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눔과 비움으로 열리는 책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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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눔과 비움으로 열리는 책방
  • 청산별곡
  • 승인 2020.04.24 12: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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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책방, 그 너머의 기록]
(5) 無人, 有描 책방, 배다리 '나비날다' - 청산별곡/ '나비날다 책방' 책방지기
나비날다 책방 전경
배다리 나비날다 책방 전경

 

배다리에 날아든 나눔과 비움

나비날다책방은 배다리 헌책방거리에서 올해로 11년째 책방 문을 열고 있어요. ‘나비날다’는 ‘(나)눔과 (비)움, 오래된 책집에 (날)아들(다)’의 줄임말이예요. 책방이 있던 곳은 ‘오래된 책집’이라는 헌책방이 있었던 곳으로 오랫동안 문이 닫혀있었는데 건물을 보는 순간 ‘뭐든 잘할 수 있겠다’는 생각에 얼른 계약을 했지요. 처음엔 배다리에 들어와 헌책방거리와 어우러질 수 있는 공간을 꾸려보자는 맘으로 시작했는데 어영부영하다보니 어느덧 세월만 훌쩍 넘겼네요.

대안화폐, 마을공동체에 관심을 갖고 ‘돈 없이도 살 수 있는 세상’을 꿈꿔왔는데 인천의 원도심인 배다리마을이 그 꿈을 실현하며 살 수 있는 곳이란 생각에 2009년 8월, 마을에 발을 딛게 되었어요. 7평의 자그마한 공간을 꾸리기까지 정말 많은 사람들의 손길이 보태졌어요. 서울에서 함께 활동했던 환경단체 활동가, 책모임 회원, 띠앗회원들, 배다리 어르신들이 월세부터 자잘한 집기, 소품까지 깨알같이 후원해 주셨지요. 나비날다책방에 있는 물건들은 그래서 알록달록, 각양각색이랍니다. 좀 어수선하고 복잡하지만 따뜻한 사연이 깃든 것들로 채워져 무엇 하나 소홀할 수 없어요. 다양한 빛깔, 다양한 사람들의 색깔을 그대로 담고 있어요. 살아가면서 갚아야할 행복한 빚입니다. 이 빛깔들을 오래 지키고 싶어요. 나누고, 비우고, 나누고, 비우고...... 나비날다책방은 책보다 나눔입니다.

 

고양이와 함께하는 삶

나비날다책방의 주인은 고양이입니다. 인연이 된 고양이 한 마리가 7마리 새끼를 낳는 바람에 조그만 책방이 고양이 천국이 되었답니다. 아침에 책방 문을 열면 꼬물꼬물한 7마리 고양이들이 우르르 쏟아져 나오는데 감당하기 어렵더라고요. 하루 일과가 책보다 고양이였습니다. 골칫덩이 고양이들과 함께 살아가는 법을 모색하다보니 더 넓은 공간으로 옮기게 되었지요. 고양이가 행복해야 나도 행복할 수 있다는 생각에 작정하고 마을 책쉼터에서 고양이 책방으로 운영하게 되었습니다.

고양이가 불편한 사람들이 꺼리는 책방이 아닌, 동물을 사랑하고 고양이가 있어 더 반가운 사람들이 찾는 책방이 되기를 바라면서요. 이 참에 우리 냥이들 이름 한 번씩 불러 볼까요? 책방 나이와 같은 11살 엄마 미미와 보름이, 반달이, 까미, 타이거. 지금은 다섯 마리 냥이들과 함께 살고 있지요. 반달이는 냥이들을 대표하여 책방을 지키고 있지요. 고양이를 무서워하던 손님들, 고양이에 대한 선입견을 가지고 있던 손님들이 책방을 다녀가신 후 길냥이를 입양하게 되었다고 소식을 전해주시기도 하고, 우리 냥이들한테 위로 받고 가신다는 쪽지를 남겨주시기도 합니다. 어찌나 반갑던지요. 동네 고양이들이 아프면 저희 책방으로 물으러 오시는 바람에 고양이 상담소 역할도 하고 있답니다. 아직도 골칫거리, 말썽꾸러기 고양이들이지만 무엇보다 소중한 선물 같은 가족입니다. 나비날다책방은 여전히 책보다 고양이가 먼저랍니다.

 

도시에서의 무인책방

책방하면서 가장 많이 받는 질문이 “책방해서 어떻게 먹고 살아요?” “책 팔아서 유지가 되나요?”입니다. 알다시피 책 한 권, 두 권 팔아서 책방을 유지하기는 어렵습니다. 월세까지 감당하며 책방을 꾸리는 일은 또 다른 노동을 필요로 하지요. 요즘 독립서점들이 많이 생겨나고 있지만 월세와 관리비를 최소화하다보니 애써 찾아가야만 만날 수 있는 곳에 책방들이 생기는 이유입니다.

나비날다책방은 배다리에서 누구나 쉬어 갈 수 있는 마을쉼터가 되고 싶어서 시작했어요. 주인이 없어도 편히 쉬었다 갈 수 있는 곳, 자주 찾아오는 손님이 주인이 되고, 꼭 사람이 지키지 않아도 스스로 운영되는 지속가능한 공간으로 꾸리고자 무인책방으로 운영하게 되었습니다. 월세를 또 다른 노동으로 충당하며, 하고 싶은 책방을 꾸려나려는 욕심을 곁들였지요. 사람 대신 고양이 반달이가 지키는 무인책방, 유묘책방으로 운영되고 있지요. ‘돈 없이도 살 수 있는 세상’을 꿈꾸는 작은 시도라고나 할까요?

무인책방을 하면서 가장 많이 받는 질문이 “잃어버리는 것은 없나요?” 당연, 많습니다. 시골도 아닌, 도시에서 무인책방을 운영하는 것을 보고 무모하다는 말도 많이 들어요. CCTV를 설치하라는 말은 우스갯소리로 귀에 딱지가 앉힐 정도로 듣고 있어요. 무인책방으로 10년을 넘게 운영해오면서 책을 지속적으로 훔쳐가기도하고, 돈이 없어지기도 하지만 없어지는 것보다 남아있는 것이 더 많잖아요. 지금도 책방에 책들이 가득합니다. 오히려 안 팔려서 문제이지요. 마음의 상처를 받는 일도 많지만, 그보다 무인책방이기에 거리낌 없이 마음을 내려놓고 위로 받고 가는 손님들을 생각하면 다시 힘을 내게 됩니다. 책방 입구에 놓여있는 방명록에는 손님들이 남기고 간 마음자락들이 수북이 쌓여가고 있습니다. 쉽게 털어 놓기 어려운 마음속의 말들을 사람이 없는 책방에 오롯이 앉아서 글을 남기는 그 순간의 모습과 감정이 그대로 느껴집니다. 돈과 책을 잃었지만 사람들이 남긴 마음을 얻었기에 오늘도 한 장 한 장 남겨준 글로 잘 먹고 살고 있어요. 잃어버리는 것을 두려워하기보다 더 믿어주고 마음을 열고 함께 갈 사람들이 많아졌으면 좋겠습니다. 나비날다책방은 책보다 마음입니다.

언젠가는 책이 먼저일 때가 있겠지요. 10년이 넘었지만 아직도 책을 사고파는 일에는 여전히 서툴고, 좌충우돌하고 있습니다. 넘어지고 깨지면서, 다시 배우며 엉금엉금 기어가는 새내기 나비날다책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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