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이름을 꼭 적어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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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이름을 꼭 적어야 하나?
  • 최종규
  • 승인 2011.08.26 16: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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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삶] 서당개는 책을 읽었나 길들여졌나

ㄱ. 학교이름과 책읽기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 쓴 책을 펼쳐 읽다가 문득 책날개에 적힌 해적이를 들여다본다. “1952년 전라남도 무안에서 태어났고, 목포교육대학과 한국방송통신대학교에서 공부했습니다.”라는 대목이 첫 줄에 나온다. 언제 어디에서 태어났느냐 하는 이야기야 으레 적을 만하지만, 어느 대학교를 마쳤다는 이야기를 꼭 적어야 했을까 궁금하다.

 생각해 보면, 어느 해에 어디에서 태어났는가 하는 이야기도 굳이 안 적을 만하다만, 사랑을 어떻게 받고 꿈을 어떻게 키우며 삶을 어떻게 일구었는가 하는 이야기와 함께 곁들인다면, 나란히 적어도 괜찮을 나이요 고향이라고 본다. 그런데 대학교 이름은 왜 밝혀야 할까. 대학교 이름을 밝힌다면 초등학교와 중학교와 고등학교 이름은 안 밝혀도 될까.

 발자국을 찬찬히 밝히려 한다면 학교이름 적는 일이야 대수롭지 않다. 그렇지만, 몇 줄 안 되는 책날개에 학교이름을 적느라 한두 줄이나 두어 줄을 흘린다면, 정작 책쓴이 삶을 더 깊이 돌아보지 못하도록 가로막는 셈이 아닐까.

 학교가 사람을 얼마나 가르칠까. 학교는 사람을 어떻게 가르칠까. 학교를 다닌 사람은 무엇을 배울까. 학교에서 사람은 어떤 사랑과 꿈과 삶을 배울까. 학교는 사람한테 무슨 책을 읽힐까.
책을 읽는 손이 아름답다면, 지식이나 정보를 얻으려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ㄴ. 서당개 책읽기

 서당개 세 해면 글을 왼다 했습니다. 서당 곁에서 글 외는 소리를 가만히 듣기를 세 해째 지내면 개조차 저도 모르게 서당글을 줄줄 왼다는 소리입니다. 이런 서당개 책읽기를 들며 곧잘 ‘곁에서 지켜보기만 해도 배운다’고들 이야기합니다. 그렇지만, 서당개 책읽기는 책읽기가 아닙니다. 서당개 글외기는 배움 또한 되지 않아요. 뜻이나 느낌이나 생각이 없는 채 기계처럼 줄줄 욀 뿐입니다. 사랑이나 마음이나 꿈이 없는 채 똑같이 따라할 뿐입니다.

 서당개가 논밭개로 바뀐다면, 논밭개는 세 해 뒤에 호미질을 할 줄 알는지 궁금합니다. 논밭개가 바다개로 바뀌면, 바다개는 세 해 뒤에 낚시질이나 그물질을 할 줄 알는지 궁금합니다.

 나는 서당개 책읽기란 아주 무섭다고 느낍니다. 왜냐하면 서당 곁에서 지내는 개조차 세 해가 지나면 ‘좋은지 옳은지 바른지 착한지 참다운지 고운지’를 가리지 않고 글을 외기 때문입니다. 서당개가 외는 글이란 얼마나 좋거나 옳거나 바르거나 착하거나 참답거나 고울까요.

 서당에서 제아무리 좋거나 옳거나 바르거나 착하거나 참답거나 곱다 하는 글을 읽힌다 하더라도 서당개는 좋은 삶을 배우지 못합니다. 옳은 넋이나 바른 매무새나 착한 얼이나 참다운 길이나 고운 몸가짐을 익히지 못해요. 서당 곁에서 세 해 지난 뒤에 글을 외는 개는 다른 곳에 가면 이내 다른 곳에서 흐르는 글에 익숙해집니다. 다른 곳에서 흐르는 글이 궂은지 뒤틀린지 모자란지 그릇된지 어긋난지 따지지 않습니다.

 나는 생각합니다. 우리 아이들을 서당개처럼 키워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나는 생각합니다. 우리 아이들은 서당개가 아닌 집개가 아닌 사람으로 함께 살아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어버이부터 스스로 옳은 길을 걸으면서 옳은 길을 아이가 느끼며 함께 웃고 울도록 이끌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어버이부터 좋은 일을 흐뭇하게 하면서 아이 또한 곁에서 좋은 일을 흐뭇하게 고 조막손으로 조물락조물락 하도록 도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아이들은 일을 하지 않습니다. 아이들은 일을 할 수 없습니다. 아이들은 살아갈 뿐입니다. 아이들이 살아가는 나날에 앞으로 맞아들일 일이나 놀이가 무엇인지를 몸으로 받아들입니다. 어버이 되는 사람이나 어른 되는 사람이나, 또는 교사나 교수나 강사 같은 자리에 서서 가르치는 사람이라면 마땅히 생각해야 합니다. 아이들한테 서당개 책읽기를 시키면 안 됩니다.

 아이들은 곁에서 지켜보거나 구경한대서 배우지 않습니다. 아이들은 저마다 제 몸에 걸맞게 일을 해야 합니다. 아이들은 누구나 저희 몸뚱이에 알맞게 일손을 나누어 맡아야 합니다. 아이들은 몸을 움직여 스스로 겪거나 치러야 배웁니다. 눈으로 지켜보거나 귀로 듣는대서 배울 턱이 없습니다.

 서당개는 책을 읽지 않습니다. 서당개는 책을 읽지 않았습니다. 서당개는 서당글에 길들여졌을 뿐입니다.

 서당개와 같이 길들여지는 오늘날 아이들을 바라보면 참으로 무서울 뿐 아니라 슬픕니다. 학원에 길들고 영어에 길들며 한자에 길들고 수많은 지식교육 그림책과 동화책에 길드는 아이들을 바라보면 더없이 무서우면서 슬픕니다. 왜 아이들하고 함께 삶을 나누지 못하는 어른이 되려고 하는가요. 왜 어버이와 교사 되는 이들은 당신 어버이와 교사 삶부터 참다이 사랑하면서 착하게 살아가는 길을 느끼지 못하는가요.
마음을 담아서 쓰는 글이 엮인 책을, 마음을 담아서 펼친 손으로 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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