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 미술을 응원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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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미술을 응원하며
  • 이상하
  • 승인 2024.01.04 0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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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읽기]
'황해어보'전과 '인천아시아아트쇼'를 되돌아보며 - 이상하 / 조각가
조광현 작 한반도 어류 세밀화 - 병어
조광현 작 한반도 어류 세밀화 - 병어

 

해의 시간보다 달의 시간이 길어지는 계절이다. 도로 위에 길게 늘어선 자동차 불빛들은 한 해의 끝으로 안내하는 유도등처럼 빛난다. 시간은 언제나 같은 질량과 속도로 흐르고 매번 돌아오는 12월이지만, 이맘때 거리에 사람들은 한결같은 모양새로 옷깃을 여미고 어디론가 바쁜 걸음을 재촉한다. 사람들마다의 이유와 필요의 정도는 다르겠지만 잰걸음으로 움직이는 모습은 어느 광고에 한 장면을 보는 것 같다.

한 해가 저물어 가는 때가 되니 해를 넘기지 않고 마무리해야 할 일에 대한 압박과 얼마 남지 않은 시간에 대한 조바심의 발로(發露)일지 모른다. 아무튼 12월은 알 수 없는 무언가로 사람들이 들떠, 저마다의 사정으로 몸과 마음이 바빠지고 다가올 한해에 대한 각오와 나름 촘촘한 계획으로 새날을 맞으려는 것은 모두가 비슷한 모양이다.

다른 어떤 때보다 거리는 사랑을 속삭이는 반짝이는 연인들로 북적이고, 화려한 불빛의 시즌 장식들이 춤을 춘다. 세상과 사람들의 부족함과 지난 실수에도 너그러움이 넘치고, 다가올 날에 부푼 기대와 근거를 알 수 없는 희망이 넘친다. 사람들은 다가올 새날에 기대와 축복을 가득 담고, 각자의 의미를 더해서 주위에 희망을 뿌린다. 생각해 보면 특별히 다를 것 없는 매일의 반복일 뿐인데, 12월과 1월은 다른 열 달에 비해 왁자한 분위기 속에 너그러움과 희망이 넘치는 긍정의 시간이 분명하고 일상에서 잊고 살았던 기억이 되살아나는 때이기도 하다.

오랫동안 기억 저편에 묻어두고 지내던 누군가와의 시간이 떠올라, 오랫동안 만나지 못한 연인을 향한 그리움처럼 밀려와 점점 흐려가는 얼굴과 분명하지 않은 기억의 그때를 더듬어 전화기를 들기도 한다. 그러다 연락이 닿으면 건조하고 형식적인 안부를 물으며 다가올 새해에 축복과 응원의 메시지를 보내고, 지켜질지 알 수도 없는 만남을 약속하기도 한다. 거기에 지난 이맘때 세우고 실천하지 못했던 금연과 금주를 다시 한번 다짐하면서 구체적이고 촘촘한 계획으로 새해에는 반드시 건강하게 생활하겠다는 굳은 결심을 하면서 그것만으로도 이미 반은 성공이라고 스스로 대견해하기도 한다. 이렇든 저렇든 시간은 한결같이 흘러, 새날은 오고 지난날은 기억으로 남게 한다.

지난 한해도 인천 미술계에는 다양한 행사와 이슈로 분주한 날들을 보냈다. 그중 올해 있었던 행사(전시) 중(다른 중요하고 완성도 높은 많은 전시가 있었고, 사람마다의 선택이 다를 수도 있으니 지극히 개인적인 선택임을 일러둔다) 〈황해어보〉전과 2023 인천아시아아트쇼를 되돌아보고 개인적 소견을 적어본다.

 

 

 

 

 

 

 

 

 

 

 

2023 인천아시아아트쇼 전경
2023 인천아시아아트쇼 전경

 

올해 인천에서는 아트페어(호텔페어 포함)등 많은 대규모 행사가 열려서 사람들의 성원과 관심 속에 성황을 이뤘고, 한편에서는 좋은 기획과 내용의 밀도 있는 다양한 전시들이 열렸다. 다만 전시의 내용과 수준에 비해서 화제성이나, 관객이 적었던(?) 것은 아쉬움으로 남는다. 그중에 인천문화재단이 기획하고 아트플렛폼에서 9월 7일부터 11월 12일까지 열렸던〈황해어보〉전은 20명의 작가가(정확하게는 20팀. 강동완, 강홍구, 공성훈, 김재유, 김정아, 김창환, 박미례, 성효숙, 안경수, 양쿠라, 엄지은, 이욱재, 이재욱, 이태호, 인천녹색연합, 임민욱, 전소정, 조광현, 차기율, 하승현) 참여한 전시다.

전시에 대한 기호는 사람마다 다를 수 있고, 작가와 작품에 대한 평가가 하나일 수 없지만, 개인적으로는 올해 인천에서 열린 전시 중, 가장 주목할 만한 전시가 아니었나 생각한다. 전시의 내용은 전시명에서도 알 수 있듯이 바다와 바다를 터전으로 살아가는 생명과 생태에 관한 이야기다.

오늘에 환경문제는 다가올 미래의 문제가 아니고 당장 우리 앞에 직면한 생존이 걸린 문제다. 이를 아니라고 부정할 수 있는 사람(개인적 이익과 필요로 외면하는 사람들이나 집단이 있는 것은 불편한 사실이다)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특히 바다 환경의 문제는 인류를 넘어, 존재하는 모든 생명의 생존과 멸종이 걸린 문제다. 주지하다시피 바다는 생명의 기원이고 지구 위에 모든 생명이 기대어 살아가는 생명의 원천이다. 환경의 문제는 모든 인류가 그 어떤 문제보다 가장 앞서 해결해야 할 문제다. 우리 인천은 바다를 기반으로 성장해 왔고, 성장하고 있고, 성장해 갈 도시다. 그런 인천에서 바다를 주제로 열린〈황해어보〉전을 우리가 주목해야 할 이유다.

바다를 삶의 터전으로 살아가는 사람들과 바다 생명의 이야기를 20명(팀)의 작가들의 시선으로 바라보고 인식한 문제들을 풀어낸〈황해어보〉전을 관통하는 주제는 '바다'다. 전시는 단지 풍경으로서의 바다에서 벗어나, 삶의 현장으로서의 바다, 소통 수단으로서의 바다, 갈등과 위기로서의 바다, 생명체의 탄생과 서식지로서의 바다, 지구 환경으로서의 바다 등 그 다양한 면모를 구체적으로 살피고 있다.

조광현의〈한반도 어류 세밀화〉. "물질"로 살아온 한국 해녀의 삶을 비춘 전소정의 영상 작업〈보물섬〉. 검은 먹으로 일렁이는 바다를 표현한 이태호의 회화 연작〈물-결〉. 선감학원 소년 노역이라는 안타까운 역사를 그린 이재욱의 연작〈굽은 물〉. 신안 염전에서 벌어진 비인간적인 노동 착취 사건에서 출발한 하승현의〈The Pale Red Dot〉. 어부로 생을 마친 할아버지를 추모하는 박미례의〈바닷가 할아버지로부터〉. 작가 할머니의 이야기가 염전을 덮친 해일과 중첩되면서 허구(虛構)와 실제(實際)의 사이를 오가는 엄지은의〈해일의 노래〉. 양쿠라의〈오션 플라바 몬스터〉는 관객 참여형 작품으로 자전거 페달을 구르면 해양쓰레기로 만든 몬스터에 눈이 빛을 낸다.

해양쓰레기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우고 있는 이욱재의〈찬란한 여행〉. 김창환 작가는 우리들의 머리 위에서 유영하는 상어 떼로 자연의 조화와 바다 생명의 아름다움을 환기(喚起)시키고, 임민욱의 영상 작업〈봉긋한 시간〉은 카메라가 바다 물밑과 물 위를 교차해 비추면서 할머니와 손녀의 세대에 간격을 보여주면서 동시에 연결한다. 디지털 프린트된 현재와 그 위에 작가의 기억으로 드로잉한 콜라주로 기억과 현재 사이의 틈을 주제로 한 강홍구의〈모래의 기억〉. 시화방조제라는 인공물을 통해 변화한 풍경의 단면을 사생한 안경수의〈간척지〉연작. 나무 상자에 바다에서 채집(採集)한 오브제가 여러 오브제와 함께 부착해서 고고학적 태도로 순환을 다루고 있는 차기율의〈기억 상자〉. 긴 장마로 소금 생산이 멈췄던 동주염전 풍경을 그린 김재유의〈염전〉. 해양쓰레기 문제를 작업의 주요한 주제로 다뤄온 김정아의〈신십장생도〉는 장수를 기원하는 십장생의 자리를 해양쓰레기가 대신해서 해양생태계 파괴의 심각함을 각인시킨다.

북한을 연구하는 학자 강동완은 북한 접경지대인 서해 5도 지역으로 흘러온 북한 쓰레기는 북한 사람들의 생활상과 북한 산업미술의 현재를 알린다. 인천녹색연합은 다른 지역의 환경단체와 달리 바다와 갯벌의 생태 보호를 위해 노력해 왔는데, 영상과 자료는 30년간 단체가 지속해 온 해양환경을 위한 실천을 보여주고 있고, 성효숙과 목포환경운동연합 회원과 대불 초등학교 5학년 학생 90명이 함께한〈바다 생명 만다라〉는 다양한 바다 생명의 지속(持續)과 순환(循環)을 염원한다.

인천의 바다는 항만, 섬, 갯벌, 염전, 등 그 어느 곳보다 다양하고 비옥(肥沃)한 환경을 구성하고 있다. 〈황해어보〉전에 참가하고 있는 20명의 작가(팀)는 바다의 다양한 면모를 나름의 방식과 매체로 진지하게 표현하고 있다. 한편 이 전시는 그동안 일방적으로 바다에 기대어 혜택을 받아온 인류가 오늘날 위기에 빠진 바다를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는지 모색하고 토론하는 기회를 제공했다.

많은 이들의 기대(期待)와 우려(憂慮) 속에 11월 23일부터 11월 26일까지 송도 컨벤시아에서는 ‘우리도 그림 하나 걸까요’? 라는 슬로건으로, 제3회 인천아시아아트쇼가 성황리에 열렸다. 2021년 첫해를 시작으로 3년을 잘 넘기고 5년이면 어느 정도 정착할 수 있지 않겠느냐, 하는 기대 섞인 응원이 미술계와 주변에 있었다. 많은 사람이 아트쇼가 어느 정도 자리를 잡아 지속될 수 있는 기준점을 3년 정도로 보았다.(나와 내 주변에서만 그런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우려와 기대 속에 어느덧 3년 차를 치러 낸 인천아시아아트쇼는 올해 현장의 분위기와 언론에 보도, 집행부의 발표에 따르면 어느 정도 성공(올 한해 우리나라의 곳곳에서 열렸던 많은 아트 페어들에서 들려오는 한결같은 소리는 어렵다는 볼멘소리뿐이다)한 것으로 보인다.

전 세계적인 경기 침체와 수많은 악재(惡材)에 미술 시장과 작가들이 어려움을 토로하고 있는 이때 다행스럽게도 어느 정도의 성과를 거둔 것으로 보인다. 이를 계기로 인천의 미술 시장에도 훈풍(薰風)이 불어 아트 바젤이나 프리즈 같은 세계적인 아트쇼로 성장하기를 희망해 본다. 하나 덧붙이자면 인천이라는 도시가 가지고 있는 아이덴티티를 살리고, 다른 곳에서는 볼 수 없는 차별화 된 전략과 실천으로 독보적인 경쟁력을 갖춘 아트쇼로 거듭나서 인천 미술계가 한 단계 더 도약할 동력이 되고, 세계의 중심 도시로 발돋움하려는 인천의 도시 경쟁력에 한 축으로 아트쇼가 자리하기를 응원해 본다.

마침 사단법인 인천아시아아트쇼 조직위원회는 3회까지 사용한 명칭 인천아시아아트쇼에서 아시아를 빼고 인천아트쇼로 변경해서 2024년을 출발한다고 한다. 아트 페어(올해 인천에서는 호텔 페어를 포함해 여러 아트 페어가 열렸다)를 통해서 미술 시장이 활성화되고, 일상에 작품이 자연스럽게 녹아들어 소비되는 일도 중요하다. 또 주목할 만하고 남겨야 할 가치가 있는 작가의 발굴, 기획전시와 작품수장(收藏) 역시 중요하다. 이 두 개의 축이 잘 맞물려 작동될 때 건강한 미술 문화가 만들어질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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