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의 다색(多色)을 볼 수 있는 시간, 가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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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의 다색(多色)을 볼 수 있는 시간, 가을
  • 고진이
  • 승인 2023.10.11 06:4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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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컬러 칼럼]
(12) 10월, 다색(多色)
그림1_가곡동화 포스터 그림
그림1_가곡동화 포스터 

 

모든 것이 풍요로운 계절이 왔다. 순식간에 지나가 버리는 가을임을 알아서 계절이 만들어내는 색을 눈에 담아보려 애쓴다. 하늘부터 땅의 색 까지 모두 다채롭게 변한다. 그 변화에 감동하다가도 시간이 흘러감이 체감되어 조금 쓸쓸한 기분이 동시에 든다. 이처럼 가을은 참 중의적인 계절이다. 어쨌든 먹거리도 풍경도 다채로운 시절이니 한해의 절정에서 자연이 끌어내는 다색 (多色)을 보며 마음을 건강한 에너지로 채워보고자 한다.

서늘한 가을의 바람이 불어오면 보고 싶은 얼굴이 떠오른다. 무뎌졌던 기억이 생각지 못한 순간 불쑥 떠오르는 일을 종종 경험하는데, 요즘처럼 날씨의 변화가 살로 느껴질 때면 그 자극에 어떤 기억이 어루만져진다. 마음에 떠오른 얼굴은 둥글고 흰 우리 할머니 얼굴. 이럴 때면 전에 그렸던 그림책 [섭순] 을 열고 함께한 추억을 곱씹는다. 사랑하는 사람을 오래 기억하고 싶어서 만든 이 그림책을 가지고 이번 가을에 새로운 시도를 해보게 되었다. 가을에 어울리는 가곡과 그림책이 함께하는 공연을 마음 한편에서 기획하고 있었는데, 감사히도 이웃 카페이자 서점인 ‘라이프,라이프’의 도움으로 작게 시연해볼 기회가 생겼다. 그리운 마음을 음악과 그림으로 나누다 보면 어느덧 마음 한편 쓸쓸함은 지어지고 따뜻함으로 매어지지 않을까? 미술작가가 갑작스럽게 이런 무대를 만들어 조금 낯선 마음도 들지만, 머릿속에 계속해서 맴돌 때는 다 이유가 있지 않겠나 싶어 도전해본다. 공연에 ‘가곡 동화’라는 이름을 지어주고 그림책을 그렸을 때처럼 포스터 그림도 색연필로 그려보았다. (그림1) 이 역시 내 그림답게 알록달록한 빛깔이 가득하다.

워낙 색을 좋아하다 보니 욕심쟁이처럼 작품에도 색을 꽉꽉 채워 놓는 편인데 편애하는 어떤 색이 있는 것이 아니라 모든 색을 골고루 좋아한다. 이렇게 여러 색이 가득한 그림을 보면 맛있어 보인다는 생각이 든다. 조금 이상한 표현 같지만 좋은 그림은 맛있어 보이는 음식과 비슷한 면이 있다고 생각한다. 밥상에 음식 색이 다양하면 건강한 밥상이라고 하던데 나의 경우 색의 다양성 자체를 좋아하니 건강하게 보는 습관이 있는 게 아닌가 싶다. 정말이지 이색도 저 색도 모두 다 예쁘다.

 

그림2_고진이, Rainbow Ring, oil on wood, 40 x 50 cm, 2019
그림2_고진이, Rainbow Ring, oil on wood, 40 x 50 cm, 2019

 

생각해보니 이렇게 색을 좋아하니 색을 주제로 컬러칼럼을 쓰고 있는 게 아닌가 싶다. 이러한 취향을 가득 담아 색들이 순환되고 있는 듯한 작품을 만든 적이 있다. (그림2) ‘Rainbow Ring’은 이름처럼 무지개색이 링을 빙글빙글 돌고 있는 작품이다. 꼭 거울의 틀 같기도 한 이 작품의 비어있는 공간에 서보면 후광처럼 여러 색이 주변을 맴돈다. 꼭 색의 호위를 받는 것 같아 기분이 좋아진다. 이러한 회화 작품의 장점은 작품이 파손되지 않는 한 그 안의 세계가 영원히 그 안에 본존 된다는 점이다. 사람처럼 각각의 다른 개성을 가지고 있는 유일한 세계를 어찌 사랑하지 않을 수 있을까? 솔직히 회화 작품은 오로지 하나뿐인 제품이다 보니 생산적인 측면에서 보면 참 비효율적인 작업이다. 심지어 그 하나, 하나의 작품마다 다른 에너지를 쏟고 시간도 한두 달을 소비해야 하니, 한 예술가가 만들어낼 수 있는 작품의 개수도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물론 그래서 예술품이 가치를 지니는 것이지만 정신과 노동력을 집약시키는 지루한 이 일이 가끔은 힘에 부치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새 캔버스를 짜고 새로운 작업을 지속하게 되는 이유는 캔버스에 매어지는 여러 색을 보며 느끼는 행복감이 다른 무엇과 견줄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게 새 작품을 완성하고 나면 아기가 태어난 것 같은 기쁨에 작품을 보여주고 싶은 마음이 불쑥 들게 된다. 올해 초에 부평아트센터에서 진행되었는 전시에 처음 개시했던 ‘Brilliant void’는 물감이 다 마르기도 전에 전시장에 걸렸던 작품이다. (그림3)

 

그림3_고진이, Brilliant void, 145.5 x 112.2 cm, oil on canvas_2023
그림3_고진이, Brilliant void, 145.5 x 112.2 cm, oil on canvas_2023

 

아무것도 없다고 생각되어는 ‘빈 공간’을 메우고 있는 보이지 않는 움직임과 이 세계를 지탱하는 찬란한 공간의 부피 그 자체를 풍성한 색의 구성으로 표현했다. 가을이면 이 세계에 이렇게 많은 색이 있었나 싶을 정도로 화려한 색들이 자연의 이면에 숨어있다가 나타난다, 우리가 자연의 다색(多色)을 볼 수 있는 시간은 지금 이 순간뿐이다. 눈에 다색(多色)을 가득 담고 긴 겨울을 잘 보낼 수 있게 마음에 색의 에너지로 채워보자.

+ 그림책과 가곡이 함께하는 공연 [가곡동화-섭순] 은 10월 18일 저녁 7시 30분 부평구의 ‘라이프, 라이프’ (길주남로 46, 2층) 에서 진행된다. 예약 문의는 0507-1451-1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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