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가위 명절이 더 쓸쓸한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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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가위 명절이 더 쓸쓸한 사람들
  • 이혜정
  • 승인 2011.09.08 16: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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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이들에게 추석은 되레 "서럽다"


 부평 대우자동차 본사에서 농성 중인 대우차판매 노조원들이
끼니를 해결하려고 마련한 임시주방 공간에 식기들이 놓여 있다.

취재 : 이혜정 기자

천고마비의 계절 가을, 오곡이 무르익어 가는 한가위 명절이 다가왔다. 1년 중 가장 큰 달이 뜨는 날로 우리 마음을 풍성하게 한다.

그러나 어떤 이들에게 이처럼 풍성한 한가위는 오히려 쓸쓸하기만 하다. 다가오는 추석 명절을 맞아 가족과 함께하지 못하는 대우차판매 노조원과 쪽방촌 사람들을 만나봤다.

대우차판매 노조원들에겐 한가위가 되레 '슬픈 날'

지난 1월 31일 264명의 직원이 해고된 이후 8일로 농성 228일을 맞은 대우자동차 판매 노조원들. 이들에게 유난히 일찍 찾아온 추석은 차라리 사치스럽기만 하다. 정리해고 통보에 반발한 대우차판매 노조원들은 지난 1월 24일부터 부평구 대우차 본사에서 무기한 농성을 펼치고 있다.

농성 중인 이덕필씨(57)씨. "명절은 다가오는데, 뭐 하나 가족들한테 해줄 만한 것들이 없네요. 정리해고 되기 전 2006년부터 지난해까지 다른 지역으로 대기발령을 받아 기본급 80만원도 채 안 되는 돈을 받아가면서 생활했어요. 이제 정리해고까지 됐으니 가장으로서 면목이 없네요."

이씨는 2006년 갑작스런 대기발령으로 출퇴근만 3시간 가량 걸리는 서울 응암동에서 일을 하기 시작했다. 대기발령지는 판매할 자동차 전시를 하지 못할 정도로 협소했고 영업소 간판도 없는, 책상 3개가 들어갈까 말까 하는 공간이었다. 이뿐만 아니라 자동차를 판매할 코드조차 마련해주지 않아 실질적으로 일을 할 수 없는 조건이었다.

그는 "해고 직전까지 대기발령을 받은 곳에 전화기도 없고, 자동차판매코드도 없어 차를 출고할 수 없었다"면서 "자동차를 팔 수 없으니 수당도 못 받고, 기본급 80여만원으로 5~6년간 생활을 하다가 결국 해고를 당하니 정말 억울하다"라고 말했다.

아내와 딸 2명이 함께 사는 가정은 큰딸이 버는 수입과 간간이 일을 하는 아내 수입으로 생활을 한다. 현재 그는 가장으로서 복잡한 생각을 하며 불면증과 우울증에 시달려 밤에 잠을 못 이룬다고 한다.

"큰딸이 대학교 졸업 후 일을 하면서 집안을 꾸려가고 있어요. 작은 아이는 아직 대학생이고. 앞으로 돈 들어갈 일도 많은데 큰 아이에게 참 미안하죠. 자식들 볼 낯도 없고, 몸이 안 좋은 아내한테도 미안한 마음에 추석 명절에 집에 가기 꺼려집니다."

그는 지난 설에도 농성을 펼치는 노조원들과 이곳에서 보냈다. 지난 설 명절에 부평 본사에서 농성을 하는 노조원들은 농성장 한켠에 마른포와 가래떡 등 제수 음식 몇가지를 차려놓고 합동 차례를 지냈다.


대우차판매 조합원들이 농성 227일째인 7일 오후 부평 본사 내에
조합원들의 옷가지를 간이빨래줄에 걸어놓았다.

울산지부 소속 노조원인 최강호(41)씨는 해고 통보를 받자마자 본사가 있는 인천에 올라와 농성장을 내내 지키고 있다.

그는 지난 설 명절에도 울산에 계시는 부모님과 함께 하지 못해 마음이 많이 아팠는데, 추석에도 내려가지 못할 것 같다며 쓴 웃음을 짓는다.

"지난 설부터 이런 일이 일어나 명절을 이곳에 있는 노조원들과 함께 지냈어요. 올 추석에도 부모님을 뵈러 가고 싶은 마음은 크지만 아직 그럴 계획이 없어요. 저는 그나마 딸린 가족이 없지만 함께 지내는 노조원들은 대부분 한 가정의 가장들인데…. 그런 걸 생각하면 더욱 마음이 편하지 않아요."

최씨는 고향에 가는 게 마음이 편하지 않다고 한다. 자신의 일을 염려해주는 부모님과 형제가족들을 보는 게 더 괴로워 오히려 이곳에 있는 게 마음이 편하다고 그는 전한다.

최씨는 "우리가 죄를 지은 것도 아니지만 부모와 형제를 만나면 괜히 죄스럽기만 하고, 속상하니까 이곳에서 함께하는 동료들과 어려움을 나누는 게 더 낫다"라며 답답함을 호소했다.

회사가 지난 8월 11일부터 회생절차에 들어가 집중투쟁 중인 현재, 명절이라고 노조원이 하나씩 자리를 비우면 집행부에 부담을 줄까봐 모든 노조원들이 명절을 반납하고 농성중이다.

민주노총 전국금속노동조합 대우자동차판매지회 김진필 지회장은 "조합원들이 명절인데도 가족 품으로 돌아가지 못하는 게 매우 안타깝다"면서 "농성이 길어질 거라고 예상은 했지만, 농성 이후 두 번째 명절을 맞이해 유감스럽다"라고 말했다.

김 지회장에겐 고민이 크다. 지난 설에 가족과 함께 보내지 못하는 조합원들을 위해 간단한 차례상을 차려놓고 합동  차례를 지냈을 때, 노조원들이 많이 속상해 하는 모습을 보면서 추석 명절을 어떻게 보내야 할지 걱정이기 때문이다.

그는 "지난 설 조합원들과 함께 합동 차례를 지냈을 때 가슴을 치는 노조원들을 보면서 마음이 짠했다. 즐거운 명절이 되레 서글프다."라며 한숨을 내쉬었다.

그에게 올 추석은 유난히 마음이 쓰인다. 해고 직전인 12월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처음으로 맞는 한가위. 그러나 농성을 벌이고 있어 어머니 산소에 찾아뵙지 못하는 게 마음에 걸린다. 또 한창 사춘기인 고등학생 아들과 중학생 딸, 집안을 이끌어가는 아내에게도 늘 미안하다.

그는 "하루빨리 일이 잘 해결돼 가족들을 보고 싶다"라고 말했다.

김 지회장은 "현재 회사는 회생절차를 밟으려고 '무리한 워크아웃'을 추진하고 있는데, 힘들 때일수록 단결해 하루속히 복직을 하고 노조원들도 남들처럼 명절을 함께 맞이했으면 한다"라고 했다.

쪽방촌의 추석은 더욱 서러울 뿐

남들에게 따뜻한 추석이 홀로 명절을 맞이하는 쪽방촌 사람들에겐 더욱 외로움만 커진다.

동구 만석동에 살고 있는 김모 (77)씨에게는 명절이 달갑지 않다. 김씨는 지난 3년전 폐암으로 남편이 죽은 뒤 몇 년째 혼자 명절을 보내고 있다. 2남1녀 자녀들도 재산분할 문제로 인해 다툰 뒤 형식적인 전화 몇 통뿐 찾아오지 않는다.

"늙고 병드니까 모든 게 서러워요. 남들은 명절날 가족들이 북적되고, 손자손녀들 손도 잡아보고 할텐데…. 남편이 죽고 난 후로는 그런 행복조차 없어요. 다른 이들에겐 즐거운 명절이지만 나에게는 더욱 슬픈 날이네요."

매년 명절때만 되면 김씨는 인근 교회에 가서 교인들과 명절을 보낸다. 교인들이 만들어 준 음식을 먹으면서 찬송가도 부르는 게 낙이라면 낙이라고 한다.

"남편 죽고 나서 적적한 마음에 교회를 다니기 시작했어요. 자식들 키워봐야 다 소용 없더라고요. 지들 좋을 때만 좋다고 하고. 이젠 들여다 보지도 않네요. 어휴 뭐라고 할 수 있겠어요?"

그러나 명절만 되면 가족을 더 그리며 마음이 서글퍼진다고 김씨는 전한다.

동네를 산책하고 있던 윤모(87)씨에게도 명절이 찾아오면 외롭기는 마찬가지다. 8년전 부인과 사별을 하고 두 아들과 멀리 떨어져 살고 있는 윤씨는 명절이면 외로움을 참기 어렵다.

올 설 명절때 큰아들이 찾아와 자녀 교육 때문에 외국으로 이민을 가야할 거 같다고 했다. 그나마 찾아오는 큰아들마저 한국에 없으니 올 추석 명절은 힘겹다.

"자식들만 잘 살면 되지, 찾아오는 게 뭐 중요하겠어요. 이제 하도 혼자 지내는 시간이 많아서 허전하다는 생각도 안 나요. 늘 혼자 지냈는데, 명절이라고 뭐가 달라지겠어요?" 그는 애써 슬픔을 감추려고 했다.

이밖에도 추석이 다가오면서 사회복지시설들은 그 어느 때보다 쓸쓸한 나날을 보내고 있다. 고물가로 인해 서민경제가 얼어붙자 일부 공공기관과 기업체를 제외한 개인 후원자들 발길도 크게 줄었다.

이런 관심과 지원 '사각지대'에서 양로원들은 더 외롭기만 하다. 2008년 7월 장기요양보험법이 시행되면서 이전에 있던 양로원들이 하나둘 치료와 주거가 가능한 요양원이나 요양병원 등으로 바뀌고 있기 때문이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아라'는 추석 명절. 저마다 사연이 서글픈 이들에게는 더 외롭고 더 쓸쓸한 날이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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