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2시간 연속 노동도 괜찮다는 대법원과 박수치는 노동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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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시간 연속 노동도 괜찮다는 대법원과 박수치는 노동부
  • 노영민
  • 승인 2024.01.11 1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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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칼럼]
노영민 / 노무사, 민주노총인천본부 노동법률상담소

지난해 12월 7일 대법원 2부(주심 민유숙 대법관)는 주 최대 52시간을 넘기지 않는다면 하루 단위로 몰아서 일하는 것은 위법하지 않다고 판결했다.

근로기준법의 근로시간은 1주 40시간, 1일 8시간, 이를 초과하는 연장근로는 1주 12시간으로 제한돼 있다. 해당 규정 위반은 형사 처벌 대상이다.

근로기준법 제50조(근로시간) ① 1주 간의 근로시간은 휴게시간을 제외하고 40시간을 초과할 수 없다.

② 1일의 근로시간은 휴게시간을 제외하고 8시간을 초과할 수 없다.

근로기준법 제53조(연장 근로의 제한) ① 당사자 간에 합의하면 1주 간에 12시간을 한도로 제50조의 근로시간을 연장할 수 있다.

그동안 고용노동부는 연장근로가 1주 12시간을 초과하는지 판단할 때, 1주 총근로시간이 52시간을 초과하지 않더라도 1일 8시간을 초과하는 일별 연장근로를 합산한 것이 12시간을 넘으면 연장근로 한도 위반이라고 판단해 왔다.

그런데 이번 대법원 재판부는 주 최대 52시간의 연장근로 한도 초과 여부는 ‘1일 8시간을 넘긴 근로시간의 합계’가 아니라 ‘1주 근로시간 중 40시간을 넘긴 만큼’을 기준으로 판단해야 한다고 밝혔다. “근로기준법은 연장근로시간의 한도를 1주간을 기준으로 설정하고 있을 뿐이고 1일을 기준으로 삼고 있지 않다”며 연장근로시간을 하루가 아닌 한 주 단위로 계산해야 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일 12시간(소정근로 8시간 + 연장근로 4시간)씩 주 4일 일하는 노동자의 경우 기존에는 연장근로가 16시간으로 형사처벌 대상이었다. 하지만 이번 대법원 판결로 주 단위 근로시간 총량이 48시간으로 연장근로 한도 위반이 아니게 된 것이다.

이번 판결로 기업주들은 1주 노동시간은 52시간보다 줄이되 경기나 시장 상황, 원청의 요청 등을 핑계로 노동자들을 특정 3~4일 정도만 몰아서 일을 시키고 하루는 나오지 말라는 식으로 운영할 수도 있게 된다. 이론상으로는 법정휴게시간을 제외하고 52시간 연속근무도 가능하게 된다. 월요일 21.5시간, 화요일 21.5시간, 수요일 9시간 식으로 말이다.

몰아치기 노동이 많은 방송 현장의 경우 A팀이 17시간씩 3일 촬영하고 B팀이 17시간씩 3일 촬영하는 식으로 운영할 수도 있다. 제조, 경비, 병원, 게임, IT 등의 현장에 ‘크런치 모드’, ‘압축’, ‘압박’ 노동의 지옥이 합법적이게 된다.

 

출처: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출처: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아니나 다를까 노동부는 대법원 판결을 환영했다. 노동부는 지난 12월 26일 입장문을 통해 “경직적 근로시간제도로 인한 산업 현장의 어려움을 심도깊게 고민하여 도출한 판결”, “바쁠 때 더 일하고 덜 바쁠 때 충분히 쉴 수 있도록 근로시간의 유연성을 뒷받침할 수 있는 합리적인 판결”이라며 “정부는 행정해석과 판결의 차이로 현장에서 혼선이 발생하지 않도록 전문가 등 의견을 수렴해 조속히 행정해석 변경을 추진하겠다”고 했다. 그러면서 향후 노동시간 유연화를 위한 근로시간 개편 시 이번 대법원 판결의 취지를 반영하겠다고 덧붙였다.

정부는 작년 3월에 노동시간을 유연화하는 노동개악안을 발표했다가 커다란 반발에 부딪힌 바 있다. 당시 개악의 핵심이 연장근로 관리 단위기간을 주에서 월, 분기, 반기, 연 단위로 확대해 몰아치기 노동을 가능하게 하는 것이었다. 정부는 작년 11월 포장지만 바꿔 노동시간 유연화 계획을 다시 발표했고 지난 1월 4일 정부가 발표한 ‘2024년 경제정책방향’에도 이 내용이 들어 있다.

앞서 예를 들었듯 이번 대법원 판결에 따르면 법정 휴게시간을 제외하고 하루 21.5시간씩 근무가 가능하다. 노동자들에게 손쉽게 몰아치기 노동을 강요할 수 있는 것이다. 그에 따라 노동부가 행정해석을 변경하면 기업주들은 처벌받지 않고 연장근로를 마음대로 활용할 수 있게 된다. 여기에 연장근로 관리 단위기간까지 확대되면 기업주들은 초과근로수당이나 신규 채용 같은 비용 부담을 덜 것이다. 반면, 노동자들의 고통은 한층 가중되고 건강권에 심각한 위협이 된다.

정부출연 연구기관인 한국보건사회연구원에 따르면 장시간 근로는 심혈관질환 발생 위험을 47.7%, 정신질환 발생 위험을 28.8%, 사망 위험을 9.7% 높이고 교대근무 근로자는 일반 근로자에 비해 심혈관질환 발생 위험이 22.4%, 정신질환 발생 위험이 28.3%, 사망 위험이 9.9% 높다고 한다.(‘과로가 건강에 미치는 영향과 질병 부담’, 2019)

노동시간 유연화로 전국민 과로 사회를 만들려고 하는 윤석열 정부에게 대법원이 멍석을 깔아준 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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