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익동 소년형무소에 갇힌 인민군 포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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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익동 소년형무소에 갇힌 인민군 포로
  • 서예림 기자
  • 승인 2020.11.17 15:07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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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in]과 인천문화재단이 함께 하는 온라인 사진전
'인천 사람들이 겪은 6.25전쟁' (5)포로가 된 인민군들
학익동 소년형무소 수감 포로들의 재봉 작업

[인천in]과 인천문화재단 문화유산센터가 한국전쟁 70주년을 맞아 10월20일부터 매주 화요일 인천상륙작전과 1·4후퇴 당시 인천의 모습을 담은 사이버 사진전 <인천 사람들이 겪은 6·25전쟁>을 8회에 걸쳐 연재한다. 이번이 다섯 번째다.

이번 사진전은 서울대학교 사회발전연구소 전갑생 연구원이 미국 국립문서기록관리청에섯 수집한 80장에 달하는 인천 사진자료들을 분석한 것으로, 사진 대부분 6·25전쟁 당시 월미도와 인천의 모습을 최초로 공개하는 것이어서 주목된다.

17일 공개하는 사진들은 1951년 1·4후퇴 때 인천의 포로수용소에 갇힌 인민군 포로들과 철수하고있는 연합군의 모습을 볼 수 있다. 특히 연합군이 포획한 북한포로들 중에는 앳된 학도병들도 있었다. 어렵사리 목숨은 건졌지만 형무소에서 두려움에 떨고 있는 어린 아이들이었다.

기존에 있던 포로 수용소에 수용인원이 초과하자 형무소를 개조해 수용소로 쓰고 있었다. 이곳도 포로들이 넘치자 운동장과 공터까지 대형 천막을 쳐서 형무소를 확대했다. 급기야는 포로 관리가 힘들어지자 폭격으로 파괴된 공장을 임시수용소로 썼다. 제대로 치료도 받지 못했던 포로들은 열악한 시설에서 언제 죽을지 모르는 공포와 추위에서 생존해야만 했다.

 

인민군 포로수용소로 사용되었던 인천 소년형무소. 1937년 조선총독부가 인천 학익동에 건립한 인천소년형무소는 6.25전쟁 당시 북한군 포로수용소로 활용되었다. 마당의 군용천막 주변에 부상당한 포로들이 들 것 위에 눕거나 앉아 있는 모습으로 미루어 천막 안에서 이들을 치료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배구를 하는 포로들. 담장으로 둘러싸인 인천소년형무소 운동장에서 포로들이 배구를 하고 있다.

 

포로수용소의 연합군 군의관과 간호병

 

인천 임시포로수용소에 갇힌 인민군 포로들(1950년 10월1일)

 

상륙정에 탑승하는 연합군 병사. 1.4후퇴 당시 인천항을 떠나는 상륙정에 탑승하기 위해 잔교(부두에서 선박에 닿을 수 있도록 해 놓은 다리 모양의 구조물)를 걷고있는 연합군 병사들. 1951년 1월5일에 촬영된 사진이다.

 

수송선에 짐을 싣고있는 연합군. 1951년 1월5일 철수를 위해 만조 때 인천항에 정박한 수송선에 짐을 싣고 있는 연합군 병사들.

 

인천항을 출발하는 상륙정. 연합군 병사를 태운 상륙정이 인천항을 떠나 수송함으로 향하고 있다.

 

상륙정에 오르는 연합군 지프차. 1951년 1월5일 철수를 위해 인천항 잔교에 정박한 상륙정에 오르고 있는 연합군 지프차

 

수송선에 승선하는 연합군 병사들. 1951년 1월5일 철수를 위해 만조 때 인천항에 정박한 수송선에 오르고 있는 연합군 병사들. 사진 우측으로 폭약을 터뜨릴때 사용하는 도화선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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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용길 2020-11-18 09:00:51
인천과 관련된 숨었던 좋은 자료를 발굴하여 공개하여 주셔 감사합니다.
앞으로도 건강하시고, 꾸준히 활동하시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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