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만화는 일본사람을 기쁘게 하는 삶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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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만화는 일본사람을 기쁘게 하는 삶꽃
  • 최종규
  • 승인 2011.08.24 05: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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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책 즐겨읽기] 요시히로 코스케, 《일본 만화 현대사》

 일본사람은 한국사람하고 견주어 만화책을 훨씬 많이 읽습니다. 일본사람은 한국사람하고 대면 여느 책 또한 더욱 많이 읽습니다.

 책을 많이 읽는대서 더 훌륭하지는 않습니다. 책을 많이 알기에 더 똑똑하다거나 더 슬기롭다거나 더 아름답지는 않습니다. 책이란 온누리에서 가장 빛나는 열매가 아닐 뿐더러, 책을 읽는 사람은 나날이 더욱 고개를 숙일 줄 아는 길을 배우는 사람이니까요.

 일본사람은 만화이고 책이고 참 많이 읽으면서, 만화이고 책이고 참 많이 내놓습니다. 만화를 그리는 사람이 많고, 책이 될 글을 쓰는 사람이 많습니다. 책으로 묶는 사진도 많이 찍습니다.

 꼭 책으로 묶으려고 만화를 그리거나 글을 쓰거나 사진을 찍거나 하지는 않겠지요. 널리 팔리거나 읽히려는 뜻으로 그리는 만화라거나 쓰는 글이라거나 찍는 사진이라 할 수 없겠지요. 어찌 보면 어슷비슷한 만화나 글이나 사진이 있습니다. 그러나, 가만히 살피면 모두 다르며 저마다 다른 만화요 글이요 사진입니다. 일본에서도 한국에서처럼 처세나 경영이나 자기계발이라는 이름을 다는 ‘책 아닌 책’이 꽤나 많으나, 삶과 죽음과 사랑과 믿음을 다룬 ‘책다운 책’ 또한 무척 많아요. 이와 달리, 이 나라 한국에서는 삶과 죽음과 사랑과 믿음을 다루는 ‘책다운 책’이 뜻밖에 몹시 적습니다. 처세나 경영이나 자기계발을 밝히는 책은 이러한 책대로 외곬로 흘러 한때 반짝하는 종이뭉치에 그치고, 인문학과 사회학과 과학을 다루는 책은 이와 같은 책대로 앎조각을 만지작거리는 데에 그치기 일쑤입니다. 꾸준히 되읽히면서 오래도록 곰삭여 마음밥이나 마음동무로 둘 만한 책은 좀처럼 태어나지 못합니다.


.. 이러한 신인 기용의 성공은 다른 잡지들에게도 영향을 주었으며, 현재는 거의 모든 잡지들이 신인 발굴에 무척이나 신경을 쓰고 있지만, 이 잡지만큼 성공한 예는 별로 없는 것 같다 … 만화의 융성은 데쓰카 오사무라는 천재의 수법을 많은 작가들이 모방하고 계승함에 따라 나름대로의 스타일을 창조해 내며 발전해 온 결과이다. 그렇지만 리바이벌된 작품은 결국 반복이라는 것일 수밖에 없으며, 새로운 형태를 창조해 내는 것이 아니라는 점은 … 데쓰카의 만화는 작품 안에 테마성이나 주장을 명확히 내세운 최초의 것이었다고 말할 수 있다 ..  (16, 48∼50, 85쪽)


 한국말로 옮겨지는 일본책이 대단히 많습니다. 팔릴 만하니까 옮기는 책일 테고, 읽을 만하니까 옮기는 책이겠지요. 그러면, 일본사람은 한국책 가운데 어느 책을 골라서 일본사람한테 팔 만하다고 여기거나 읽힐 만하다고 생각할까요. 한국사람이 내놓은 책 가운데 어떠한 책을 일본사람한테 기꺼이 선보이거나 드러내거나 나눌 만한가요.

 때때로 한국 만화가 일본으로 옮겨지기도 합니다. 드문드문 한국 문학이 일본으로 옮겨지곤 합니다. 그렇지만, 일본책을 한국책으로 옮기듯, 온갖 갈래 온갖 사람들 온갖 이야기를 골고루 일본책으로 옮기는 일을 찾아볼 수는 없습니다. 어쩔 수 없다 여길는지 모르지만, 한국사람 삶과 눈썰미와 넋은 너무 뻔하거나 지나치게 틀에 박히거든요. 한국사람은 스스로 제 삶을 너무 좁게 가둘 뿐 아니라, 너무 메마르게 내팽개칩니다.

 삶이 따분한데 책이 따분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삶이 따분하기에 책을 따분하게 받아들일밖에 없습니다. 삶이 빛날 때에 책이 빛날 수 있습니다. 삶이 즐거울 때에 책을 즐거이 맞아들일 수 있어요.

 이 나라에서는 온통 대학입시를 둘러싼 말과 일과 돈이 흘러넘칩니다. 이 나라에서는 오직 막춤을 추는 정치 이야기에서 헤어나지 못합니다. 무엇이든 서울로만 몰리거나 쏠립니다. 어느 일이건 더 커다랗거나 굵직한 데에만 기울어집니다.

 대학교 아닌 고등학교나 중학교나 초등학교조차 집어치우면서 이 나라 구석구석을 두 발로 밟으며 삶을 배우는 어린이나 푸름이나 어른이란 거의 없거나 아예 없습니다. 대학교 등록금이 지나치게 비싼 만큼 이 잘잘못을 푸는 일은 맞습니다만, 대학교에서 무엇을 어떻게 가르쳐서 어떤 사람으로 키우는가를 깊이 들여다본다면, 기나긴 나날과 어마어마한 돈을 나 스스로 어디에 들여 내 삶을 어떻게 일구어야 아름다우면서 즐겁고 착하면서 참될까 하는 길을 찾을 만합니다. 그런데, 한국에서는 ‘네 해 사천만 원’을 대학교에 바치기만 할 뿐, ‘네 해 사천만 원’으로 내 길을 내 나름대로 어떻게 밝히거나 돌보아야 할까를 생각하는 젊거나 푸르거나 밝거나 맑은 얼이 너무 드물어요.


.. 테마는 달라도 주의깊게 살펴보면 스토리의 클라이막스에 이르게 되면 격투 장면을 등장시키는 것이 20편의 작품 중 3분의 1 이상이나 되고, 더 나아가 스포츠 분야의 만화에서도 승패를 겨루는 일이 일종의 투쟁으로 묘사되어 있다는 것을 생각해 보면, 대부분의 작품들이 ‘투쟁’을 묘사하고 있음을 알 수 있기 때문이다. 다른 잡지들에서도 이런 경향을 살펴볼 수 있다. 도대체 이렇듯 폭이 좁아진 이유는 무엇일까? 인기만화를 본따서 만화를 만드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라 해도 이렇게까지 한 가지 색깔로 물들어 버리는 것은 어떻게 생각해야 좋을 것인가? … 다른 일면을 살펴보자. 소년만화 부분에서 확실한 지위를 차지하고 있던 SF만화가 거의 자취를 감추었다 … 최근에는 만화가 지망생들이 공부도 안 할 뿐만 아니라, 만화가 여러 장르로 확산·침투되어 일종의 폐쇄 상태에 빠져 버렸기 때문에 ..  (28, 52쪽)


 《일본 만화 현대사》(우용출판사,1998)를 읽으면서 생각합니다. 1998년에 나온 ‘현대사’이니까 2011년에 헤아린다면 ‘좀 낡은’ 이야기로 여길 만합니다. 참말 좀 낡습니다. 1990년대를 지나 2000년대를 빛내는 숱한 ‘일본 만화’ 이야기가 깃들지 못하니까요. 더군다나, 이 책을 쓴 요시히로 코스케 님은 ‘당신 스스로 좋아하는 만화밭이 그리 안 넓어’서, 글쓴이 스스로 다룰 줄 아는 만화누리는 그닥 깊거나 너르다고 느끼기 어렵습니다. “일본 만화 현대사”라는 이름보다는 “일본 소년만화 현대사”쯤으로 붙여야 걸맞다 싶은 책입니다.

 다만, 일본 만화가 흘러온 길을 돌아본다 할 때에, 소년만화만 바라보며 읽든 소녀만화만 바라보며 읽든 어른만화만 바라보며 읽든, ‘만화란 내 삶과 우리 삶에서 어떠한 자리를 어떻게 차지하는가’를 살필 줄 안다면, 소년만화만 다루거나 살핀다 하더라도 “일본 만화 현대 역사”를 찬찬히 훑거나 읽을 수 있어요.

 큰 길에서 작은 길을 보기도 하지만, 작은 길에서 큰 길을 보기도 합니다. 물줄기는 굵직한 물줄기로만 이루어질 수 없어요. 작은 물줄기가 모여 비로소 큰 물줄기가 이루어집니다. 작은 물줄기를 바라볼 수 있어야 하고, 작은 물줄기를 알아야 하며, 작은 물줄기를 사랑할 수 있어야 해요. 이러고 나서야 큰 물줄기를 다루든 말든 해야 합니다.

 그리고, 크니 작니 하고 따지기 앞서, 내 삶이 어떠한 물줄기를 이루며 흐르는가를 읽어야 해요. 내 삶부터 읽고, 내 옆지기나 동무나 이웃이나 살붙이 삶을 이루는 물줄기를 읽습니다. 차근차근 눈길을 넓히고 눈썰미를 키우며 눈높이를 다스립니다.


.. 엄밀히 따져 보면 만화 중에는 분명히 수준이 많이 뒤떨어지는 것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본래 그러한 평가는 정부 차원에서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표현자·출판사·독자들이 그들 나름대로 판단하는 것은 아닐까? 소설이나 영상·음악·연주 등 모든 ‘표현’ 역시 그러하다. 중요한 것은 ‘예술이냐? 외설이냐?’라는 논의가 아니고, 공급하는 측과 제공받는 측이 서로 그 ‘표현’들에 대해 얼마나 냉정하게 판단하고 있는가 하는 점이 문제인 것이다 … 독자가 만화에서 얻으려 하는 것이 단순히 오락이나 위안뿐만이 아니라, 그곳에서 어떤 공감대를 찾고 교훈 같은 것을 얻고자 하기 시작한 것 같다 … 만화를 문화로서 받아들이는 의식은 일반 일간지에서도 거의 없었던 일이 아닐까? 아니, 그것은 신문뿐만 아니라, 실제로 만화를 만들고 있는 편집장들의 이야기이다 ..  (42, 78, 166쪽)


 《일본 만화 현대사》가 아직 판이 끊어지지 않았다면, 만화를 좋아하는 이들께서 곁에 함께 두면서 읽으면 좋으리라 생각합니다. 만화책을 내놓는 출판사에서는 창작만화책만이 아니라, 이러한 만화비평이나 만화역사를 다루는 책도 틈틈이 한국말로 옮겨서 내놓으면 더 좋으리라 생각합니다.

 목숨이 있고 사람이 있습니다. 사람이 있어 삶이 있습니다. 삶이 있기에 이야기가 있습니다. 이야기가 있는 만큼 글과 그림과 사진과 만화와 춤과 노래와 영화와 연극이 있습니다. 여기에, 집안일이 있고 집안살림이 있어요. 아기는 언제나 새로 태어나고 늙은 할머니와 할아버지는 하나둘 흙으로 돌아갑니다.

 돌고 도는 목숨이듯이 돌고 도는 사람입니다. 흐르는 삶이고 물려지는 이야기예요. 이 만화가 있기에 저 만화가 태어나고, 저 만화를 즐기면서 그 만화를 키웁니다.


.. 나이를 꽤 먹은 어른부터 유아까지 같은 만화의 독자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이 만화를 큰 미디어로 성장시킨 이유 중의 하나인 것이다 ..  (186쪽)


 일본은 “나이를 꽤 먹은 어른부터 어린이까지 함께 즐길” 책삶이 무척 깊으면서 너른 나라입니다. 만화책만이 아니라 그림책과 동화책 같은 어린이책도 널리 사랑하고 두루 사랑받는 나라입니다. 일본에서 창작하고 한국에서 옮기는 그림책이나 동화책을 살피면, 글솜씨뿐 아니라 이야기 얼거리가 매우 뛰어나거나 훌륭하기 일쑤입니다. 일본 그림책이라서 ‘일본 문화와 사회’를 구석구석에 담아야 하지 않으나, 애써 덜어야 하지 않아요. 일본 그림책을 읽다 보면, 이 일본 그림책을 읽을 일본 어린이와 어른은 참 즐겁겠구나 하고 느낍니다. 일본 만화책을 읽을 때에도 그래요. 이와 달리, 한국에서 나온 한국 그림책을 읽으면서 ‘이 한국 그림책은 어느 한국사람이나 어떠한 사람이 읽으라고 만들었을까’ 하는 생각을 지울 길 없습니다. 한국 만화책을 읽으면서도 비슷하다고 느낍니다.

 일본에서 만화를 그리는 이들은 “나이를 꽤 먹은 어른부터 어린이까지 함께 즐길” 삶·사랑·사람 이야기를 만화에 담으려고 땀을 흘립니다. 한국 만화쟁이와 글쟁이와 그림쟁이와 사진쟁이는 이 대목을 잘 헤아리거나 알아채거나 느끼거나 톺아볼 수 있기를 꿈꿉니다.

― 일본 만화 현대사 (요시히로 코스케 글,김보선 옮김,우용출판사 펴냄,1998.7.10./7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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