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미도의 네이팜탄 - 화상과 두려움에 떨고 있는 포로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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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미도의 네이팜탄 - 화상과 두려움에 떨고 있는 포로들
  • 서예림 기자
  • 승인 2020.11.10 15:2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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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in]과 인천문화재단이 함께 하는 온라인 사진전
'인천 사람들이 겪은 6.25전쟁' (4)죽은 병사와 살아남은 포로들
1950년 9월16일, 월미도에서 네이팜탄 화상을 입은 북한군 포로. 얼굴과 손이 이미 시커멓게 그을려 제대로 알아보기 힘들 정도이다.

 

[인천in]과 인천문화재단 문화유산센터가 한국전쟁 70주년을 맞아 10월20일부터 매주 화요일 인천상륙작전과 1.4후퇴 당시 인천의 모습을 담은 사이버 사진전 <인천 사람들이 겪은 6.25전쟁>을 8회에 걸쳐 연재한다. 이번이 네 번째다.

이번 사진전은 서울대학교 사회발전연구소 전갑생 연구원이 미국 국립문서기록관리청에서 수집한 80장에 달하는 인천 사진자료들을 분석한 것으로, 사진 대부분 6.25전쟁 당시 월미도와 인천의 모습을 최초로 공개하는 것이어서 주목된다.

10일 공개하는 사진들은 남한에서 포로가 된 인민군이 고향으로 부쳤으나 가지 못한 편지,  포로수용소에 갇혀있는 생존자와 전사자들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특히 생존자들 중에는 네이팜탄(3,000℃ 이상의 고열폭탄) 피해자들을 포함한 부상자들이 많았다.

네이팜탄은 현대전에서 사라지고 있지만 완전히 규제는 못하고 있다. 적군을 떨게 만들었던 무시무시한 네이팜탄으로부터 이들은 살아남았지만 평생 지울 수 없는 상처와 트라우마에서 벗어날 수 없을 것이다.

 

인민군 박택남의 편지.

 

박택남이 쓴 편지봉투

 

인천에 진주(파견)됐던 인민군 병사들의 기념 사진

 

인천 시내에서 붙잡힌 인민군 포로. 1950년 9월16일 인천상륙작전 당시 인천 시내에서 붙잡힌 인민군 포로를 국군이 호위하고 있는 모습.

 

인천상륙작전 당시 목숨을 잃은 인민군 병사

 

연합군 병사와 인민군 포로. 월미도에서 포로가 되어 발가벗긴 채 두 손을 들고 있는 인민군과 이를 지켜보고 있는 연합군 병사

 

포획된 인민군 포로들. 포획된 북한군 포로들이 한데 모여있다. 대부분 앳된 소년들로 전쟁의 참상을 느낄 수 있다.

 

부상당한 인민군 포로와 총을 들고 뒤따르는 미군.

 

철조망에 둘러싸인 인민군 포로. 인천상륙작전 성공 후 임시로 만든 포로수용소를 시찰하는 연합군 총사령관 맥아더의 모습이다. 인천상륙작전 중 포획한 북한군 포로는 송월동 공터에 철조망을 치고 임시수용소를 만들어 관리했다. 좌상단에 지금은 사라진 송월동 인천전기주식회사 지붕이 보이고 포로 뒤쪽으로 보이는 건물은 철도 관사로 추정된다. 상륙작전 시 포획한 포로는 이후 인천소년형무소로 이감했다.

 

포로수용소의 안과 밖. 북한군 포로수용소롤 사용하던 학익동 소년형무소의 모습. 길게 뻗은 담장 우측이 포로수용소 내부 모습이다.

 

수용소에 수감된 인민군 포로의 모습.

 

북한인민군 포로가 네이팜탄에 화상을 입은 채 해병대에 포획되고 있는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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