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별 어린이를 사랑하는 사진
상태바
지구별 어린이를 사랑하는 사진
  • 최종규
  • 승인 2011.07.07 05:4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찾아 읽는 사진책] 타누마 타케요시(田沼武能), 《地球星の子どもたち》

 - 타누마 타케요시(田沼武能), 《地球星の子どもたち》(朝日新聞社,1994)

 아이가 태어납니다. 아이가 자랍니다. 아이는 어느덧 어른이 되고, 어른이 된 아이는 저처럼 작고 어여쁜 아이를 낳습니다. 작고 어여쁜 아이는 새롭게 태어나고, 이 작고 어여쁜 아이는 어느새 어른이 되어, 다시금 저처럼 작으면서 어여쁜 아이를 낳습니다.

 온누리는 아이가 있기 때문에 이루어집니다. 남녘나라이든 북녘나라이든 아이가 새로 태어나서 자라기 때문에 나라살림을 이룹니다. 일본이든 미국이든 중국이든 다르지 않습니다. 아이가 태어나서 자랄 때라야 비로소 한 나라 살림을 이룹니다. 아이들은 어른처럼 일을 하거나 돈을 벌지 못합니다. 아이들은 오직 놀 수 있을 뿐이요, 어버이한테서 사랑받을 수 있을 뿐인데, 이렇게 여리디여리며 작디작은 아이가 있어야 비로소 어느 나라이든 나라꼴을 갖춥니다.

 잠수함이 없고 군함이 없어도 나라를 지킬 수 있습니다. 아이가 없으면 나라를 지킬 수 없습니다. 군대가 없거나 경찰이 없어도 나라를 돌볼 수 있습니다. 아이가 없으면 나라를 돌볼 수 없습니다. 아파트가 없고 쇼핑센터가 없어도 나라를 사랑할 수 있습니다. 아이가 없으면 나라를 사랑할 수 없어요.

 ‘애국’과 ‘충성’이라는 이름으로 벌이는 나라사랑이 아닙니다. 내 삶을 사랑하고 내 넋을 사랑하며 내 말을 사랑하는 나라사랑입니다. ‘경제개발 역군’이 되자는 나라사랑이 아닙니다. 내 작은 살림집을 사랑하고, 내 살가운 살붙이를 사랑하자는 나라사랑이에요.

 사랑하기 때문에 집에서 밥을 하고 빨래를 하며 비질과 걸레질을 합니다. 사랑하는 아이하고 먹으려고 밥을 합니다. 사랑하는 아이한테 입히려고 빨래를 합니다. 사랑하는 아이하고 오순도순 지내려고 비질과 걸레질을 해서 집안을 말끔히 치웁니다. 오직 사랑이기 때문에 집안에서 일을 하고, 오로지 사랑으로 집안에서 살림을 꾸립니다.

 사진책 《地球星の子どもたち》(朝日新聞社,1994)를 읽습니다. 사진책 《지구별 어린이》는 사진쟁이 타누마 타케요시(田沼武能) 님이 온누리 숱한 나라를 하나하나 찾아다니면서 만난 아이들을 담습니다. 한두 나라 어린이가 아니라 백 나라를 훨씬 넘는 수많은 나라를 찾아다니면서 아이들을 만나고 사귑니다. 가난하다는 나라에도 찾아가 가난하다는 집안 어린이를 만납니다. 가난하다는 나라에서도 제법 잘사는 집안 어린이를 만납니다. 가멸차다는 나라에도 찾아가 가멸차다는 집안 어린이를 만납니다. 가멸차다는 나라에서도 퍽 가난하다는 집안 어린이를 만납니다.

 많디많은 나라 많디많은 어린이를 사진책 하나로 마주하며 곱씹습니다. 다 다른 나라 다 다른 겨레 아이들 웃음꽃은 서로 닮습니다. 다 다른 나라 다 다른 겨레 눈물꽃 또한 서로 닮습니다. 아이들 눈망울은 비슷합니다. 아이들 몸짓은 비슷합니다. 저마다 즐기는 놀이가 다르고, 저마다 낳은 어버이와 키우는 어버이가 다를 테지만, 아이들 살림살이는 엇비슷합니다.

 가난한 나라에서 살아간대서 더 불쌍해 보이거나 안쓰러워 보이지 않습니다. 싸움이 끊이지 않는 나라에서 지낸대서 다 가엾게 보이거나 딱해 보이지 않습니다. 어쩌면, 싸움이 일어나지 않을 뿐더러, 나라살림이 넉넉해서 돈 걱정이나 배곯이 걱정이 없는 곳에서 지낸다 하는 아이들이 외롭거나 심심하거나 갑갑할는지 모릅니다. 주어진 틀에 따라 학교를 다녀야 하고, 시키는 틀에 따라 시험을 치러 자격증이나 졸업장을 거머쥐어야 하는 아이들이 훨씬 외롭거나 심심하거나 갑갑한데다가 고단할는지 모릅니다.

 타누마 타케요시 님은 그저 아이들을 마주합니다. 이 아이들 차림새를 살피면 한눈에 이 아이가 살아가는 집안살림이 어떠한지 헤아릴 만합니다. 그런데 ‘집안살림 = 돈 크기’가 아니에요. 돈이 없으면 없는 대로 즐겁거나 오붓하게 지내는 집안이 있습니다. 돈은 있으나 돈만 넘치게 쓸 뿐, 기쁨이나 애틋함하고는 동떨어진 집안이 있어요.

 집식구가 ‘집안일’과 ‘집밖일’만 한다면, 이러한 집에서 살아가야 할 아이들은 끼니를 굶을 근심이 없더라도 마음속에 사랑이 피어나지 못합니다. 집식구가 집안일과 집밖일을 알맞게 나누어 서로서로 살뜰히 맡으면서 집안살림과 집밖살림을 알뜰히 여민다면, 이러한 집에서 지내는 아이들은 가슴속 깊이 사랑씨를 뿌립니다. 아이들 웃음꽃이란 아이들을 낳아 함께 살아가는 어버이가 뿌린 사랑씨에서 비롯합니다. 아이들 눈물꽃이란 아이들을 보살피며 함께 지내는 어버이가 뿌린 미움씨에서 비롯해요.

 새삼스레 《지구별 어린이》를 거듭 넘기고 다시 펼치면서 생각합니다. 사진쟁이 타누마 타케요시 님은 지구별에서 가 보지 않은 나라가 없겠지요. 모든 나라 모든 아이를 마주하며 사귀었을 텐데, 아마 어느 나라 어느 아이를 만나더라도 아이들 낯빛과 사랑빛과 눈물빛은 매한가지로구나 하고 느끼리라 생각합니다. 더 많은 나라로 찾아가서 더 많은 아이들을 만나지 않더라도 아이들 맑은 눈빛을 만날 수 있습니다. 더 가난하거나 더 ‘두메’라 하는 데까지 찾아가야 아이들 밝은 웃음빛을 만날 수 있지 않아요. 일본 사진쟁이로서는 일본에서 얼마든지 만나는 맑은 눈빛과 밝은 웃음빛입니다. 한국 사진쟁이라면 한국에서 얼마든지 만날 맑은 눈빛과 밝은 웃음빛일 테지요. 타누마 타케요시 님은 일본부터 한국이나 중국이나 대만을 거쳐 지구별을 샅샅이 밟습니다. 그런데 어느 나라 어느 겨레를 찾아가서 아이를 만나더라도 아이는 아이답습니다. 그러니까 “지구별 어린이”가 아닌 “일본 어린이”가 되어도, 또 “일본 훗카이도 어린이”가 되어도, 또 “우리 집 내 아이”가 되어도 맑은 눈빛과 밝은 웃음빛은 똑같습니다.

 사진은 언제나 나한테 있습니다. 사진감과 사진말과 사진꽃과 사진빛과 사진뜻과 사진값과 사진꿈은 늘 내 가슴속에 있습니다. 나를 보고 내 삶을 볼 때에 내가 걸어갈 사진길을 깨닫습니다.

책에 실린 마지막 사진은 '체르노빌' 어린이입니다. 아마, 이 어린이는 얼마 못 살고 흙으로 돌아갔겠지요.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시민과 함께하는 인터넷 뉴스 월 5,000원으로 소통하는 자발적 후원독자 모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