웅덩이를 밀어내고 아파트 세우는 나라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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웅덩이를 밀어내고 아파트 세우는 나라에서
  • 최종규
  • 승인 2011.08.16 06: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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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책이 좋다] 윤봉선·황보연, 《웅덩이 관찰일기》

 그림책 《웅덩이 관찰일기》(웅진주니어,2007)는 웅덩이를 가만히 지켜본 이야기를 어린이 눈높이에 맞추어 알맞게 풀어서 적고 그린 이야기책입니다. 초등학교 3·5·6학년 과학 교과서에 맞추어 여러 가지 자연 이야기를 알기 쉽도록 보여준다고 할 만합니다.

 생각해 보니, 어린 날 국민학교를 다니면서 자연 교과서에서 여러 가지 이야기를 많이 들었습니다. 다만, 이런 이야기들은 시험을 치를 때에 알뜰히 외워서 빈틈없이 맞추도록 했기 때문에 골이 아팠습니다. 숲이나 들이나 멧자락에서 웅덩이나 늪을 찾아다니며 뭇 목숨을 즐거이 찾아보거나 살피거나 함께 놀도록 이끄는 이야기는 없었어요.

 먹이사슬을 다루는 교과서입니다. 먹이사슬에 따라 누가 아래에 있고 누가 위에 있는가를 보여주는 교과서입니다. 사람은 먹이사슬에서 어디에 있는가를 살피는 교과서입니다. 사람들이 많이 모여 살아가는 도시라는 곳은 먹이사슬이 끊어지거나 사라진 지 오래인데, 아이들로서는 몸소 겪거나 보거나 느낄 수 없는 이야기를 들려주는 교과서입니다.

 그림책 《웅덩이 관찰일기》는 웅덩이를 가만히 살펴보면 얼마나 많은 목숨들이 얼마나 알뜰히 엮이거나 얽히는가를 알 수 있다는 이야기를 다룹니다. 누가 무엇을 잡아먹고, 누가 누구한테 잡아먹히는가를 보여줍니다. 웅덩이는 어떠한 터전이며, 이러한 웅덩이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가를 밝힙니다.

 다만, ‘웅덩이 살펴보기’를 보여주면서 웅덩이를 왜 살펴야 하는가를 보여주지는 못합니다. ‘웅덩이 살펴보기’를 밝히면서 웅덩이는 어디에 어떻게 있는가를 밝히지는 못합니다.


.. 바람이 불어 멸구가 물 위로 떨어지자, 다리가 긴 소금쟁이가 재빨리 달려와 멸구를 잡아먹었어요. 곧 작은 박새가 날아와 소금쟁이를 낚아챘어요. 박새가 소금쟁이를 물고 달아나는데, 이번에는 커다란 새매가 나타나 박새를 채어 쌩하니 숲으로 날아갔어요 … 동물은 스스로 영양분을 만들지 못해서, 식물이나 다른 동물을 먹고 살아요. 그래서 동물을 ‘소비자’라고 한대요. 나도 밥과 고기, 채소를 먹고 사는 소비자예요 ..  (4∼6, 10쪽)


 그림책 《웅덩이 관찰일기》가 나쁘다거나 모자라다고는 느끼지 않습니다. 그저, 교과서 과학 학습 틀에 매이지 않을 수 있으면 한결 어여쁘면서 사랑스러우리라 생각합니다. 웅덩이를 살펴보자는 그림책이라면, 맨 먼저 웅덩이가 어디에 어떻게 얼마나 있는가를 보여주어야 합니다. 오늘날 웅덩이가 얼마나 줄었고, 웅덩이가 있던 자리는 어떻게 달라졌는가를 밝혀야 합니다.

 그런데, 웅덩이 얼거리를 보여주거나 밝힌다 해서 아름답게 빛날 그림책으로 마무리되지는 않습니다. 왜냐하면, 웅덩이는 수많은 목숨들이 어우러지는 삶터이면서, 아이들한테는 재미난 놀이터가 되거든요.

 냇물에서 여러 목숨붙이를 살펴볼 수 있겠지요. 들판과 논에서 온갖 목숨붙이를 들여다볼 수 있겠지요. 그러나, 냇물에서는 냇물놀이를 즐기면서 여러 목숨붙이를 살펴보아야지요. 냇물에서 신나게 놀 수 있도록 냇물을 알뜰히 건사하거나 보듬으면서 이곳 목숨붙이를 들여다볼 수 있어야지요.

 들판과 논에서도 이와 마찬가지예요. 들판과 논이 어떠한 곳인가를 차근차근 느끼면서 이곳에서 숱한 목숨붙이를 하나하나 받아들이도록 이끌어야 아름다운 그림책으로 마무리됩니다. 지식을 다루거나 정보를 드러낸대서 ‘괜찮은 과학 그림책’이나 ‘볼 만한 지식 그림책’이 될 수 없어요.

 아이들이라면 웅덩이를 보았을 때 맨발이든 긴신을 신었든 첨벙첨벙 뛰어들어야 걸맞거든요. 물을 만지고 흙을 만지면서 햇볕을 즐겨야 아이들이라 할 만하지 않을까 궁금합니다.


.. 며칠 동안 웅덩이에서 관찰한 동물들의 먹이를 그림으로 그려 보았어요. 이번에는 거미줄처럼 복잡하게 얽혔어요. 동물들이 한 가지만 먹는 것이 아니라 여러 먹이를 먹기 때문이에요 … 고라니, 토끼, 풀벌레들이 풀을 먹는 것도 보였어요. 그런데 갑자기 걱정이 생겼어요. 동물들이 풀을 다 먹어 버리면 어떡하지? ..  (22, 26쪽)


 그림책 《웅덩이 관찰일기》는 책이름부터 ‘관찰일기’로 못박았으니까 어쩔 수 없는지 모릅니다. 그렇지만, ‘살펴보는 일기’라 하더라도, 놀면서 살필 수 있습니다. 살펴보는 일기이니까, 웅덩이에서 재미나게 놀면서 실컷 살필 수 있어요.

 사랑하는 사람을 가만히 살펴보기만 하면서도 사랑할 수 있겠지요. 맛난 밥을 가만히 살펴보기만 하면서도 밥을 먹을 수 있겠지요. 참말로, ‘살펴보기’란 곰곰이 헤아리면서 들여다보는 일이 돼요. 참말, ‘살펴보기’란 여태껏 잘 모르거나 잘못 알던 일을 바로잡는 노릇을 해요.


.. 나는 웅덩이를 관찰하면서 여러 동물과 식물이 먹고 먹히면서 살아간다는 것을 알게 됐어요. 작은 풀 한 포기에서 커다란 동물까지 보이지 않는 끈으로 서로서로 이어져 있는 거예요  ..  (30쪽)


 오늘날 어른과 아이가 살아가는 숱한 아파트는 바로 웅덩이를 밀고 지었습니다. 아파트가 선 땅은 바다였고 멧자락이었으며 냇물이었고 논밭이었습니다. 아파트는 갯벌에도 서고 모래땅에도 섭니다. 아파트는 가난한 사람들 살림집이 다닥다닥 모인 동네를 밀어내며 서기도 합니다. 아파트는 능금나무 복숭아나무 배나무가 우거지던 과일밭을 밀어내며 서기도 합니다. 아파트뿐 아닙니다. 기찻길이든 고속도로이든 똑같습니다. 이웃사람이 조용히 살던 호젓한 터를 밀며 짓는 아파트이고 공장이며 기찻길인 한편 고속도로입니다. 숱한 크고작은 짐승과 벌레와 푸나무를 짓밟아 죽인 자리에 세우는 도시예요.

 ‘웅덩이 살펴보기’는 어디에 어떻게 살아남은 웅덩이를 누가 어떻게 살펴보는 일이 될까 궁금합니다. 웅덩이를 살펴보기 앞서하고 웅덩이를 살펴보고 난 다음, 어른과 아이 삶은 어떻게 바뀌거나 거듭날는지 궁금합니다. 웅덩이를 밀어 공원이나 체육관이나 극장이나 쇼핑센터나 학교나 공공기관을 세우는 일이 누구보다 우리 사람한테 얼마나 도움이 되거나 즐거운 삶이 될는지 궁금합니다.

― 웅덩이 관찰일기 (윤봉선 그림,황보연 글,웅진주니어 펴냄,2007.1.10./85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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