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여쁜 자연과 살아가며 어여쁜 사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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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여쁜 자연과 살아가며 어여쁜 사진을
  • 최종규
  • 승인 2011.07.15 06:5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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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책 읽는 삶] 호시노 미치오, 《숲으로》

 아름답구나 하고 느낄 만한 사진을 찍다가 곰한테 목숨을 앗긴 일본 사진쟁이 호시노 미치오 님 사진이야기 《숲으로》(진선출판사,2005)를 천천히 읽습니다. 먼저 혼자 읽고 나서 아이를 무릎에 앉히고 함께 읽습니다. 아이는 제 아버지처럼 사진을 읽지 않습니다. 그러나 아이는 아이답게 사진을 읽습니다. 아이 눈에 익숙한 모습이 나오면 금세 알아채고, 아이 눈에 낯선 모습이 나오면 “이게 뭐야?” 하고 묻습니다. 모르니까 묻고, 궁금하니까 묻습니다.

 호시노 미치오 님이 곰한테 목숨을 앗겼다는 이야기를 들은 사람들은 ‘호시노 미치오답게 숨을 거두었다’고들 말하곤 합니다. 글쎄, 어찌 보면 호시노 미치오 님답다 할 테지만, 곰곰이 살피면 호시노 미치오 님답지 않을 수 있어요. 어떻든, 호시노 미치오 님은 곰이 살아가는 터전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살며시 깊은 숲에 발자국을 남기면서 사진을 찍었어요.

 어린이 사진책 《숲으로》는 “숲이 들려주는 수많은 이야기(30쪽).”를 담습니다. 사진으로 이야기를 담고, 글로 이야기를 담습니다. 이 지구별 거의 모든 사람은 밟을 수 없는 곳을 스스로 힘껏 밟으면서 사진을 찍은 호시노 미치오 님인 터라, 당신 아니면 찍을 수 없으며, 당신 아니면 보여주기 어려운 모습을 사진으로 보여줍니다.

 그렇지만, 호시노 미치오 님 아니면 찍을 수 없다 싶은 모습이라서 사진책 《숲으로》가 빛나지 않습니다. 누구라도 호시노 미치오 님처럼 곰과 곰 보금자리를 사랑하는 넋이 되어 숲으로 깊이 들어서면, 이 사진책처럼 아름다이 빛나는 사진을 얻어서 나눌 수 있어요. 다만, 호시노 미치오 님처럼 곰을 사랑하면서 숲으로 발을 한 발 두 발 살며시 디딘 사람이 몹시 드물 뿐입니다.

 호시노 미치오 님이 깊은 숲이 아닌 일본 도쿄 한복판에서 사진을 찍었더라도 《숲으로》와 마찬가지로 아름답다 싶은 사진을 일구었으리라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아름다운 곳을 찍었기에 아름다운 사진’이 아니라 ‘아름다운 삶을 아름다운 눈길로 아름다이 바라보면서 아름답다고 느끼는 가슴이 한껏 벅차오를 때에 아름다운 마음결이 되어 찍은 사진’이기 때문입니다.

 아이한테 조곤조곤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네 살 아이한테 “나무와 이끼, 그리고 바위와 쓰러진 나무들이 서로 의지해서 살아가는 숲은 하나의 거대한 생명체입니다 … ‘만일 곰이 다가오면, 그땐 조용히 길을 비켜 주면 될 거야.’ 그런 생각마저 들었습니다(15쪽).” 같은 글을 읽힌대서 아이가 이 글을 잘 헤아려 주기란 어려울 수 있어요. 살짝 말을 바꾸어 읽습니다. ‘나무와 이끼와 바위와 쓰러진 나무가 서로 기대어 살아가는 숲은 커다란 목숨입니다. 곰이 나한테 다가오면 그때에는 조용히 길을 비켜 주면 되겠지 하고 생각합니다.’ 아이는 아버지가 읽는 글을 아는지 모르는지 반짝반짝 빛내는 눈망울로 사진을 말끄러미 바라봅니다. 아름다운 사진을 바라보는 아름다운 아이 눈망울이 빛납니다.

 “쓰러진 나무 위에는 다람쥐가 먹다 버린 등자나무의 열매 껍질들이 흩어져 있습니다. 동물들도 자연의 길로 다니고 있었던 것입니다. 나는 숲 속의 다람쥐가 된 기분으로 쓰러진 나무 위를 걸었습니다(18쪽).” 같은 글을 읽히면서, 아이 아버지부터 마음이 좋습니다. 다람쥐도 곰도 사람도 똑같이 자연이라는 숲길을 걷습니다. 우리가 걸어갈 길은 바로 이곳, 숲길이에요. 찻길이 아닌 숲길을 걸어야 하고, 시멘트길이 아닌 흙길을 걸어야 해요.

 두 아이 아버지로서 생각합니다. 나는 자가용을 몹시 싫어할 뿐 아니라, 자가용을 타고다니면 글을 쓸 수 없고 그림을 그릴 수 없으며 사진을 찍을 수 없다고 느껴요. 글을 쓰거나 그림을 그리거나 사진을 찍는 사람은 자가용을 타지 않고 몰지 않으며 장만하지 않는다고 느껴요. 두 다리로 이 땅을 사랑하고, 두 손으로 동무를 사랑하며, 온몸과 온마음으로 제 삶을 사랑하는 사람이 될 때에 바야흐로 글을 쓰거나 그림을 그리거나 사진을 찍는다고 느껴요.

 이리하여, 아이한테 “일생을 마친 수많은 연어들이 강물에 떠내려오고 있었습니다. ‘연어가 숲을 만든다.’ 알래스카 숲에 사는 인디언들의 속담입니다. 알을 낳는 사명을 다하고 죽은 연어들이 떠내려오며 숲에 영양분을 준다는 뜻이지요. 나는 살며시 개울을 떠나 다시 숲 속으로 들어갔습니다(27쪽).” 같은 글을 읽고 사진 몇 장 더 넘긴 뒤 책을 덮으면서 따사로운 넋으로 다시 태어나는 느낌입니다.

 사진이란 이처럼 아름다운 이야기입니다. 글이란 이와 같이 아름다운 삶자국이에요. 덧바르거나 꾸민대서 아름다운 얼굴이 되지 않아요. 옷을 입히거나 이름을 붙인대서 아름다운 사람이 되지 않아요.

 착하게 살아가면 누구나 아름다운 사람입니다. 참다이 어깨동무하면 저마다 아름다운 삶이에요.

 아이들한테 좋은 그림책을 읽혀야 합니다. 아이들한테 좋은 그림책을 읽히기 앞서 어른 스스로 좋은 그림책을 읽어야 합니다. 아이들한테 좋은 이야기책을 읽혀야 합니다. 아이들한테 좋은 이야기책을 읽히기 앞서 어른부터 기쁘게 좋은 이야기책을 읽어야 합니다. 아이들한테 좋은 사진책을 읽혀야 합니다. 아이들한테 좋은 사진책을 읽히겠다면 어른들이 꾸준히 좋은 사진책을 예쁘게 장만해서 예쁘게 건사해야 합니다.

 호시노 미치오 님은 곰한테 목숨을 앗긴 사람이 아니라, 자연스러운 숲에서 자연스레 숲사람으로 지내다가 자연스러이 숲으로 돌아갔습니다.


― 숲으로 (호시노 미치오 사진·글,김창원 옮김,진선출판사 펴냄,2005.8.16./8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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