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사람들이 겪은 한국전쟁' - 구술사와 지역사를 연결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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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사람들이 겪은 한국전쟁' - 구술사와 지역사를 연결하다
  • 서예림 기자
  • 승인 2020.11.24 16: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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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문화재단, 한국전쟁 70주년 맞아 학술회의 개최
"인천, 치유와 반성, 진실 규명의 과정 겪으며 평화도시로 거듭나야"

인천문화재단 문화유산센터가 한국전쟁 70주년을 맞아 지난 21일 인천문화예술회관 국제회의장에서 ‘인천사람들이 겪은 한국전쟁, 구술사와 지역사 연계 연구 학술회의’를 열었다.

학술회의에는 울산대 허영란 교수, 시티인천 대표 서은미 사진가, 인하대학교 정민나 교수, 인천사연구소 김상태 소장, 이상의 인천대학교 교수, 서울대학교 전갑생 사회발전연구소 연구원 등 지역사회 연구자 20여명이 참석했다.

코로나19 여파로 학술회의 규모는 축소됐지만 지역사회 연구자들은 ‘인천상륙작전 승리’에 머물지 않고 역사 뒤편에 가려진 다양한 전쟁 경험자들의 기억과 체험에 귀 기울였다.

연구자들은 역사이해의 한계를 극복하고 역사 서사를 확장시키기 위해 전쟁 피해자의 기억과 이야기에 주목했다. 문화유산센터는 이 과정을 거쳐 자료와 연구들을 취합, 정책적인 구술 아카이브를 구축한다.

울산대학교 허영란 교수

기조강연에 나선 허영란 교수는 ‘구술사와 새로운 지역사’를 주제로 발표했다. 허 교수는 “역사교육에서는 자국사가 큰 비중을 차지하며 과거에 대한 자민족 중심의 왜곡된 세계관을 만들어내는 경향이 있다”고 설명했다.

이에 다른 교육들도 중요하지만 역사교육만큼은 학생들에게 다양한 관점의 접근법을 발전시키도록 가르쳐야한다. 허 교수는 “‘지방, 국가, 지역, 세계의 역사’에 대해 적절한 비율을 정해 가르쳐야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새로운 지역사를 통해 기존의 지방사를 비판하고 ‘지방-지역’의 역사를 중층적이고 탄력적으로 이해해야한다”며 “제도와 구조에 집중된 역사연구에서 이탈해 특정 장소와 시기, 다양한 집단과 개인의 경험, 그들의 주관적 가치, 생활세계에 집중해 역사 연구의 범위를 확장해야한다”고 강조했다.

시티인천 대표 서은미 사진가

서은미 사진가는 ‘인천상륙작전에 가려진 비명들’을 주제로 발표했다. 서 대표는 “상륙작전 때 쏟아지는 폭격으로 인민군이 많이 죽어나갔지만 그에 못지않게 무고한 민간인들도 희생됐다”고 밝혔다.

그는 “생존자 송씨 얘기 중에 그 당시에 분만하고 있던 한상렬씨가 폭격으로 즉사하고 지역고문인 홍노마씨는 총살당했으며 송씨 아버지도 총에 맞아 돌아가셨다”며 “전시상황이었지만 비무장 민간인에게 총을 겨누고 군인에게만 해당하는 ‘직결처분권’을 행사해 구금된 민간인을 살해한 행위는 공권력을 남용한 불법행위”라며 생생하게 인터뷰 내용을 풀어냈다.

이어 그는 “국가의 공식사과 및 민간인들의 명예회복 조치가 필요하고 위령사업, 역사기록 수정, 평화인권강화에 힘써야한다”고 말했다.

인하대학교 정민나 교수(시인)

인하대학교 정민나 교수는 ‘미추홀구에서 겪은 한국전쟁 구술채록 사례’를 주제로 발표했다. 정 교수는 “전쟁 피해자들을 만났지만 피해자들이 이념 갈등, 사상 등 불행한 사건에 연루되는 경험을 많이 당해 인터뷰를 피했다”며 “피해자들은 그저 입을 다무는게 상책이라는 고정관념 내지는 통념을 갖고 있는 듯했다.”고 운을 뗐다.

그의 삼고초려 끝에 70년간 금기시 됐던 민간인 피해자들의 참혹한 이야기가 구체적으로 전해졌다. 그는 “처음에 만났던 전쟁 피해자 강씨는 당시 인천여고 학생이었다”며 “여학생들은 병사들의 간호를 맡거나 위문공연을 갔다”고 밝혔다.

그는 “강씨 친구 중 윤차숙이라는 친구가 있었는데 인민군의 눈에 띄어 부역을 했다”며 “나중에는 연합군이 왔을 때 눈앞에서 손발이 묶인 채 친구가 울부짖으며 월미도로 끌려가 총살당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나중에 강씨는 운이 좋게 살아남아 학교를 졸업했는데 입학생 180명 중 90명만 졸업했다”고 덧붙였다.

사단법인 인천사연구소 김상태 소장

김상태 소장은 ‘계양구·부평구·연수구에서 겪은 한국전쟁 구술채록 사례’를 주제로 발표했다. 인터뷰보다는 구술채록 시 질문지를 8명의 전쟁 피해자들에게 주고 답변을 받았다. 김 소장은 “기억하는 6.25전쟁과 주입된 6.25 전쟁에 주목했다”며 “6.25전쟁은 한 사람만의 전쟁이 아니라 일반화해 설명하는 건 그리 간단하지 않다”고 밝혔다.

그는 “구술채록을 통해 이념 갈등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피해자들의 경험을 존중해야한다”고 말했다. 전쟁을 현실적으로 올바르게 인식하기 위해서는 전쟁의 실상을 이데올로기 장악이 아닌 ‘명확한 사실인식’을 위한 배려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는 “진술자들 중에 전쟁 당시 초등학생 신분으로 구체적으로 기억하는 구술자는 없었다”며 “전쟁 당시 생활은 이전과 비교하면 물자 빼고는 특이한 점은 없었고 전쟁 때나 후나 당시대 일반적인 어려움과 별반 차이가 없었다”고 설명했다. 이어 “같은 지역이어도 피해가 심하지 않았던 곳에 거주했다면 어려움에 대한 기억 자체가 없는 사람도 있었다”고 부연했다.

그는 “특별한 사례가 일반화 되어 전체를 호도한는 경우를 조장해서는 안된다”, “전쟁의 모습은 각기 경험한 경우의 수가 다르고 그 경험을 일반화하는데 따르는 오류도 고려해야한다”고 강조했다. 또 “같은 사건이어도 어떤 위치에서 보느냐에 따라 다르게 설명되듯 전쟁을 경험했던 방식과 경우가 다르다는 점을 인식해야한다”고 조언했다.

인천대학교 이상의 교수

이상의 인천대학교 교수는 ‘한국전쟁 구술사 연구와 인천’을 주제로 발표했다. 이 교수는 “자유공원의 맥아더 동상 존치 여부 등 인천에서는 여전히 이념적, 사회적 대립이 선명하다”고 말을 이었다.

그는 “전쟁 피해자들은 6.25전쟁 경험과 그로 인한 아픔은 깊다”며 “아직 다 말하지 못했고 치유과정을 거치지 못했다”고 말했다. 이어 “치유의 시작점은 진실화해위원회의 조사결과물이 되겠지만 조사결과는 신청 수에 비해 진실이 규명된 경우의 비중이 적고 진상규명 불가로 판정된 경우도 있다”고 덧붙였다.

그는 “이런 구술채록 결과물은 유통되기 어렵고 정리되기 어렵다는 한계가 있다”며 “엄정한 비판적 검토를 거쳐 사료가 되도록하고 이걸 활용해 연구가 진행된다면 역사의 진실을 밝힐 열매를 맺을 수 있다”고 당부했다.

이어 “매년 9월15일, 월미도에서는 인천상륙작전을 재현하는 행사가 대대적으로 개최되고 있지만 인천상륙작전 와중에 희생당한 월미도 주민들은 주목받지 못하고 합동 위령제를 거행하고 있다”며 “인천이 치유와 반성, 진실 규명의 과정을 겪으면서 평화도시로 거듭나길 기원한다”고 덧붙였다.

서울대학교 사회발전연구소 전갑생 연구원

서울대학교 사회발전연구소 전갑생 연구원은 ‘강화도·옹진 출신자들의 구술에서 본 한국전쟁의 기억과 경험’을 주제로 발표했다. 전 교수는 특히 인위적인경계선이 있는 육지와 달리 섬은 뚜렷하게 확정되지 않아 다르게 인식되지 않았을까에 주목했다.

그는 “강화도, 옹진군 사람들은 자연적 변경과 인위적 변경을 넘나들었다”, “이들은 전쟁 직후에도 경계선을 뛰어다녔고 분경을 경험하며 피난생활을 경험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섬은 자기 색깔에 맞는 표용력이 표출되지만 막상 내부는 색깔 갈등에 충돌했다”라고 강조했다.

아군들은 옹진군 일대 섬들은 유엔군 사령부와 북한인민군의 중요한 요충지라고 인식해 피난민을 통제했다. 남북한 피난민 관리차원으로 이동, 거주의 제한뿐 아니라 통로를 차단했다.

이어 “생존자들은 파괴된 섬에서 생존해야한다는 절박감이 피난민들의 삶을 바꿔놓았다”며 “차단된 통로, 막힌 교량이 된 섬의 생존자들은 내부 갈등과 사적 기억의 트라우마를 갖고 있는 사람들이다”고 부연했다.

마지막으로 “한국전쟁 70년 강화와 옹진일대 섬사람들은 어떻게 전쟁 고통을 극복할것인지, 국가의 강요된 통제와 교육에서 평화를 통한 교류와 치유가 가능할지, 섬사람들의 사적 기억을 치유할 수 있는 계기와 지속적인 연구를 촉발해야한다”고 강조했다.

국민대학교 김영미 교수

국민대학교 김영미 교수는 ‘2017~2020 서울지역 구술사 콘텐츠 활용 사례’를 주제로 발표했다. 김 교수는 “구술사로 연극을 기획해 연구논문을 쓰는 과정에서 구술사가 소외되는 문제를 극복했다”고 밝혔다.

그는 “구술 자료를 대본화해 재해석이 아닌 구술자의 목소리를 있는 그대로 드러낼 수 있었다”며 “낭독극 형식이라 전문배우가 아니라도 연기가 가능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전쟁 피해자들이 경험한 트라우마들이 재조명되면서 공연이 호평받았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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