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진 꿈 앞에서 흔들리는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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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진 꿈 앞에서 흔들리는 사진
  • 최종규
  • 승인 2011.06.29 0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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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찾아 읽는 사진책] 모이제스 사만(Moises Saman), 《Afghanistan, broken promise》

- 모이제스 사만(Moises Saman), 《Afghanistan, broken promise》(CHARTA,2007)

 한국에서 아프가니스탄이라는 나라를 알기란 몹시 어렵습니다. 거꾸로, 아프가니스탄이라는 나라에서 한국을 알기도 매우 힘들겠지요. 한국에서 초·중·고등학교를 다니며 아프가니스탄이라는 나라를 배울 일이란 없습니다. 세계사를 다루는 교과서에서 아프가니스탄 이야기를 얼마나 실을까 궁금한데, 몇 줄쯤으로 이 나라 이야기를 다룰는지요. 몇 줄이든 몇 쪽이든 다루어 준다면 얼마나 찬찬히 들여다보거나 살피거나 헤아리는 눈썰미로 다룰는지요.

 한국사람은 이웃한 일본에서 ‘아이들한테 역사를 엉뚱하게 가르치는 교과서’를 자꾸 만든다며 나무라곤 합니다. 일본에서 정치권력을 거머쥐거나 틀어쥐려는 이들은 ‘역사 비틀기’를 합니다. 그런데 한국에서도 정치권력을 거머쥐거나 틀어쥐려는 이들은 일본 군국주의자하고 똑같습니다. 일본은 ‘일-한 역사 비틀기’를 하고, 한국은 ‘한국사람 여느 역사 비틀기’를 합니다.

 신문에 실리거나 방송에 나오는 아프가니스탄 이야기는 온통 전쟁과 테러와 약탈과 가난과 파병뿐 아닌가 싶습니다. 때때로 ‘여성 권리가 아주 끔찍하다’는 이야기가 떠돌곤 합니다. 아프가니스탄사람도 사랑을 할 텐데, 아프가니스탄사람도 밥을 먹을 텐데, 아프가니스탄사람도 일을 하고 놀이를 즐기며 살아갈 텐데, 옷을 깁고 집을 지으며 동무를 사귈 텐데, 흙을 일구고 꽃을 사랑하며 나무를 돌볼 텐데, 아이를 낳고 늙은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조용히 숨을 거둘 텐데, 숱하디숱한 사람 사는 이야기를 듣기란 참 어렵습니다.

 사진책 《Afghanistan, broken promise》(CHARTA,2007)를 읽으며 생각합니다. 페루 리마에서 태어나 에스파냐 바르셀로나에서 어린 나날을 보내다가 미국으로 건너가서 사진기자나 사진작가로 일하는 모이제스 사만(Moises Saman) 님 사진을 읽으며 생각합니다. 2004년에 《This is War》(CHARTA)를 내놓은 모이제스 사만 님은 싸움이 일어나는 곳에서 아픈 채 살아야 하는 사람과 터전을 사진으로 담습니다. 아픈 사람들이 어떻게 아프고, 슬픈 사람들이 어떻게 슬픈지를 사진으로 조용히 보여줍니다. 아픈 채 살아가고 슬픈 채 살아가는 사람들 이야기를 고즈넉히 들려줍니다.

 사람도 땅도 집도 길도 꽃도 들판도 흔들립니다. 절뚝이면서 흔들리는지 모르고, 울다가 흔들리는지 모르며, 고개를 떨구기에 흔들리는지 모릅니다. 폭탄이 터지며 땅이 흔들리는지 모르고, 탱크가 지나가며 땅이 흔들리는지 모르며, 군인들이 지나가며 땅이 흔들리는지 모릅니다.

 얼핏, 재미나다면 재미나고 무섭다면 무서운 이야기 하나 듣습니다. 미국 정부가 아프가니스탄에 보낸 군인한테 들이는 돈이 ‘군인 한 사람 앞에 해마다 100만 달러’만큼 된다고 하더군요. 2011년 1월부터 5월까지 들인 돈은 1130억 달러라고 합니다. 1억 원이 아닌 1억 달러라 하더라도 어마어마하게 큰 돈입니다. 1억 달러라 하면 1000억 원이 넘으니까요. 1130억 달러라 하면 얼마나 큼지막한 돈이 될까요.

 미국 한 나라가 고작 다섯 달 동안 ‘아프가니스탄이라는 나라 한 곳’으로 보낸 ‘싸움터 군인과 무기와 군사시설’에 들인 돈이 1130억 달러라 한다면, 이제까지 아프가니스탄에서 들인 군사비는 얼마나 되고, 지구별 곳곳에서 들인 군사비는 또 어떻게 될까 끔찍합니다. 지난날 소련이 아프가니스탄에서 들인 군사비는 또 얼마나 될까 생각하면 훨씬 끔찍합니다. 소련에 앞서 아프가니스탄하고 이웃한 나라에서 퍼부은 군사비에다가 서양 나라가 아프가니스탄을 식민지로 삼으려고 들인 군사비는 또 얼마나 될는지 헤아리면 참으로 끔찍합니다.

 미국이며 소련이며 유럽이며, 왜 아프가니스탄에서 이토록 어마어마하게 많은 돈을 들여 군대를 보내어 사람을 죽이고 집을 허물며 땅을 망가뜨릴까요. 이토록 어마어마하게 많은 돈 가운데 1/10000이라도 아프가니스탄 논밭과 살림집과 어린이와 교육에 보태었다면, 아프가니스탄을 비롯해 지구별 평화와 사랑은 얼마나 달라지거나 거듭났을까요.

 사진책 《아프가니스탄, 깨진 다짐》에 나오는 어린이와 어른이 흔들립니다. 아니, 아프가니스탄 어린이와 어른을 바라보는 사진쟁이 손과 눈과 마음이 흔들립니다. 아니, 미국에서 살아가며 미국 언론매체에 보도사진을 보내는 노릇을 하는 ‘페루에서 태어나 에스파냐에서 자란’ 사진쟁이 몸뚱이가 흔들립니다.

 그렇지만, 아프가니스탄사람은 아프가니스탄사람대로 살아갑니다. 슬프면 슬픈 대로 살고 아프면 아픈 대로 삽니다. 슬프거나 아프지만 어김없이 사랑이 꽃피고, 메마르거나 무섭거나 차디찬 땅에서도 새롭게 아이가 태어납니다. 더 나은 시설과 문화와 교육을 누리지 못한다지만, 이곳 아프가니스탄 어린이는 한국 어린이나 미국 어린이하고 똑같이 착한 사랑과 고운 믿음을 온몸으로 예쁘게 맞아들이면서 자랍니다. 다만, 아프가니스탄 어린이가 자라는 길에는 한결 맑은 하늘이나 한껏 푸른 들판보다 번쩍거리는 총칼을 휘두르는 군인에다가 쾅쾅 귀를 울리는 폭탄소리가 익숙할밖에 없으리라 봅니다. 그러면, 탱크나 전투기나 폭탄이 보이지 않는 서울 시내 어린이는 괜찮은지요. 뉴욕 시내 어린이와 도쿄 시내 어린이는 걱정없는지요. 서울과 뉴욕과 도쿄 시내에서 살아가는 어린이는 어떠한 모습을 보고 어떠한 소리를 들으며 어떠한 나날을 보내는지요.

 어른이 일으킨 싸움이 아니라, 돈을 더 많이 벌어들이거나 거머쥐려는 힘센 나라 어른이 벌이거나 부추기는 싸움이 끊이지 않습니다. 사랑을 나누거나 믿음을 북돋우는 데에 돈을 안 쓰고, 전쟁무기 만들거나 살인훈련 받는 군인을 키우는 데에 돈을 끝없이 쓰는 ‘선진강대국’ 어른들이 저지르는 싸움이 그치지 않습니다.

 사진쟁이 한 사람은 참으로 여리디여립니다. 사진 한 장으로 무슨 말을 할 수 있는지 알 노릇이 없습니다. 사진은 온누리를 바꾸지도 못하고, 아픔이나 생채기를 보여주지도 못하며, 눈물이나 웃음 또한 담지 못하는구나 싶습니다. 그저 흔들릴 뿐입니다. 이제나 저제나 얼룩질 뿐입니다. 깨진 꿈이라기보다 깨뜨린 꿈을 찾거나 보듬거나 다스리기에는 너무도 벅찬 아프가니스탄 어린이가 총알 구멍 숱하게 생긴 벽을 바라보며 앉았습니다. 그나마 이 벽은 폭탄을 맞아 송두리째 사라진다든지 무너지지는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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