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으로 명증하는 이순신의 대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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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으로 명증하는 이순신의 대의
  • 윤세민
  • 승인 2024.01.17 0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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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세민의 영화산책]
(15) 〈노량: 죽음의 바다〉
- 윤세민 / 경인여대 영상방송학과 교수. 시인, 평론가, 예술감독

 

영화 '노량: 죽음의 바다'에서 놓치지 않아야 할 것은 이순신의 의(義), 그 참다운 대의와 생명을 제대로 들여다보아야 한다.
영화 '노량: 죽음의 바다'에서 놓치지 않아야 할 것은 이순신의 의(義), 그 참다운 대의와 생명을 제대로 들여다보아야 한다.

 

역사 영화, 그 사실과 허구 사이

역사적 사실을 다룬 영화는 어디까지가 사실이고, 어디까지가 허구일까. 역사적 고증에 예민하지 않는 관객이라면, 영화의 스토리텔링을 곧이곧대로 역사적 사실 재현으로 믿는 경우가 많다. 또 영화라는 매체가 지닌 갖가지 기법과 장치는 그런 현상을 더욱 공고히 하게도 한다.

그러나 영화는 ‘영화’이다. 사실을 그대로 담는 다큐멘터리가 아니다. 따라서 아무리 역사적 소재와 사실을 재현하는 영화일지라도, 보통 ‘팩션(faction)’ 형식을 추구한다. 팩션이란 사실(fact)와 픽션(fiction)이 합해진 말로, 역사적 사실이나 실존 인물의 일대기에 상상력을 덧붙여 ‘새로운 이야기’를 꾸며낸 것을 말한다.

그래서 관객의 오해를 조금이나마 불식시키기 위해, 영화 상영 전 안내 자막에서 “영화적 상상력으로 재구성했음”을 밝히고 있기도 하다. 물론, 아무리 허구적 상상력을 다루는 영화일지라도 역사적 사실을 소재로 다루는 영화라면, 가능한 논란의 소지가 없도록 역사적 사실과 고증에 철저해야 함은 당연하다. 그만큼 영화의 영향력이 크기 때문이다.

 

‘이순신 3부작’의 세 주인공

<노량: 죽음의 바다>(이하 <노량>)이 1월 17일 현재 개봉 5주차에도 식지 않는 흥행과 화제를 모으고 있다. 관객들에게 사랑을 받을 수 있는 데에는 무엇보다 영화의 만듦새와 주제에 있을 것이다. 우리 국민이 가장 사랑하고 존경하는 성웅 이순신의 마지막을 그리는 영화로서 전 세대가 함께 볼 수 있는 영화인 점, 그리고 치밀한 기획과 연출로 스펙터클한 해전 묘사부터 이순신 장군의 최후와 마지막 유언까지 스크린으로 만나볼 수 있게 한 점들이 이 영화의 매력과 흥행의 포인트일 것이다.

<노량>은, 2014년 개봉해 1,761만 명이라는 한국 영화 최고의 흥행 성적을 올린 <명량>으로부터 시작해 2022년 <한산: 용의 출현>을 거쳐 이어지는 김한민 감독의 ‘이순신 3부작’의 마지막 작품이다. ‘이순신’이라는 역사적 실존 인물을 계속 주인공으로 다룬 점은 동일하나, 주인공을 맡은 배우는 각기 다르다. 감독으로서는, 동일 인물이지만 세 영화의 배경 속 주인공이 갖는 각 캐릭터의 특징을 가장 잘 소화할 수 있는 배우를 캐스팅한 것이리라.

<명량>에서 이순신 장군은 모함으로 감옥에서 고초를 겪다 나왔을 때, 이미 원균의 칠천량 해전으로 1만 수군이 다 없어지고 겨우 남은 12척의 전선으로 외롭게 전쟁을 벌여야 되는 그런 암담한 상황이었다. 그런 상황 속에서도 백성을 사랑하는 마음과 불굴의 의지로 무장한 이순신을 고도의 연기력과 흡입력으로 보여줄 수 있는 배우로 최민식을 선택했고, 그 기대만큼 열연을 해냈다.

또 <한산>에서 이순신 장군은 굉장히 용맹하면서도 지략이 뛰어난 인물로 그려진다. 실제로 한산대첩은 이순신 혼자 감내한 게 아니고 원균과 이억기와 함께 연대를 펼친 해전이었다. 그 당시에는 삼도수군통제사가 없었기 때문에 세 수군절도사가 연합 작전을 펼쳐야 했다. 그렇기에 그런 전황을 리드해 갈 수 있는 용장이면서 지장으로서의 이순신에 걸맞는 배우로 박해일을 선택했던 것이리라.

그 다음 <노량>에서는 수없는 전투를 승리로 치러낸 명장으로서 7년 전쟁의 마침표를 찍으려는 불굴의 이순신, 그러면서도 아들의 죽음 그리고 전쟁에서 이긴다 하더라도 결국 자신은 죽을 수밖에 없는 운명을 아는 그런 내적 고민을 가진 인간적인 이순신이 그려진다. 그래서 그런 이순신을 노련하면서도 결기 있게 보여 줄 배우로 김윤석을 선택했고, 그 선택이 옳았음을 보여 주었다.

 

<노량>의 스토리텔링과 키포인트

<노량>은 임진왜란 발발 7년 후 조선에서 퇴각하려는 왜군을 섬멸하기 위한 이순신 장군 최후의 전투를 그린다.

임진왜란 발발로부터 7년이 지난 1598년 12월. 이순신(김윤석)은 왜군의 수장이던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갑작스럽게 사망한 뒤 왜군들이 조선에서 황급히 퇴각하려 한다는 것을 알게 된다. “절대 이렇게 전쟁을 끝내서는 안 된다.” 왜군을 완벽하게 섬멸하는 것이 이 전쟁을 올바르게 끝내는 것이라 여긴 이순신은 명나라와 조명연합함대를 꾸려 왜군의 퇴각로를 막고 적들을 섬멸하기로 결심한다.

하지만 왜군의 뇌물 공세에 넘어간 명나라 도독 진린(정재영)은 왜군에게 퇴로를 열어주려 하고, 설상가상으로 왜군 수장인 시마즈(백윤식)의 살마군까지 왜군의 퇴각을 돕기 위해 노량으로 향하면서 7년 전쟁 마지막 해전이 펼쳐지게 된다.

이순신은 절체절명의 위기 속에서도 불굴의 의지와 뛰어난 지략으로 마침내 7년 전쟁의 종지부를 승리로 장식한다. 그러나 이 승리와 함께 그도 비장한 죽음을 맞는다. 멈추지 않는 북소리와 함께.

‘북소리’는 이 영화의 키포인트다. 전쟁에서 북을 친다는 건 결코 물러나지 말고 끝까지 진군하라는 독려의 의미다. 원래 북은 군사들이 치는 것이지만, <노량>에서 이순신은 직접 북을 친다. 심지어 왜군의 총을 맞고서도 계속 친다. 삼도수군통제사라고 하는 종2품 고위 사령관이 북을 직접 친다는 것은 전쟁터에서 자신의 위치를 알리기에 굉장히 위험하고 잘못하면 적탄에 맞아서 전열 자체가 흐트러질 수 있기 때문에 절대 그러면 안 되지만, 이순신에겐 그만큼 급박한 상황이었다. 자신의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승리를 위한 처절한 독려를 한 것이다.

결국 이 북소리로 인해 영화에서는 왜장이 굉장히 괴로워하지만, 조선 수군과 명나라 군사들은 힘을 얻어가지고 마침내 전투를 승리로 장식한다. 영화의 시작과 끝 역시 이 북소리가 장식한다. 이 북소리의 의미와 함께 엔딩 크레딧이 다 흐른 뒤 광해군에 의해, 낮에 나온 대장별에 의해 이순신이 다시금 조명되는 쿠키 영상도 놓치지 않기를 바란다.

 

<노량>에서 놓치지 않아야 할 것, 이순신의 의(義)

<노량> 역시 역사적 사실과 영화적 허구 사이의 논쟁이 뜨겁다. 특히 항왜 준사, 명나라 도독 진린과 등자룡, 왜장 시마즈와 고니시, 거북선의 재등장, 해상에서의 전투 함선과 백병전, 이순신의 최후와 유언 등을 둘러싸고 진실 공방이 한창이다.

그러나 영화는 ‘영화’이다. 따라서 관객 입장에서는 우선 영화를 영화 그대로 보는 안목과 해석에 초점을 맞추었으면 한다. 쉽게 얘기해서, 영화의 주요 요소인 스토리텔링, 연기, 연출, 영상미학 등에 주목하며, 그 영화가 주는 재미와 감동에 순전히 빠지면 그만이다.

<노량>에서 놓치지 않아야 할 것은 이순신의 의(義)가 아닌가 싶다. 영화 <한산>에서 의(義)의 깃발을 높이 들었던 것처럼 이순신은 마지막까지 의로써 불의의 침략자를 섬멸했고, “나라의 치욕을 씻으라!”는 어머니의 바람처럼 조선의 대의(大義)를 지켰다. 7년 불의를 종결하며 조선의 봄과 생명을 되돌려 주었다. 영화 <노량: 죽음의 바다>에서 우리는 참다운 대의와 생명을 제대로 들여다보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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