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 대목, '상인들 한숨은 깊어져만 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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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 대목, '상인들 한숨은 깊어져만 가고…'
  • 이병기
  • 승인 2010.02.12 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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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 신포동 재래시장을 가다


설 대목이지만 신포시장을 찾는 사람들의 발걸음은 많지 않다.

취재: 이병기 기자

얼마 전 인천시는 '재래시장 12곳의 시설을 현대화한다', '설을 맞아 재래시장 상품권 50억을 판매한다'며 '전통시장' 살리기에 앞장서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정작 시장 안 상인들이 피부로 느끼는 자치단체와 정부의 지원 정책은 아직도 미흡하기만 하다.

또 중소기업청이 발표한 차례상 비용도 전통시장이 대형마트에 비해 20%나 저렴한 것으로 나타났지만, 시민들의 발걸음은 대형마트로 이어진다.

민족 최대의 명절인 설을 앞두고 지난 3일 신포동 재래시장을 찾았다.

신포동에 처음 상설시장이 생겨난 것은 1926년이었다. 개항 이후 항구와 가까워 생활의 중심지였던 신포동은 자연스레 사람들이 모여 시장을 형성했다. 처음 중국인 채소 상인들의 푸성귀전이 자리잡았던 신포시장은 1940년대 후반까지 닭과 계란을 팔던 '닭전'으로 널리 알려졌다.

6.25와 인천상륙작전으로 기존 시가지가 파괴된 후 시장이 들어서면서 인천의 대표적인 재래시장 중 하나로 자리매김해오고 있다. 그러나 지난 2001년 2월 이마트 동인천점이 들어선 후 이곳을 찾는 시민들은 점점 줄어들고 있다.

기대와는 다른 썰렁한 풍경

설 명절을 앞두고 북적북적한 시장 풍경을 상상하며 입구에 들어섰지만, 기대와는 전혀 다른 모습에 안쓰러움이 먼저 든다.

오후 3시경. 도저히 대목 전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시장 안은 썰렁했다. 여느 평일보다도 찾는 손님이 적어 보이는 모습은 그나마 묵묵히 자신의 일을 하는 상인들이 있어 재래시장의 느낌을 전해준다.

인터뷰를 청해도 물건을 판 상인에게 요청하는 것이 낫겠다 싶어 방금 손님에게 사과를 판매한 과일 가게로 들어갔다.

이곳에서 40년 간 자리를 지켰다는 김순옥(67, 가명) 할머니. 처음에는 "난 잘 모르니 젊은 사람들한테 물어봐"라며 손사래를 쳤지만 이내 하소연이 이어진다.

"명절이라 과일을 잔뜩 사 놨어. 추석은 안 돼도 설 과일은 뒀다 팔아도 괜찮거든. 마음놓고 팔기는 하는데 누가 와서 사가지를 않으니 문제지. 우리는 배가 제일 좋은 놈이 3개에 만원, 5개에 만원 해. 백화점에서 파는 것보다 엄청 싼데도 오질 않아. 젊은 사람들이 정신상태가 틀려먹었어. 싼 곳은 놔두고 비싼 곳에서만 사려고 하니 이해가 안 가."

신포시장이 있는 동인천에는 다른 지역에 비해 큰 아파트 단지가 부족한 편이다. 더욱이 인구도 많지 않은 상황에서 이마트까지 들어와 상인들은 더욱 힘든 실정이다.

김 할머니는 말하던 중간에 "우리 막내 같은데 커피나 한 잔 마시고 가라"며 찻물을 올렸다. 이내 물이 끓자 노란색 커피믹스를 종이컵에 붓고 물을 한가득 따라 저어준다.

"공무원들도 정신상태가 글러먹었어. 중구청 사람들 보면 재래시장 상품권 산다 해놓고 와서 물건 사는 꼴을 못봤어. 다른 상인들한테 물어봐도 오지 않았다고 하거든. 제주도나 충청도처럼 지방에서는 자기 고장 물건을 산다고 난리인데 도시 사람들은 그런 게 없어. 2년 전에 한 공무원이 사긴 했었는데, 딴 데 가더니 아무도 안 와."

따스한 커피를 들고 다음 취재를 위해 가게를 나서자 뒤에서 김 할머니의 목소리가 들린다.

"왜 벌써 가. 한갓지게 커피나 다 먹고 가지. 수고했어."

인적 드문 재래시장, 웃음이 없어진다


부부가 함께 전을 부치는 모습은 무척이나 자연스럽다.

신포시장에는 종종 외국인들의 모습도 보인다. 동남아시아계의 노동자와 금발의 외국 여성들이 내국인들을 대신해 장을 본다.

신포동 버스정류장 쪽으로 걸어가다 보니 전 부치는 구수한 냄새가 난다. 모락모락 피어나는 김과 함께 오감을 자극하니 절로 걸음이 멈춰진다.

자판에는 갓 부친 녹두전과 동그랑땡, 동태전 등이 김을 피우며 손님을 기다린다. 한쪽에서는 찜통에 담긴 옥수수 술빵이 팔려나간다. 남편이 녹두전을 맡고 아내가 동그랑땡을 뒤집는 노부부의 모습은 무척이나 자연스럽다. 잠시 아내가 술빵을 팔러 가면 남편은 동그랑땡을 뒤집는다.

"명절 전인데 장사는 좀 어떠세요?"

"아직 우리는 아니야. 설에 임박해야 좀 팔려. 힘들지 뭐. 사람들이 다 대형마트에 가니 재래시장 맛이 안 나. 북적북적하고 그래야 일하면서 웃음도 나고 하는데…. 어떤 사람한테 들으니 저번 주말에는 이마트 계산대에서 한 시간이나 기다렸대. 그만큼 장사가 잘 된다는 거지."

실제로 주말이었던 지난 7일, 동인천 이마트에는 명절을 준비하려는 사람들이 몰려 쇼핑카트를 줄서서 기다려야 하는 상황이 벌어지기도 했다. 매장 곳곳에서는 수많은 명절 선물세트가 한복을 곱게 차려입은 판매사원들에게 판매됐다. 

마트에서 만난 이명연(65, 내동)씨는 "재래시장이 마트보다 가격이 저렴한 것은 알고 있지만, 현금을 줘야 하기 때문에 카드를 사용할 수 있는 마트를 찾게 된다"고 말했다.

최근 대기업들은 대형마트에 만족하지 못하고 골목상권까지 장악하기 위해 가맹점 형식의 SSM을 관내 곳곳에 진출하기 위해 추진중이다. 또한 손쉽게 집에서 상품을 구매할 수 있는 인터넷 쇼핑 역시 재래시장 상인들의 숨통을 조여온다.

1년에 몇 차례 되지 않는 대목이지만, 상인들의 한숨은 깊어져만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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