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7) 동구 화수동 일대 - 유광식/ 시각예술 작가
수능이 끝나자 본격적으로 겨울이 들어선 모양이다. 마지막 달력 한 장 남겨두고 사람들은 어떤 마음을 품고 있을까? 송년회 약속도 복잡하게 오가며 코로나 이후 되찾은 분위기에 먼저 취하는 건 아닐지 모르겠다. 한파 소식에 조금 움찔하기도 했지만 아직은 주춤한 바람 덕에 돌아다니기엔 나쁘지 않은 것 같다. 한편 내 주변뿐만 아니라 국제적 연대까지 우리가 보는 거리만큼 보듬어야 하는 마음이 길고 넓어지는 시기이다. 거꾸로 가는 세상은 아닐 텐데, 빈대 논란이나 갑자기 나이가 줄어드는 상황에 어리둥절하다. 그저 생각나는 장소, 그곳을 한번 거닐어 볼까 싶어 화수동을 찾았다.
화수・화평동은 이름을 한 번쯤은 들어봄 직한 익숙한 마을이다. 중구농협(화수지점) 교차로를 중심으로 겨울 시장의 분위기를 살피며 한 바퀴 돌아보았다. 지난여름, 마을은 인천시립박물관 전시 《피고 지고, 그리고... 화수·화평동》으로 조명된 바 있다. 도시화 속에서 사라져가는 동네의 역사, 노동의 일상을 많은 시민들과 공감하며 기억의 힘을 모으는 장이 되었던 것 같다. 꼭 화수・화평동만의 이야기가 아니라 인천 곳곳이 비슷한 재개발 상황에 부닥쳐 있다는 것이 애잔할 따름이다. 어떻게 하면 순조로운 시대전환에 성공할 수 있을까?
농협 앞은 노상 상거래로 북적인다. 안쪽 아래에 시장이 있지만 공산품 가게와 기름집, 떡집이 있을 뿐 황량하기 그지없다. 그래도 오래된 아케이드 천장에서는 찬란한 빛이 낡은 지붕 아래로 내려오려고 발버둥을 치고 있었다. 운교로 주변은 한창 김장철을 맞았다. 전봇대 같은 기둥 하나를 부여잡은 채 바로 야외 가게가 만들어진 모양새로, 무와 배추, 젓갈, 꽃게, 고등어 등이 진열되었다. 해산물은 인근 부두에서 바로 옮겨온 듯해 싱싱해 보였다. 그런데 상인 분들이 연로해 보인다. 동네가 당장은 어떻게 되진 않겠지만 삶의 현장 그라운드를 떠나야 할 때가 화수동 언덕까지 차오르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상호에 지방 이름이 많이 보였다. 과거 이곳저곳에서 모인 사람들이 얼기설기 뒤섞여 살았을 시대의 그림자는 어딜 가지 못하고 공장 굴뚝의 연기가 되어 피어오르고 있었다. 시장에 왔으니 요기를 조금 했다. 분식집에서 떡볶이와 오징어튀김을 먹고 찐 옥수수 2개를 3,000원에 샀다. 건너편 동네 빵집에서는 단팥빵과 동구빵을 샀다. 길바닥에 놓인 빨간 대봉시(4개 1만원)는 샤인머스켓 재킷(상자)을 입고 행인을 꼬드긴다. 냉면골목, 화평운교의 이야기도 시간에 맞춰 전동차에 실려 오가는 풍경이다.
화수아파트(45년 이상)를 지나 아래 만석동 방향으로 내려가 본다. 오래된 공장들이 나타난다. 어느 구멍 뚫린 담장 안으로 늦가을이 고이 모셔져 있고, 어떤 분이 낙엽을 쓸어 담고 있었다. 길, 골목, 상점, 공장, 냄새 등으로 미루어 짐작컨대 일상적 노동의 가치를 새길 수 있었다. 날은 추웠어도 맑은 기분이 드는 걸음이었다. 어느덧 동구선거관리위원회 앞 사거리까지 왔다. 건너편 문구사에 들러 500원 하는 선물 포장지 하나와 잉어빵(500원) 3개를 샀다. 문구점은 크기만 작았지 없는 물건이 없어 보였다. 때마침 하교하는 만석초 아이들이 몰려와 북적였다. 추운 날 먹는 잉어빵은 꿀 못지않다. 따뜻하고 바삭한 것이 이 겨울과 즐겁게 씨름하는 것 같아 흡족했다.
다시 농협 방향으로 오르면서 옛 대건고 자리와 화도진도서관, 화도진공원을 지나친다. 어느 세탁소 간판이 오랜 세월에 헤지고 이빨이 빠졌다. 간판까지 세탁이 된 모양으로, 한 시절을 가늠케 하는 모습이 아닐 수 없다. 화수동을 동구의 명소라고 칭하기는 어색하지만, 옛 인천의 시간을 직접 현장에서 느껴볼 수 있는 정감어린 장소임은 틀림없다. 몇 년 후엔 ‘제물포구’가 될 ‘동구’ 안 마을의 무표정한 상태가 축 늘어진 절임 배추와 겹쳐지기도 한다. 마을 안팎의 사람들은 시대를 겪으며 동네 모습처럼 바뀌어 갈 테다. 부디 화수동의 현재 남은 모습에라도 깊은 사랑이 배어 활~짝 빛나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