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남家 고문서에 생생하게 담긴 역사·문화 콘텐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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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남家 고문서에 생생하게 담긴 역사·문화 콘텐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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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23.08.24 09: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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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소남 문중의 분재기와 인천의 토지문서 - 강혜종 / 연세대학교 근대한국학연구소 HK연구교수
[인천in]이 소남학회, 계양도서관과 함께 5월10일부터 9월20일까지 12차례에 걸쳐 계양도서관이 진행하는 '길위의 인문학' - 소남 윤동규를 탐구하는 인문학 강좌를 요약해 연재한다. 조선 후기 실학자 성호 이익의 수제자로 성호학파를 인천으로 확산시킨 소남을 통해 인천의 역사와 정신적 문화유산을 함께 탐구하며 인천 역사를 지평을 넓혀본다. 일곱번째 순서는 강혜종 연세대학교 근대한국학연구소 HK연구교수의  ‘소남 문중의 분재기와 인천의 토지문서’이다.

 

 

분재기(分財記)는 조선시대 재산의 주인이, 자녀를 비롯한 가족 등의 수급자에게, 재산을 상속하거나 분배하는 내용을 담고 있는 문서를 말한다.

당대인들의 재산 규모, 토지 및 노비의 경영법, 법제 규정과 관행의 차이점 등 생활상과 사회상을 잘 보여주는 문화사적 가치를 지닌 자료라고 할 수 있다.

계양도서관이 진행하는 '길위의 인문학' - 소남 윤동규 7번째 강좌가 ‘소남 문중의 분재기와 인천의 토지문서’를 주제로 23일 오후 7시 계양도서관에서 강혜종 연세대학교 근대한국학연구소 HK연구교수의 강의로 열렸다.

소남 윤동규의 문중이 소장한 분재기 등 고문서의 작성 배경과 성격, 자료적 가치를 더욱 깊이 있게 이해하고 활용 방안을 폭넓게 모색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조선시대에는 원칙적으로 모든 계층의 사람들이 사유재산을 소유할 수 있었으며, 신분이나 성별에 관계없이 재주(財主)로서 분배의 주체가 될 수 있었다. 조선시대의 재산상속이나 제사 관행을 대표하는 개념인 남녀균분(男女均分)과 윤회봉사(輪回奉祀)의 기조는, 종법이 보편화 되기 이전인 17세기 초엽까지 지켜졌다.

『경국대전(經國大典)』 의 「형전(刑典) 사천(私賤)」 조에는 조부모ㆍ부모ㆍ외조부모ㆍ처부모 등 존속(內尊屬)이 자신의 자손들에게 일정한 재산을 상속하거나 분배하는 원칙과 문서 양식에 대해 규정해놓았다.

분재기의 대부분은 관을 거치지 않는 백문기(白文記)인데, 재주와 수급자와의 관계가 혈족 사이가 아닐 경우, 허여문기(許與文記)나 별문기(別文記)를 작성했다. 이 경우 관의 입안(立案)을 받는 관서문기(官署文記)로 흔히 작성했다.

일반적으로 분재기는 서두에 작성날짜와 분재인원 구성에 대한 정보 및 분재의 사유나 원칙 등을 기재하고, 본문에는 각 인원별로 항목을 설정하여 몫을 배당한 후 마지막에 증인(證人)과 필집(筆執 - 글쓴이) 등 분재에 참여한 인원을 나열하여 기재하고 착명(着名) 및 수결(手決 - 서명) 등으로 효력을 확보했다.

 

윤명겸이 쉰이 넘어 취망을 얻은 경사에 노비를 준다는 내용의 분재기
윤명겸이 쉰이 넘어 취망을 얻은 경사에 노비를 준다는 내용의 분재기

 

강연에서 강 교수는 소남 윤동규 선생의 종가에 전하는 대표적인 분재기와 의미있는 고문서의 실물을 소개하고 그 내용과 의미를 구체적으로 설명했다.

1675년 소남 윤동규의 부친 윤취망(尹就望, 1675-1704)이 태어났을 때, 조부 윤명겸(尹鳴謙, 1618-1687)이 쉰이 넘어 손자를 얻은 경사를 맞이하여 선물로 노비를 준다는 문서를 비롯하여, 윤동규의 큰며느리인 연안정씨(延安鄭氏)가 손자 신(愼)을 낳았을 때, 윤동규가 후사를 이은 며느리의 덕과 인품을 치하하며 교하(交河)에 있는 논과 함께 종들을 증여한 문서 등의 분재기를 소개했다.

1774년에 윤신(尹愼)이 상속한 뒤에 작성된 건륭 39년 호구단자(戶口單子 - 호주가 자기 집의 상황을 적어서 관에 제출한 문서), 1737년 2월 윤동규가 인천으로 이사한 후 남촌 도리산 자락 토지를 매입하면서 작성된 토지매매 명문(明文), 소남 종손 윤형진의 증조부 윤지수(尹芝秀)가 1910년 인천부 남촌면 도림리에 있던 토지들을 인천부에 등록하면서 제출한 신청서 등의 근대 문서, 소남 종가에 전하는 한글 고문서 등을 검토하며, 인천의 역사적 인물인 소남 윤동규와 인천 지역의 당대 생활상을 생생히 담고 있는 본 자료들의 내용과 가치를 설명하였다.

 

윤동규의 큰며느리 정씨가 손자를 낳아 가통을 이은 것을 격려한 내용
윤동규의 큰며느리 정씨가 손자를 낳아 가통을 이은 것을 격려한 내용
윤신이 상속한 뒤에 작성된 1774년 호구단자
윤신이 상속한 뒤에 작성된 1774년 호구단자

 

이어 강 교수는 조선시대의 시대상과 일상사를 살펴볼 수 있는 대표적인 분재기의 사례들도 소개하여 문화콘텐츠의 1차 자료로서의 고문서의 가치와 활용 방안을 더욱 심도 있게 탐색할 수 있도록 하였다.

이날 강연에서는 또한 1401년 이성계가 숙신옹주(淑愼翁主)에게 가사(家舍)를 별급할 때 작성된 가옥 허여문기(許與文記), 1588년 이순신의 어머니 초계변씨(草溪卞氏)가 셋째 아들인 충무공(忠武公) 이순신의 무과급제를 축하하기 위해 토지와 노비를 별급하며 작성한 별급문기(別給文記)도 소개했다. 또 1596년 왕실 종친인 이경검(李景儉) 부부가 딸 효숙(孝淑)에게 가사(家舍)를 특별히 내려주는 상속문서인 별급문기, 1575년 정밀(鄭密)의 첩인 양정(量貞)이 부친 쪽의 노비와 전답을 남편에게 주는 기상문기(記上文記), 상전을 대신하여 하층민이 작성한 한글 매매문서 등도 살폈다. 이와함께 『조선왕조실록』과 『추안급국안』에 수록된 흥미로운 관련 자료를 다양하게 살펴 보았다.

강 교수는 이 자리서 남동문화원에서 구축한 소남 윤동규선생 디지털기념관에 소개되는 소남 종가의 고문서들이 조선시대와 근대의 시대상을 생생히 재구성하고, 성호학파 및 인천의 역사적 인물인 윤동규의 삶을 복원하는 뜻깊은 지역문화콘텐츠 자원임을 설명하고, 앞으로 적극적인 활용이 필요하다는 점을 강조했다.

 

종손의 증조부 윤지수가 1910년 인천부윤에게 제출한 신청서
5.첨부된 남촌면 4리 도동 뒷산의 필지 측량도
첨부된 남촌면 4리 도동 뒷산의 필지 측량도
소남 종가에 전하는 한글 고문서
소남 종가에 전하는 한글 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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