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하나에 서리는 기쁨과 슬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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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하나에 서리는 기쁨과 슬픔
  • 최종규
  • 승인 2011.09.02 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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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책] '달팽이' 책을 읽으며

ㄱ. 달팽이 책읽기

 나는 내가 읽고 나서 좋았다고 느낀 책을 덮으면, 나 스스로 참 좋구나 하고 느낀 넋으로 좋은 사랑을 담는 느낌글을 씁니다. 이와 함께, 내가 읽으며 참 얄궂구나 싶은 책이 있을 때에는, 이 얄궂구나 싶은 책을 바라보는 슬프며 괴로운 느낌글을 쓰고야 맙니다.

 달팽이는 빨간 열매를 먹으면 빨간 똥을 눕니다. 달팽이는 푸른 잎사귀를 먹으면 푸른 똥을 눕니다. 달팽이는 노란 꽃을 먹으면 노란 똥을 눕니다. 사람도 무엇을 먹느냐에 따라 똥빛과 똥내와 똥꼴이 달라집니다. 어디에서 무엇을 하며 누구랑 이웃으로 지내느냐에 따라 말과 글과 넋과 꿈이 달라지겠지요.

 빨간 열매를 먹고 나서 하얀 똥을 누기를 바랄 수 없고 바라서도 안 되는데, 어떠한 책을 읽더라도 어떠한 사람을 마주하더라도 어떠한 일을 겪더라도, 내 몸에서 샘솟는 웃음과 눈물을 사랑말과 믿음글로 가다듬을 수 있는 삶이 되자고 새삼스레 다짐합니다. 내 책읽기가 사랑읽기로 거듭나고, 내 글쓰기가 사랑쓰기로 새로워질 수 있기를 꿈꿉니다.

ㄴ. 오토바이 책읽기

 어릴 적 처음 오토바이를 타던 날을 떠올립니다. 동네 아저씨는 동네 아이들을 하나둘 오토바이에 태워 경인고속도로 들머리에 깃든 집부터 송도유원지까지 태워 주었습니다. 요즈음 이 길에는 신호등이 몇 군데 생겼으나 1980년대 끝무렵까지 송도유원지로 가는 길에는 건널목이고 신호등이고 하나도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송도유원지까지 가는 길은 오른쪽으로 바다가 보이는 갯벌이요, 이 바닷가에는 여러 겹으로 쇠가시그물을 세워 군인이 지키고 섰거든요. 자동차이든 자전거이든 사람이든 이 길에서는 멈추어서는 안 되었습니다.

 동네 아저씨 오토바이에 얻어타며 송도유원지를 다녀오는 길에 눈을 뜨지 못합니다. 너무 빨라서 앞을 볼 수 없습니다. 아저씨는 오토바이를 몰며 어떻게 앞을 볼 수 있는지 놀랐습니다. 40, 60, 80, 속도계 바늘은 자꾸 올라가고, 바늘이 올라갈수록 눈을 감은 채 달려야 했으며, 머리카락이 뽑힐까 걱정스럽기까지 할 만큼 아팠습니다.

 오토바이를 타면 오르막을 오르막이라 느끼지 않으면서 올라갈 수 있습니다. 오토바이를 타면 오르막에서도 시원하게 바람을 쐬면서 땀 한 방울 흘리지 않을 수 있습니다. 자동차를 탈 때에도 이와 똑같겠지요.

 오토바이를 모는 사람은 오르막이 얼마나 고단한지 알 수 없습니다. 오토바이가 오르막을 땀 한 방울 안 흘리며 오를 때에는 배기가스를 더욱 짙고 구리게 내뿜습니다. 자전거로 오르막을 오르거나 두 다리로 오르막을 오르던 사람은 오토바이가 옆에서 지나갈 때에 숨이 막히면서 재채기가 납니다. 오르막을 오르는 자전거나 두 다리는 땀을 뻘뻘 흘리면서 헉헉거리는데, 오토바이가 더 짙고 구리게 내뿜는 배기가스 때문에 숨까지 막히며 재채기가 나니 죽을맛입니다.

 오토바이는 오르막을 지나 내리막에 이르면 더 빠르게 내달립니다. 오토바이를 타면, 오르막에서 땀을 안 흘리며 시원하게 바람을 쐬고 내리막에서 내리막이 얼마나 고마우며 시원한가를 느끼지 않으면서 그냥 찬바람을 잔뜩 쐽니다.

 나는 우리 집 아이가 오토바이를 타기를 바라지 않습니다. 우리 집 아이가 오토바이를 함부로 얻어서 타지 않기를 바랍니다.

 나는 우리 집 아이가 책을 더 빨리 많이 읽기를 바라지 않습니다. 우리 집 아이가 남보다 책을 더 빨리 많이 읽기보다는, 아이 손에 굳은살이 더 단단히 박히고 아이 다리에 힘살이 더 튼튼히 오르면서, 이 땅을 씩씩하게 디딜 수 있기를 바랍니다.

 나는 우리 집 아이가 더 좋다 할 만한 책을 더 손쉽게 알아채거나 받아들이거나 물려받아 책읽기를 즐기는 삶을 바라지 않습니다. 우리 집 아이가 제 몸뚱이를 움직여 일하는 고단한 보람과 일을 마친 힘겨운 웃음과 눈물을 고이 받아들이면서 책 하나에 서리는 기쁨과 슬픔을 달콤하면서 쌉싸름하게 맞아들일 수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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