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화 군영에서 허리에 차고 다녔던 칼, 환도(環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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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 군영에서 허리에 차고 다녔던 칼, 환도(環刀)
  • 채진희 객원기자
  • 승인 2023.12.14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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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물관 속으로]
(8) 강화 진무영 환도
인천시립박물관에 전시된 환도
인천시립박물관에 전시된 환도

 

강화 진무영 환도(環刀)

대한민국 최초의 공립 박물관, 연수구 옥련동 인천시립박물관에 가면 조선시대 무기로 사용되었던 칼 ‘환도’를 볼 수 있다. 조선 후기 강화도에 설치되었던 ‘진무영’에서 사용되었던 도검(刀劍)이다.

진무영은 강화도에 본영을 두고 바다를 지키는 일을 맡았던 군영이었다. 1700년(숙종 26)에 설치되었으나 큰 활동은 없다가 1866년(고종 3) 병인양요 이후 외국 선박의 침입이 잦아지면서 조선 조정은 국방상 중요한 군영으로 취급했다. 1874년 구제(舊制)로 환원될 때까지 포군(砲軍)을 중심으로 병력 3,000여 명이 주둔한 군영이었다.

인천시립박물관의 환도 칼집에는 신축년(1781) 다시 지은 강화도 창고에 보관했다는 명문(銘文)이 주칠(朱漆, 누런빛이 조금 섞인 붉은 빛깔의 칠)로 쓰여 있다. 이로 미뤄 환도의 제작 보관 장소가 진문영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전시된 두 점의 인천시립박물관 환도는 모두 질 좋은 생선 가죽으로 칼집을 싼 뒤 옻칠로 마감하였고, 은입사(銀入絲)된 철제로 장식된 것이 특징이다. 당초무늬(식물의 줄기와 덩굴이 만들어낸 무늬)가 들어간 팔각형의 칼막이 또한 눈에 띈다.

 

조선시대 환도

 

환도의 유래

환도란 명칭에 대해 여러 유래나 설들이 제기되고 있으나, 아직 문헌에서 정확하게 정리된 것은 발견되지 않고 있다고 한다.

가장 유력한 설은, 휘어진 칼날이라는 뜻으로 쓰였다는 것이다. 고려시대 때부터 조선시대까지 한반도 전역, 오랜 국가들의 전통 무기로 허리에 차고 다녔던(佩用 패용도검을 칭한다.

‘환도’라는 이름의 ‘환’은 ‘고리 환(環)’자이다. 이같은 고리는 인천시립박물관에 전시된 2점의 환도, ‘고위 장령환도’와 ‘하위 장령환도’에서도 찾아볼 수 있는 특징이었다.

조선후기 문신 박종경이 1813년에 간행한 군서 '융원필비'에서는 환도에 대해 “이 칼을 환(環)이라고 부르는데 칼집이 있고 고리(環)를 달았으며 고리에 끈을 달아 패용한다.”라고 설명하고 있다. 그러나 환도의 첫 기록은 1277년에 나타난다. 그 사이 환도의 명칭에 대해 드러난 것은 없다.

조선시대에는 환도가 거의 보통 명사화 되어, 대체로 전투용 칼은 다 환도라고 부르기도 했다. 여기엔 외날 뿐 아니라 양날도 포함한다. 일본도를 그냥 환도나 왜환도라고 부르기도 했고 19세기에 이양선에 대한 기록에서도 행어, 세이버, 커틀러스 같은 서양식 외날검도 환도라고 적었다.

<조선왕조실록>에서는 운검, 패도, 패검 등 다양한 명칭이 나오지만 이름이 다를 뿐 모두 환도의 일종이다. <무예도보통지>에서는 예도, 쌍수도, 쌍검, 왜검 등의 명칭이 있지만 이들은 검법의 명칭이며 실제로는 대부분 환도를 사용하여 수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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