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은 사람 뼈다귀를 만지작거린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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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사람 뼈다귀를 만지작거린대서
  • 최종규
  • 승인 2011.04.25 15: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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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기 삶읽기] 폴 콜린스, 《토머스 페인 유골분실사건》

 ‘토머스 페인’이라는 사람이 있습니다. 《토머스 페인 유골분실사건》이라는 이야기책은 토머스 페인이라는 사람이 죽고 나서, 이이 뼈다귀가 어떻게 돌고 돌아 이제 어디에 얼마나 흩어졌는지 알 길이 없다는 줄거리를 다룹니다. 우리 나라로 친다면, 다산 정약용 님 무덤을 누군가 파헤쳐서 뼈다귀가 이리저리 흩어졌다는 줄거리를 다루는 셈입니다. 또는 어린이문학가 이원수 님 무덤을 파헤쳐 뼈다귀를 요모조모 빼돌린다는 이야기를 다루는 셈입니다.

 서양사람도 참 할 일이 없지, 뭣하러 뼈다귀를 파내어 이 뼈다귀를 놓고 이러쿵저러쿵 시끄러울까 궁금합니다. 더군다나, 이렇게 뼈다귀를 파낸 발자취를 좋는 이야기책까지 쓴다니, 그야말로 한갓진 삶이 아닌가 할 만하기도 합니다. 학문이나 문학이 갈 데까지 가면서, 이렇게까지 부질없다 싶은 대목까지 다루어야 하는가 싶기도 해요.

 그러나 곰곰이 헤아려 본다면, 서양사람은 한국땅에 들어와 무덤파기를 꽤나 즐겼습니다. 일본사람은 이들 서양사람한테서 배우며 한국땅 옛무덤 파헤치기를 퍽이나 즐겼습니다. 서양사람은 이집트 옛임금 무덤만 파헤치지 않습니다. 우리 나라 역사책에도 또렷이 적히듯이, 서양사람은 한국땅에서 옛나라 옛임금 무덤을 찾아내어 파헤치며 보배를 빼돌리려 했어요.

.. 때로 잊고 지내던 경건함이 이들을 다시 찾아오곤 했다. 페인이 앓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목사들과 좋은 뜻을 품은 사람들이 끝없이 찾아와 페인을 괴롭혔다. 페인이 이단적 주장을 철회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구세주로 받아들이게 만들고 싶어 찾아왔다 ..  (24쪽)

 영국에 있다는 대영박물관은 무덤파기 따위를 하면서 긁어 모은 다른 나라 보배를 쑤셔넣은 곳이라 할 수 있습니다. 영국은 무덤파기뿐 아니라 숱한 싸움을 일으켜 이웃나라라든지 먼나라를 무너뜨리거나 짓밟으면서 보배를 빼앗았습니다.

 영국하고 이웃한 프랑스도 영국하고 똑같은 짓을 많이 저질렀습니다. 프랑스와 이웃한 독일이라든지 네덜란드도 그닥 다르지 않습니다. 에스파냐나 포르투갈이래서 다르지 않아요. 이탈리아나 그리스는 어떠했을까요. 스웨덴이나 터키는 어떠했을까요.

 저마다 이름과 힘과 돈이 드높을 때에는 어김없이 이웃나라나 먼나라로 쳐들어갑니다. 일본도 매한가지였으며, 중국 또한 다르지 않아요. 이 나라 한국도 잘 살피면, 지난날 고구려 때에 멀디먼 곳까지 땅을 넓히려고 창과 방패를 앞세워 깊디깊은 마을까지 찾아가서 싸움을 일으켰습니다. 아니, 고구려가 나라밖으로 땅을 넓히기만 했는가요. 백제와 신라와 고구려는 서로를 못 잡아먹어 안달이라도 난 듯이 죽이고 죽는 싸움을 오래도록 벌였습니다.

 군대가 있을 때에 사이좋게 어깨동무한 적이란 없습니다. 군대가 있는 나라가 평화를 사랑한 적이란 없습니다. 군대를 두는 임금이나 권력자가 사람들을 따스히 사랑하거나 어여삐 아낀 적이란 없습니다.

 오늘날 남녘땅에도 군대가 어마어마합니다. 북녘땅에도 군대가 무시무시합니다. 남북녘 권력자는 저마다 군대를 아주 크게 북돋우면서 막상 이 나라 사람들 여느 살림살이에는 눈길을 두지 않습니다. 여느 사람들 피땀을 그러모아 더 센 힘과 더 큰 돈과 더 높은 이름을 탄탄한 울타리로 쌓아올립니다.

.. 페인은 가장 터무니없는 주장부터 시작한다. ‘모든 왕은 불합리하다.’ 페인은 군주의 가장 소중한 소유물인 고귀한 혈통을 부인하여 이런 주장을 펼친다 … 페인이 쓴 모든 글은 모든 왕, 모든 불합리한 권위, 전 세계의 크고 작은 폭군 모두를 공격하는 글이었다 … 페인은 정중한 토론을 벌이지 않는다. 그런 전통은 필요없으니 합리적인 이유를 대라고 한다 … 페인이 미국에 제시한 것은 완전한 재탄생, 죽은 과거의 무게에서 벗어나는 일이었다 … 《영국 재무 제도의 몰락》은 영국 정부가 국외 탐험에 돈을 대기 위해 마구잡이로 통화를 발행해 빚이 계속 늘어 가고 있음을 비난했다 … 정부는 국내의 지지와 외국의 자원을 확보하기 위해 계속 전쟁을 벌일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  (37, 39, 40, 58쪽)

 토머스 페인이라는 사람은 무슨 일을 했을까 헤아려 봅니다. 토머스 페인이라는 한 사람 뼈다귀를 놓고 이런 문학책 하나까지 나온다 한다면, 이이는 여느 수수한 사람은 아니리라 생각합니다. 미국 역사이든 영국 사회이든 뒤흔들었다고도 하는데, 이이가 걸어온 길을 찬찬히 되짚으면서 이이가 밝히려 했던 빛줄기를 느끼는 일을 대수로이 여겨야 한다는 뜻에서 이 같은 문학을 빚었으리라 생각합니다.

 그런데, 토머스 페인이 남긴 발자국이나 빛줄기를 찬찬히 살피거나 짚거나 돌아보는 동안, 이 한 사람이 지키려 하던 뜻을 오늘날 사람들은 얼마나 지키거나 돌보는지 알쏭달쏭합니다. 아니, 토머스 페인이라는 한 사람 뼈다귀도 어디로 흩어졌는지 아리송할 뿐더러, 토머스 페인이라는 한 사람이 외친 이야기를 어떻게 받아들이거나 아로새기는가 또한 아리송합니다. 아니, 민주도 평화도 사랑과 평등도 자유도 어디로 꼬리를 감추는지 아리송합니다.

 미국은 끝없이 새 무기를 만들며 새 전쟁을 크게 터뜨리려 합니다. 미국한테 문화 식민지·경제 식민지·정치 식민지처럼 나뒹구는 한국땅 또한 엄청난 돈과 품을 들여 ‘미국이 만든 새 무기’를 자꾸자꾸 사들일 뿐 아니라, 너무도 많은 전쟁무기를 건사하느라 나라살림이 삐걱댈 만하다 합니다. 그나마 남녘땅 사람들은 자연을 아주 깡그리 무너뜨리며 버티니까 북녘처럼 사회나 정치가 와르르 무너지지는 않습니다. 남녘 삶터가 북녘 삶터처럼 무너지지 않은 까닭은 남녘땅 자연을 온통 파헤치며 도시살림을 북돋우기 때문이요, 이웃 중국이나 베트남이나 중남미나 동남아시아 자원을 마구 갖다 쓸 뿐 아니라 이주노동자 피땀을 울궈먹기 때문입니다. 한국사람 사이에서도 정규직과 비정규직을 가르며 ‘낮은 자리 여느 수수한 사람’끼리 어깨동무를 못하도록 가로막으면서 서로서로 싸우도록 내몰기 때문입니다.

.. 한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미치는 영향을 어떻게 헤아릴 수 있을까? 단순한 몸짓, 무심코 던진 한 마디, 마감일에 쫓겨 허둥지둥 쓴 글. 이런 것들이 삶을 전혀 다른 방향으로 돌려놓을 수도 있고, 그 말을 한 당사자는 전혀 모를 수도 있다. 어쩌면 그 몸짓, 그 말 한 마디가 아니었더라도 마찬가지였을지 모른다. 감동받은 사람이 사실은 자기를 다른 방향으로 보내 줄 무언가를 목 빼고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  (144쪽)

 미국사람이든 한국사람이든 ‘바른 생각’을 못합니다. 일본사람이든 한국사람이든 ‘착한 마음’을 다스리지 못합니다. 중국사람이든 한국사람이든 ‘고운 꿈’을 품지 못합니다.

 토머스 페인이라는 사람은 ‘상식’이 없는 미국사람을 일깨우려고 애썼다는데, 한국땅에서는 ‘상식’이 없는 한국사람을 일깨우거나 이끌거나 어루만지려는 목소리나 움직임을 좀처럼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사회운동이나 정치운동이나 환경운동이나 교육운동은 있어요. 그렇지만 ‘상식’은 없습니다. ‘삶’이 없고 ‘살림’이 없습니다. ‘사랑’이 자취를 감추고, ‘사람’이 모습을 숨깁니다.

.. 늘 그런 식이지 않은가? 토머스 페인의 유해조차도 수 세기 동안 띄엄띄엄 반쯤은 기억되고 반쯤은 잊힌 채로 있었다. 토머스 페인의 뼈가 어디로 떠돌았는가에 대한 진짜 이야기도 있지만 근거 없는 이야기도 많다. 어떤 사람은 처음부터 페인의 무덤을 파낸 적이 없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  (252∼253쪽)

 한국땅에서는 ‘토머스 페인 읽기’가 어렵습니다. 왜냐하면, 이 한 사람을 읽기가 어렵기 앞서 ‘상식 읽기’가 어렵기 때문입니다. 미국이래서 ‘토머스 페인 읽기’를 잘 한다고 여기기 힘듭니다. 왜냐하면, 미국사람 스스로 ‘상식 읽기’를 거의 안 하기 때문입니다.

 미국에서 가장 잘 나가는 산업이란 ‘군산복합체 산업’입니다. 전쟁무기를 만들거나 전쟁터 군인으로 일하는 산업이 가장 발돋움한 미국입니다. 그러면 한국은? 한국에는 군인이 몇 사람이나 되지요? 군인하고 얽힌 회사나 가게나 일거리는 얼마나 될까요? 한국 정부가 국방비로 쓰는 돈은 얼마나 되나요? 직접 세금으로 쓰는 국방비 말고 여러모로 뒤따르는 국방 예산은 얼마나 되려나요?

 친환경무상급식을 너나없이 외칩니다만, ‘친환경 먹을거리’를 마련하려는 농사꾼은 한국땅에서 어떤 대접을 받습니까. 친환경 먹을거리는 도시 아닌 시골 논밭에서 일구어야 하는데, 오늘날 한국땅은 고속도로와 고속철도를 얼마나 많이 새로 닦으며, 얼마나 많은 아파트가 쏟아집니까. 도시는 얼마나 커지고, 도시사람은 얼마나 돈에 목말라 돈벌이에 미친 듯이 달겨드는지요.

 온통 돈에 목마른 한국사람들인데, 아니, 돈에 미쳤다 할 만한 한국 어른들인데, 한국 아이들이 학교에서 친환경무상급식이 이루어질 수 있는지 알쏭달쏭할 뿐더러, 친환경무상급식을 한대서 무엇이 나아지거나 좋아질는지 궁금합니다. 무엇보다 교육이 엉터리인데 급식 하나 한대서 무엇이 거듭나려나요. 무엇보다 교육이 없이 입시지옥만 있는데, 급식 노래를 부른대서 무엇이 달라지려나요.

 미국이든 한국이든 ‘토머스 페인 삶’이 아닌 ‘토머스 페인 뼈다귀’만 들여다보는 눈높이와 눈썰미와 눈길에서 이야기가 비롯했다가 이야기가 끝납니다. 죽은 사람 뼈다귀는 끝내 찾을 수 없고, ‘산 사람이 슬기롭게 어루만질’ 알맹이 또한 끝끝내 알아볼 수 없습니다.

― 토머스 페인 유골분실사건 (폴 콜린스 글,홍한별 옮김,양철북 펴냄,2011.2.25./135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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