 정이 담겨 있다.

이 연민의 정서가 모든 시인의 시에 다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깊은 연민이 시를 쓰는 강력한 동기가 될 때 그 시는 따뜻하고 공감력을 얻는다. 독자와 함께 깊은 연민을 공유할 수 있도록 시어를 선택하고 적재적소에 배치한 것만으로 이 시는 성공하고 있다. 시의 이론을 시 창작에 적용할 것이 아니라 시에서 시의 이론을 추출하면 되는 것이다. 한 줄 한 행이 군더더기 없이 이어져 감동적인 시 한 편을 만들어내고 있다.

큰절/오미옥

외할머니께 큰절을 올리는 어머니를 본 적이 있다 추운 겨울에도 방문을 활짝 열고 차디찬 툇마루에서 절을 정성스레 올리고 나서야 방으로 들어가 외할머니 손을 잡던 어머니

下心이란 어머니가 하는 절이다

외할머니는 부처 같은 딸에게 아무 말 없이 저녁상을 내었다 만주로 피난 갔다 밥그릇도 없던 시절 부자라는 말만 듣고 어린 둘째딸 선뜻 시집보내고 가슴앓이하신 외할머니는 밥상 위에 밥그릇 올리고 식사를 하신 적 없었다

시집가서 몇 년째 소식 없는 딸이 보고 싶어 길을 나섰던 외할머니가 딸집에 들어섰을 때 하필이면 아버지에게 매 맞고 있는 어머니를 보신 후 그대로 돌아서 가신 외할머니께 어머니는 평생 죄인이 되었다

언젠가 나도 어머니가 외할머니께 올린 것처럼 세상에서 가장 낮고 곱게 큰절을 하고 싶었는데 갑자기 지상에서 땅속으로 거처를 옮기신 어머니

파란 잔디 돋아난 무덤가에서 큰절을 올려본다 몇 번이고 자세를 고쳐 절을 해도 지난날 어머니처럼 되지 않고 흰 찔레꽃 향기 따라 눈시울이 자꾸만 맵다

삶은 내게 어머니의 큰절처럼 낮고 경건해지는 일이다

*『내일을 여는 작가2020년 상반기호

*오미옥: 2006사람의 깊이신인상으로 등단. 시집 12월의 버스 정류장이 있음.

 

이 시는 오래 전의 정서가 깃든 시다. 고전의 향기가 그윽하다. 이 시인의 나이를 나는 모른다. 시를 보면 아직 전통사회가 고스란히 유지되고 있던 때에 어린 시절을 보낸 시인임은 분명해 보인다. 시가 체험에서 발아된다고 볼 때 이 시의 발아는 전통사회의 미덕에 닿아 있다. 흔히 가풍이라고 할 때 우리는 남자를 중심으로 한 집안의 오랜 내력으로 간주한다. 가부장사회에서 아버지와 할아버지, 그 윗대 할아버지 적부터 내려오는 관습을 일컫는 게 보통이다.

그런데 여성문인이나 여성 인사들의 글이나 대담에서 어머니 외할머니로 이어지는 집안 내력을 듣게 되는 경우가 자주 있다. 마치 다른 세상을 보는 듯 한때는 낯설었다. 그만큼 내가 가부장제도의 전통에 깊이 젖어 있는 까닭이다. 오늘 또 그 한 예를 본다. 외할머니와 어머니와 딸(화자)로 이어지는 큰절이 한 줄기 강줄기처럼 가풍으로 흐르는 것을 보는 것이다.

2의 성이라는 말이 있다. 현대에선 많이 없어졌지만 그 말은 서양에서 먼저 시작되어 지구촌 보편적 언어로 확산되었다. 마치 제 2의 성을 연상케 하는 우리 사회 여성의 위치를 가늠케 하는 시로 읽힌다. 이 시에서 아버지는 어머니를 학대하는 사람으로 등장한다. 여성성을 억압하는 그릇된 우리 문화의 한 단면이다. 겸손하고 예의바른 태도를 화자는 下心이라 하였다. 하심이 어디 여자들만의 전유물이던가. 남녀 공히 인간이면 누구나 지녀야 할 미덕이다. 할머니와 어머니와 딸로 이어지는 고전적이고 경건한 큰절에서 삶의 비의를 발견하는 화자가 오늘은 왠지 자꾸 소중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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