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려달라는 새벽 응급실의 비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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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려달라는 새벽 응급실의 비명
  • 이세기
  • 승인 2022.04.29 06:5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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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세기의 손바닥소설 - 북창서굴]
(5) 응급실
이세기 시인의 장편(掌篇)소설 '북창서굴'을 격주로 연재합니다. 손바닥 크기 분량의, 산문도 되고 소설도 되는 '이세기의 북창서굴'은 격주로 연재하지만 매회 독립적인 내용으로 엮어갑니다. 인천의 도시 골목에서 일어나는 애잔하고 쓸쓸하며, 때로 아름답기도 한 우리 주변의 이야기들입니다. 

 

응급실

특별한 경험인지 모르겠다.

새벽 무렵 느닷없이 어지럼증이 도져서 대학병원 응급실을 찾았다. 이석증을 앓고 있는 터라 날이 밝으면 이비인후과에 가려 했지만, 자정부터 시작해 새벽까지 어지럼증이 심해지자 혹시 뇌졸중이 아닌가? 지레 겁을 먹고 응급실에 갔던 것이다. 몇 차례 구토를 하고 어지러움으로 기진맥진하여 침대에 눕지도 앉지도 못한 채 있는데 난데없이 응급실이 생난리가 났다.

아이고 엄마, 엄마 살려줘.

웬 팔십이 훨씬 넘은 머리가 허옇게 센 노인이 금방 숨이 넘어갈 목소리로 엄마 살려줘, 라며 귀청이 찢어지게 같은 말을 되풀이했다. 으레 응급실에 살고자 왔으니 그럴 만도 했다.

엄마 조그만 참아.

옆에서 달래는 잠바때기를 한 사내는 육십 초반쯤 되어 보였다. 사내는 연신 엄마라고 부르는 노인에게 역시 엄마를 부르며 참으라며 애원하듯 같은 말을 되풀이했다. 그러다 어린아이 다루듯 애절하게 노인에게 말했다.

엄마 내가 누군지 알아? 아들이야 아들, 알지?

아이고, 엄마, 엄마 살려줘.

하지만 노인은 오로지 엄마만 찾았다. 저 나이에도 몸이 아프면 엄마를 찾는구나. 죽음 앞에 신을 갈구하며 외치는 것을 상상한 나로서는 뜻밖의 상황이 여간 흥미롭지 않았다. 엄마를 찾는 노인의 목소리가 가라앉자, 사내는 곧 퇴원 조치를 해달라고 요구했다.

응급실 의사는 맥이 느려서 좀 더 경과를 살펴봐야 한다며 소견을 피력했다. 노령이라서 위험 상황에 빠질 수 있다는 의사의 진단에도 불구하고 사내는 막무가내였다.

우리 어머니는 지금까지 다녔던 의료원으로 가야 한다고요. 119를 불러줘요.

그쪽 응급실에 자리가 없다고 하잖아요.

의사의 거듭된 해명에도 사내의 하소연은 끈질겼다.

보내달라니까요.

잠시 쉴 틈도 없이 퇴원을 거듭 요청하다 급기야는 애처롭게 호소하며 의사에게 말했다.

병원비가 많이 나오니까, 여기에서 멈추고 퇴원 조치해 주세요.

자가 호흡에 문제가 있으니, 좀 더 지켜봐야 합니다. 의사의 말을 들었으면 합니다.

의사 역시 곤혹스러워했다.

이젠 괜찮으니까 제발 퇴원하게 해주세요.

병원비가 문제가 아니지 않습니까? 벌써 응급의료비는 다 나왔어요. 잠시 지켜보시죠.

병원비가 더 들잖아요.

사내는 바짓가랑이라도 잡을 것처럼 줄기차게 의사에게 졸라댔다. 이 끈질긴 요구에 노모의 아슬한 응급 상황보다 사내의 잇따른 퇴원 요구가 더 위급해 보였다. 그야말로 설왕설래다. 의사도 난감해하면서 의학적 소견으로 설득하려 무진히 애를 쓰는 것이 역력했다.

제발, 퇴원시켜 달라니까요! 사내는 언성을 높였다. 절절하고 단호했다.

죽어도 집에서 죽게 해주세요!

의사의 역할을 포기하라는 말인가요?

사내와 의사의 옥신각신하는 실랑이는 결국 사내가 의료 조치에 대한 문제를 제기하지 않겠다는 서약을 하고서야 끝이 났다. 그런데 그것도 잠시 이번엔 노모를 데리고 집에 가는 이동 문제로 언쟁이 시작됐다.

의사를 믿지 못하나요?

그런 게 아니라니까요. 어머니는 내가 잘 안다니까요.

의사는 만일의 사태를 대비해 사설 응급차를 불러 집에 가라 권유했지만, 사내는 아랑곳하지 않고 극구 본인의 차량으로 이동하겠다고 했다.

응급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니까요!

제가 알아서 할게요.

사내는 수긍하지 않고 결사적으로 대꾸했다. 그러곤 차를 가지러 집에 갔다. 그사이 엄마를 찾던 노인은 지칠 대로 지쳐 소리를 낼 기력마저 잃고 이내 잠이 들었는지 조용해졌다.

응급실 의사들이 반개의 눈과 몸으로 파김치가 되어 졸음과 싸우고 있고, 나 역시 돌발성 증상과 싸워야 했다. 어지러움이 반복되는 터라 잠시라도 자세와 머리 위치만 바꿔도 구토증세가 심해 좀처럼 잠을 잘 수가 없었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상체를 반쯤 세우고 눕지도 못한 채, 어지러움이 드라마틱하게 수그러들기만을 기다렸다. 노인도 지쳤을까, 발작적인 엄마 찾기가 잦아들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뿐 다시 어린아이와 같은 잠꼬대 소리가 새어 나왔다.

아이고, 엄마, 엄마 살려줘.

노인은 마지막 혼쭐을 붙잡고 또 엄마를 찾기 시작했다. 몸이 아픈 것인지 아니면 잠결에 무심코 내뱉는 소리인지 모르겠으나 노인의 헛소리가 응급실 곳곳에서 터져 나오는 신음과 함께 바닥으로 낮게 떨어졌다.

그 사이 사내의 처가 왔다. 전화기 너머로 차를 가지러 간 남편의 술 취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사내는 기분이 몹시 상하여 목소리에 잔뜩 뿔이 나 있었다. 둘 사이에 일과를 가지고 말다툼이 오갔다. 그러다 잠시 시간이 흐르자 사내의 처는 침대를 양손으로 붙들고 낮은 목소리로 노인에게 귓속말하는 소리가 들렸다.

제발, 이제 그만 돌아가세요.

하며 안간힘을 쓰면서 원망 섞인 소리를 내는 것이 아닌가. 철제침대가 삐걱거리며 흔들렸다. 이윽고 사내의 처는 이렇게 사느니 죽는 편이 낫다며 자신의 가슴을 주먹으로 냅다 쥐어 박았다.

그것참, 저러다 혼절이라도 하면 어쩌라고, 내심 걱정이 들었다.

건물 청소원으로 살아가는 사내와 식당에서 설거지 일을 하는 처의 젖은 목소리가 금세라도 뛰쳐 달아날 것처럼 밤의 그늘에서 웅크리고 있었다. 창밖 어둠 속으로 푸른 새벽이 토막 나듯 적막하게 달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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