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인선 협궤 객차 18028호, 50년을 달려 눈 앞에 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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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인선 협궤 객차 18028호, 50년을 달려 눈 앞에 서다
  • 최혜경 객원기자
  • 승인 2023.11.17 0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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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물관 속으로]
(6) 수인선 협궤열차
인천in이 인천시립박물관과 협력하여 본관 및 분관 소장 유물들을 탐사하고 독자·시민들에 소개합니다. 인천의 역사·문화를 대표하는 박물관 속 유물들은 어떤 것들이 있으며 어떤 유래와 의미를 담고 있는 지 알아보며 지역 역사문화의 소중함을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여섯번째 순서는 시립박물관 우현마당에 전시된 수인선 협궤열차입니다.

 

인천시립박물관 협궤열차(18028호)와 김의광 기증자(출처 - 목인박물관 제공, 문화일보 재인용)
인천시립박물관 협궤열차(18028호)와 기증자 김의광 목인박물관 관장(사진은 목인박물관 제공, 문화일보 재인용)

 

인천시립박물관 본관 우현마당에 전시된 협궤열차의 객차로 동구 송현동에 있던 철도청 인천공작창에서 1969년 제작됐다. 객차는 동력이 없었기 때문에 증기기관차나 디젤동차가 끌어주어야 했다. 보통 동차 1대가 3대의 객차를 연결하고 다녔다.

이 객차는 실제로 수인선에 운행되었던 18028호 객차다. 박물관은 관람객이 승차해 역사의 한 순간을 체험해 볼 수 있도록 이를 개방하고 있다. 앞의 연결부위는 역사의 흔적을 그대로 남겨 두어 보전처리 하였고, 나머지 부분은 보수하여 전과 후를 비교하게 하였다. 남인천역에서 송도역 구간이 폐선된 이후인 1970년대 중반에 맞추어 재현하였다.

수인선 협궤열차는 서해안 주민들의 중요 교통수단으로 서민들의 삶과 같이 했던 생활문화적 가치가 있으며, 근대 철도 교통의 역사를 지닌 유물로 2021년 인천시 등록문화제 3호로 등록되어 관리되고 있다.

이 협궤열차의 객차는 수인선이 폐선된 후 목인박물관 김의광 관장이 보관해 오다 인천시립박물관에 기증하였다. 김 관장은 1995년 운행이 중단된다는 소식을 듣고 폐기 직전에 열차 3량을 매입하여 25년간 보관해 왔다. 수인선 협궤열차의 출발 및 종착지였던 인천에 기증해 2020년 11월6일부터 인천시립박물관에 전시되고 있다.

 

◇ 역사 속으로

협궤열차

좁을 협(狹), 길 궤(軌) 자를 쓰는 협궤열차는 기존 철도의 궤간(레일 사이 간격)보다 훨씬 좁은 선로를 달리는 열차를 말한다. 우리 철도의 표준궤 궤간은 1.435m인데, 수인선 협궤열차는 이 절반으로 0.762m의 선로를 달렸다. 시내버스보다도 좁은 이 기차는 꼬마열차로 불렸다.

협궤열차는 비용이 적게 들어 식민지, 교통량이 적은 곳, 산악지형에서 철도를 부설할 때 쓰였다. 스위스, 일본, 대만 등 다른 나라에서도 볼 수 있으나, 국제 규격에 맞지 않고 표준궤로 전환하기도 어려워 현재는 잘 쓰이지 않는다.

우리나라는 수인선(水仁線, 수원~인천)과 수여선(水驪線, 수원~여주)에서 쓰였는데, 수여선은 1970년에 영동고속도로 개통으로 사라지고, 수인선은 1995년까지 유일하게 남았다.

 

 

수인선 협궤열차

수인선 협궤열차는 1937년에 개통되어 인천에서 시흥, 안산, 화성을 지나 수원까지 노선을 오갔다. 1930년대 일제가 우리나라에서 나는 쌀과 소금을 수탈할 목적으로 만들었다. 강원도의 풍부한 물자와 군자․소래․남동 각 염전의 소금을 벽지에 수송하기 위해 국가 재정 부담을 줄이면서 필요한 철도망을 부설하기 위해 일본 민간 자본의 조선경동철도주식회사(朝鮮京東鐵道株式會社)를 앞세워 수여선과 수인선을 건설하였다.

개통 이후 수원과 인천 간 인적, 물적 교류의 증가는 획기적이었다. 주로 경기도 해안지방에서 만들어진 소금을 수여선과 연계하여 경기 동부지방에서 생산되는 곡물까지도 인천항으로 수송해 일본으로 빼내는 화물 수송이 주를 이뤘다. 해방 후 수송기능은 점차 쇠퇴하여 1977년을 마지막으로 화물운송이 정지되고, 1995년에는 경제성이 낮아 여객 수송마저 멈추게 된다.

멈추기 전까지 옛 수인선은 대중교통이 변변치 않던 시절 서민들의 쏠쏠한 이동 수단이었다. 화성, 안산, 시흥 등지의 학생, 직장인, 장사꾼, 농어촌민을 인천, 수원에 있는 학교, 직장, 시장까지 연결하는 거의 유일한 교통수단이었다. 아낙들을 통해 인천의 소금과 젓갈이 내륙으로 들어갔고 내륙의 쌀과 채소들이 바닷가로 향했다. 지금도 남인천역 근처에는 ‘수인시장’(인천광역시 인중로63번길 28)이란 곡물&소금 도매 재래시장이 남아있다. 서민들의 삶과 함께 하면서 많은 이들의 애환과 추억으로 남았다.

수인선 협궤열차에는 17개의 역과 임시정류장이 있었다. 그 중 인천 구간에는 인천항, 송도, 문학, 남동, 논현, 소래 등 6개 역이 있었다. 문학과 논현역은 임시(간이) 정류장이었다.

협궤열차는 40km/h 전후의 속도로 달리는 완행열차 수준이었고, 인천~수원까지 1시간 40분이 걸렸다. 초창기에는 협궤형 증기기관차나 가솔린동차가 많았으나, 1965년 디젤동차가 도입되었다. 이는 대부분이 인천공작창에서 제작되었다. 1972년 수여선의 폐선으로 남은 디젤동차가 수인선으로 옮겨 운행이 늘어났다.

열차는 주로 2량~4량으로 디젤동차 2량과 50석 정원의 좌석을 설치한 객차를 이어 운행되었다. 주말 등 수요가 많을 때는 객차 1량을 추가하기도 했다. 운임은 1990년 기준 기본운임 160원에 수원~송도 간 운임이 370원 정도로 저렴했다. 당시 서울 지하철 기본운임이 250원 정도였다. 협궤철도는 심하게 흔들려서 서서 가는 경우 고역이 따로 없었다. 게다가 좁은 차체 탓에 좌석에 마주 보고 앉으면 무릎이 닿을 정도였다고 한다. 객차의 끝 쪽에는 화장실이 있는데, 배설물이 그냥 선로로 바로 떨어지는 비산식 방식이었다.

 

철거될 때까지

1973년 7월 14일 인천항 확장 공사로 남인천역~송도역 구간이 폐지되며 노선이 수원역에서 송도역까지로 단축되었다. 1980년대까지 승객들을 실어 나르다 1988년에 안산선이 개통되어 효용가치가 떨어지기 시작했다. 1992년 7월 20일 연수 택지개발 공사로 송도역~소래역 구간 운행이 중단되며 선로를 철거했다. 1994년 4월 1일에 안산선과 과천선이 서울 방향 직통 노선으로 연결되면서 수인선은 9월 1일, 한대앞역까지로 구간 축소 운영하였다. 1995년 12월 31일을 마지막으로 영업한 후 모든 선로가 2005년까지 방치되었다가 2006년에 수인선 복선전철화를 활성시키기 위한 목적으로 철거되었다.

 

(왼쪽)소래박물관 협궤 7호 증기기관차와 (오른쪽)인천시립박물관 앞 협궤열차(18028호) 

 

◇ 흔적들을 만나다

협궤열차는 해방 후에도 소금을 비롯한 산업물자 수송을 담당하는 동시에 주민들의 교통수단으로 애용되었다. 58년간 지역주민의 삶과 함께 했던 협궤열차는 폐선 후 도시개발 속에 당시의 시설물들이 방치되거나 사라져가고 있어 안타깝다. 다행히 보존을 위해 노력해 주신 이들 덕분에 인천에서 수인선 협궤열차의 흔적을 만날 수 있다.

 

소래역사관

수인선 협궤열차 역사에서 소래포구는 매우 중요한 장소이다. 사라져가는 소래의 역사와 문화를 보존하고자 2012년 6월 29일 인천광역시 남동구 최초의 공립박물관으로 소래역사관이 개관됐다. 역사관에는 수인선 Zone이 있어 수인선의 건설과정과 협궤열차, 소래철교 등 수인선의 개통에서 폐선까지의 과정을 알 수 있다. 소래역사관 광장 앞에서 인천광역시 등록문화재 4호 ‘협궤 증기기관차 7호’를 만날 수 있다. 1층 전시실에는 70%로 축소 재현된 협궤열차가 전시되어 있다.

증기기관차 협궤-7호는 1952년 수원 기관차 사무소에서 조립된 것으로 추정된다. 1978년까지 수인선 등에 운행되었다. 무게 42.95톤, 길이/높이/폭 14.6m/3.2m/2.3m이다. 1983년 쌍용그룹이 한국도로공사에 기증하며 대관령휴게소에 전시되었다가, 2001년 남동구 담방문화근린공원을 거쳐 2008년 현재의 소래역사관으로 이전하여 전시되고 있다. 협궤 증기기관차는 수인선, 수여선 운행 중단 후 대부분 폐차되었고, 현재 국내에 6량만 남아있다. 실제 운행되었던 소래역과 소래철교 인근에 전시되어 있어, 소래포구만의 독특하고 향토적인 정서를 내포하고 있다.

 

소래역사관-소래역 전시관 입구
소래역사관-소래역 전시관 입구
소래역 협궤열차 매표소
소래역 협궤열차 매표소 모형

 

소래철교

수인선 협궤열차가 달리던 소래철교는 인천광역시 남동구 논현동과 경기도 시흥시 월곶동 사이 소래포구에 있다. 폭은 1.2m, 길이는 126.m(남동구 58m/시흥시 68.5m)이다. 1995년 수인선 폐선 이후 시흥시 월곶과 소래포구를 잇는 인도교로 사용되면서 협궤 수인선 흔적의 대표적 장소로 자리잡았다. 또한 소래포구, 소래어시장과 함께 소래를 대표하는 관광명소다. 사진작가들이 자주 찾는 곳으로도 유명하다. 무엇보다 소래포구의 추억을 찾는 사람에게 소래철교의 철로 흔적은 아련한 옛 생각에 젖어 들게 한다.

 

소래철교를 달리는 수인선 협궤열차(나무위키)
(왼쪽)옛 협궤열차 소래철교(현 인도교)와 현 소래철교
(왼쪽)옛 협궤열차 소래철교(현 인도교)와 현 소래철교

 

송도역와 급수대

송도역 근처를 둘러보면 한 허름한 건물과 둥근 철제 구조물을 관찰할 수 있다.(취재 당시 출입금지로 멀리서 촬영함) 폐선 이후 현재 인천에 유일하게 남아있는 수인선의 옛 송도역사(驛舍)와 협궤열차 급수대다. 수인선에 증기기관차가 오가던 시절, 열차들이 이곳에서 물을 공급받았다. 역사(驛舍)에서는 당시 사용했던 철도자료들이 다수 발견되었다고 한다.

아픈 역사를 안고 있는 협궤열차의 흔적들을 너무도 무심히 방치하며 내팽개친 것 같은 씁쓸함에 발걸음이 무거웠다. 마치 퇴역 군인을 돌보지 않는 것 같은 무정함이 느껴졌다. 늦었지만 소중한 지역 근대문화유산으로 보존하기 위한 송도역 복원사업이 지난 2019년에 시작되어 옛 송도역을 문화공원으로 조성할 예정이다. 전차대 등 자료 발굴을 위한 지표조사가 현재 진행 중이라고 한다. 여간 반가운 소식이 아닐 수 없다.

 

구 송도역(오른쪽 붉은 지붕)과 당시 급수대(왼쪽 철탑)

 

1937년 개통 되어 1995년 12월 31일 폐선 된 수인선(수원~인천) 협궤열차. 이제 더 이상은 탈 수 없다는 아쉬움에 필자는 지인들과 함께 1995년 12월 25일 경북 경산에서 인천으로 올라와서 수인선 열차에 승차해서 두 편의 시를 썼다. 그 후 20년의 세월이 지나 2016년 2월 27일 다시 수인선이 운행을 하게 되었다는 소식을 접하고 송도역과 소래포구역에 기증했다. 두 편의 시가 수인선의 역사를 이해하는데 마치 기록사진과 같은 역할을 할 수 있으므로. 시와 글씨는 박도일 작가가 쓰고, 그림은 김재성 화가가 그렸다.(화선지 전지)

 

수인선 송도역사 내에 전시된 ‘수인선 마지막 협궤열차1’
수인선 송도역사 내에 전시된 ‘수인선 마지막 협궤열차1’ 박도일 작가가 쓰고, 김재성 화가가 그렸다.

 

◇ 두 번째 수인선 - 수인선 표준궤전철

1995년 폐선으로 멈췄던 수인선이 2012년 광역철도로 거듭나 다시 수원 간 인천을 달리고 있다. 이를 통해 인천역에서 수원역으로 바로 이동이 가능하여 인천에서 수원까지 70분 정도면 갈 수 있다.

2012년 6월 송도역~오이도역 구간 개통을 시작으로, 2016년 2월 인천역~송도역 구간 개통, 2020년 9월 인천역~수원역 간 52.82km 수인선 복선전철이 완전개통되었다.

오늘도 수인ㆍ분당선 전철은 우리 삶을 힘차게 실어 나르고, 협궤 수인선은 우리의 마음 속에서 그리움으로 달리고 있다. 수인선 협궤열차를 이용했던 한 사람으로서 사라져 볼 수 없었을 열차를 그 역사의 유물로 보존하기 위해 애써주신 모든 분께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수인선 완전 개통
수인선 완전 개통

 

<참고자료>

ㆍ인천시립박물관

ㆍ소래역사관

ㆍ나무위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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