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사작전 기념보다 희생자 추념 행사로 가야" 목소리
노르망디상륙작전 행사 의미·형식 벤치마킹 지적도
시 “의견 수렴위한 범시민협의체 구성” 호언…아직 움직임 감감
인천시가 올해 인천상륙작전 기념행사를 확대·격상해 치르기로 하면서 이를 지켜보는 지역사회의 우려가 깊다.
그동안 되풀이해온 이념갈등이 재점화하는 것이 아니냐는 지적이 강하게 일면서도, 한편으로는 제대로 된 행사로의 방향 정립을 위해 시가 지역 의견을 적극적으로 귀담아들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상당수다.
유정복 인천시정부가 올해 드라이브를 거는 대표적 행사 중 하나가 인천상륙작전 기념행사다. 지난해 11월 유 시장은 유럽 순방에서 프랑스 노르망디지방 칼바도스주 주도인 캉에 있는 노르망디상륙작전 기념관을 돌아보고 곧이어 인천상륙작전 기념행사를 단계적으로 확대, 노르망디에 버금가는 국제행사로 치르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이어 연말에는 이종섭 국방부 장관에게 인천상륙작전을 한미동맹 국가행사 일환으로 개최될 수 있도록 협력해달라고 건의했다.
결과 올해는 전년대비 예산이 11배나 늘어난 23억여원(국비 19억8000만원·시비 3억3천만원)을 확보, 오는 9월 15일을 전후로 한주간 ‘9.15 인천상륙작전’ 기념행사를 대대적으로 치른다는 계획이다.
이를 보는 지역사회 여론은 뜨겁다. 오랫동안 이데올로기 갈등을 빚어온 행사를 국제행사를 표방한 지역 핵심축제로 내세운 발상자체가 말이 안된다고 강하게 반발한다.
인천상륙작전에 대한 전승기억의 전통적 인식을 넘어 당시 미국이 어떤 입장으로 어떻게 작전을 시행했는 지 제대로 들여다봐야 한다고 주장한다.
특히 시민사회가 그동안 수없이 주장해온 폭격으로 희생된 민간인 역사에 대한 조명을 배제한 전승기념 행사는 지역 갈등을 증폭시킬 뿐이라고 우려한다.
따라서 이번 행사의 방향은 월미도를 포함한 인천지역 폭격을 어떻게 기억할 것인가에 초점, 희생된 이들을 추념하는 방향으로 가야한다는 의견을 낸다.
일각에서는 노르망디상륙작전 행사가 평화축제로 자리매김하는 과정과 방식을 들여다보는 일이 선행돼야 한다고 지적한다.
무엇보다 시가 행사 방향을 정해놓고 발표하는 일방통행식 행정을 넘어 다양한 지역여론을 수렴해 줄 것을 한결같이 요구하고 있다.
□ 시, 전승기념행사로 준비
민선 8기를 시작하면서 유 시장이 인천상륙작전 기념행사 격상을 강조해온 데는 인천상륙작전이 전쟁승리를 가져다 준 ‘구국의 작전’이라는 의미에 기반, 인천을 넘어 국가적으로 기념사업을 해야한다는 논리를 편다.
시는 행사를 올해부터 단계적으로 확대, 75주년이 되는 2025년에는 상륙작전에 참여한 8개국 정상을 초청하는 국제행사로 치른다는 구상이다.
이에따라 지난달 조직개편에서 기념행사를 담당하는 부서로 인천사랑팀을 신설했다.
시에 따르면 기념행사는 9월 15일을 전후로 기념주간으로 정해 1주일동안 개최할 예정이다. 늘어난 기간만큼 행사 프로그램도 변화를 줄 예정이다. 기존의 전승기념식과 인천상륙작전 재연행사, 참전용사 호국보훈 거리행진에 다양한 연계행사를 진행할 계획이다.
문제는 행사의 방향이 한결같이 ‘전승행사’ 쪽으로만 흐르고 있다는 데 있다.
특히 행사의 주체가 해군본부와 시 공동주관으로 가는데다 국비는 해군본부가, 시비는 시가 예산을 집행하는 구조다보니 해군본부에 실질적인 주도권이 갈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이와 관련 시 관계자는 “아직 행사 기본계획이 안나온 상태로 해군본부와 협의 중”이라며 “시민을 위한 다양한 프로그램을 만들기 위해 고심하고 있다”는 원론적인 답변만 내놓았다.
이미 45개 지역 노동·시민사회단체는 지난해말 연대 성명을 내고 상륙작전으로 인천 내 주요시설 파괴와 민간인 희생이 컸다는 문제점을 들어 축제를 키우는 데 반대한 바 있다.
이에 시는 범시민협의체를 구성, 다양한 목소리를 담아내겠다는 입장을 밝혔으나 아직까지 관련 움직임은 없다.
이희환 인천대 학술연구교수는 “초인류도시를 지향하고 뉴홍콩시티를 제안하면서 인천상륙작전을 기리겠다는 것은 남북긴장을 고조시키는 보수이념을 인천시 이미지에 덧씌우는 격”이라며 “동족상잔의 비극적 사건을 부각시키는 것이 인천시 가치 재창조이고 미래인가 되묻고 싶다”고 반박했다.
□ 인천상륙작전의 실체는?
지역을 대표하는 축제를 하는 이유는 도시공동체의 통합을 이루는 것에 주목적이 있다. 역으로 지역사회 공동체에 긍정적 영향을 줄 수 없는 행사는 축제로서 가치를 상실한다. 그런 의미에서 인천상륙작전은 공론화하는 순간 이데올로기 충돌이 야기될 수 밖에 없으므로 축제로서 적절하지 않다는 지적이다.
손동혁 인천문화재단 본부장은 “인천상륙작전을 한국전쟁에 영향을 미친 승리한 작전으로 전제, 이의 연장선상에서 기억하는 축제를 만들자는 논리에는 치열한 전쟁결과 발생할 수밖에 없는 피해에 대한 이야기는 없다”며 “따라서 객관적으로 들여다보자는 이야기를 꺼내는 순간부터 논란이 일고 지역사회가 분열하게 되는 것이 수순”이라고 짚었다. “오랜시간 지켜보고 논의를 거친 후 상호 공유지대가 생겼을 때 꺼내는 것이 맞다”며 축제로서 부적절하다고 부연했다.
연구자들은 인천상륙작전에 대한 광범위한 전승기억을 다시 들여다보는데서 기념행사 여부를 판단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미 국무부자료 등 인천상륙작전에 관한 자료에 근거, 미국이 작전을 어떤 입장에서 어떻게 실행했는지, 또 맥아더는 어떤 입장에서 작전을 시행했는지를 파악해야 한다는 것이다.
최태육 성공회대 민주자료관 연구교수는 1948년 당시 미 국무부는 일본에 대한 소련공산주의의 영향력을 차단하는 방향에서 한반도 정책(NSC8)을 수립했다고 짚는다. 미국은 철저하게 자국의 안보를 우선에 두고 정책을 입안했고 그에 따라 판단했다는 것이다.
최 연구교수는 “당시 미 정부는 한국전쟁의 기본 개념을 제한전(limited war)으로 규정하고 ‘3.8선을 회복한다’ 데 목적을 두고 있다”며 “반면 맥아더는 전쟁이 발생하자 한반도의 통일, 즉 38선 이북으로의 전쟁 확대를 주장하면서 확전은 인천상륙작전에서 시작됐다”고 설명한다. 이어 “맥아더의 인천상륙작전은 미국의 대소련 봉쇄정책을 효과적으로 수행하기 위한 작전으로서 의미”라고 부연한다.
결론적으로 최 연구교수는 “38선으로 제한하느냐, 이북으로 확대하느냐 전략에서 미국무부든 미극동부사령부든 한국에 대한 개념자체가 아예 없다는 것에 주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즉 인천상륙작전에 대한 ‘구국의 전승작전’이라는 잘못된 기억을 벗겨내야 한다고 강조했다.
□ 어떻게 치를 것인가
인천상륙작전의 ‘전승’에서 필연적으로 따라오는 것이 희생자 피해다. 바로 월미도 원주민 희생을 포함한 주요시설 파괴다.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는 지난 2008년 ‘월미도 미군 폭격사건 진실규명 결정서’에서 “월미도 거주 민간인들이 1950년 9월 10일 인천상륙작전에 선행한 미군의 폭격으로 집단희생됐다”고 밝혔다. 이후 인천시는 지난 2021년 월미공원에 월미도 원주민 희생자를 기리는 위령비를 세웠다.
이번 행사에서 중요시 될 지점이 바로 월미도와 인천지역 폭격을 어떻게 기억할 것인가에서 출발해야 한다는 일각의 주장이 설득력을 갖는 대목이다.
전갑생 성공회대 동아시아연구소 선임연구원은 미국 국립문서기록관리청(NARAⅡ 또는 ArchivesⅡ)에 소장된 자료들을 분석한 결과 “1950년 9월10일 월미도 폭격에서 미 공군은 민간인 피해를 인지했으나 무차별 폭격을 멈추지 않았고 특히 미 해병대와 기동단은 작전계획에서 월미도 주민들에게 폭격 경고를 위한 삐라나 경고 방송조차 고려하지 않았다”며 “인천시가지의 융단폭격은 정밀타격하는 전술폭격보다 광범위한 피해를 주는 전략폭격이었다”고 분석했다.
따라서 “전후 맥아더의 리더십과 결부된 ‘성공한 상륙작전’은 ‘한국을 구한 위대한 상륙작전’ 이라는 틀에 박힌 서사구조를 재생산했으며 그 구조에서 폭격으로 희생된 민간인의 역사는 배제됐다”고 강조했다.
이에 따라 전 연구위원은 이번 행사는 일반적인 군사작전을 기념하는 공간보다는 희생자를 추념하는 행사로 가는 것이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어떻게 희생됐는 지 작전연혁을 행사 참여자가 공유하고, 그동안 소외됐던 희생자들을 호명하는 추모행사로 가야한다”며 “미국 NARA와 영국 등 여러 국가의 아카이브에 소장된 상륙작전 문서와 사진, 영상 등 공개를 통해 작전의 원래 모습에 접근, 역사적인 교훈을 얻을 수 있는 행사가 돼야 한다”고 역설했다.
일각에서는 프랑스 노르망디상륙작전 기념행사에서 시사점을 얻자는 주장도 제기됐다. 노르망디 박물관이 지향하는 가치가 ‘평화’라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고 짚는다.
지역의 한 연구자는 “2차세계대전 이후 유럽에서는 전승이라는 이야기를 하지 않는 정서”라며 “당연히 노르망디상륙작전 기념행사도 승전이 아닌 평화에 방점, 다시는 그런 일이 벌어져서는 안된다는 의미를 새기는 행사”라고 설명했다.
기념행사를 왜 하고 있는지, 또 그것을 어떻게 풀고 있는지 제대로 알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인천과 캉 지역간 교류가 전제돼야 한다고 조언한다.
따라서 “시는 국제 국제행사로 치러지고 있는 형식만 볼 것이 아니라 내용을 먼저 벤치마킹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부연했다.
시가 6개월 안에 대규모 행사를 만들려면 반대하는 지역 여론을 설득하는 모습이 선행돼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지역의 한 문화기획자는 “공공영역에서 축제를 추진할 경우 갈등을 최소화하고 시민 다수에게 유의미한 행사가 될 수 있도록 노력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며 “좀더 많은 사람들의 제안을 들어보는 것이 필요한데 현재 상황은 앞뒤가 막혀있는 듯해 답답하다”고 토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