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은혜 / 은하수미술관 대표
5월 화창했던 마지막 수요일, 일상 서커스 「해피 해프닝」이라는 제목만으로도 즐거운 마티네 공연을 관람하기 위해 남동소래아트홀을 방문 했다. 평일 오전임에도 꽉 찬 예약 현황을 보고 어떤 이들과 함께 공연을 관람하게 될까 설레는 마음으로 공연장으로 향했다.
남동소래아트홀을 방문하는 길, 3~4학년 즈음 되어 보이는 아이들이 반별로 티셔츠를 맞춰 입고 신나게 공연장으로 오는 모습이 보였다. 학교 밖의 활동에 마냥 신이나 재잘거리며 웃는 아이들을 보며 같이 웃음이 났다.
공연을 관람하는 아이들의 매너는 박수가 나왔다. 배우의 연기에 집중하고, 박수 치고, 함성을 지르며 온몸으로 극에 참여하는 아이들의 모습에 배우들도 흥이 올랐다. 요란하고 시끌벅적한 배우와 어린이 관객들 덕에 어른 관객들도 웃음이 터져 나왔다.
공연장을 나오며 고등학교 시절의 나의 소풍이 떠올랐다. 당시 우리 학교는 투표라는 민주적인 방법으로 반별 소풍 장소를 정할 수 있었다. 그러나 우리는 적극적인 담임 선생님의 어필에 설득되어 봄 소풍과 가을 소풍 두 차례 모두를 연극을 보러 소극장에 가는 것으로 결정하였다.
당시 담임 선생님께서는 무척 연극을 사랑하는 분이셨다. 놀이동산을 가고자 하는 아이들의 열망을 두 번 모두 설득해 내실만큼 연극에 진심이셨다. 우리가 관람하게 될 공연의 우수성에 대한 이야기와 그토록 좋은 공연을 추후 사랑하는 제자들이 관람할 수 없을지도 모를까 노심초사하시는 선생님의 그 진심을 알았기에 친구들도 선뜻 소풍 장소 선정에 선생님의 의견에 따랐던 것 같다. 선생님께서는 심지어 중간고사와 기말고사 시험이 끝나고 시험 기간에 지친 아이들을 데리고 대학로로 공연을 보러 가기도 하셨다. 이쯤 되니 나중에는 우리 반은 외부 체험을 어디로 갈 것인지에 대한 회의보다는 어떤 공연을 관람할 것인가에 대한 회의가 되었다. 당시 우리 반 아이들에게 외부 학습은 대학로를 방문에 연극을 관람하는 것이 하나의 보편적인 ‘문화’가 된 것이다. 아직도 종종 동창들이 모이면 ‘연극’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기도 한다.
현 정부는 ‘일상이 풍요로워지는 보편적 문화복지 실현’을 국정과제로 국민 모두에게 문화접근 기회를 보장하기 위한 정책을 펼치겠다고 하였다. 그에 맞춰 문화체육관광부는 ‘제2차 문화예술교육 종합계획(2023~2027)’을 지난 2월 발표했고 ‘누구나, 더 가까이, 더 깊게 누리는 K-문화예술교육’을 비전으로 설정하였다.
문화예술교육을 희망하는 모든 학생을 학교와 연계해 방과 후 문화예술교육을 지원하고, 아동이 이용 가능한 문화 시설들을 적극 알리고 활용할 계획이라고 한다. 또 다양한 대상을 위한 다양한 생애주기별 문화예술 정책과 활동들이 이어지고 있다.
이 중에서도 아동을 대상으로 하는 프로그램들이 자리를 잡고 이런 경험과 교육들이 ‘문화’화 되는 것은 반가운 소식이다. 프랑스의 사회학자 브루디외는 개인의 취향과 습관은 사회문화적 환경 요인에 의해 결정되며, 짧게는 20~30년, 길게는 수세대간 내려온 경험과 문화가 축적된 것으로 쉽게 바꾸거나 극복하기는 어렵다고 보았다.
이런 의미에서 아동들이 겪을 삶에 문화적 경험을 자신의 취향으로 만들고 모든 생애에 녹여낼 수 있다면 생애 모든 주기에서 언제나 쉽게 자신이 원하는 문화예술 프로그램들을 접할 수 있을 것이다.
인천은 오랫동안 '문화 불모지'라는 오명을 벗지 못했다. 하지만 기초문화재단이 확대되고, 다양한 문화시설 건립이 추진되고 있다. 이와 발맞춰 아동이 문화예술을 경험하기 위한 ‘문화’가 자리 잡는 인천을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