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인과 메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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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인과 메시지
  • 이준한
  • 승인 2011.09.21 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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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칼럼] 이준한 교수 / 인천대 정치외교학과


누구는 안철수에게서 희망을 보았다고 한다. 나는 안철수에게서 한국 정당정치의 종말을 보았다. 누구는 안철수에게서 찬란한 미래를 보았다고 한다. 나는 안철수에게서 구태의연한 혼동을 보았다. 누구는 안철수에게서 어눌하지만 진정성을 보았다고 한다. 나는 안철수에게서 기성 정치인을 훌쩍 뛰어넘는 메시지 전달력을 보았다.

가히 '안철수 쓰나미'라고 불릴 만하다. 청춘콘서트를 하면서 20-30대 젊은이 수 천 명씩을 끌고 다닌다고 해도 별 거 아니겠지 생각했었다. 수 천 명 청중 앞에서 젊은 영혼의 아픔을 쓰다듬으면서 한국사회의 소프트웨어를 바꿔야 한다는 등 말 한 마디씩 해오던 안철수가 서울시장 선거에 관심을 보인지 5일 만에 박근혜 지지율과 맞먹는 응원을 받았다.
그런데 안철수가 대안으로 떠오를 것인가? 나는 전혀 아니라고 본다. 공직에도 경험이 없고 교수질에 원장질도 불안하기 짝이 없다. 우리 대학에서 교수나 대학원장이 개강한 뒤에도 수업이나 학교를 그렇게 뒷전으로 밀어두면 욕을 먹기 십상이다. 하물며 학교를 옮긴 지 몇 달 지나지 않은 신참이 학교 밖에서 그렇게 나돌아 다닌다면 학교에서는 당장 벼락이 칠 것이다. 서울시장 보궐선거가 한 달 반밖에 안 남았는데 고작 한다는 말이 서울시장이 되면 바꿀 수 있는 게 많다는 것밖에 없었다. 서울시가 처한 교통문제, 환경문제, 급식문제, 자연재해문제, 주택문제 등에 대하여 차근차근 어떻게 풀어나갈 것인지 단 한 마디도 듣지를 못했다. 서울시장에 당선된 다음에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명약관화한 것이다. 안철수가 대통령 후보로 선출된다면? 나는 한국의 미래를 생각하기도 싫어진다.

어찌하다가 이 지경이 되었을까? 안철수 쓰나미에는 그만큼 국민 사이에 한국정치에 대한 회의가 만연하고 한국의 정치인들에 대한 신물이 넘쳐나는 현실이 반영되었다. 한국정당이 자기 정당의 훌륭한 인재를 키워서 공약을 만들고 대안을 제시하며 선거에 승리해야 하는데, 외부와 연합을 하거나 외부에서 새로운 인물을 영입하는 이벤트만 추구하다가 자기 발에 족쇄를 채우고 말았다. 이제 유권자는 선거를 앞두면 한국정당 자체 후보보다는 그 밖에서 새로운 인물을 기대하게 되었고, 과거와 다르고 더 자극적인 선출 방법을 기다리게 되었다.

안철수가 기대를 한 몸에 받고 있지만 나는 갈팡질팡하는 모습에 실망이 크다. 한나라당은 척결의 대상이란 듯이 말했다가 나중엔 갑자기 함께할 수 있다는 식으로 입장을 바꾸었다. 자신이 1970년대를 경험했는데 지금이 그때와 비슷하다는 식으로 말했다가 박근혜 대표는 '좋은 사람'이고 평했다. 오세훈 전 시장을 염두에 두고 변호사 밖에 하지 않은 사람이라서 문제 삼는 듯 해놓고선 박원순 변호사에게 양보했다. 자신이 안보는 보수고 경제는 진보라고 하는데, 한국 유권자 가운데는 안보가 보수고 경제가 진보인 비율은 상당히 적다. 많은 유권자가 경제는 보수적이라서 국가 개입에 반대하지만 정치나 사회 문제에 대해서는 진보적인 입장을 보인다.

퇴장의 변으로 공무원으로서 학교에 돌아가야 한다는 사람이 학교를 옮긴 지 100일도 안 된 시점에 간을 다 보려고 온갖 군데에 손가락은 다 찔러보았다. 금방이라도 시장이 될 듯한 기세로 시장은 행정이고 바꿀 수 있는 일이 많다고 했다. 지난해 국무총리 자리를 제안받았을 때 국무총리는 행정의 자리라고 할 수도 있고 더 바꿀 수 있는 일이 많은데 왜 안 받았을까? 누구보다 한창 어울려 다녔던 윤여준은 왜 갑자기 안철수에게 못 믿을 사람이라는 듯한 평을 하게 되었을까? 이러한 일련의 모순된 언행을 보았을 때 웬만한 기성정치인보다도 준비가 한참 덜 된 것으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

그래도 안철수의 메시지는 강렬했고 파장이 더욱 퍼질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그 사람의 생각을 그 사람의 목소리로 직접 들을 기회가 적었지만, 국민은 무슨 구세주를 만난 듯이 열광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여론조사 결과 안철수에 대하여 모른다는 대답이 50%에 이를 정도이면서 지지율이 40%에 육박하는 기현상을 보이는 것이다. 어쨌든 말 한 마디 연설 한 번 하지 않고도 대중의 심금을 울렸다. 청중을 모아 놓고 1시간씩이나 밥상 앞에 앉혀 놓고 호주머니에 손 찔러 넣은 채, 강의하듯이 혹은 설교하듯이 연설을 해서 짜증을 나게 하는 여느 정치인보다는 매우 효율적으로 "기성정치야! 정신차리라"고 메시지를 던진 게 안철수의 특출한 능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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