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 사랑방이자 여행자들의 쉼터, 동네 책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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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 사랑방이자 여행자들의 쉼터, 동네 책방
  • 안병일
  • 승인 2020.06.05 08: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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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책방, 그 저머의 기록]
(11) 동네에서 책방을 한다는 의미 - 안병일 / '책방시점' 책방지기
지난해 11월30일 '책방시점'에서 진행한 북토크

책방을 다녀간 분들의 입소문을 조금씩 타고, 언론에 소개되면서 생각보다 많은 분이 찾는 책방이 됐습니다(물론 과장 반, 바람 반 섞인 표현이다. 여전히 우리 책방엔 사람 한 명 안 오는 날이 훨씬 많다). 우리도 욕망이 있는 사람인지라 세상에 알려지는 것이 반갑고 기쁘지만 동시에 고민도 깊어집니다. 우리는 어떤 책방일까? 동네책방? 여행자를 위한 책방? 우리는 둘 다를 지향한다고 하지만 얼마나 동네와 관계를 맺고 있을까? 동네 분들이 책방을 찾아와 일관된 반응을 던질 때마다 고민입니다. “동네에 이런 책방이 있는지 몰랐어요.”

외부에 책방이 알려지는 것과는 달리 그 소문 빠르다는 시골 섬 강화도에서는 아직도 우리 존재를 잘 모릅니다. 온수리 소담마을 안에 있는 시골 동네 책방이라고 우리를 소개했지만 정작 동네에선 우리의 존재를 모르는 기막힌 부조화를 경험하고 있죠. 처음 우리 생각은 단순했습니다. ‘적어도 동네라고 하려면 빵집도 있고 마트도 있고 무엇보다 책방이 있어야 하지 않겠어? 마을에 이런 책방이 생겼으니 이제 다들 놀러 오겠지?’ 그러나 정작 동네 사람들에게 책방으로 다가가려는 노력은 부족했습니다. 여러 변명과 핑계를 댈 수 있겠지만 ‘다가가지 못했다는 것’ 그것은 분명한 사실입니다. 간혹 동네 사람들에게 들어보니 마을에 새파랗게 젊은(시골에선 우리는 아직 아기 취급을 받는다) 애들이 들어왔다는 소문은 났는데, 뭘 하는지는 모르겠다는 반응이 대다수였다고 합니다.

그 후론 온수리 동네책방으로 자리 잡기 위해 공을 많이 들였습니다. 7개월짜리 장기 인문, 문학 프로그램을 운영하면서 조금씩 동네 사람들과 만나는 접점이 넓히고 있습니다. 다행히 다녀간 분들이 주변에 소개해주면서 어설프게나마 동네책방 행세는 하고 있습니다. 한국형 애프터스콜레로 알려진 ‘꿈틀리 인생학교’ 학생들과는 팟캐스트 작업, 독서모임을 같이 진행하고 있습니다. 온수리에서 독서모임을 하고 있는 분들과도 자주 만나고 있습니다. 평소 마을에 책방이 없어 직접 만들어야 하는 것 아닌가 하고 고민했다는 이분들은 소리소문 없이 생긴 우리 책방을 반기며 독서모임과 저자 강연을 진행하기도 했죠. 연말엔 동네 주민들 모두 모인 가운데 시 낭송 모임을 하기도 했는데 이때 서른 명 가까운 사람이 모였습니다.

우리는 책을 좋아하고 책이 있는 공간을 사랑하는 평범한 사람들이다. 문화기획이나 마을재생 같은 멋진 말들이 뭔지 잘 모르고, 그런 일을 벌일 역량도 부족합니다. 다만 동네에서 사랑받고 존중받는 공간이자 존재가 되고 싶습니다. 그 동안은 거의 일방적인 관심과 사랑을 받았고 이젠 우리도 뭔가를 하긴 할 차례입니다.

우리 공간은 책방인 동시에 여행자들의 쉼터입니다. 지금은 이들에게 동네를 중심으로 좋은 곳들을 발굴하고 소개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표현하면 거창한데, 실은 괜찮은 맛집, 가볼 만한 곳을 추천한다는 게 더 정확합니다. 왜 여행 잘 하는 사람들이 인터넷이나 SNS로 정보를 찾는 대신 그 동네 현지인의 추천을 받잖아요? 동네 빵집, 두부전골을 깔끔하게 잘하는 식당, 산책하기 좋은 시골길, 아는 사람만 안다는 일몰 보기 좋은 곳, 전등사 가는 숲길 등 이미 이 동네 사람이 다 된 우리가 가진 정보는 무궁무진하거든요. 앞으로 우리가 하고 싶은 일 중 하나도 이것과 연관이 되어 있습니다. 이를테면 그런 알짜배기 정보만 쏙속 담은 동네 지도를 만들기 같은 일들 말이죠.

우리는 또 할 수 있는 한 동네에서 소비를 합니다. 북스테이 손님에게 내드릴 아침 식사는 동네 빵집과 마트에서 조달하는 것처럼 말이죠. 인터넷으로 주문할 수밖에 없는 물품, 주문용 책을 빼면 대부분 동네 어귀, 걸어갈 수 있는 곳 안에서 해결합니다. 최저가를 찾아 밤새 스마트폰을 검색해 얻는 작은 이익보다 서로가 서로를 먹여살리는 유기적인 관계가 더 끌리기 때문입니다. 꼭 우리 책방에 와서 책을 주문하는 동네분들처럼 말이죠. 그런 관계망을 더 다양하고 깊게 만들어 가고 싶습니다.

우리 책방이 동네 사람들의 사랑방이 되면 좋겠습니다. 지금도 우리는 동네 독서모임에는 대관료를 따로 받지 않는데 단순히 공간을 무료로 내주는 것만으로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동네 숨은 고수를 초대해 동네 워크숍을 열어보면 어떨까요? 강화 화문석으로 텀블러 홀더를 만든다거나 나만의 순무김치 레시피를 공유한다거나 말이죠. 멀리서 찾을 것 없이 이웃 중에도 생활의 달인, 숨은 고수들이 많습니다. 강화는 사실 그게 가장 매력인 곳입니다. 책이 달리 책이 아니더라구요. 사람이 책이고 사람의 이야기, 그들의 삶이 곧 책이더라구요. ‘모든 사람은 시가 된다’ 우리 책방의 모토입니다. 이제 우리는 그 시를 찾고 소개할 시점입니다.

 

12월21일 진행한 강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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