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평의 영롱한 그라운드, 신트리공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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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평의 영롱한 그라운드, 신트리공원
  • 유광식
  • 승인 2022.11.21 16: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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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유람 일기]
(92) 부평4동 신트리공원 일대 - 유광식/ 시각예술 작가

 

신트리공원 표식, 2022ⓒ유광식
신트리공원 표식, 2022ⓒ유광식

 

산에 한번 가야겠다는 계획은 수포로 돌아갈 듯 단풍 물드는 속도가 빨라졌다. 어떻게 하면 가을에 온몸을 적실 수 있을지 고민하다가 겨울을 꽁꽁 껴입는 것 같아 아쉬운 것이다. 우리 사회에 어두운 소식이 연이어 들려오지만 가을은 아는지 모르는지 그저 깊어갈 뿐이다. 거친 자갈밭을 걷는 듯이 피로도 높은 피하지 못할 미래는 다가오지만, 그렇다고 달과 화성으로 쏘아지는 우주선에 탑승하기만을 기대할 수는 없는 현실이다. 멀리 가지 못할 것이니 주변머리에 충실할 따름이다. 가게의 연말 모임 예약 현수막을 보니 심란한 가운데 설레는 기분이다. 그 마음 안고 부평 신트리공원으로 향했다.

 

가을 은행잎으로 뒤덮인 공원길, 2022ⓒ유광식
가을 은행잎으로 뒤덮인 공원길, 2022ⓒ유광식

 

공원을 옆에 두고 걸으니 은행나무가 뿌려 놓은 잎들로 거리는 온통 노랑이다. 플라타너스의 가랑잎은 파란 하늘과 어울려 농후한 맛을 빚어내고 있었다. 청소년들과 직장인, 운동복 차림으로 오가는 사람들이 뒤섞여 가을 분위기가 한층 돋보인다. 신트리공원은 1990년대 초 조성된 부평의 근린공원이다. 당시 태어났다면 이제 서른 초중반이 되었을 분들의 길동무 같은 공간이렷다. 규모가 크기도 하거니와 안쪽에는 인천시교육청 북구도서관이 있어 청소년과 시민들의 문화 휴식처로 애용되고 있다. 제법 쌀쌀한 날씨였지만 세 명의 여학생이 야외 등나무 아래 벤치에서 노트북에 머리를 파묻고 깔깔 웃음을 짓다가 등나무를 오르는 길냥이를 발견하곤 좋아한다. 자주 가지는 않더라도 도서관의 느낌은 늘 좋다. ‘포근’이 상주하고, ‘정숙’이라는 분을 만나며, 뭐니 뭐니 해도 방대한 책들로 타인의 사고를 충전해 올 수 있으니 말이다. 북구도서관의 외형과 내부 통로의 모습은 다소 무겁지만, 도서관을 채운 사람들이야말로 무겁지 않은 우리 사회의 미래가 아닐까.  

 

북구도서관 모습(좌측에 부평구청과 의회 건물), 2022ⓒ유광식
북구도서관 모습(좌측에 부평구청과 의회 건물), 2022ⓒ유광식
플라타너스와 까치, 2022ⓒ김주혜
플라타너스와 까치, 2022ⓒ김주혜

 

도서관 뒷길로 오르니 단풍 하우스다. 때마침 살짝 비가 내린 후라 시야가 뚜렷하고 깨끗했다. 조금의 움츠림을 부추기는 찬바람도 반갑고, 대화하며 산책하는 이들의 움직임이 수채화 붓질처럼 리듬감 있다. 그 길 따라 가면 커다란 비 하나를 만날 수 있다. 바로 박영근(1958~2006) 노동자 시인의 시비다. 비 앞에는 ‘솔아 푸른 솔아’가 각인되어 있다. 매년 시인을 추모하는 행사와 더불어 작품상 시상이 이어져 오고 있는데, 올해 어느덧 16주기를 맞았다. 시인의 시 ‘가을비’를 낭송해도 좋겠단 생각이다. 

 

도서관 뒷길에 있는 박영근 시인의 시비, 2022ⓒ유광식
도서관 뒷길에 있는 박영근 시인의 시비, 2022ⓒ유광식
신트리공원 동쪽 구역에서 바라본 축구장, 2022ⓒ유광식
신트리공원 동쪽 구역에서 바라본 축구장, 2022ⓒ유광식

 

시비 앞 축구장은 공사 중이다. 지하에 공영주차장을 짓고 주변 정리를 하여 쾌적한 공원으로 재차 탈바꿈할 계획이다. 당분간은 어쩔 수 없이 펜스 둘레로 돌 수밖에 없다. 커다란 플라타너스 잎이 호박잎 같다며 먹어도 되지 않겠느냐는 동행인의 말에서는 웃지 않을 수 없었다. 한편 펜스 안에는 커다란 백마 여섯 마리의 조각상이 있다. 모두 비상하려는 몸짓이다. 어린 시절 이 앞에서 사진에 담긴 사람이 많을 것이다. 근처 초등학교를 나온 이들은 고개를 끄덕일 것이다. 분수대에 설치된 하얀 말 조각상으로 인해 이곳을 백마공원으로 부르기도 했다. 순간 부평에서만큼은 ‘백마’의 의미가 다중적인 것이라 생각했다. 의미와 쓰임의 논란이 있는 만큼 어떻게든 정리가 되었으면 좋겠다. 공사장 펜스 안에 갇힌 말들은 밖으로 뛰쳐나가고 싶어 비명을 내지르는 모습처럼 비치기도 한다. 

 

축구장 앞 분수대(말 조각상이 있다), 2022ⓒ유광식
축구장 앞 분수대(말 조각상이 있다), 2022ⓒ유광식
가을 단풍이 되어 정서 치유에 기여하는 나무들, 2022ⓒ유광식
가을 단풍이 되어 정서 치유에 기여하는 나무들, 2022ⓒ유광식

 

길 건너로 공원이 이어진다. 테니스장도 있는 각종 체육시설이 있고 꽃동산도 있고 어린이 놀이터도 갖춰진 넓은 마음터다. 처음 ‘신트리’라는 공원 명이 신기했고 표기를 보고서야 끄덕였지만, 착! 하고 달라붙진 않는다. 아무튼 큰길(길주로) 너머로 굴포먹거리타운이 있고 굴포천 너머로는 갈산동과 삼산동이 자리한다. 1990년대 이전에는 오로지 논이었던 곳이다. 땅이 좋은지 지금이야 수많은 부평시민의 거주 이력으로 기름져졌다. 최근 굴포천 상류 살리기 사업으로 부평1동 복개 구간을 걷어내는 작업이 이뤄지고 있다. 이와 연관해 신트리공원도 정비 중이니만큼 묵묵히 조금의 불편과 동행하며 기다리게 된다.   

 

날아라~ 코스모스, 2022ⓒ유광식
날아라~ 코스모스, 2022ⓒ유광식
까치 형제도 놀러 온 동산(생활체육시설과 벤치가 고루 분포), 2022ⓒ유광식
까치 형제도 놀러 온 동산(생활체육시설과 벤치가 고루 분포), 2022ⓒ유광식

 

공원을 찾는 이는 사람들만이 아니다. 유독 까치 친구들이 눈에 많이 띄었는데, 몸체가 딴딴해 보이는 게 공원의 힘, 자연 생태가 아니겠나 싶다. 오래된 낡은 벤치에 앉아 그 모습을 지켜보다 호흡의 장단을 따라 늦가을의 정취 속으로 다시 걷게 된다. 정원의 부용을 매만지며 부평의 청초함이 무엇인지 내심 구름 위로 질문 보따리를 던져 본다. 부평에서 새롭게 움틀 내일의 모습을 신트리공원에서 발견한 듯 뿌듯해졌다. 이 영롱한 그라운드에서 시민들의 삶이 돌고 다시 시작할 힘을 얻는가보다.

 

한 바퀴 돌고 나니 보이는(먹고 싶은) 떡볶이집(어르신들의 사랑방이었다), 2022ⓒ김주혜
한 바퀴 돌고 나니 보이는(먹고 싶은) 떡볶이집(어르신들의 사랑방이었다), 2022ⓒ김주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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