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에서 활용하는 '대안화폐'의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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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에서 활용하는 '대안화폐'의 의미
  • 박병상
  • 승인 2011.08.25 17: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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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in 칼럼] 박병상 / 인천도시생태·환경연구소 소장


갓 제대한 몸과 마음이 건강한 청년이 어떤 도시를 찾았다고 하자. 막 출소한 전과자라 해도 무방하다. 주머니에 당장 돈이 없어도 능력과 의지가 큰 그는 사회에 기여할 일은 많은데, 아직 직장이 없다. 한데 찾아가 신세질 친지가 그 도시에 없다면 직장을 구할 때까지 일단 굶어야 할까. 밥이든 옷이든 돈으로 교환해야 하는 세상에서 수중에 돈이 없다면 다른 도리가 없어야 옳은 걸까.

돈, 곧 화폐는 편리한 교환수단이다. 화폐가 없을 때 사람들은 물물교환을 했다. 추수를 마친 농부는 대장간으로 가서 등짐 진 쌀과 호미를 맞바꿨을 텐데, 쌀을 짊어지고 다니는 일이 여간 성가신 게 아니었을 게다. 그럴 때 작고 가벼운 화폐가 물물교환을 대신할 수 있다면 편리할 텐데, 누가 무엇으로 화폐를 만들어야 할까.

무게나 부피에 비해 가치가 높은 귀금속이 화폐의 일을 우선적으로 맡았지만 그런 물건들은 몸에 지니고 다니기 대단히 위험하다. 잃어버리면 낭패고 빼앗기면 억울한 일이 발생할 수 있다. 불안한 마음에 사람들은 안전한 곳에 귀금속을 맡긴 뒤 발행한 증서를 받았고, 그 증서가 결국 화폐가 되었다. 다시 말해, 은행 역할을 맡은 전당포처럼, 안전을 신뢰할 수 있는 곳에서 화폐를 발행했던 거다.

요즘은 안전한 곳에 맡긴 귀금속이 신뢰를 보장하지 않는다. 국가나 은행에 대한 국민과 고객의 신뢰가 바탕이 되어 국가의 요구에 응한 은행이 화폐를 발행하고, 그 화폐에 표시된 가치를 보증한다. 화폐를 받는 고객은 국가나 은행에 그만한 귀금속이 보관돼 있지 않다는 사실을 잘 안다. 국가나 은행을 신용하는 까닭에 화폐를 받은 시민들은 표시된 가치만큼 물건이나 다른 가치를 교환하는데 기꺼이 사용한다.

만일 화폐를 발행한 어떤 국가나 은행이 신용을 잃는다면 어떻게 될까. 그 화폐의 가치는 순식간에 곤두박질칠 게 틀림없다. 1957년 고작 20명 남짓으로 출발했던 피델 카스트로와 체 게바라의 혁명군은 그들을 따르는 민중 덕분에 1959년 쿠바를 해방시킬 수 있었다. 혁명군이 농민에게 식량을 사려고 발행한 약속어음은 나중에 정식 화폐로 교환되었지만 독재정권과 그 수하의 은행이 발생했던 화폐는 일거에 쓰레기가 되고 말았다.

근사하게 인쇄하며 발행한 국가의 은행권만이 교환가치를 독점하는 건 아니다. 신용을 바탕으로 개개의 크고 작은 상점도 화폐를 나름대로 발행해 자신의 이익에 도움이 되는 단조로운 교환수단으로 활용하기도 한다. 주유소와 서점의 할인권이나 백화점의 상품권이 그렇다. 신용이 있는 백화점의 상품권은 경우에 따라 은행권을 대신하기도 한다. 지역의 어떤 모임에서 화폐를 발행할 수 있다. 그 경우 회원들은 자신들이 발행한 화폐의 교환을 위해 규칙을 정하고 서로 신뢰하지 않으면 안 된다. 지역 안에서 미리 가치를 약속한 회원끼리 교환수단으로 사용하는 대안화폐가 그렇다.

능력과 의지가 있지만 오로지 돈이 없는 제대 청년이나 출소 전과자가 대안화폐를 발행하는 모임의 회원이 된다면 굶지 않아도 된다. 회원 중에 식당을 운영하는 이가 있다면 거기에 가서 밥을 배불리 먹고 대안화폐로 일단 빚을 진다. 그 뒤, 자신의 능력을 필요로 하는 회원이 운영하는 상점에서 일하고 대안화폐를 받아 빚을 청산하면 된다. 회원의 서점에서 책을 구입해 읽어 지식을 얻고 역시 회원의 어려움을 도우며 대안화폐를 모을 수 있다. 회원의 농장에서 일하다 다치면 회원의 병원에서 치료받을 수 있다. 그러면서 회원들 사이에 따뜻한 관계가 무르익으며 어려운 일을 서로 도울 수 있다. 그 과정에서 돈이 외부로 빠져나가지 않으며, 다정한 이웃이 지역에 뿌리내리게 된다.

지방자치단체도 화폐를 발행할 수 있다. 주민과 맺는 신용이 바탕이 된다면 지방자치단체에서 발행한 화폐로 지역에서 약속된 물건과 가치를 얼마든지 교환할 수 있다. 재생 가능한 생활 쓰레기를 모아온 주민에게 그에 상응하는 가치를 지방자치단체에서 발행한 화폐로 지불한다면 그 주민은 그 화폐를 받아주기로 약속한 지역의 상점에 가서 물건을 구입할 수 있고 밥도 먹을 수 있을 것이다. 주민들의 적극적인 쓰레기 수거로 예산을 줄일 수 있게 된 지방자치단체는 기존 쓰레기 처리 업체에 지불하던 돈의 가치만큼 수거해온 주민에게 더 얹어 대안화폐를 발행할 수 있다. 그렇게 되면, 쓰레기 수거에 나서는 저소득 계층 주민에게 전보다 향상된 소득을 보장할 테고, 그런 지방자치단체의 행정은 주민들이 환영받는 합리적 복지로 연결될 수 있을 것이다.

쓰레기 분리수거에서 머물지 않을 수 있다. 소외계층에게 사회보장 차원으로 지불되던 은행권의 일부를 지방자치단체에서 발행하는 화폐로 대신하면서 동시에 그 화폐의 액면 가치를 높여준다면 지방자치단체는 예산을 절약할 수 있을 뿐 아니라 교환이 늘어나는 만큼 지역의 경제도 활성화될 것이다. 주민은 그만큼 지역과 지방자치단체에 애정을 가질 게 틀림없다. 그뿐인가. 도시의 대안화폐의 편익은 그 정도에서 멈추지 않는다. 지방자치단체에서 발행하는 화폐와 지역의 대안화폐를 연계할 수 있다. 그러면 교환수단의 범위가 더욱 확장되고, 주민 사이의 관계 역시 더욱 돈독해질 것이다. 어려울 때 도움이 되는 이웃이 늘어나는 만큼, 주민들의 몸과 마음도 더욱 안정될 수 있겠지.

지역에서 사용하는 대안화폐에 이자는 붙지 않는다. 과다하게 보유할 이유가 없으니 세금이 부과될 리 없다. 교환할 물건과 가치의 한계가 있으므로 중앙정부에서 탓할 필요도 없다. 사회적 안정에 기여하고 지역경제를 활성화하므로 대안화폐의 가치를 인식하는 중앙정부라면 제도적으로 적극 지원할 수 있을 것이다. 대안화폐로 생활이 안정된 주민들은 기존 은행권을 아낄 수 있으니 국세나 지방세 납부에 그만큼 인색하지 않아도 된다.

누가 발행하든, 활성화하는 지역의 대안화폐는 국가나 지역. 그리고 시민 개개인에게 이익이 된다. 발행을 굳이 망설일 이유가 없다. 다만 과정에서 부딪히는 시행착오가 있을 테니, 서로 논의하며 고쳐나가면 좋을 것이다. 그런 과정에서 우정도 싹틀 것이다. 그러므로 어떤가. 인천의 지방자치단체와 시민, 시민단체와 회원들, 학교와 기업의 구성원, 그리고 종교단체에서 열린 마음으로 구체화하는 것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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