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항기 藥大人 랜디스박사를 생각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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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藥大人 랜디스박사를 생각하며
  • 전영우
  • 승인 2023.04.20 14: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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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읽기]
전영우 / 인천생각협동조합 이사장
인천 부평구 인천가족공원으로 이장된 랜디스의 묘비.
인천 부평구 인천가족공원으로 이장된 랜디스의 묘 앞 공적비. 성공회 교인들이 1990년 4월 16일 세웠다.

자유공원이 위치해 있는 산의 정식 명칭은 응봉산이다. 그러나 인천 사람들 중에 응봉산이라는 명칭을 알고 있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듯하다. 사실 자유공원 일대가 언덕이 아니라 “산”이라는 사실조차 모르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개항기 시절의 과거 인천 사람들은 이곳을 '약대인산' 혹은 '약대이산'이라는 명칭으로 불렀다. 그 이유는 약대인(藥大人)이라 불리며 존경을 받았던 미국인 의사 엘리 바 랜디스(Eli Barr Landis)박사가 진료를 봤던 성누가병원이 응봉산 자락인 지금의 성공회내동교회 부지에 위치해 있었기 때문이다.

개항기 시절 인천은 외국 문물이 처음 상륙하는 곳이었고, 서구의 선교사 등 많은 외국인들이 조선 땅에 첫발을 내딛은 곳이다. 인천에 왔던 서구인들 가운데 아펜젤러나 언더우드 등의 이름은 한국의 종교와 교육에 큰 영향을 주었던 인물로 대부분의 한국인들이 알고 있는 친숙한 이름이다.

위에 언급한 인물들 보다 훨씬 더 중요한 역할을 했던, 그러나 상대적으로 알려지지 않은 인물이 랜디스박사이다. 랜디스박사가 남긴 업적과 활동은 개항기 조선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합당한 평가를 받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은 매우 안타까운 일이다.

특히 그가 활동했던 주 무대가 인천이었고, 전술했듯이 응봉산 일대가 약대이산으로 불릴 정도로 인천에서 의료인으로 열정적으로 활동하며 봉사했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인천은 그동안 랜디스박사에게 너무 무관심했다. 의료인으로서 뿐만 아니라 랜디스박사는 한국의 문화와 역사에 대한 다수의 논문과 글을 남긴, 한국학 연구의 선구자이기도 했다. 그가 남긴 한국에 대한 글은 그가 얼마나 많은 재능과 관심을 가지고 한국을 연구하였는지 잘 보여주고 있다. 민속 문화에 관한 글은 물론 불교 경전의 번역 등, 길지 않은 기간 동안 그가 남긴 글들은 서구에 한국을 알리는데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랜디스박사는 미국 펜실베이니아 태생으로 1865년에 태어나 펜실베이니아의대에서 의학박사 학위를 마치고 의사가 되었다. 성공회교회 신자였던 랜디스박사는 한국에서의 선교를 위해 성공회교단에서 파견한 선교단의 일원으로 1890년 9월 29일 인천항(당시 제물포)에 도착했다. 인천에 도착한 이들은 성미가엘성당(내동교회)을 설립하고 선교를 시작했으며, 이듬해인 1891년 10월 19일에 인천 최초의 서구식 병원인 성누가병원을 설립하였다. 이 당시 병원과 성당 건물은 서구식이 아니라 한옥스타일로 건립하였는데, 랜디스박사는 건물 건축 과정을 세세히 기록하기도 했다.

랜디스박사는 남득시라는 한국 이름을 지어 한국인들에게 친근하게 다가가려 노력했고, 열성적인 진료 활동으로 명성을 얻었고 약대인으로 불리며 인천 사람들에게 존경을 받았다. 언어에도 재능이 뛰어나서 당시 조선에 거주하던 서구인들 중에서 가장 한국어를 잘하는 인물로 인정을 받았다. 성누가병원의 이름을 낙선시의원(樂善施醫院)으로 직접 개명하기도 했다.

랜디스박사의 성누가병원은 인천 사람들은 물론이고 전국 곳곳에서 진료를 받고자 찾아오는 병원이 되었다. 랜디스박사의 명성이 전국적으로 높아지자 이를 인정한 고종황제의 배려로 1895년에는 성누가병원 건물을 서구식 건물로 개축하였고 이후 증축되었다.

열정적인 봉사와 활동을 하던 랜디스박사는 1898년 4월 16일 불과 33세의 젊은 나이로 갑자기 세상을 떠났는데, 과로와 장티푸스가 원인이었다. 만일 그가 더 오래 살았더라면 개항기 한국학 연구에 있어서 가장 큰 업적을 남겼을 것이 분명한데, 안타까운 일이다.

이렇듯 개항기 인천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인물 중 하나였던 랜디스박사의 흔적은 지금 성공회내동교회 구내에 세워진 흉상과 간략한 기념문이 전부이다. 늦었지만 이제라도 인천 사람들이 랜디스박사에 대해 관심을 갖고, 그의 업적과 활동에 대해 합당한 평가가 이루어지도록 노력해야 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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