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을 낳고 싶다구요? 가천박물관으로 오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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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을 낳고 싶다구요? 가천박물관으로 오세요
  • 이상구 객원기자
  • 승인 2023.09.06 1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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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박물관 탐방]
(4) 가천박물관 - 한국 최고의 의료사박물관

 

인천 연수구 청량산 산자락에 자리한 가천 박물관 입구. 대한민국 최고의 의료사 박물관을 자부한다.
인천 연수구 청량산 산자락에 자리한 가천 박물관 입구. 대한민국 최고의 의료사 박물관을 자부한다.

 

인천 최고의 소장품 수준

연수구 옥련동 청량산 산자락은 인천의 대표적 부촌 중 하나다. 보는 이를 압도하는 대 저택이 즐비하다. 부잣집이 으레 그렇듯 집집마다 문을 굳게 닫아 걸고있지만 동네 어귀의 단 한 집만은 예외다. 아예 대문이 없다. 개인 집이 아니라 박물관이다. 가천 박물관. 인천 최초의 종합병원인 가천길병원재단 산하의 가천문화재단이 1995년 설립해 운영하고 있는 순수 민간 박물관이다. 병원 재단인 만큼 의료사 박물관을 지향한다.

사립이라지만 소장품의 수준만 놓고 보면 가히 인천 최고다. 국가가 지정한 보물이 15점이나 된다. 그 중 하나는 인천 유일의 국보다. "초조본유가사지론 제53". 고려 현종 때 거란의 침공에 맞서 호국의지를 담아 새긴 대장경 판으로 찍은 두루마리 책이다. 초조본이란 첫 번째 판각이란 의미이다. 유가사지론은 '모든 것은 마음이 지배한다'는 유식불교의 정신과 수행 방법 등을 정리한 경전을 이른다. 역사적으로도 학술적으로도 매우 가치가 크다.

보물로 지정된 유물 중 '산거사요'도 눈여겨 볼 만하다. 태사령 양우가 지은 것을 원나라 왕여무가 증보 편집한 책이다. 주로 산에 사는 사람들이 반드시 알아야 할 필수 상식을 집대성했다. 특히 건강과 위생, 의학에 관한 내용 등이 알차게 담겨있다. 먹어야 할 것과 아닌 것, 위급 상황 발생 시 대처요령 따위가 세세히 적혀 있다. 이 정도면 인기 TV 프로그램에 등장하는 자연인들의 필독서로 지정해도 무방하지 않을까 싶다.

명나라 적충과 요충 등이 지은 '식물본초'도 재미있다. 조선 중종~명종때의 서책으로 저자들이 분석한 400여 종 식물들의 맛, 본성, 이득 등은 지금도 매우 유효하고 유익하다. 다른 보물 역시 전부 고서다. '대방광불화엄경 정원본 권제31'과 같은 불경과 불교관련서적, '신응경' 등의 의서, 두보의 칠언율시를 골라 엮은 '우주두율', 공자의 '춘추'를 친절하게 해석해 주는 '좌씨전'의 조선판 버전인 '춘추좌씨전구해' 등 다양한 분야를 아우른다.

 

초조본유가사지론 제53권, 인천 유일의 국보다. 고려 현종 당시 거란의 침략에 맞서 호국의지를 다지며 새긴 판각을 띡어내ㅑㄴ 두루마리 책이;다.
초조본유가사지론 제53권, 인천 유일의 국보다. 고려 현종 당시 거란의 침략에 맞서 호국의지를 다지며 새긴 대장경 판각을 찍어 만든 두루마리 책이;다.

 

이 소중한 보물들은 박물관 2층 전시장에서 만날 수 있다. 여기엔 그 말고도 민화, 도자기, 다기 등이 다채롭게 전시되어 있다. 특히 다기류는 이길여 이사장의 언니이기도 한 이귀례 전 가천문화재단 이사장이 수집한 것으로 알려진다. 이 전 이사장은 생전 한국차문화협회장을 역임하며 우리나라 전통 차문화의 전래와 보급에 심혈을 기울여 왔다. 황홀한 색감과 아찔한 조형미를 자랑하는 고려청자 조선백자들은 당장 국보로 지정해도 누가 시비 걸지 못할 정도다.

 

잡지 창간호, 여기 다 있다

국보 보물 전시장 맞은 편엔 매우 특이한 전시물들이 기다리고 있다. 국내에서 출간되는 거의 모든 잡지의 창간호들이 모여있다. 입구에 붉은색 전광판이 설치되어 있는데, 그 동안 모은 소장 창간잡지의 수를 알려준다. 취재 당일 찍힌 숫자는 20,687. 우리나라에 잡지가 그렇게 많았던가. 많다는 건 알았지만 그 정도일 줄은 몰랐다. 소장품 수를 전광판으로 기록하는 건 지금도 꾸준히 기증이 이어지고 있어서다. 그 노고를 1997년 한국기네스 협회가 인정했다.

안내판에는 이 전시관이 탄생한 배경이 적혀있다. 그에 따르면 "(이길여 이사장이)평생을 산부인과 의사의 길을 걸어오면서 생명을 양태하는 어머니의 숭고함과 탄생의 위대함을 익히 잘 알고"있기에 "다양한 형태의 서권과 저작물 역시 많은 수고와 과정을 거쳐 비로소 빛을 보게 되는 생명 탄생과 같다고 생각"해 창간호를 모으기 시작했다고 소개하고 있다. 그 뜻에 공감하는 수집가들의 기증이 이어져 이 만큼의 장서가 모이게 됐다는 것이다.

박물관 측은 1921년 간행된 '보성교우회보', 1924년 창간한 '신흥청년' 등은 국내에 단 하나 밖에 남아 있지 않아 대한민국 잡지 사의 매우 중요한 자료라 소개하고 있다. 하지만 관람자들의 관점과 관심에 따라 '가장 중요한' 자료는 각기 다를 듯하다. '창작과 비평(1966)', '문화과 지성(1970)' 같은 잡지는 문학을 동경하던 중장년이, 조사(釣士)들은 '낚시 춘추(1971년)'에 산꾼들은 '월간 산(1969)'에 눈길이 머물지 않을까.

인천에서 창간한 잡지들도 36종이나 된다. 1948년 인천문화사가 만든 종합문화지 '문학산'이나 인천중학교와 제물포 고등학교의 합동교지인 '춘추(1958)', 인천시가 간행하는 '굿모닝 인천(1994)' 등이 대표적이다. 유명인들의 과거 사진을 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1986년에 창간한 '하이틴'의 표지모델은 영화배우 김혜수였다. 당시 우리나이로 16, 대한민국 국가대표 하이틴이었다. 지금은 가장 아름답고 멋진 중년으로 자리매김한.

 

1986년 창간한 청소년 잡지 '하이틴'. 당시 16세이던 배우 김혜수의 모습이 풋풋하다. 가전박물관 창간호 전시장에 가면 만날 수 있다.
1986년 창간한 청소년 잡지 '하이틴'. 당시 16세이던 배우 김혜수의 모습이 풋풋하다. 가전박물관 창간호 전시장에 가면 만날 수 있다.

 

 

조선시대에 쓰던 다양한 형태의 약장기. 가천박물관은 다양한 의료기 및 서적 등을 보유하고 있다.
조선시대에 쓰던 다양한 형태의 약장기. 가천박물관은 다양한 의료기 및 서적 등을 보유하고 있다.

 

국내 최대의 의료사 박물관 

앞서 언급했듯 가천길재단 이길여 이사장은 산부인과 전문의 출신이다. 아직 여성의 사회적 지위가 취약했던 1958년 용감하게 자신의 이름을 걸고 개업했다. 국내최고의 대학을 나온 미모의 여의사가 같은 여성의 심정으로 환자를 대하니 의원은 환자의 발길로 문전성시를 이뤘다. 중구 용동의 <이길여 산부인과>는 오늘날 구월동 일대의 소위 '길 타운'의 시발점이 된 거였다. 여성과 아이들을 위한 의학서 태산요록과도 만남은 그저 우연이 아니었다. 

그래서 가천박물관은 의료사 박물관을 지향한다. 그 방면으론 국내 최대를 자부한다. 침구, 약탕기 등 6천여 점의 관련 유물과 7천여 권의 고서를 보유하고 있다. 이 중 가치 있는 유물을 골라 1층 전시실에 전시하고 있다. 조선시대부터 일제 강점기, 근현대에 이르는 의학의 역사를 한 눈에 볼 수 있다. 곳곳에서 우리 조상들의 지혜가 엿보인다. 일부 의료기기와 약 조제법은 지금 써도 괜찮아 보인다.

여기에서 우리는 또 다른 모습의 세종대왕을 뵐 수 있다. 여린 백성을 위해 한글을 창제하고 과학기술 발전에 눈부신 업적을 이루어 우국경민(憂國敬民)의 본보기를 보인 대왕께서는 백성들의 건강에도 관심이 깊었다. 그런 연유로 '향약집성방'을 펴내게 하셨다. 이 책에는 내·외과는 물론 이비인후과와 치과 나아가 전염병의 예방과 치료법에 관해서도 꼼꼼히 기술되어 있다.

 

"백성들이 만약 질병을 얻어도 약을 얻지 못하여 목숨을 잃게 되니 진실로 가엾고 민망하다. 내가 널리 향약을 준비하여 그들의 목숨을 건져주고자 한다(세종 15년 실록기사 중)."

 

세종대왕의 향약집성방출간사다. 절로 고개가 숙여지지 않는가. 역시 대왕의 칭호는 아무에게나 붙이는 게 아니었다.

 

향약집성방. 약을 구하지 못해 죽어가는 가엾은 백성을 위해 당시까지의 모든 의술을 집대성해 엮은 의서. 세종대왕의 애민정신이 녹아 있다.
향약집성방. 약을 구하지 못해 죽어가는 가엾은 백성을 위해 당시까지의 모든 의술을 집대성해 엮은 의서. 세종대왕의 애민정신이 녹아 있다.

 

아름다움이 샘 솟는 박물관

가천박물관은 지역의 귀한 문화적 자산이다. 특히 의학은 생명을 다루는 학문이다. 그것을 소중하게 여기는 마음이 기본이 돼야 한다. 전시장 곳곳에서 그런 인간 사랑의 정신을 느낄 수 있다. 이 정도 규모의 박물관을 민간이 지어 시민들에게 무료로 개방하는 사례는 흔치 않다. 지역에 대한 애정이 충만해야 한다. 박물관의 이름은 설립자의 아호와 같다. 아름다움이 솟는 샘이란 뜻이다. 무엇보다 그 마음 씀씀이가 참 아름답다.

설립자께서 사재를 털어 모은 모든 유물과 자택을 지으려 구입한 땅까지 기증하여 박물관을 지을 수 있었다, 그만큼의 가치를 담은 박물관이다. 보다 많은 시민들과 아이들이 찾아와 공부하고 사색하는 인천의 대표적인 문화사랑방이 되었으면 좋겠다.”

가천박물관 최운종 학예사의 바람이다. 그는 이 훌륭한 시설에 한 해 관람객이 1만 여명 정도에 그치는 현실이 못내 아쉽다고 했다. 그러면서 그는 곧 있을 문화행사 홍보도 잊지 않았다. 매년 박물관이 개최하는 초등학생 대상 과거시험, 용들이 나르샤. 올해가 7회째로 오는 1014일 문학동 도호부 청사에서 열린다.

 

아들 낳는 비방은?

이젠 털어 놓을 때가 됐다. 기사 제목에서 언급한 아들 낳는 비방 말이다. 그건 세종대왕 재위시 판전의감사 노중례가 편찬한 보물 '태산요록' 속에 숨어 있다. 이 비방을 믿고 충실하게 따르면 아들을 잉태할 뿐 아니라 설령 뱃속의 아이가 딸이라 하더라도 아들로 바꿀 수 있다고 한다. 저자는 다수의 임상실험을 통해 확실히 입증된 비법이라 강조한다. 지면으로 알려 드리기보다 직접 발품 파시기를 권한다. 그래야 제대로 깨치고 잊지 않을 테니. 

 

 

가천박물관 이용안내

 

개관시간

09:00~17:00 (휴관 : 매주 월요일, 11, 설날 당일)

관람료

무료

주차시설

있음(대형버스 가능)

관람문의

032)833-4747

주소

인천광역시 연수구 청량로 102번길 40-9

대중교통

65-1, 523번 버스 : 축현고 입구 하차 도보 16

9, 111-2번 버스 : 송도유원지(도로교통공단) 하차 도보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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